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파이트-171화 (171/173)

< #49 월드 그랑프리 재개 (2) >

갑자기 사라진 막시무스는 멀쩡히 돌아왔다.

왜 갑자기 사라졌는지에 대해선 아직까지도 말이 많았지만 그들에게 정확히 알려진 건 없었다.

아무튼 세계 최강의 타이틀을 달고 있는 막시무스는 그대로 돌아왔고, 게이트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그들은 아직도 막시무스가 세계 최강의 골렘인 줄 알고 있었다.

실상은 전혀 달랐지만 말이다.

중년의 남자가 자신의 손목시계를 쳐다보았다.

막시무스의 경기 시간이 슬슬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꼭두각시를 자처하는 야오린에게 입을 열었다.

“시간이 다 됐군.”

그가 야오린에게 다가와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잘하라고. 믿고 있으니까.”

그가 그녀에게 바라는 건 오직 한 가지였다.

까불지 말고 알파고의 지시에 충실히 따르는 것.

그게 전부였다.

“그럼 가보겠네. 지켜보겠어.”

선수 대기실로 대회 관계자와 막시무스 관계자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경기 출전 시간을 알려왔고, 야오린은 부담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섰다.

야오린이 소속사 관계자들 함께 개인 선수 대기실 밖으로 나오자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야오린 선수! 이번 프랑스 결전에서 한 마디 부탁합니다!”

“세계 최강 막시무스를 위협할 골렘이 과연 있다고 보십니까?”

“막시무스가 갑자기 사라진 일에 대해서도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한 번에 대답하기엔 너무나도 많은 질문들이 그녀에게 향했다.

그녀는 대답 대신 소속사 관계자들이 터주는 길을 따라 묵묵히 경기장으로 향했다.

*  *  *

악튜러스.

칠죄종 세트를 완성시키고 라시타 제국과 전쟁을 벌이려 했던 고대 골렘.

현재 악튜러스의 무력은 단언컨대 이번 2030년 프랑스 월드 그랑프리에 출전한 그 어떤 골렘보다도 강했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악튜러스의 태도였다.

악튜러스는 전과 다르게 비협조적인 태도로 석민의 골치를 썩이고 있었다.

말을 전혀 듣지 않는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당장 스피카를 내보낼 수 없는 석민 입장에선 어떻게 해서든 악튜러스를 설득하여 경기장에 내보내야만 했다.

앞으로 한 경기 뒤면 악튜러스 차례였다.

만약 악튜러스가 경기장에 나가지 않는다면 자동으로 기권패가 된다.

석민은 아직도 말이 없는 악튜러스와 마주보고 섰다.

“계속 그럴 거야?”

석민이 물었음에도 조용히 명상을 이어가던 악튜러스는 대답조차 없었다.

“흠…”

침음을 흘리는 석민이 악튜러스를 쳐다보았다.

악튜러스의 태도는 며칠 전부터 계속 저랬다.

“네가 이러면 내가 곤란해. 협조 좀 해줘.”

“내게 협조를 바라는가?”

악튜러스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부탁할게. 이번 한 번만 도와주면 안 될까? 그 다음부터는 귀찮게 안 할게.”

오히려 비웃는 악튜러스가 차가운 태도를 고수해주었다.

“그대는 내 의지를 짓밟았다. 그런데 왜 내가 그대 꿈을 위해 광대 같은 짓을 해야 하는 거지?”

“전에는 잘 해줬잖아. 왜 이제 와서 그래.”

“상황이 변했다. 전에는 그대에게 고마운 감정이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 내겐 그대의 부탁을 들어줄 아무런 이유가 없다.”

비협조적인 태도.

석민은 고심했다.

어떻게 하면 악튜러스의 태도를 바꿀 수 있을까?

“그래, 나도 네 기분을 잘 알겠어. 널 말렸던 내가 싫겠지.”

“잘 알고 있군.”

“그럼 이렇게 하자. 이번 월드 그랑프리만 도와주면 다음부턴 귀찮게 하지 않을게. 네가 고물상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가만히 놔둘 생각이야. 어때?”

반응을 본다.

시큰둥했다.

석민이 다시 말했다.

“별로야?”

“그다지 끌리지 않는군. 굳이 그대 제안을 들어줄 필요도 없이 나는 이렇게 가만히 있어도 된다.”

“흠…”

석민이 다시 한 번 생각해봤다.

어떻게 하면 비협조적인 악튜러스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지.

