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주표묘록-43화 (43/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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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청동의 피 (8)

커다란 물고기에는 뼈 가시가 수도 없이 나 있었다. 이빨처럼 날카로운 것이 새카만 가죽에 돋아나 있었고 쇳빛에 반사된 비늘이 머리를 전부 뒤덮었으며 눈도 없었다. 놈의 머리에는 탐욕스러운 커다란 아가리뿐이었으며 입안의 이빨은 독사 같은 미늘 모양이었다. 누리끼리한 혓바닥에는 독이 있는 듯한 청록색 혹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괴물의 몸통 절반이 관성에 의해 강둑 위로 밀려왔다. 괴물은 무쇠처럼 단단한 꼬리로 암석을 냅다 후려치고는 고개를 들어 다시 노인을 깨물려 했다. 그것은 노인의 발을 응시했다. 아소륵은 불현듯 깨달았다. 저 괴물은 피 냄새에 이끌려 온 것이었다.

노인은 벼랑 위에서 덮치려는 맹수 같았다. 공중에서 노인의 두 손이 마구 비틀리며 변화했다. 아소륵은 노인의 손동작이 똑똑히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노인이 갑자기 바닥에 착지하더니 무언가를 잡아당기며 물러났다. 동굴 안은 괴물 소리로 가득 찼다. 이번에는 갓난아기가 온 힘을 다해 목구멍 안쪽 깊은 곳에서부터 울부짖는 듯한 소리였다.

노인이 놈의 혓바닥을 붙잡고 있었다!

온몸에 가시가 돋아 만질 수 없는 괴물의 몸에서 유일하게 얼룩덜룩한 혓바닥만이 매끄러웠다. 노인은 야생마에 마구를 씌우듯 괴물의 혓바닥을 잡아당겼다. 괴물은 자신이 불리함을 깨달은 게 분명했다. 감히 물을 떠나지는 못하고 미친 듯이 몸을 비틀며 후퇴하려 했다.

양쪽의 힘겨루기에 노인은 미친 듯이 웃었고 괴물은 고통에 차 울부짖었다. 아소륵은 온몸에 식은땀이 맺혔다. 가슴은 팽팽하게 당겨진 괴물의 혓바닥처럼 바짝 긴장됐다. 노인의 반밖에 안 남은 발이 떠올랐다. 알고 보니 이런 괴물에 물어뜯긴 모양이었다.

노인은 쇠갈고리 같은 날카로운 손톱으로 괴물의 혓바닥을 움켜쥐었다. 쇠갈고리 같았다. 짙은 흑녹색 피가 노인의 손으로 흘러내렸다. 괴물은 몹시 날카롭게 울부짖으며 커다란 아가리를 다물었다. 노인은 비틀거리며 몇 걸음 물러나 바닥에 쓰러졌다. 손에는 반 토막 난 흐물흐물한 혓바닥이 남아 있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괴물은 스스로 혓바닥을 끊어버렸다.

노인은 순간 멍했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괴물은 그 틈에 물속으로 돌아가지 않고 다리 없는 몸통을 꿈틀거리며 강둑으로 기어 올라왔다. 입에는 온통 검푸른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괴물이 격노했다는 것을 아소륵도 알 수 있었다. 괴물은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적의 숨결을 찾았다. 가시로 바닥을 쓸며 무쇠 같은 꼬리로 난폭하게 바닥을 후려쳤다. 완전히 드러난 괴물의 몸은 길이가 15척은 될 것 같았고 생김새는 거대한 물고기 같기도 하고 뱀 같기도 했다. 상반신을 곧게 세우자 맞은편의 노인보다 두 배는 더 컸다.

먹잇감의 냄새를 포착한 괴물은 갑자기 멈춰 서더니 노인을 똑바로 마주했다. 괴물은 눈이 없었지만 갑작스러운 침묵은 어떤 시선보다도 공포스러웠다. 괴물이 아가리를 달싹이자 녹색 피와 끈끈한 액체가 천천히 흘러내렸다.

괴물은 혀를 끊어버린 터라 이제 급소도 없었다. 괴물이 마주한 것은 야생 원숭이 같은 무기 없는 늙은이일 뿐이었다.

노인은 차분해졌다. 반 토막 난 혓바닥을 내던진 노인은 두 손을 슥슥 비벼 문지르고는 꼿꼿하게 섰다. 아소륵은 갑자기 조금 걱정이 됐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목소리를 낮추고 노인을 불렀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괴물이 불쑥 아소륵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목구멍에서 헉헉 하는 거친 숨소리가 낮게 들렸다. 노인도 아소륵 쪽을 쳐다보았다. 멍한 눈은 아무런 기색도 띠지 않았다. 아소륵은 침묵에 완전히 압도되어 미친 듯이 뛰는 가슴을 꾹 누를 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괴물은 잠시 조용하더니 구불구불한 꼬리로 몸을 지탱하며 몸을 곧게 세웠다. 선 높이가 족히 12척은 되어 보였다. 어떤 물고기와 뱀도 그런 모습일 수는 없었다. 곧게 세운 몸이 살짝 떨렸다. 한계에 다다른 것이 분명했다. 이어 놈은 전력을 다해 아래로 온몸을 내리쳤다. 하늘에서 거대한 채찍이 내려온 것 같았다. 몸통의 뼈 가시는 채찍에 돋아난 가시 같았다.

