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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창 (1)
윤 희제 5년 10월.
쇄하산 남쪽 기슭의 팔록원. 어지러운 녹나무 향불 연기 속에서 무당은 머리 위로 손바닥을 치고 노래를 부르면서 불더미 주위를 돌며 춤을 췄다. 대윤 제후들은 높은 관(冠)을 쓰고 소매가 넓은 옷을 입고서 줄줄이 앞으로 나아가 여덟 번 절하며 청규(靑圭)와 백옥(白玉)을 바쳤다. 그러면 군막 한가운데에 반듯하게 앉아 있는 사람이 답례로 일곱 번 절했다. 이로써 패권을 손에 쥐는 ‘납벽지례(納璧之禮)’가 끝났다.
‘쇄하동맹’의 광경이었다. 처참했던 ‘쇄하혈전’은 제후와 고관들의 성대한 모임으로 마무리되었다. 가랑눈이 어지럽게 흩날렸지만 팔록원이라는 전쟁터에 미처 다 묻지 못한 시신들까지 뒤덮지는 못했다.
대윤이 세워진 지 700년 만에 처음으로 패권을 장악한 제후가 탄생했다. 리국 제후 영무예. 그가 무리 앞으로 나왔다. 제후국의 강병을 등에 업고 조정의 권력을 손아귀에 움켜쥔 그는 새로운 시대를 선포했다.
이 강력한 수사자가 포효하며 동륙을 주무르던 시대는 후세 사람들이 보기에 유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짧은 순간에 불과하지만 그로 인해 장미 황제의 명맥은 철저하게 종식되었다. 그때부터 동륙 땅에서는 불길한 전쟁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힘 있는 제후들은 신성하게 여기던 황성의 천계성을 호시탐탐 노렸다. 그리하여 과거 위대한 황제의 자손들 중에서는 단 한 사람도 이 광활한 국토를 진정으로 장악하지 못했다.
‘20년 난세’의 시작이었다.
윤 희제 6년 4월. 꽃 피는 봄이 왔다.
‘쇄하혈전’에서 패배한 동맹국 제후들이 각자의 궁에서 분노해 탄식하고 있을 때, 민첩한 백마 한 마리가 나는 듯이 완주 남회성 성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제왕의 씨앗은 가장 어두운 곳에서 조용히 움트고 있었다.
* * *
“이것은 연습이 아니라 대결이다. 둘 다 최선을 다해라. 원 밖으로 밀려나도 지고 손에서 칼을 놓쳐도 진다. 시작!”
중년 남자가 낮게 외치며 손에 든 돈을 던졌다. 땡그랑. 돌이 깔린 마당 바닥에 돈이 떨어지자 오래된 단풍나무 아래 공기도 돌연 싸늘해졌다.
창을 든 이는 몸을 옆으로 하고 허리를 굽혀 ‘고양이 자세’를 했다. 그리고 천천히 창 몸통을 훑어가던 손가락 네 개를 꽉 움켜쥐었다. 7척 7촌1) 길이의 긴 창이었다. 비스듬히 비추는 햇빛에 검은색 날카로운 창끝은 옅은 먹색을 띠었는데 오래된 구릿빛 별 같기도 했다. 화려함이라곤 없는 삭모(槊毛)에 구부러진 이호(魑虎)2)가 창의 목 부분을 휘감고 있었다. 9촌 길이의 창날은 반절의 날카로운 검 같았다. 창대 앞쪽의 2척 5촌 길이는 정제된 단철(鍛鐵)로 감싸졌고 나머지 부분에만 자단나무의 색이 드러나 있었다. 장중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띠는 매우 독특한 형태의 창으로 잠잠히 있는 한 마리의 호랑이 같았다.
맹호소아창(猛虎嘯牙槍). 세상에 전해지는 이 창의 이름이었다. 무수한 선혈에 단련된 무기로 강철의 질이나 길이, 무게 중심 면에서 결점 하나 없이 완벽했으며 단번에 세 겹의 철제 갑옷도 뚫을 수 있었다. 구주의 모든 종족 중에서 인간의 설계와 하락족의 독보적인 주조 공예의 조합만이 값어치 없는 쇠에 이토록 심오한 살기를 응집해낼 수 있었다.
검을 든 상대는 창의 위력을 잘 알기에 극도로 신중했다. 그는 천천히 위치를 바꿨다. 2척 7촌 길이의 고검(古劍)을 칼집에 넣은 채 언제 공격이 들어올지 상대가 알아채지 못하도록 칼자루를 움켜쥔 손의 자세만 끊임없이 바꾸었다. 그가 남긴 무수한 발자국이 차츰 거대하고 규칙적인 원을 그렸다. 이것은 ‘대제지검(大齊之劍)’의 ‘호혜보(虎蹊步)’로 폭발하기 전 힘을 비축하는 것이었다.
