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제1장. 만족의 주인 (5)
선홍빛 석양이 서쪽 하늘가에 걸렸다. 북도성의 장막들 앞에서는 모락모락 밥 짓는 연기가 하늘 높이 피어올라 아득하게 흩어져 갔다.
안정룡은 손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 소매를 들어 얼굴의 땀을 닦았다. 그는 영씨 부인이 데려온 여자 노예들과 오후 내내 한타(旱獺)1) 가죽을 벗겼다. 벗겨낸 가죽에 석회를 바르고 건초를 채워 통풍이 잘되는 곳에 걸어두고 말렸다. 꽉꽉 채워서인지 한 마리, 한 마리가 살찐 새끼 곰 같았다. 구리 대야 안에는 한 조각씩 잘 썰어낸 한타 고기를 엇갈려 담고 절였다. 저녁이면 맛있는 고기가 완성될 것이다. 비록 지금은 한타가 가장 살찌는 가을철이 아닌 여름이지만 초원에서 한타 고기는 사슴 고기나 양고기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가장 맛있는 음식이었다. 구우면 야드르르한 지방 향이 났고 한 입 깨물면 입안 가득 기름이 번졌다. 1왕자의 사냥부대가 한타 동굴로 가득한 산의 바깥을 에워싸고 100마리가 넘는 한타를 잡았다. 1왕자는 심복 반찰열을 시켜 그중 50마리나 영씨 부인에게 보냈다. 영씨 부인의 남편 목려 장군은 1왕자파의 거물로, 1왕자는 늘 그에게 깍듯이 예를 갖췄다.
대합살과 영씨 부인은 의식을 잃은 세자를 돌봤다. 안정룡은 달리 할 일이 없어 여자 노예들과 함께 한타 가죽을 벗겼다. 안정룡의 조상은 사냥꾼이었다. 지금까지도 그의 아버지는 자주 활을 메고 마구(馬具)를 챙겨 사냥을 하러 나갔다. 운이 좋을 때는 다리가 길고 건장한 황양(黄羊)이나 길이가 1척이 넘는 뚱뚱한 한타를 잡고는 했다. 그러면 부친은 신이 나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안정룡을 데리고 짐승의 가죽을 벗기고 살점을 발라냈다. 안정룡에게는 그때가 가장 즐거운 순간이었다. 화톳불에서 양 똥이 타는 냄새를 맡으면 온몸이 따뜻해졌다.
안정룡의 집안은 대단한 귀족 가문이 아니었다. 그런 가문에서는 자식에게 점성학을 가르치지 않았다. 대합살이 비록 사람들이 눈도 마주칠 수 없는 존귀한 인물이라고는 해도 점성을 배우는 수많은 아이들 가운데 겨우 한 명의 대합살이 나올 뿐이었다. 더구나 반달 천신의 뜻을 헤아리는 대합살도 결국 신은 아닌지라 자기 운명을 점치지 못했고 얼마나 많은 대합살이 전란 중에 산 채로 타죽었는지 몰랐다.
주인을 잘못 선택하면 대합살은 곧 요사한 무당이 되었다.
점성학을 배우라며 안정룡을 대합살의 장막에 보낼 때 그의 아버지는 안정룡의 머리를 힘껏 쓰다듬었다. 안정룡은 지금도 그 당시 침묵하던 제 아비의 모습을 떠올리곤 했다. 그것이 어떤 의미였는지 어렴풋이 이해할 것도 같았지만 말로는 잘 표현이 되지 않았다.
“소합살께서는 한타 가죽 벗기는 데 달인이시네요.”
나이 많은 노예가 다가와 면포를 건넸다. 안정룡은 면포를 받아 손을 닦고는 씨익 웃었다. 영씨 부인의 장막에 자주 오는 그는 여자 노예들과 친했다. 뽐내거나 잘난 체하는 법이 없었기에 모두가 안정룡과 대화하기를 좋아했다.
여자 노예들은 감히 그를 안경룡이라 부를 수 없어서 소합살이라고 불렀다. 대합살이 누가 그의 뒤를 이을 것이라고 밝힌 적은 없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가 안정룡을 곁에 두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을. 그러나 안정룡은 자기 산술 실력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대합살이 가르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그럴 때면 대합살은 술 단지를 안고 연달아 한숨을 내쉬며 “내가 어릴 적에 너처럼 이렇게 둔했으면 스승님께 맞아 죽었어.”라고 말했다.
“고기는 어떻게 만들죠?”
안정룡이 면포를 돌려주며 물었다.
“절반은 소금에 절여서 말릴 거예요. 나머지 중에 절반은 굽고 절반은 수육을 할 거고요. 부인께서 그러셨어요. 오늘 대합살 가시기 전에 저녁을 대접할 거라고요.”
