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주표묘록-24화 (24/360)

24화

2장. 세자 (3)

드넓은 풀밭 위로 준마들이 서로 뒤얽혔다. 말의 몸에서 뜨거운 열기가 피어올랐다. 경기는 한창 무르익은 상태였다. 열두 마리의 말이 계속 질주하며 위치를 바꿨고 풀밭에는 풀과 먼지가 흩날렸다. 모두가 참나무로 만든 작은 공을 쫓았다.

마구(馬球)는 동륙에서도 나름 유행한 놀이이기는 했지만 발원지는 만족이다. 예전에 청양부의 사절단이 대윤 황제를 알현하러 갔을 때 여덟 명으로 조를 편성해 제도 금위군의 명수(名手) 열두 명을 크게 이겼다. 동륙의 온 백성이 만족의 기마술에 놀라 감탄했고 나라의 체면은 있는 대로 구겨졌다. 황제는 크게 노해 그대로 자리를 떠났고 그 후로 동륙의 귀족과 거상들은 두 번 다시 마구를 하지 않았다.

북륙에서는 왕자와 귀족 자제부터 유랑하는 목민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마구를 하기 때문에 만족은 마구에 조예가 깊었다. 하지만 화족은 그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마구는 만족 청년들에게 생존 기술이었다. 마구를 하면서 기마술을 잘 연마해 둬야 말을 방목하며 세상 어디든 다닐 수 있고 훗날 전쟁터에 나가서도 살아 돌아올 가능성이 더 컸다. 그러나 동륙의 귀족들은 마구를 고상한 놀이로만 여길 뿐이었다.

여수우가 막대기를 돌려 공을 바닥에 고정시킨 채 웃기 시작했다.

“우리가 연달아 세 판을 이겼다. 계속할 테냐?”

여수우는 바지만 입고 웃옷은 벗어 근육 선이 또렷한 상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온몸이 땀투성이였다.

“해야죠! 왜 안 하겠습니까? 형님이 이기는 것도 다 그 말 때문이잖습니까?”

4왕자 여하가 씩씩대며 콧방귀를 뀌었다.

“네가 신룡으로 바꿔 탄다고 해도 이긴다는 보장은 없을걸? 단념하시지!”

2왕자 여복이 득의양양하게 웃었다. 여응양이 언제나처럼 침착하게 말했다.

“쉽게 단념하는 자에게는 파소이 성이 안 어울리죠. 끝까지 해봐야 알 수 있는 법입니다!”

마구 시합을 하는 이들은 네 명의 왕자들이 이끄는 무리였다. 네 형제는 사이가 썩 좋은 편은 아니지만 치열하게 승리를 다투는 일은 모두 좋아했다.

여응양과 여복의 기마술은 평범했으나 여수우와 여하는 만족 무사 중에서도 걸출한 실력자였다. 더욱이 검술과 완력 면에서 여하는 귀족 소년 중에서도 최고였다. 소나무 막대기도 그의 손아귀에서는 예리한 칼 같아서 휘두르면 쌩 하고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여수우의 심복들은 여하의 막대기를 정면으로 맞이할 엄두가 나지 않았으나 여수우는 개의치 않았다. 그가 모는 말은 대군이 하사한 극서의 준마 ‘설망’으로 매번 공 근처에 먼저 도착했다. 여하는 여수우의 말을 증오했지만 부친이 하사한 것이라 어쩔 도리가 없었다.

“좋다, 욱달한. 우리 둘이 시구를 하자.”

여수우가 공을 위로 던졌다가 단번에 잡았다.

그때 말발굽 소리가 어지럽게 울렸다. 말 세 마리가 초원 두렁의 맞은편에서 매우 빠르게 질주해 올라오고 있었다. 경기장 주위를 호위하는 무사들이 활을 당긴 채 경계하며 막아섰다.

“어느 왕자 장막의 사람들입니까? 어느 왕자의 사람들이냐고요!”

철엽이 말고삐를 잡아당기자 미친 듯이 질주하던 말이 크게 울부짖었다.

“왕자들 모두 여기서 마구를 하고 계신다. 너희는 누구이기에 이리 무례하게 달려드느냐?”

철엽이 재빨리 어깨를 비키며 등 뒤의 아소륵을 보여주었다.

“세자!”

