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주표묘록-12화 (12/360)

12화

제1장. 만족의 주인 (11)

쿵.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밤하늘을 가르고 날아간 화살이 백보 밖의 과녁에 꽂혔다. 무사 하나가 화살을 뽑으러 달려갔을 때도 화살 끝은 여전히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화살이 꽂힌 소가죽을 떼어낸 무사는 빠른 걸음으로 돌아와 무릎을 꿇고 그것을 올렸다. 태과이 칸은 화살 맞은 소가죽을 자세히 보더니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가죽은 다섯 겹의 소가죽을 촘촘하게 하나로 엮은 것이었다. 길고 날카로운 화살은 한 번에 다섯 겹을 관통했고 화살촉의 절반은 가죽 뒷면에서 컴컴한 빛을 번쩍였다.

“칸. 화살을 뽑아 보시지요.”

검은 옷을 입은 종복이 등 뒤에서 작게 말했다. 갈라진 그의 목소리는 뭐라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듣기 거북했다.

칸이 한 손으로 소가죽을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화살 끝을 그러쥐고 있는 힘껏 뽑았다. 그러나 화살은 뽑히지 않았다. 칸은 소가죽을 잡고 있던 손을 놓고 미간을 찡그리며 쓸려서 아픈 손을 쳐다보았다. 태과이 칸도 젊었을 때는 1등 무사였다. 나이가 들고도 체력이 여전히 좋았던 그는 화살 하나도 뽑지 못하자 내심 놀랐다.

검은 옷의 종복이 소가죽을 건네받았다. 그의 손바닥에 단도가 한 자루 숨겨져 있었던 듯 선득한 빛이 소리 없이 한 바퀴 돌자 소가죽이 갈라지며 화살촉이 드러났다. 길이가 보통 화살촉의 두 배가 넘는 가늘고 뾰족한 장침이었다. 등 부분은 높게 솟았으며 날 부분에는 미늘처럼 뒤집어진 형태의 갈고리가 가득 차 있었다.

“이런 화살은 칸만 못 뽑으시는 게 아닙니다. 뒤집어진 갈고리가 가죽을 단단히 물어 소가죽 전체를 찢지 않는 한 누구도 뽑을 수 없지요.”

종복은 화살을 받쳐 들고 구경하던 소합과 격륵, 두 칸에게 건넸다.

“사람 몸에 쏘면 효과는 더 좋습니다.”

소합 칸은 가볍게 화살촉을 만져보았다. 출정 경험이 있는 그였지만 이 기괴하고 날카로운 화살을 어루만질 때는 경외감이 들었다. 자잘한 가시가 손가락을 찌르는 느낌이었다.

‘참으로 흉악한 화살이군.’

그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가급적 만지지는 마십시오.”

검은 옷의 종복이 손으로 그를 제지했다.

“강철을 두드려 만든 화살이 아닙니다. 절반은 구리지요. 시간이 오래되면 구리는 부식합니다. 그럼 당연하게도 화살촉에 구리 독이 묻어나죠.”

소합 칸이 놀라 손을 떼며 화살을 내던졌다. 공중에 붕 뜬 화살을 태과이 칸이 단번에 잡아챘다.

“한심한 놈.”

그가 아우를 향해 나직하게 소리쳤다.

“네 몸에 쏜 것도 아니거늘!”

태과이는 검은 옷의 종복에게로 몸을 돌렸다.

“절반은 구리로 만들어진 데다 화살침은 이리도 기니 쉽게 부러지겠군. 한 번 쏘면 못쓰게 되고 다시 단조(鍛造)하기도 어려우니 거푸집에 부어 만드는 수밖에 없겠고. 이런 화살을 만드는 데는 돈은 얼마나 들지?”

종복이 갈라진 목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비용은 일반 낭아전(狼牙箭)1)의 세 배가 듭니다. 동륙 진북의 출운기가 가진 갑옷을 뚫는 화살인 ‘송침’을 본떠 만든 것이지요. 거기에 미늘 모양의 갈고리를 더하고 화살 등을 두껍게 만들었을 뿐입니다. 출운기가 송침전을 사용한 지는 20년 가까이 되었죠. 진북은 물론 칸들께서도 부담하실 수 있는 비용입니다.”

태과이 칸은 냉랭한 눈초리로 그를 한 번 쳐다보고는 돌아서서 천천히 거닐며 소리 없이 손에 든 화살을 돌렸다.

“칸. 초원을 제패하고 싶다면 돈을 아끼지 마십시오. 이 화살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삭북부의 백랑단은 상대할 수 있을지도 모르나, 어느 날 청양의 호표기를 상대하게 된다면 어떤 성과도 얻지 못하실 겁니다. 제가 호표기 갑옷을 봤는데 안에는 가죽이 덧대져 있고 겉은 정제된 강철이었습니다. 일반 화살은 강철을 뚫는다고 해도 안 가죽에 물려 버릴 겁니다. 이렇게 길고 가늘며 뾰족한 화살촉이어야 일격에 명중할 수 있지요.”