안정룡은 웃으며 손뼉을 쳤다. 영씨 부인 장막에서 만드는 수육은 최고라 할 만해서 대합살도 그도 모두 좋아했다. 대합살이 그를 데리고 영씨 부인 장막 쪽을 자주 어슬렁거리는 것도 대부분 수육을 얻어먹기 위해서였다. 석양이 깔리면서 여름날의 초원 위로 어두운 진홍빛이 흘러내렸다. 삼삼오오 한자리에 모인 여자 노예들은 안정룡이 잘 모르는 노래를 작게 흥얼거렸다. 누군가는 널어둔 한타 가죽에 유고(油膏)2)를 발랐고 누군가는 고기를 두드렸으며 누군가는 취화통(吹火筒)3)을 들고 양 똥에 불을 붙였다.
그는 돌연 무거워진 마음으로 동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해 질 녘의 동운산이 대지의 동쪽에 가로 놓여 있었다. 천혜의 장벽이 만족과 청주의 우족 도시를 갈라놓은 것 같았다. 산과 하늘의 경계에 둘린 옅은 테가 눈부시게 빛났다. 그러나 석양도 별빛을 억누르지 못했다. 무쇠 빛깔의 별 일곱 개가 동운산 아래에서 올라오기 시작했다. 으스스한 한기를 머금은 그 빛은 흡사 새로 갈아낸 강철 검 같았다.
북극성 무리는 정말 안정룡의 계산 대로 동운산 위에 떠올랐다.
“파군, 무곡, 염정, 문곡, 녹존, 거문, 탐랑…….”
안정룡은 북두칠성의 별자리를 하나하나 짚어 보았다.
보기 드문 별자리였다. 이 계절에 북두칠성은 보통 동운산 아래 가라앉아 있는데 올해는 일찍 떠올랐다.
북두칠성이 하늘의 12주성 중 하나는 아니지만 역대 성도(星图)를 보면 밤하늘을 찬란하게 비추다가 서서히 동쪽에서부터 하늘가를 가로지르며 서쪽으로 넘어갔고 매번 이런 운행 궤도가 수십 년간 지속돼 왔다. 그리고 북두칠성이 떠오르면 대부분 전쟁이 일어났다.
그래서 북극성은 전쟁신의 별이었다.
“소합살.”
나이 든 여자 노예가 한쪽에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안정룡은 번득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음?”
여자 노예는 의뭉스럽게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살폈다. 안정룡은 바삐 일하던 여자 노예들이 갑자기 움직임을 멈춘 것을 눈치채고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소합살은 세자에 대한 얘기를 아세요?”
그녀가 목소리를 낮추고 물었다.
“무슨 얘기?”
여자 노예는 주저하며 입술을 한참 달싹거리다가 말을 꺼냈다.
“사람들이 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세자가 불길한 사람이래요.”
“불길해?”
“우리는 천신의 뜻을 모르지만 소합살은 알잖아요. 정말 사람에게는 명성(命星)이라는 게 있나요?”
잠시 망설이던 안정룡이 입을 열었다.
“명성은 점성학에서 가장 복잡한 부분이라 나도 깊이 배우지는 못했어. 하지만 대합살께서 사람의 운명을 점칠 때는 수십, 수백 개 별의 궤적을 계산해야 한다고 하셨어. 그렇게 해도 자주 틀릴 때가 있다고. 그러니까 별 하나로 사람의 운명을 판단하는 일은… 내 생각에 없을 것 같아.”
“하지만 저들의 말로는…….”
여자 노예의 안색이 돌변했다. 그녀는 천 수건을 허리춤에 쑤셔 넣고 한타 고기로 가득 찬 구리 대야를 들고 고기를 씻어내러 갔다. 안정룡이 시선을 들었다. 소매 안으로 두 손을 그러쥔 대합살이 영씨 부인과 함께 장막 안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 장막은 세자의 거처였다. 안정룡은 세자가 측연지의 장막에서 묵지 않고 유모와 함께 생활할 것이라고 들었다. 영씨 부인이 근심 어린 얼굴로 대합살에게 말을 건넸다.
“먼저 좀 드세요. 세자도 곧 깨어날 겁니다.”
“그러지.”
대합살은 등을 구부린 채 두 팔을 꽉 감싸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언제나 양을 치는 늙은 유목민과 별 차이 없는 모습이었다. 체면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한데 대합살은 무슨 걱정이 있는지 시선을 떨군 채 정신을 딴 데 팔고 있었다.
“아마칙. 부인이 만든 수육 먹어라.”
대합살이 다가와 안정룡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안정룡이 “네.” 하고 몸을 돌리는 순간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고개를 돌리고 세 사람을 쳐다보던 여자 노예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낯선 눈빛에 놀라 멍해졌다. 그가 알던 순박하고 착한 여인들 같지 않았다. 넋이 나간 안정룡을 발견한 대합살이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여자 노예들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제히 고개를 숙이고 분주하게 일했다.
