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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창 (13)
57회째 공격이었다. 요란한 무기 소리에 연무장 근처의 사람들은 안절부절못했다.
두 사람 다 승리의 기회를 속도와 힘에 걸었다. 둘의 무술 실력은 비등했다. 독룡세 중 모든 조합의 돌격술은 철엽의 군도에 막혔고 철엽 또한 전력을 다해 상대를 공격하지 못했다. 두 사람은 막상막하의 속도로 순수하게 공격에 공격을 거듭했다. 양쪽이 정말 이 공격 태세를 끝까지 밀고 나간다면 쌍방이 다치는 결과밖에 얻지 못할 것이었다. 심지어 서로의 가슴을 꿰뚫게 될 수도 있었다.
연무장 안에 전쟁터의 철혈(鐵血)과 황사 냄새를 머금은 핏빛 바람이 몰아치는 듯했다.
금장국 좌석의 작은 주인이 식연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더 이상 두리번거리지 않았다. 주먹을 꼭 말아 쥐고 장내 동정을 주시했다. 등 뒤에서는 우람하고 훤칠한 소년 하나가 걱정하지 말라는 뜻으로 그의 어깨를 힘주어 붙잡고 있었다.
“전랑봉!”
철엽의 포효에 식연이 시선을 다시금 무대로 돌렸다. 식연도 그 명칭을 들어본 적 있었다. 초원을 돌아다니던 시절 방목하던 사내가 북도 장군 목려의 낭봉도를 찬탄하면서 그를 좇아 전장에 나가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을 이야기했었다. 철엽은 마침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강의 기술을 사용했다. 그는 찌르기 공격의 위험을 무릅쓰고 희야의 반경 3척 안에 번쩍하고 나타났다. 희야의 긴 창이 허공을 찌르는 찰나, 철엽이 완벽한 공격 기회를 얻었다.
철엽이 허리를 돌리는 힘으로 장도를 움직여 직경 4척의 눈부신 원을 그렸다. 목려가 전수하면서 말해 주었다. 전랑봉은 일반 낭봉도의 도술(刀術)과는 달리 마지막에 힘을 더 쏟을 필요가 전혀 없이 그저 한 번만 강력하게 회전하면 되는 기술이라고. 철엽은 희야가 아직 손에 쥐고 있는 창의 뒷부분으로 막을 것이라는 계산도 끝냈다. 그는 이번 공격에 호아창의 뒷부분을 자르고 그대로 희야의 허리를 벨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철엽은 질 수 없었다. 세자의 심복이라는 명예를 실추시켜서는 안 되었다. 마음을 모질게 먹은 철엽은 인정사정없었다.
전랑봉이라는 명칭을 듣는 순간 희야는 자기가 얼마나 위험한 지경에 놓였는지 깨달았다. 이미 만회하기에는 늦어버린, 실책이었다. 걸출한 무사와 대적해본 적 없던 희야는 십수 대에 걸친 초원 무사들의 전투 경험이 응집된 낭봉도 공격을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창날은 이미 거둬들일 수 없었다. 창 뒷부분의 나무 자루로 철엽의 칼을 막을 수 있을까? 희야는 방어를 포기하고 온몸으로 달려들었다. 누구도 희야가 이런 방식으로 대응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이러면 가로 베는 장도의 공격을 피할 방법이 없었다.
철엽의 칼이 의도대로 희야의 허리를 그었다. 새빨간 피가 흩뿌려지는 순간 놀랍게도 부상을 당한 희야가 철엽처럼 회전했다. 칼이 희야의 허리를 베며 깊고 긴 상처를 남겼다. 희야는 긴 창을 반대로 쥐고 창 뒷부분을 채찍처럼 휘둘렀다. 긴 창은 근접전에서 칼보다 못하며 힘을 올릴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희야는 해냈다. 철엽이 경악하는 순간, 희야는 거리를 두지 않고도 힘을 올릴 수 있는 철엽의 기술인 ‘전랑봉’을 완벽하게 따라 했다.
콰르릉. 금속이 쪼개지는 거대한 울림이 일었다.
창 뒷부분이 쇠 채찍처럼 철엽의 호심경(護心鏡)을 가격했다. 철엽은 자신의 두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두 소년은 한데 들러붙은 채로 상대의 눈을 노려보았다. 경직된 순간이 지나고 철엽이 온 힘을 다해 희야의 어깨를 밀쳤다. 반대 방향으로 물러난 두 사람은 일제히 바닥에 주저앉았다. 희야는 허리의 상처를 눌렀고 철엽은 멍하니 수중의 칼을 쳐다보았다. 희야가 목숨 걸고 가까이 달려들어 초래된 결과였다. 희야가 너무 바짝 붙은 탓에 철엽은 칼날 끄트머리로 희야의 허리를 겨우 베었다.