아소륵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 순간 노인은 부들부들하며 손에 든 물건을 높이 들어 올렸다. 그것은 거대한 종유석이었다.

아소륵의 머릿속에 목려 장군이 군도를 들어 올리던 자세가 번득 스쳤다. 두 사람의 모습은 매우 닮았지만 또 매우 달랐다. 목려가 칼을 들었을 때는 무쇠로 만든 튼튼한 무사처럼 온몸의 근육이 갑옷 아래 팽팽하게 당겨졌다. 그러나 돌덩이를 들어 올리는 노인의 자세는 유난히 무거워 보였다. 돌이 어마어마하게 무거워 두 손을 주체할 수 없는 듯했다.

아소륵은 노인이 죽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애초에 삶이 너무 고통스러워 괴물을 이용해 죽으려는지도 몰랐다. 낙엽처럼 떨리는 몸에 종유석을 갈아서 만든 무기로는 승산이 없었다.

그런데 돌조각이 갑자기 안정되더니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놀랍게도 돌조각은 명검처럼 팽팽하게 곧아졌다. 노인은 성큼 앞으로 나가며 입으로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읊조렸다.

아소륵은 노인이 말하는 것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그래서 노인도 소마처럼 날 때부터 말을 못 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노인의 목소리는 귀청이 울릴 정도로 거대했다. 계속 듣고 있자니 아소륵은 몸에 열이 나는 듯했고 심장이 격렬하기 뛰기 시작했다. 아소륵은 힘껏 귀를 틀어막았다.

노인은 매 걸음 짧게 멈췄다가 나아갔다. 그러다가 갑자기 멈춰 서더니 훌쩍 위로 솟구쳐 올라 허공에서 자신만 한 크기의 거대한 돌을 들고 급속도로 회전했다.

그것은 바로 회전하며 내리치기의 일격이었다!

아소륵은 갑자기 가슴이 편안해졌다. 혈관에는 얼음이 흘러가는 듯했고 대뇌 깊은 곳은 바늘에 찔린 듯했다. 불현듯 눈앞의 시간이 느려지며 아소륵은 똑똑히 보았다. 돌은 노인이 가하는 어마어마한 힘을 버텨내지 못하고 회전 중에 와해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어둠을 가르고 혼돈을 깨부수는 장대한 힘이었다! 부서지던 돌칼이 괴물의 머리에 부딪혔다!

노인은 몸을 돌려 착지하더니 거칠게 숨을 헐떡이며 앞으로 몇 걸음 내달렸다. 괴물은 몸을 곧게 세우는 순간 파열되는 고통을 느꼈다. 괴물은 힘껏 곧추세운 몸을 비틀었다. 괴물의 머리 위에서 검푸른 피가 흘러내렸고 고통에 모든 비늘이 펼쳐졌으며 새하얀 뼈 가시는 바위에 갈려 부러졌다.

괴물은 무력하게 쓰러지며 바위를 세게 내리쳤고 돌이 부서지며 사방으로 튀었다. 아소륵은 멀리서 괴물의 머리에 난 상처를 보았다. 부서진 돌은 괴물의 몸을 완전히 찌르고 들어갔다.

노인은 괴물에게 달려들어 단숨에 놈의 상처를 손으로 잡았다. 검푸른 피가 점점 말라 갔다. 괴물의 살은 의외로 눈(雪)처럼 반짝였다. 노인은 사냥에 성공한 야수처럼 마구잡이로 사냥감의 시체를 헤집더니 생살을 뜯어내 우걱우걱 씹었다. 노인의 입이 온통 푸른 피로 물들었다.

노인은 고기를 씹다가 고개를 돌려 아소륵을 쳐다보았다. 그는 생고기 한 덩이를 들고 아소륵에게 흔들어 보였다.

아소륵은 무서워 고개를 가로젓고는 뒤돌아 도망쳤다. 노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고개를 숙인 채 괴물의 상처를 빨아먹었다. 녹색 피가 잇새로 흘러내려 하얀 이가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칼날 위로 불빛이 번득였다. 탁발산월은 촛불 아래 비휴도를 세우고 새로 갈아낸 칼날을 응시했다. 사철(砂鐵)이 섞인 물이 칼 몸을 타고 천천히 흘러내렸지만 스산한 쇳빛을 감추지는 못했다. 탁발산월은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마른 천으로 칼을 깨끗이 닦고 손가락으로 가볍게 만져보았다.