우두머리인 백부장이 세자를 알아보고 가슴을 누르며 무릎을 꿇고 인사를 올렸다.

“빨리 우리를 좀 구해 주세요. 누가 쫓아와요!”

철안이 뒤따라왔다.

“어떤 놈인지 간도 크군. 감히 삭방원에서 세자를 쫓다니! 죽음을 자초하는 게지!”

백부장이 욕을 퍼부으며 부하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너희들은 나와 같이 가보자!”

“죽음을 자초하는 그놈이 나다. 어쩔 건데?”

호통 소리와 함께 무리를 이룬 군마가 바람처럼 초원 두렁 위로 올라섰다. 그들이 내건 흑녹색 커다란 깃발에는 용맹한 쟁(猙)이 그려져 있었다. 선두에 선 무사는 나이가 많지 않았다. 정수리에 말총머리를 단 무사가 말채찍을 휘두르며 있는 힘껏 소리쳤다.

“단호…….”

백부장이 흠칫 몸을 떨었다.

단호의 전횡은 북도성 인근에서도 유명했다. 감히 단속하려는 사람도 없을 뿐만 아니라 단속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그는 태과이 칸의 아들이었다. 누군가가 말하기로는 대군의 자리를 태과이 칸이 내준 것이나 마찬가지라서 대군조차도 태과이가 총애하는 아들에게는 질책 한 번 한 적이 없다고 했다.

단호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자기 얼굴을 가리켰다.

“너희 세자가…. 이거 봐. 너희 세자가 내 얼굴을 밟았어. 감히 내 얼굴을 밟을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태어나서 지금까지 우리 아버지한테도 맞아본 적 없는 사람이야, 내가! 어디 용기 있으면 막아 보시지. 내가 너희를 못 죽일 것 같아?”

흙이 묻은 단호의 얼굴 한쪽에는 또렷하게 발자국이 나 있었다. 코피도 흘리고 있었다.

말에서 뛰어내린 그는 말안장 위의 채찍을 집어 들고 아소륵을 향해 표독스럽게 다가왔다. 철안과 철엽은 움찔했다. 단호의 심복들도 그를 뒤따라 압박하듯 다가왔다.

흰색 준마가 세찬 바람과 함께 불쑥 끼어들었고 순식간에 아소륵 일행은 말 뒤에 가려졌다.

단호가 펄쩍 뛰었다.

“감히 누가 내 앞을 막아! 네놈을……!”

고개를 쳐든 단호는 뒷말이 목구멍으로 쑥 들어갔다. 말 위로, 짧게 수염을 기른 젊은 무사가 고개를 숙인 채 손에 든 막대기를 만지작거렸다. 애초에 단호의 말은 듣지도 못했다는 듯이. 1왕자 여수우였다. 단호도 그를 알아보았다. 그의 아버지가 일러준 적이 있었다. 9왕과 함께 출정을 다녀온 왕자가 상대하기 만만치 않다고 말이다.

여수우는 눈썹을 살짝 치키며 싸늘한 눈초리로 단호를 흘끗 보았다.

“단호. 난 마구를 할 때 누가 흥을 깨는 걸 싫어한다. 그러니 할 말 있으면 빨리 해.”

“너와는 말 안 해! 아소륵 내놔! 놈과 승부를 내야겠으니까!”

단호가 식식거리며 여수우의 말 뒤를 가리켰다.

“저 개자식이 감히 내 얼굴을 밟았으니 놈과 칼을 겨뤄야겠어. 절대 용서하지 않아!”

퍽. 우렁찬 소리가 울렸다. 단호가 “악.” 비명을 내지르며 붉게 부어오른 얼굴을 감싸고 뒤로 물러났다.

여수우는 말 위에 앉아 한쪽 눈을 감고 자기 막대기가 똑바른지 아닌지를 살폈다. 모두가 어안이 벙벙해졌다. 여수우가 마구 막대기로 단호를 한 대 친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깔끔하게, 인정사정없이. 청양에서 태과이 칸의 세력은 대군과 막상막하였다. 비록 명목상 부락의 주인은 아니지만 금장궁에 들어가서도 무릎 꿇지 않고 대군의 지시를 따르지 않으며 대군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사람이 바로 태과이였다.

“너… 네가 감히!”

단호는 발광했다.

“개자식? 무슨 개자식? 누구를 말하는 거지? 여기에는 파소이 가문의 존귀한 아들들뿐 개자식은 없다.”