안정룡은 마음이 착잡해졌다.
향긋한 냄새가 진동하는 한타 고기를 작은 구리 그릇에 담아내자 멀리서도 매콤한 향기가 느껴졌다.
안정룡은 손바닥을 마주 대고 비볐다. 그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자 대합살이 손바닥으로 안정룡의 머리를 툭 쳤다.
“배고파 죽은 귀신이 붙었나. 먹을 것만 보면 이 모양이니 앞으로 어떻게 대합살이 될래?”
안정룡은 스승에게 대꾸할 겨를도 없었다. 영씨 부인이 만든 수육이 흑조밥 위에 덮여 나왔다. 고기 사이사이로 곱게 간 후추와 소금이 들어가 있고 그 위로는 향기로운 채소도 놓였다. 촉촉한 한타 고기 기름이 흑조밥 위에 덧뿌려져 납육 기름의 향이 났다. 비린내는 전혀 없었다. 그는 한 줌 크게 수육을 집어 입속에 욱여넣었다. 하마터면 자기 손가락까지 깨물 뻔했다.
대합살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웃으며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고기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언제 또 채워왔는지 백동 단지에는 술이 꽉 차 있었다. 그는 구리 난로 속 불더미를 보며 넋을 놓았다. 목려 장군은 식사하러 오지 않았고 영씨 부인만 새끼 양가죽으로 만든 대통을 꿰매며 함께했다.
안정룡은 고기를 몇 점 먹고는 손에 묻은 기름을 핥아 먹으며 영씨 부인을 보고 또 대합살을 한 번 쳐다보았다.
“목려는 세자를 여기에 두고 싶어 하지 않아요.”
바늘로 두피를 긁어 머릿기름을 묻힌 영씨 부인이 고개를 숙이고 계속 바느질을 이어갔다.
“그 헛소리 때문에?”
대합살이 그늘진 얼굴로 물었다.
“네.”
쿵. 대합살이 술단지를 탁자에 세게 내리쳤다.
“저가 뭔데? 한때는 저도 노예 새끼 아니었나?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짓밟히고 평생 양이나 치며 살 수밖에 없는 운명 아니었냐고! 말 털이라고는 한 가닥도 못 만져본 주제에 전쟁에 나간 놈이 이제 귀족도 되고 군대도 이끈다고 거드름을 피우는 게야?”
목려 장군은 과거 귀족 소씨 가문의 양치기 노예였다. 여숭 대군이 소씨 집 여식을 연지로 들이면서 노예 중에 목려를 뽑아 화족 성씨를 하사하고 유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지금 그는 호익장의 6~7천 기병을 통솔했다. 안정룡은 대합살과 목려 장군이 친하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대합살이 그의 오랜 과거까지 끄집어내 이야기하는 것은 처음 들어보았다.
영씨 부인이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계속 바느질을 하며 말했다.
“세자가 태어날 때 제가 받았으니 저야 안쓰러운 마음이 있죠. 대군께서 저를 세자의 유모로 삼으신 터라 목려도 대놓고 말은 못 해요. 다만 목려도 그렇게 생각하는 데다가 이러쿵저러쿵 뒷말이 많으니 세자에게 좋을 리 없잖아요.”
“무슨 세자? 그냥 애야! 목려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도 다 1왕자 쪽 사람들 때문 아니야?”
“1왕자는 정말 신경 안 써요. 세자가 대군의 자리를 이어받을 수 있다고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요. 1왕자가 다투는 상대도 3왕자죠. 목려도 1왕자를 위해서 그렇게까지 할 정도는 아니고요.”
“1왕자! 3왕자!”
대합살은 거칠게 콧방귀를 뀌고는 고개를 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장막 천이 휙 걷히더니 노예 하나가 들어와 무릎을 꿇고 말했다.
“대합살. 부인. 세자께서 깨어났어요!”
대합살은 엉덩이에 불이라도 붙은 사람처럼 벌떡 일어났다. 영씨 부인도 빠른 걸음으로 뒤쫓아 나갔다. 수육에 미련을 놓지 못한 안정룡은 고기 한 점을 입에 넣고 두 사람을 쫓아갔다.
장막 안에는 등잔이 하나 켜져 있었다. 등불 아래로 품이 넉넉한 도포를 입은 화족 의원이 앉아 세자의 손목을 잡고 맥을 짚고 있었다. 그는 들어오는 세 사람을 보고 급히 손을 뻗어 제지했다. 대합살과 영씨 부인은 찍소리도 내지 못하고 숨죽인 채 장막 입구에 서 있었다. 진맥을 마친 의원은 세자에게 털 이불을 잘 덮어 주었다. 그는 등잔을 들고 세 사람에게 같이 나가자며 눈짓을 해 보였다. 대합살은 세자에게 가보고 싶었지만 의원이 눈빛으로 그를 제지했다. 안정룡은 의원이 누구인지 알았다. 그는 동륙의 몇 안 되는 명의(名醫) 중 하나인 육자유였다. 원래 이리저리 떠돌며 약초를 채집하던 그를 대군이 금은보화와 모피를 하사하며 억지로 머물게 했다.