“그럼 이렇게 하자.”

석민은 악튜러스가 경기장에 나가기 위해선 자기도 무언가를 희생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이것은 악튜러스에게도 꽤나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이번 한 번만 도와주면 널 놔줄게. 네가 떠나도 말리지 않겠다는 말이야. 대신 네가 원하던 제국이나 교단에 적대하는 행위는 용납하지 않을 거야. 그랬다간 내가 널 흙으로 돌려보낼 테니까.”

“날 놔주겠다고?”

“그래. 그것 말고는 현실적으로 너와 거래를 할 게 없어.”

악튜러스가 떠나가도 석민에겐 스피카가 남아있었다.

다만 이런 식으로 악튜러스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은 올해 출전만큼은 악튜러스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할래?”

석민의 제안에 악튜러스가 눈가를 좁히며 약간 고심하는 눈치를 보였다.

석민은 악튜러스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가만히 지켜보았다.

악튜러스의 대답은 그리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이 그 입에서 흘러나왔다.

“좋다. 그대 제안을 수락하도록 하지.”

상당히 씁쓸한 제안이었지만 석민도 알고 있었다.

한 번 틀어진 사이라 복구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그래도 거래는 이뤄졌다.

“가서 바람이라도 쐬고 와. 이번 대회가 끝나면 영원히 안 돌아와도 좋지만, 나는 네가 다시 돌아와 줬으면 좋겠어.”

석민은 그 마음을 전했고, 악튜러스는 듣는 둥 마는 둥 다시 두 눈을 감았다.

경기 시간이 됐다.

이번 64강전 악튜러스의 상대는 베가였다.

환호와 열기로 가득한 경기장 아래 악튜러스와 베가가 섰고, 블루 진영을 차지한 페트리샤는 석민에게 통신을 보내며 난리법석을 떨었다.

이번 경기는 꼭 이길 거라는 둥.

저번에 심심해서 했던 게임 승부들은 다 무효라는 둥.

골렘 파이트가 진짜라는 둥.

“야! 진짜 각오해. 이번엔 저번처럼 골렘이 사라지는 일 따위는 없을 테니까.”

두 주인이 무슨 대화를 나누든 하등 관심 없는 두 골렘은 친구에서 적으로 다시 마주하게 됐다.

베가는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경기장에 나오다니, 의외로군.’

베가의 전음이 들려오자 악튜러스도 전음으로 답했다.

‘거래를 했다.’

‘거래?’

‘나를 놔준다고 하더군.’

‘놔준다? 무슨 의미지?’

‘말 그대로 놔준다는 의미다. 그럼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자유의 몸이 되겠지.’

‘자유라…’

베가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그건 그렇고 그대가 말한 우리의 숙원은 어떻게 할 생각이지? 우리 모두의 숙원을 버려두고 그대 자유만 찾을 생각이냐?’

그 물음에 있어 악튜러스는 악튜러스다운 대답을 전해주었다.

‘내 알바 아니다.’

‘그렇군. 그런 거였어…’

베가는 악튜러스에게 굉장히 큰 실망감을 느꼈다.

왕의 재목이라 생각했던 자가 사실 자기 자신만 아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자였다는 것을.

‘실망이다 악튜러스. 그렇게 안 봤는데.’

악튜러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악튜러스는 제게 적의를 보이는 골렘을 지그시 노려보았다.

‘적의가 보이는군. 내게 대적할 생각이냐?’

‘그렇다면?’

‘어리석은 생각이로다.’

석민을 잔뜩 벼르고 있던 페트리샤는 경기 시작과 동시에 베가를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전과 마찬가지로 베가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다.

“뭐야! 이거 또 왜 이래!”

마찬가지로 악튜러스도 석민의 말을 듣지 않았다.

주인의 통제로부터 벗어난 두 골렘이 거칠게 격돌했다.

베가가 물의 지배력을 끌어올려 두 손에 어스볼을 생성시켰다.

그런 베가와 대치하던 악튜러스는 꽉 말아 쥔 주먹으로 경기장 바닥을 내리치며 흙의 지배력을 끌어냈다.

흙과 물의 싸움.

그 싸움에 지켜보던 관중들이 크게 환호하였다.

하지만 의미심장하게 시작한 경기는 생각보다 빠르게 끝을 맺었다.

베가는 악튜러스를 이기지 못했다.

반파된 베가를 두고서 경기장에서 물러나는 악튜러스는 경기장에 큰 충격을 안겨다 주었다.