그가 차갑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 화살촉의 길이는 가슴 한가운데를 뚫고 들어갔을 때 구리 독이 심장에 전해질 수 있는 딱 그만큼의 길이입니다.”

“좋다! 조속히 생산을 시작해라. 언제쯤 우리 무사들이 이 화살로 연습할 수 있겠는가?”

“도안을 제작하고 거푸집을 만들고 철과 구리를 제련해야 하니 대량으로 제작하려면 석 달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연습용 화살은 열흘 안에 됩니다. 무사마다 열 개씩 셈하면 50만 개가 필요하니 동륙의 금수(金铢)로 환산해 약 5만 냥이 듭니다.”

“5만 냥?”

격륵 칸이 엉겁결에 소리쳤다.

“초원에서 잘라낸 산쑥으로도 화살을 만들 수 있구먼, 화살 한 무더기 만드는데 무슨 금수가 5만 냥이나 필요해?”

“제가 먼 길을 온 이유는 칸의 대업을 위해서지요. 여러 칸들께서 원치 않으신다면 저도 권하지는 않겠습니다. 한데 여수우 왕자의 장막에서 동륙 순국의 대장장이 스무 명을 불러 갑옷 제작에 도움을 청했다더군요. 좋은 품질의 순국 강철 갑옷 한 벌은 금수 백 냥이 넘습니다. 격륵 칸께서는 산쑥으로 만든 화살로 1왕자의 갑옷을 뚫을 수 있겠습니까?”

“무슨 헛소리냐?”

태과이가 팔을 뻗어 제 아우를 막으며 말했다.

“금수 5만 냥은 내가 낼 것이다. 너는 그 몇 푼 아껴서 여인의 환심을 사고 동륙의 장난감이나 사는 데 써라! 격륵, 듣자 하니 네 장막 안의 유리탑이 아주 정교하다지? 저들의 검이 네 목을 베면 그 정교한 보물도 그들의 것이 된다. 네 여인은 다른 이를 시중을 들 테고, 어쩌면 너를 시중들 때보다 더 심혈을 기울일지도 모르지.”

“제가…… 언제 돈을 안 내겠답니까…….”

격륵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하지만…… 곽륵이2)가 그래도 우리 동생이잖아요. 대군에 오른 지 수십 년이 지났는데 설마 이제와 진짜로 제 형들을 해치겠습니까?”

“맞습니다, 형님. 여표은과 여수우가 진안부를 섬멸해 큰 공을 세우고 돌아왔고 여표은이 칸의 자리까지 올랐다고는 하지만 우리 쪽에 아무 성과가 없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곽륵이는 형님께 좌상을 내려 정사에 참여하게 했고 욱달한도 지금 북도성 밖 모든 가축과 인구에 관한 문서를 손에 쥐고 있어요. 지난달에는 곽륵이가 화뢰원 쪽의 초목장도 우리 몇몇에게 주면서 야생마를 잡을 수 있게 허락해 주었고요.”

소합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곽륵이가 여표은과 연합해 우리에게 맞설 거라는 걱정은 조금 지나친 게 아닐지요? 이렇게 많은 돈을 들여 화살을 제조했다가 곽륵이가 눈치채기라도 하면…….”

“쓸데없는 소리 그만들 해!”

태과이가 표독스럽게 한마디 내뱉었다.

“이런 눈치도 없는 놈들. 너희는 하얀 눈의 매한테 전부 속은 것이다! 소씨 집안이 그를 지지하면서 우리 세력이 그보다 약해졌기에 우리는 놈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놈은 자기가 대군에 올라도 형제들은 평등할 것이라 했어.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옷을 입고 그에게 예를 올리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 최근 몇 년 동안 너희도 봤다시피 먹고 입는 것은 똑같았지만 고작 그 정도 베풂이 무슨 대수냐? 우리는 부락의 정사에 관여할 수 없고 우리 노예와 무사들은 마음대로 북도성에 들어갈 수 없으며 출정의 기회도 없다. 오늘날 초원은 청양의 대군만 알 뿐 어느 누가 너희 소합과 격륵, 그리고 나 태과이를 기억하더냐?”

그는 손에 힘을 줘 날카로운 화살을 뚝 끊어 버렸다.

“참정(參政), 좌상, 야생마, 다 부질없다! 곽륵이는 실질적인 이익은 전부 여수우와 여표은 쪽에 주고 있어. 여수우와 여표은을 함께 출정시켜 공을 세우게 하고 오늘은 호표기까지 여표은에게 하사했지. 호표기를 말이다! 어느 날 톱니 칼날의 군도가 네놈들 목을 벨까 봐 두렵지도 않으냐?”

격륵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설마…… 곽륵이가 벌써 대군의 자리를 여수우에게 물려주기로 결정했다는 겁니까? 그럼 우리는 욱달한을 옹호하느니…… 차라리…….”

“웃기는 소리!”

태과이가 차갑게 조소했다.