낭봉도의 칼날 끄트머리는 회전이 가장 느린 부분이자 칼 몸에서 가장 무딘 곳이기도 했다.
두 사람 사이의 지면에는 드문드문 핏방울이 흩뿌려져 있었다. 허리를 누르고 있는 희야의 손가락 틈으로 붉은색이 스며 나왔다.
동궁 태자는 놀라서 눈을 가렸다. 백리경홍도 당황했다. 양국의 우호적인 관계를 표하려던 아이들 간의 겨루기가 도리어 만족과 화족의 잔혹한 전장(戰場)을 재현하고 말았다. 대신들도 귀족들도 소년들의 다툼이 선혈이 튀길 정도로 격렬해질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희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문을 열었다.
“전랑봉이라고? 기억했다.”
“그래!”
철엽은 겉보기에 하나도 부상을 입은 것 같지는 않았지만 안색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일어나! 일어나라고!”
철엽의 형 철안이 좌석 위에서 팔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철엽이 몸을 일으켰다. 그는 장도를 짚은 채 눈을 부릅뜨고 희야를 보았다. 희야도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식연은 이 연무를 중단시켜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잠시 망설였다. 어쨌든 누구 하나가 피바다 속에 시체로 누운 모습을 보고 싶은 사람은 없었으니까. 그리고 이미 부상을 당한 희야가 두 번째 전랑봉 공격을 막을 수 있을까?
“너한테 졌다! 이것마저 습득하다니!”
철엽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희야를 향해 손에 든 칼을 내던지고는 휘청하며 바닥에 엎어졌다. 패배를 인정하는 만족의 방식이었다. 금장국 좌석에서 소년들이 달려와 철엽을 부축했다. 그제야 소년들은 알게 되었다. 철엽의 가슴팍에서 빛나던 호심경이 산산이 조각났고 날카로운 가장자리 부분이 그의 가슴을 찔렀다는 것을.
철엽의 부상은 희야보다 훨씬 심했다.
“네가 이겼어!”
들려 내려가던 철엽은 희야의 곁을 지나가며 말했다.
“난 너보다 못해. …하지만 우리 형이었다면 넌 못 이겼을 거야. 어릴 때부터 형은 나와 칼을 겨루어서 진 적이 없거든.”
“그럼… 네 형도 덤벼보라고 해!”
희야도 철엽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창을 짚고 서 있었지만 제대로 서지 못하고 발이 미끄러지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일곱 번째 대결, 하당국 희야 승.”
식연은 망설여졌다. 전쟁터에서 가볍게 기를 휘두르며 수많은 군사를 필승으로 이끄는 대장군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 창야를 내보내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이 되었다.
“결국 쌍방이 다 다치고 말았군.”
“이번 판은 명실상부 우리 쪽 승리요. 어쨌든 우리 무사는 연달아 몇 판을 싸웠잖소.”
“남은 소년 무사들이 나라 망신을 시키지는 않으려나 모르겠구려.”
“사마공은 어찌 상대의 기를 세우면서 우리 기세는 깎아내리는 그런 재수 없는 말을 하는 거요?”
“선조들의 명성에 먹칠하는 짓은 우리도 적잖이 했잖소.”
소부의 업무를 중재하는 사마공이 탄식하며 말을 이었다.
“언제쯤이나 풍염의 피를 재정비하여 다시 용의 깃발을 들고 아산으로 향하려나!”
왈가왈부하는 소리가 끊임없이 귓전을 울렸다. 연무장 가의 희겸정은 이미 막내아들을 출전시키려 준비하고 있었다. 희야가 일어날 힘이 없어 보이자 사람들은 다음 소년이 무대에 오르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희야는 바닥에 앉아 눈을 부릅뜨고 식연을 쳐다보았다.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고통에 말을 할 수 없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식연은 희야의 새카만 두 눈동자에서 고집스럽고 무시무시한 의지를 보았다. 희야는 창야가 무대를 올리지 못하도록 눈빛으로 식연을 제지하고 있었다.
“창야!”
희겸정은 식연이 왜 망설이는지 모른 채 창야를 연무장으로 밀며 어깨를 툭툭 쳤다.
“창야. 무대에 올라라. 한 명 남았으니 저 아이를 이기면 부장의 직위는 네 것이다.”
창야의 등에서 거부하는 힘이 느껴진 희겸정이 아들을 격려했다.
식연은 고개를 저으며 징채를 들었다.
“올라오지 마!”