중재자인 중년의 사내가 한 걸음 살짝 물러났다. 고요함 속 곧 폭발할 듯한 불안감에 짓눌린 것 같았다.
“짹짹, 짹, 짹짹.”
돌연 새소리가 정적을 깨트렸다.
비취색 날개에 노란색 꼬리의 앵무새가 창과 검 사이에 내려앉았다. 짹짹 울면서 미련하게 머리를 돌린 새는 새카맣고 동그란 눈으로 두리번두리번 좌우를 살폈다. 집에서 기르는 새는 들새처럼 예민하지 않아서 사람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 것은 물론 고요함 속에 내재된 극도의 불안감도 알아채지 못했다.
검을 든 자의 눈빛이 살짝 변했다. 아주 잠깐이었다. 매우 빠르게 앵무새를 흘끗 쳐다본 그는 가슴이 오싹해져 얼른 시선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 순간으로 충분했다. 용사의 포효가 그를 덮쳐왔다. 창을 든 이는 그 짧은 순간에 유일한 일격을 내질렀다. 다른 어떤 변화도 없이 곧게 뻗어나간 찌르기였다.
그러나 필살의 공격이었다!
공기가 창의 목 부분을 타고 용사의 입속으로 파고들어 귀로 흘러나왔다. 그의 포효는 호랑이가 울부짖는 소리 같았다. 흑금(黑金)처럼 새카만 두 눈이 번개처럼 번뜩였다. 검을 든 자의 ‘호혜보’가 완전히 무너졌다. 검도 반밖에 뽑지 못한 채 손에 힘을 잃고 재빨리 물러났다. 다른 여지가 없었다.
앵무새가 놀라 날아올랐다. 차가운 먹색 빛살이 오후의 태양을 꿰뚫었다. 떨어지던 잎사귀 하나가 창날에 반으로 찢어지고 창끝은 그대로 검을 든 이의 명치를 가리켰다.
다급한 울림이 일고 이어 퍽 소리가 나면서 긴 창이 땅에 떨어졌다.
긴 창과 함께 떨어진 것은 바랜 금빛의 동전 한 닢이었다. 창을 든 이는 재빨리 피하며 물러나려 했다. 무기를 잃고 상대 앞에 완전히 맨몸으로 노출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검은 든 자는 상대가 피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는 크게 기뻐하면서 얼른 발을 내디디며 검집에서 검을 뽑았다.
그는 섬광처럼 빠른 속도로 검을 뽑아 들었다. 움직임은 조금의 군더더기도 없이 깔끔했다. 그의 무술도 약하지 않았다. 단지 상대가 지닌 창의 무시무시한 기세에 멱살이 잡힌 사람처럼 기술을 발휘할 수 없었을 뿐. 지금 상대의 손에는 무기가 없다. 그는 상대의 어깨를 향해 검을 비스듬히 찔렀다. 검의 길이를 최대한으로 이용한 기술이었다. 더구나 그는 상대가 어깨를 옆으로 피한다면 즉시 평평하게 칼을 휘둘러 최소한 명치를 벨 수 있도록 손에 힘을 남겨두었다.
거의 필승에 가까운 흠잡을 데 없던 공격은 상대가 갑자기 고개를 숙이면서 수포로 돌아갔다. 검을 든 이는 허공에서 저도 모르게 가로로 검을 휘둘렀고 검 빛이 공기 중을 가르며 번쩍였다. 그의 빈틈이 전부 드러났다.
“흐압!”
노호한 외침이 아래에서 전해졌다. 고개를 숙인 상대가 한 발로 회전하면서 다리 뒤로 발차기를 날렸고 검을 든 이는 손목을 그대로 맞았다. 엄청난 힘이 검과 함께 하늘로 솟구쳤고 검을 든 이는 균형을 잃고 철퍼덕 바닥에 주저앉았다.
댕그랑댕그랑. 검이 떨어져 돌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창을 든 이는 잽싸게 뒤로 한 걸음 물러나 발끝으로 떨어진 검을 집어 들었다. 창은 무거워서 그렇게 들어 올릴 수가 없었기에 그는 몸을 옆으로 틀어 뒤로 돌며 단번에 손으로 창을 주웠다. 무기 두 개가 모두 그의 손에 떨어졌다. 그제야 그는 싸늘하게 시선을 돌려 상대를 힐끗 쳐다보았다. 햇빛 아래 그의 눈동자에는 한 줄기 차가운 빛이 어린 듯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뜻밖에도 먹물처럼 새카맸다.
“내가 이겼어.”
그가 나직하게 말했다. 나이에 맞지 않게 쉰 목소리였다.