여수우가 차갑게 소리쳤다.

“형님, 형님.”

여복이 다가와 여수우를 말렸다.

“진정하세요. 저런 애는 상대하지 마시고요.”

여복은 고개를 돌려 단호를 달래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단호. 세자와 문제가 있으면 칸이나 대군에게 가서 말해야지. 이렇게 몰래 싸우고 그러면 파소이 가문의 자손으로서 선조들을 망신시키는 일이 아니겠니?”

“몰라! 난 모르겠다고! 감히 날 때리다니… 저 자식이 감히 날 어떻게 때려!”

단호가 크게 고함을 질렀다.

“길 막지 마라.”

여수우가 여복의 옷깃을 잡고 한쪽으로 밀어냈다.

“감히? 지금 감히, 라고 했냐?”

여수우의 눈빛이 돌연 매섭게 변하더니 말을 몰아 천천히 단호에게로 다가갔다.

“널 때린 것은 나니까 할 말 있거든 나랑 해. 넌 눈 없어? 눈먼 들개처럼 고함이나 지르기는. 단호, 넌 태과이 칸의 아들이니까 앞으로 네가 그 작위를 이어받을 거라고 생각하지? 태과이 칸이 뭐 대단해? 그 눈깔 똑똑히 뜨고 봐. 네가 건드린 사람은 세자다! 우리 파소이 가문의 진정한 계승자! 내가 활을 쏴서 널 죽일 수도 있다. 초원의 주인은 우리 여씨 파소이 가문이야!”

여수우가 차갑게 조소했다.

“돌아가서 네 아버지께 말해. 곽륵이의 아들 여수우 비막간이 널 괴롭혔으니 곽륵이에게 청해서 날 벌주라고. 너희가… 죽지 않는다면 말이야.”

여수우는 말안장의 칼로 손을 가져갔고 설망은 서서히 단호를 몰아붙였다.

단호의 심복들은 당황해 서로를 쳐다보기만 했다.

여수우는 갑자기 말고삐를 풀어 말 머리에 걸쳤다. 극서의 명마는 구속에서 벗어나자 길게 울부짖더니 용처럼 몸을 쭉 늘이며 그대로 달려 나갔다. 건장한 북륙의 말이 질풍을 일으키며 단호와 그의 심복들을 향해 정면으로 덮쳐갔다. 여수우가 껄껄 크게 웃었다. 검이 바람을 가르며 단호의 머리 위를 비스듬히 베었다.

“형님!”

여복의 낯빛이 변했다.

단호는 당황하며 흙 속에 엎어졌다. 심복들 중 누구도 제때 칼을 뽑아 들지 못했다. 설망은 춤을 추듯 단호 일행과 말 사이에서 말머리를 돌렸다. 여수우의 장검이 손목을 따라 회전했다. 살을 에듯 싸늘한 빛이 머리 위를 짓눌러 누구도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여수우는 웃으면서 한 바퀴 돌아 다시 아소륵 앞으로 돌아왔다.

단호의 심복들은 머리를 감쌌던 손을 놓고 천천히 일어섰다. 그런데 다리에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모두의 바지가 벗겨져 있었던 것.

단호도 일어났지만 그의 바지는 벗겨지지 않았다. 개망신은 면한 단호가 숨을 돌렸다. 이마의 힘줄이 불퉁거렸다.

여수우는 분노한 단호를 보고 웃으면서 손에 든 물건을 그의 얼굴에 던졌다. 단호가 받아들고 보니 새카맣고 굵은 변발이었다. 단호는 어리둥절해 여수우를 쳐다보았다. 여수우의 손에는 보석 하나가 더 남아 있었는데 햇빛 아래 찬란하게 빛났다.

“꽤 값이 나가는 물건이네.”

여수우가 손어림을 해 보더니 옆의 심복에게 툭 던져주며 말했다.

“너 줄게. 갖고 놀아라.”

순간적으로 상황을 깨달은 단호는 벌벌 떨면서 자기 정수리를 더듬었다. 어릴 때부터 길러온 변발이 사라지고 뿌리에 남은 짧은 머리가 흩어져 있었다.

“사, 사… 살인이다! 살인이야!”