희야가 벌떡 일어섰다. 그 바람에 허리의 상처가 벌어졌다. 희야는 곧 무너질 듯 위태롭게 자신이 흘린 피웅덩이 속에 서 있었다. 희겸정은 그가 가장 싫어하는 희야의 눈빛을 또 마주하자 저도 모르게 흠칫 놀랐다.
“올라오지 말라고!”
희야의 목소리는 잔뜩 갈라져 있었다.
“내가 저들을 무찔렀어. 저들 모두를 내가 이길 수 있어!”
“희야. 제정신이냐?”
희겸정은 삽시간에 낯빛을 바꾸고 목소리를 낮췄다.
“부장은 누구든 될 수 있어요.”
희야가 입술을 깨물며 소리쳤다.
“아우가 될 수 있으면 저도 될 수 있다고요!”
“친아우와 다툴 셈이냐? 이 악렬한 놈. 무슨 저의를 품은 게야?”
순간 멍해진 희야는 힘껏 고개를 저었다.
“아우와는 다투지 않아요. 빼앗을 수도 없는걸요. 난 그저 나 자신과 싸우는 거예요!”
희야가 손을 바들바들 떨며 말을 이었다.
“왜죠? 왜…. 대체 왜… 나는 항상 남들 뒤만 쫓아야 하죠?”
“우리… 우리 희씨 가문에 네놈 같은 이기적인 불효자가 나오다니!”
희겸정은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제 아버지의 시선을 보고 질책을 들으면서, 또 그가 다급하게 제 아우를 연무대 위로 미는 모습을 보면서 희야의 눈빛이 몹시도 고요하게 변했다. 그는 희겸정을 응시하면서 천천히 물러났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멀리 물러났다. 희겸정은 그토록 고요해진 아들의 까만 눈동자는 처음 보았다. 무척 낯선 눈빛이었다.
“우리 동륙의 무사는 절대 간계(奸計)만 부릴 줄 아는 사람들이 아니야.”
연무대 한가운데로 물러난 희야가 휙 고개를 들어 제 아버지와 아우를 보았다.
희야는 고개를 쳐들고 높은 좌석 위의 금장국 사절단을 가리키며 말했다.
“당신들을 이길 거야. 당신들 모두를 무찌를 거야.”
희야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피가 꽉 메인듯하기도 하고 다른 무언가가 막혀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희야는 힘껏 자기 가슴을 쳤다. 가슴이 마비될 정도로 아프게. 그 고통이 다른 모든 것을 억누르도록.
“나 하나면 충분해! 나 혼자서 당신들 모두를 무찌를 거야! 당신들 모두를!”
희야는 호아창을 집어 들었다. 긴 창이 거대한 반원으로 휘둘러지며 관람대의 거의 모든 사람들을 스치고 지나갔다.
식연은 약간 통제력을 잃은 소년을 바라보았다. 소년은 이를 악다문 채 얼굴을 흉악하게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그는 소리쳐 희야를 제지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바라볼 뿐이었다.
“제가 나가겠습니다.”
여귀진 뒤에 서 있던 마지막 한 사람이 앞으로 걸어 나와 제 주인 앞에 반 무릎을 꿇었다.
“철안. 이번 판은 반드시 이겨야 해!”
“지금 이 상황에서 제가 이기든 지든 하당국 무사들은 이미 저희를 크게 앞질렀지요. 그러나 저, 철안은 절대 세자를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순간 멍해진 여귀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어난 무사는 한 채의 작은 산 같았다. 키도 아우보다 컸고 온몸에는 무거운 기병 철갑을 걸쳤다. 가슴 앞에는 아우처럼 매우 밝은 호심경을 걸고 있었다. 만족 무사 중에서도 호심경을 가질 자격이 되는 경무사(鏡武士)는 영광의 상징이었다. 만족의 일곱 소년 중에서 다섯 명은 구리로 만든 일반 투구를 썼다. 그러나 철씨 형제는 대군에게 경무사의 칭호를 하사받은 무사였다. 철안의 칼솜씨는 아우인 철엽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는 이미 호표기 최연소 백부장이었다.
성큼성큼 연무장 가로 간 철안은 안색이 창백한 창야를 보았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희겸정과 시선을 맞췄다. 그 눈길이 창야를 무대로 올리려던 희겸정의 결심을 결국 무너뜨렸다. 철안과 그의 아우는 달랐다. 철안이 사람을 볼 때의 표정과 태도는 이미 아이가 아닌 진정한 만족 무사였다.
식연이 징채를 떨어뜨렸다.
“여덟 번째 대결. 하당국 희야 대 금장국 철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