놀랍게도 양쪽 모두 소년이었다. 창을 들었던 이는 열두셋쯤 되었고 키가 제법 컸다. 검을 들었던 이는 기껏해야 열하나, 열둘 남짓이었다.
“우, 우기지 마! 분명히 나보다 먼저 무기를 손에서 떨어뜨렸잖아!”
검을 들었던 소년은 옅은 갈색 눈에 용모가 빼어나고 귀여웠다. 그는 정신을 차리고 입을 비죽거리며 있는 힘껏 상대에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내가 이겼어!”
“이긴 건 나야.”
검은 눈동자의 소년이 쉰 목소리로 상대와 같은 말을 반복했다.
“창은 내가 떨어뜨린 게 아니야.”
소년은 맹호소아창을 품에 안고 자기 손목을 움켜쥐었다. 한 가닥 핏줄기가 소가죽 손목보호대 안으로 흘러내렸다. 소년은 뜻밖에도 손목에 상처를 입었던 것. 소년은 무시하듯 바닥에 떨어진 동전을 쳐다보고는 한쪽에 있는 중년 남성을 쳐다보며 입술을 꾹 말아 물었다.
갈색 눈동자의 소년은 말문이 막히자 씩씩대며 콧방귀를 뀌고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창은 옆에 있던 중년 남자가 금수 한 닢으로 떨어뜨린 것이었다. 대윤의 금수는 묵직해서 근거리에서 공격할 시에는 무기나 다름없었다. 검은 눈동자의 소년이 창에 실은 힘과 창을 내지른 속도는 애당초 갈색 눈동자의 소년이 반격할 기회조차 없는 것이었다.
중년 남성이 손을 내두르며 말했다.
“네가 이겼다. 누가 이기고 졌는지는 나도 당연히 안다. 너는 아우보다 2년이나 더 창을 배웠지 않니. 심지어 맹렬하기 이를 데 없는 독룡세(毒龍勢)를 연마했지. 그러니 이겼다고 좋아할 것 없다. 지는 것이야말로 있어서는 안 될 일이지.”
“아버지!”
갈색 눈동자의 소년은 그때야 아까 그 창의 위험을 깨닫고 간담이 서늘해졌다. 게다가 제 아비가 대결에서 졌다고 말하니 억울해져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겸손한 군자는 진중함을 근본으로 한다. 희비를 줄이고 묵상(默想)을 늘려야지.”
아버지는 따뜻한 말로 갈색 눈동자의 소년을 달랬다. 그는 선현의 가르침을 인용하며 아들이 함부로 눈물을 보이지 못하도록 했다.
맏이에게로 돌아선 아버지는 차갑고 엄한 얼굴로 말했다.
“내가 왜 네 창을 떨어뜨렸는지 아느냐?”
“제가 창야를 다치게 할까 봐요.”
검은 눈동자의 소년이 아우를 흘끗 쳐다보고는 말을 이었다.
“아우를 다치게 하지 않아요. 얼마쯤 더 찌르고 나갔더라도 당연히 멈췄을 겁니다.”
“멈췄을 거라고?”
분노가 극에 달한 부친은 도리어 실소했다.
“희야. 나는 네게 오랫동안 창술을 가르쳤다. 한데 네가 언제 창을 멈추었던 적이 있느냐? 덮어놓고 난폭하게 찌를 줄이나 알지. 내가 창을 떨어뜨리지 않았다면 너는 네 아우의 몸에 창을 찔러넣었을 것이다!”
검은 눈동자의 소년은 분노한 아버지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자기 손목만 움켜쥐고 있었다.
“손목을 다치지만 않았어도 보여드렸을 거예요! 그 정도 창의 힘은 진즉 멈출 수 있게 되었다고요!”
“입만 살았구나!”
아버지가 낮은 목소리로 꾸짖었다.
그는 아들의 말에 다소 회의적이었다. 맏이는 창술에 있어 타인을 능가할 정도로 천부적인 자질이 있었다. 저 불길한 창을 막을 수 있는 자가 있다면 그것은 자신뿐이었다.
“창야는 내가 검을 발로 차버리지 않았다면 멈췄을까요?”
아버지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나도 멈출 수 있어!”
갈색 눈동자의 소년이 지지 않고 소리쳤다.
“형도 멈출 수 있는데, 나라고 못 할 것 같아?”
“네가? 아서라.”
검은 눈동자의 소년이 싸늘하게 되받아쳤다.
“네가 멈출 수 있든 없든 상관없어. 어차피 네 검술로는 날 다치게 하지 못해. 아버지는 날 구하지 않겠지만 나도 아버지의 도움은 필요 없어.”
아버지가 소리쳤다.
“건방지구나! 너희는 피를 나눈 형제다. 나는 너와 네 아우를 똑같이 대한다. 너처럼 성질이 악독한 사람이나 그리 각박할 수 있는 것이다. 대체 넌 우리 희씨 가문의 가풍에서 뭘 물려받은 게냐?”