안정룡은 멀리서 흘끔 세자를 쳐다보았다. 그는 조용히 누워 투명한 눈으로 장막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이 들어갈 때 세자는 고개를 옆으로 살짝 돌렸으나 여전히 입은 꾹 다문 채였다.
안정룡이 장막 천을 닫으려는 순간 갑자기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대합살…….”
흥분한 대합살이 의원의 손에서 등잔을 빼앗아 달려 들어갔다. 뚫어져라 세자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 안정룡은 깜짝 놀랐다.
“대합살… 소마…….”
대합살이 그의 손을 꼭 쥐며 말했다.
“소마는 괜찮다. 무사해. 내일이면 볼 수 있을 게다.”
세자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힘없이 두 눈을 감았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했다.
“아소륵! 아소륵!”
놀란 대합살은 그만 저도 모르게 고함을 쳤다.
육자유가 다가가 잠시 살펴보고는 영감의 옷자락을 잡아당겨 장막 밖으로 끌어냈다. 의원은 성질이 불같기로 유명했다. 그가 진료를 볼 때는 귀족이든, 대군이든 예외 없이 장막 밖에서 기다려야 했다. 육자유가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잠들었을 뿐입니다! 아까는 심신이 불안정해 잠깐 깨어났던 거고 이제 마음이 놓였는지 잠이 든 거라고요.”
안정룡은 어버버하던 벙어리 소녀가 떠올랐다. 세자는 벙어리 소녀가 염려되어 극도로 쇠약한 와중에도 정신을 차린 것이었다.
영씨 부인은 세자가 바깥 소음에 방해받지 않고 잘 수 있도록 장막 천을 내렸다.
“너희는 여기서 뭘 하는 게야?”
대합살이 큰 소리로 물었다. 안정룡이 시선을 돌리자 몇몇 여자 노예들이 장막에 귀를 댄 채 엿듣고 있었다. 그들은 놀란 사슴 떼처럼 뿔뿔이 흩어져 어둠 속으로 도망쳤다. 불빛 속에서 안정룡은 뒤돌아보는 여자 노예의 얼굴을 보았다. 해 질 무렵 대화를 나눴던 나이 든 노예였다. 그녀는 약간 신비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육 의원. 세자는 어떻습니까?”
영씨 부인이 물었다.
“큰 문제는 없습니다. 오는 길에 피로가 누적된 겁니다. 9왕의 군의관 말이 무뢰한 병사들 사이에서 구출돼 크게 놀란 것 같다고 하더군요. 근래 들어 잘 먹지도 못하고 제대로 잠도 못 잔 데다 밤에 종종 이유 없이 놀라 깼다네요. 세자의 체력에 못 견디는 게 당연합니다. 오히려 쓰러지면서 안정을 찾았으니 세자께는 잘된 일입니다.”
“그럼 세자의 지병은…….”
“심장이 멎는 증상은 제 스승님도 알아내지 못하셨고 제게도 능력 밖의 일입니다. 고서에 심장을 보양하는 방법이 한 가지 나와 있습니다. 흉강을 열어서 고치는 방법이지요. 8년 전 제 스승님은 세자를 진맥한 뒤 동륙에 돌아가 임종 전까지 계속 심장과 혈맥에 관한 지식을 연구하셨습니다. 하지만 현세에는 그 방법이 재현될 수 없을 것 같다 하셨지요.”
육자유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가끔 인력으로는 안 될 때가 있습니다. 스승님보다 실력도 못 한 제가 더 말해 봤자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그는 허리를 숙여 예를 행하고는 약 자루를 들고 간다는 말도 없이 자리를 떠났다. 무심한 그의 표정에는 약간의 안타까움이 서려 있었다.
대합살과 영씨 부인은 말없이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오늘 저녁에 부인의 장막에서 자고 내일 아침에 세자 상태를 좀 봐야겠네.”
“대합살께서 묵으신다니 노예들에게 큰 장막 하나를 치워두라고 할게요.”
“번거롭게 그럴 것 없어. 그냥 좋은 독주 한 병만 주면 되네.”
대합살이 배를 문지르며 말했다.
“수육 덮밥도 주게. 나도 이제 배가 고프구먼.”
* * *
1) 마멋(marmot). 다람쥣과 마멋속의 포유류.
2) 액체 모양의 고약
3) 입으로 불어서 불을 피울 때 사용하는 대나무 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