단호가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그는 정수리를 움켜쥔 채 쏜살같이 달아났다. 심복들도 잠시 멍해 있다가 얼른 바지를 추켜올리고 단호를 쫓아갔다. 여수우는 쫓아가지 않고 말고삐를 당겨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그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혼쭐이 난 녀석들이 풀 비탈을 달려 올라가는 꼬락서니를 지켜보았다. 그중 하나는 흘러내린 바지에 걸려 굴러떨어졌다.

“1왕자. 저희가 일부러 칸의 아들과 싸운 게 아닙니다. 단호가…….”

철엽이 나가 해명하려 했다.

여수우는 손을 내저으며 그의 말을 끊었다.

“설명할 것 없다. 너희는 세자의 심복이다. 우리야말로 파소이 가문의 주인임을 명심해라. 감히 우리 머리 위로 그 더러운 손을 뻗었으니 혼쭐을 내줘야지!”

“아유! 형님…….”

여복이 여수우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여수우는 여복을 무시하고 여응양을 향해 냉소를 던졌다.

“욱달한. 넌 왜 단호를 돕지 않았지? 태과이 칸이 널 탓하지 않겠어?”

“단호가 잘못했으니 형님이 벌을 주신 거죠. 벌을 아주 잘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여응양이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더구나 우리 동생이 다른 사람과 싸움이 난 것인데 녀석이 옳든 그르든 남의 편을 들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비록 칸이 만고불변의 지위라지만 아소륵은 우리 청양의 명실상부한 세자이자 파소이 혈통의 진정한 계승자다. 일개 분가의 아들이 감히 본가의 작은 주인을 괴롭히다니 태과이 칸은 반달 천신의 징벌이 두렵지도 않다더냐? 미래의 대군은 하늘이 선택한 사람인 것을.”

여수우가 갑자기 화제를 돌렸다.

“혹시 칸께서 자기가 하늘이 선택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어쨌든 그들도 파소이 성을 쓰니까.”

여응양이 손에 든 막대기를 휘두르며 말했다.

“그리 잘 아시면 직접 백부께 가 말씀하시지 그럽니까? 저는 마구를 할 때는 마구 생각만 합니다.”

“마구?”

여수우가 곁눈질로 경기장을 훑으며 말했다.

“좋다! 그럼 괜히 힘 빼지 말고 한판에 승패를 가르자꾸나. 나 비막간에게 있는 것 중에 욱달한 네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걸겠다!”

여응양이 여수우의 가랑이 사이에 있는 말을 가리켰다.

“그럼 설망을 거시죠.”

여수우가 미간을 살짝 구기며 냉소했다.

“좋다. 감히 내 귀한 말에 내기를 걸다니. 너는 무엇을 걸겠느냐?”

“저는 형님과 달리 아버지께서 하사한 귀한 말이 없습니다. 소와 양, 그릇들은 형님 성에 안 차실 테고요.”

여응양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형님께서 수십 명의 동륙 장인들을 고용해 갑옷을 만드신다고 들었습니다. 제게 마침 2천 근의 고급 흑철이 있습니다. 형님께서 이기면 갑옷을 만들도록 보내드리겠습니다.”

여수우의 낯빛이 살짝 변했다.

“누가 그러더냐?”

여응양은 대답하지 않고 큰 소리로 동생을 불렀다.

“귀목. 이번 판은 제대로 해야겠다. 이기면 큰형님이 설망을 네게 주실 게다!”

멀리서 귀목이 막대기를 들고 포효했다.

여응양이 고개를 돌리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시작하시죠.”

여수우는 요대를 더듬어 참나무 공을 꺼내 몇 번 만지작거리더니 공중으로 휙 던졌다. 두 형제는 말 위에서 살짝 움찔했다. 이내 말들이 동시에 일어서더니 두 막대기가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공은 여수우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공을 몰아 용맹하게 돌진해 갔다. 설망은 하얀 번개처럼 경기장을 가로질렀다. 맞은편에서는 여하가 벌써 두 사람을 데리고 품(品)자 진을 펼쳐 막아섰다. 여수우는 무리해 돌진하지 않았다. 설망은 춤을 추듯 보폭을 반쯤 돌렸다가 다시 돌진했다. 순간 여하의 눈앞이 아물아물해졌다. 여수우는 그 틈에 공을 여복에게 건네고 본인은 말을 몰아 품자 진 안에서 몇 바퀴를 돌며 크게 웃었다.