검은 눈동자의 소년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뜰 안이 조용해졌다. 갈색 눈동자의 소년은 아버지의 허리띠를 잡은 채 그 뒤에 움츠리고 서서 제 형을 향해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분노가 사그라지지 않은 아버지는 날쌔게 맏이의 손에서 고검을 빼앗았다. 돌아서서 막내를 데리고 자리를 떠나려던 그때. 맏이가 등 뒤에서 혼자 중얼거리는듯한 소리가 들렸다.
“금수 한 닢도 던져버린 마당에 나는 뭐로 구했을 거라고?”
여전히 갈라진 목소리에 감정이 실리지 않은 싸늘한 말투였다. 아버지로서 마음이 약간 시큰 떨떠름해진 그는 고개를 돌렸다. 맏이는 고개를 옆으로 돌린 채 목을 꼿꼿이 세우고는 햇빛을 옆으로 받고 있었다. 먹처럼 까맣고 이마 가장자리까지 뻗은 기다란 눈썹에 돌연 황성의 그 여인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돌연 마음이 약해져 맏이를 흘끗 쳐다보며 말했다.
“다른 건 몰라도 아까 네 창술은 실수가 너무 많고 전법의 금기 사항을 어겼다. 독룡세라 하더라도 맹렬함이 지나쳐서는 안 된다. 첫 공격에 성공하지 못하면 빈틈이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 있어. 그럼 어떻게 적의 반격을 빨리 피하겠느냐?”
“아까 그 공격으로 적을 죽여버렸다면 애초에 그는 반격할 기회도 없었겠죠.”
“네 창술이 적보다 약하면 어쩔 테냐? 그를 죽이지 못한다면 어쩔래?”
아버지는 다시 불쾌함이 치밀었지만 얼굴에 드러나지 않게 감정을 억눌렀다.
“그럼 지겠죠. 전력을 다해도 죽일 수 없다면 여지를 남겨둔다 한들 이기지 못할 테니까요.”
“황당하구나!”
아버지가 낮게 소리쳤다.
“네놈의 독한 성질머리를 바꾸지 않는 한 언제고 네 스스로를 해치게 될 게다. 네 나이 이제 겨우 열둘인데 어찌 이리 살기가 강할꼬. 창야는 무예를 겨루면서 한눈을 팔아서는 안 되나 새를 보고 마음이 움직였다. 소년은 다 이러하다. 그러나 네 마음에는 ‘죽일 살(殺)’, 이 한 글자밖에 없지. 성인이 말하기를 수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꾸밈없는 천성이라 하였거늘. 그 나이에 벌써 이러면 커서 마귀가 되지 않겠느냐?”
“저는 성인 따위는 모릅니다.”
검은 눈동자의 소년이 싸늘하게 제 아비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우는 공부를 했지만 저는 못 했습니다. 아우는 출정해 관직을 받겠지만 저는 못 합니다. 전장에 나간다고 해도 아우는 군 막사 안에 앉아 있고 저는 최전선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겠죠. 성인이 날 구할 수 있습니까? 성인이 전쟁에도 나갔나요? 나갔다면 아마 벌써 죽임을 당했을 겁니다.”
“어리석기 짝이 없구나!”
마침내 인내심을 잃은 아버지는 한마디도 더 하기 싫어져 막내의 손을 잡고 자리를 떠나버렸다.
오래된 단풍나무 아래에는 검은 눈동자의 소년만 덩그러니 남았다. 아버지와 아우가 떠나가는 것을 보지 못한 듯 묵묵히 햇빛만 마주하고 있었다. 아버지와 아우의 인영이 멀찍이 사라지고 아무도 그를 볼 수 없게 되어서야 소년은 천천히 앉았다.
소가죽 손목 보호대 안의 핏방울이 풀 위로 뚝뚝 떨어졌다. 그는 이를 악물고 손목 보호대를 잡아당겨 벌렸다. 안에는 철갑 보호대가 한 겹 더 있었다. 그것을 열자 안에는 짤막하고 무딘 바늘이 한 층 깔려 있었고 그 무딘 바늘이 소년의 손목을 찌른 것이었다. 상처는 심하지 않았지만 가슴이 오싹해질 만큼 고통스러웠다.
그는 띠를 입에 물고서 말없이 자신의 팔목을 단단히 묵었다. 아직 푸른 단풍나무 잎이 유유히 소년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소년은 고개를 들고 석상처럼 우두커니 떨어지는 나뭇잎을 바라보았다.
* * *
1) 1척은 약 30cm, 1촌은 약 3cm다. 7척 7촌은 약 2.3m.
2) 전설 속, 용의 새끼 중 하나로 알려진 신비의 동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