“그동안 우리가 욱달한에게 투자한 게 얼마냐? 지금 여수우는 우리를 몹시 원망하고 있을 텐데 이제와 네가 큰조카에게 아부를 하기에는 조금 늦지 않았겠느냐? 하물며 소씨 일파의 장군들과 여표은이 그를 지지하고 있는데 격륵 칸 따위가 아쉬울 리 없지. 여기에서 가장 교활한 자는 곽륵이다! 놈은 분명히 대군의 자리를 어떤 아들에게 물려주든 제 형들에게는 권력을 남겨주지 않을 거란 말이다! 그러니 두말하지 마라!”

그가 부러진 화살을 흙바닥에 내던지며 말을 이었다.

“당장 이 화살을 제작해 우리 무사들에게 완비시켜라. 그리고 화뢰원에서는 더 많은 야생마를 잡도록 해!”

검은 옷의 시종은 말없이 땅에 꽂힌 화살을 뽑아 소매 안에 거둬 넣고 작게 웃었다.

“송침전이 처음 북륙 초원에 나타난 것이니 들킬 만한 흔적은 남기지 않는 게 좋지요. 송침전이 비처럼 적의 철기병에게 쏟아지는 그날, 북륙을 놀라게 하시지요!”

태과이는 누런 눈동자로 냉담하게 그를 쳐다보았다.

“좋다! 아주 좋아!”

“한 가지 일이 더 있습니다. 저희 척후병 말로는 최근 초원에 화족 한 무리가 활동하는 것 같다고 합니다.”

“화족이?”

태과이가 즉각 경계하며 물었다.

“자네는 그들을 아는가? 우리의 동지인가, 적인가?”

“아직까지 확실한 단서를 포착하지는 못했습니다. 그저 부근을 유랑할 뿐 북도성에 가까이 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척후병의 시야에서 빠져나간 것을 보면 평범한 자들은 아닐 것입니다. 적어도 그들이 온 목적과 제가 온 목적은 다릅니다.”

태과이가 잠시 침묵했다.

“상세히 조사해라.”

“네!”

목려가 줄칼처럼 평평한 손톱으로 칼날을 튕기자 딩딩 하고 맑은 울림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칼은 그가 방금 갈아낸 것이었다. 칼 몸은 온통 거무스레했고 칼날은 옅은 쇳빛을 띠었는데 송곳니 같은 칼무늬가 있었다. 칼을 쥔 손을 돌린 그는 한쪽 눈을 가늘게 뜨고 칼 등선을 따라 칼끝을 보았다. 칼 몸이 선처럼 곧게 뻗어 있었다.

그는 발아래에서 칼을 닦는 부드러운 새끼 양가죽을 들어 가볍게 문질렀다. 칼날에 묻은 구정물이 닦여 나가고 장막 밖에서 스며들어온 햇빛에 쇳빛 칼날이 반사되며 순간 반짝였다.

아소륵은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눈을 가렸다. 그가 다시 쳐다보았을 때 이미 새끼 양가죽은 반으로 갈라져 있었다.

목려는 쇠로 만든 상자 안에서 소기름 한 덩이를 꺼내 칼 몸에 발랐다. 금세 소기름이 다 발라지고 칼 빛도 감춰졌다. 목려는 가느다란 새끼로 한 겹, 한 겹 칼을 싸매더니 조심스럽게 나무함 안에 넣어 두었다. 그러고 나서야 고개를 들어 아소륵을 보았다. 그러나 그는 손에 묻은 소기름을 닦기만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소륵은 고개를 들어 목려의 등 뒤에 있는 사람 키 반만 한 높이의 나무 격자를 보았다. 셀 수 없이 많은 칼이 꽂혀 있었다. 날밑이 넓고 칼등이 두꺼운 칼, 몸통이 좁고 칼날이 곧은 손목칼도 있었으며 만족이 자주 사용하는 군도는 더 많았다. 칼끝 가까이로 살짝 들어 올린 칼날은 전설 속 표범의 이빨 같았다. 청렴한 장군인 목려는 집에 금은보화나 좋은 그릇은 없고 칼만 아주 많이 갖고 있었다. 전쟁터에서 적의 좋은 칼을 보면 수집해 왔고 시간이 흘러 이제는 직접 칼을 갈고 만들기도 했다. 만족 남자들에게 칼은 몸에서 잠시도 떼어놓을 수 없는 동료이자 자존심이고 용기였다. 목려 앞에서 감히 칼을 논할 수 있는 자는 북도성에 없었다.

“세자께서는 정말 칼을 배우고 싶습니까?”

목려가 눈썹을 치켜 올리며 물었다.

“네. 목려 장군께서 가르쳐주세요.”

“칼은 배우기가 쉽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평생을 배워도 칼을 잘 쓰지 못하지요. 그저 갖고 놀고 싶으신 거라면 배우지 마십시오.”

“아버지께서 배우라 하셨고 저도 진심으로 배우고 싶습니다. 힘들어도 배우고 싶어요.”

* * *

1) 화살촉이 늑대 이빨과 비슷한 화살촉의 일종.

2) 곽륵이는 청양 대군 여숭의 만족 아명이다. 욱달한은 여응양의 아명이며 여표은은 9왕의 본명이다. 만족은 가까운 사람 사이에서나 아명으로 부른다. - 저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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