탁발산월은 집을 떠나 외지에 있을 때면 늘 직접 칼을 갈았다. 뇌운맹호는 책상다리를 하고 그의 옆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탁발산월을 따른 세월이 짧지 않은지라 그가 칼을 갈 때는 생각을 할 때이므로 절대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았다.

“칼을 갈다 보니 어느 장문 선생이 해준 말이 떠오르는구나. 인생을 살면서 어떻게 후회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했지.”

탁발산월이 가볍게 탄식했다. 뇌운맹호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말씀은…….”

탁발산월이 칼을 칼집에 넣으며 말했다.

“그냥 혼잣말이다. 내일 1왕자 여수우 저하가 교외로 사냥을 나가자 했지?”

“네. 가실 겁니까?”

“가야지! 당연히 가야지!”

뇌운맹호는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입을 뗐다.

“장군. 북도에 온 지도 벌써 보름입니다. 매일 술을 마시지 않으면 사냥이나 하니 군사들도 해이해져 하릴없이 싸우거나 소란을 피웁니다. 며칠 전에는 한 놈이 채색 비단을 가지고 한 유목민의 딸을 꼬시다가 그 여인의 사내에게 된통 맞았습니다. 제가 제때 도착하지 않았다면 팔이 잘렸을 거예요. 이대로는 안 됩니다. 국주께서도 초조하게 기다리실 거예요.”

탁발산월이 웃으며 말했다.

“맹호. 너도 왕자들을 봤으니 한번 말해 봐라. 어떤 왕자야말로 우리가 원하는 인질이라고 생각하느냐?”

“우리가 원하는 인질요?”

뇌운맹호는 어리둥절해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탁발산월이 입을 열었다.

“맹호. 넌 생각이 너무 단순하다. 청양과의 동맹이 그저 청양에 우리의 큰 배를 빌려주고 우리는 청양의 기병의 도움을 받는 일이라 생각하겠지. 안 그러냐? 그러나 국주의 생각은 ‘도움을 주고받는 것’처럼 단순하지가 않다. 청양의 기병이 우리의 군대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우리 군대요?”

“군왕이 우리 손아귀의 군왕이 되면 군대도 자연히 우리 군대가 되는 것이지.”

탁발산월이 말을 이어갔다.

“맹호. 넌 똑똑하지만 아직은 좀 부족해서 제왕과 제후의 의중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 못 해도 괜찮지만 그렇다면 묻지도 말아라. 조정이란 전쟁터에 발을 디디면 다시는 발을 못 빼게 될 테니.”

다리가 길고 등이 좁은 황갈색 고라니가 여러 색깔의 풀이 무성한 습지를 번개처럼 지나갔다. 풀색은 빠르게 흐르는 물처럼 고라니의 몸 아래로 흘러갔다. 전방은 풀 비탈이었고 그 너머는 파란 하늘이었다.

뭉게뭉게 먼지를 일으키며 여수우가 갑자기 군마의 고삐를 잡았다. 말은 길게 울부짖으며 멈춰 섰다. 딱 한 걸음 차이로 탁발산월의 검은 말도 여수우의 옆에 섰다. 8척 길이의 흑마가 검은색 갈기를 털면서 성질을 부리듯 발굽으로 땅을 파냈다. 탁발산월은 마편으로 말의 어깨뼈를 툭툭 치며 안정시켰다.

“저 짐승은 발이 무척 빠르군요. 쫓아가지 못할 듯싶습니다.”

여수우가 풀 사이로 번득이는 고라니를 보며 “하하.” 웃었다.

탁발산월도 웃으며 말했다.

“1왕자의 말이 훌륭하기는 하나 평생 초원에서 도망치며 산 야생 동물만큼 민첩하지는 않군요.”

여수우는 대답 없이 말안장 옆의 주머니에서 각궁을 꺼내 들고 은을 덧입힌 자색 꼬리의 낭아전을 걸었다. 그는 활시위를 시험 삼아 당겨보더니 갑자기 말을 몰아 달려나갔다. 탁발산월은 손을 흔들어 여수우를 뒤따라 나가려던 무사들을 제지했다. 모두 제자리에서 꼼짝 않고 여수우가 질풍처럼 달리는 백마 위에서 각궁을 당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고라니가 돌연 네 발로 땅을 차더니 풀 비탈 끄트머리에서 탄환처럼 하늘을 향해 튕겨 오르며 공중에서 다부진 몸을 활짝 펼쳤다. 동시에 고개를 돌려 뒤쫓아 오던 사냥꾼들을 살폈다. 야생 동물 특유의 길들지 않는 사나움이 느껴졌다.

펑 소리와 함께 활시위가 청량하게 공기를 갈랐다. 풀 비탈 끄트머리의 다부진 몸은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순간 움찔했다. 높이 뛰어오른 고라니의 형체는 파란 하늘 흰 구름 속의 그림처럼 변했다. 낭아전이 아름답게 굴곡진 등을 관통했고 고라니는 피를 흩뿌리며 무력하게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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