여복은 공을 가지고 질주하다가 급선회했다. 같은 편 심복들이 진형을 펼친 채 쫓아왔다. 몇 차례 상대 기수가 가까이 다가오던 순간마다 여복은 재빨리 몸을 비키며 스쳐 지나갔다. 그는 구문(毬門)까지 80보 정도 남았을 때야 가볍게 막대기를 휘둘렀다. 맞은편에서는 여응양이 몸을 비스듬히 기울인 채 돌격해오고 있었다.

“형님! 치시죠!”

여복이 함성을 지르며 공을 뒤로 쳤다.

하얀 번갯불이 눈으로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의 속도로 추격해 왔다. 여수우는 공을 에워싸고 한 바퀴 돌아 구문을 향해 공을 칠 준비를 했다. 그의 심복들이 경기장 옆에서 소리 높여 환호했다. 그러나 여수우는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한 줄기 예리한 바람 소리가 등 뒤로 바짝 다가오고 있었다! 고개를 홱 돌린 여수우는 깜짝 놀랐다. 흑마에 탄 사람은 여하였다. 여하의 막대기는 공이 아닌 설망을 내리치려 하고 있었다.

설망을 몹시 아끼는 여수우였다. 그는 막대기를 기울여 말의 엉덩이 뒤를 막으려 했다. 막대기는 그의 손에서 검처럼 변했다. 극히 짧은 순간, 등에서 칼을 뽑듯이 막대기를 뽑아 든 여수우는 한쪽 어깨를 낮추며 비스듬히 막대기를 내리쳐 막았다. 여수우의 검술 스승은 철진이었다. 철씨 집안의 검술은 날카롭고 묵직하기로 청양 내에서 유명했다. 탁 소리가 나며 두 막대기가 맞물렸다. 소나무 막대기는 여하의 내리치는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부러져 버렸다.

“악독한 놈!”

여수우가 소리를 질렀다.

“악독하든 말든, 형님 말은 이제 내 겁니다!”

여하의 막대기가 완벽한 부채꼴 모양을 그렸다. 장타를 치는 동작이었다. 그의 심복들이 이미 맞은편 구문 앞 타격 위치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웃기지 마라!”

갑자기 땅에서 맹렬한 진동이 전해지더니 여하의 막대기가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공은 이미 저절로 튕겨져 올랐다. 나머지 반토막짜리 막대가 여수우의 손에서 움직이며 낮게 휘익 소리를 냈다. 여수우가 고삐를 죄자 설망이 높이 앞발을 들어 올리며 일어섰다. 부러진 막대는 허공에서 정확하게 공을 맞혔고 공은 번개처럼 그대로 구문으로 쏘아졌다.

“형님. 정말 빠른 ‘뢰’ 공격입니다!”

여복이 멀리서 외쳤다.

만족 검술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기술은 아홉 가지다. 순참(順斬)과 역참(逆斬), 순절(順切)과 역절(逆切), 좌중평(左中平), 우중평(右中平), 뢰(雷), 역벽죽(逆劈竹)과 찌르기(刺)로 나뉘며, 모든 검술은 이 아홉 가지 기본 동작에서 발전해 만들어진다. 여수우는 말로 땅에 진동을 일으켜 공을 튀어 오르게 했지만 타격 동작은 순전히 검술 동작이었다.

여하는 멍하니 자신의 막대기를 쳐다보다가 땅바닥에 세게 내던졌다. 말을 달려 다가온 여응양이 가볍게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흑철 2천 근! 잊지 마라!”

여수우가 부러진 막대를 휘두르며 말했다. 그는 크게 웃으며 말머리를 돌렸다.

“철은 이미 형님 장막에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노예들을 시켜 보내두었지요.”

여응양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원래 이 아우가 형님께 바치려던 작은 성의입니다. 마구는 그저 핑계였어요. 제가 운 좋게 이겼더라도 그 마음은 보냈을 겁니다.”

순간 얼떨떨해진 여수우는 여응양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여응양은 사리사욕 없는 미소를 머금고 자신을 관찰하는 큰형님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했다. 여수우가 냉랭하게 말했다.

“역시 욱달한이야. 날 실망시키지 않는군. 다른 사람이 내 상대였다면 정말 재미없었을 거야.”

커다란 바람막이를 어깨에 걸친 여수우는 설망을 움직여 도성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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