17초.

석민의 통제에서 벗어나 흙의 지배력을 끌어내던 악튜러스가 베가를 반파시킨 시간이 고작 17초였다.

월드 그랑프리 역사상 17초만에 경기가 끝난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독일 유망주라 불리던 꼬마와 그 꼬마의 골렘이 한국 골렘에게 단 17초만에 격파된 일은 연일 화젯거리로 올라섰다.

전에 없던 악튜러스의 전력에 세계 외신들은 일제히 악튜러스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64강부터 16강까지 모든 경기 시간이 평균 15초 내외이던 악튜러스는 확고부동한 막시무스의 위상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브라질 골렘과의 경기를 마치고 선수 대기실로 향하는 야오린에게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야오린 선수! 지금 악튜러스가 무섭게 치고 올라오고 있는데 여기에 대해 한 마디 부탁드리겠습니다.”

“세계 최강의 자리를 엿보고 있는 악튜러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어찌된 게 며칠 전부터 기자들이 하는 질문이 전부 똑같았다.

악튜러스에 대해 묻는 것.

이 질문에 있어서 야오린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누가 결승전에 올라오든 막시무스가 우승할 겁니다.”

막시무스의 평균 경기 시간이 40초였다.

이것도 엄청 짧은 거라 할 수 있었지만, 15초 내외인 악튜러스에게 견주기엔 한없이 모자랐다.

그러니 야오린이 저리 대답했어도, 막시무스 관계자나 제리코 코퍼레이션에선 비상이 걸렸다.

“또 11초야.”

동방불패와의 싸움을 지켜보던 금발벽안의 중년 사내가 중얼거렸다.

“11초라고. 동아시아 챔피언이 11초면…”

악튜러스가 최단 시간 만에 경기를 끝내는 것은 상대 골렘의 장갑 수준을 막론하고 원스윙원킬로 끝장을 보기 때문이었다.

예전에 스피카와 싸웠을 때 악튜러스는 공간 절삭과 공간 절단을 통해 절대 검격을 펼쳤었다.

이때 스피카의 장갑이 무섭게 썰려나갔으니, 그보다 못한 장갑을 가진 세계 정상급 골렘들이 버틸 리 만무했고, 이로 인해 경기 평균 시간이 십 초대가 나온 것이다.

중년 사내는 꽤 심각한 표정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막시무스의 패배는 제리코 코퍼레이션의 매출 감소로 이어진다.

그리고 세계 최고의 국방력을 자랑하는 미국의 자존심에도 흠집이 가는 일이었다.

막시무스는 미국방부가 제리코와 합작해서 만든 세계 최고의 병기였으므로.

“막시무스가 지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합니다.”

비상 대책 회의에 찾아온 미국방부 관계자가 입을 열었다.

“여기에 투입된 예산이 얼만지나 아십니까? 무려 50억 달러입니다. 총 개발비까지 합치면 100억 달러가 넘는 돈이 막시무스에게 투입됐다고요.”

찾아온 관계자는 하나가 아니었다.

또 다른 관계자가 입을 열었다.

“단순히 돈을 떠나서 이건 자존심 문제입니다. 미국방부 마크를 달고 있는 막시무스가 한국 골렘에게 털린다? 안 됩니다. 절대!”

그러면서 누구는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을 했다.

“이거 우리가 대전 골렘을 한국한테 파는 게 아니라 오히려 사들여야 할 판국이네요. 어쩌다 막시무스 위상이 이리 됐습니까?”

가만히 듣고 있던 제리코 코퍼레이션 중역이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듣자하니 악튜러스를 코리아 일렉트로닉스에서 후원해주고 있다고 하던데.”

대책 회의에 참석한 이들은 전부 그의 말을 집중해서 들었다.

그는 이 상황에서 전혀 엉뚱한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베타고가 있죠. 아마 악튜러스는 베타고의 지시를 받을 겁니다. 막시무스가 알파고의 지시를 받는 것처럼 말입니다.”

모두가 서로를 쳐다보더니 이내 수긍하는 눈치를 보였다.

“베타고를 해킹할 수 있다면, 베타고의 지시를 받는 악튜러스를 패배시킬 수가 있을 겁니다.”

생각자체는 나쁘지 않았으나 문제는 그들의 생각과 다르게 석민과 악튜러스는 베타고의 간섭을 잘 안 받는다는 것에 있었다.

다만 이를 잘 모르는 제리코 코퍼레이션에선 헛다리를 잡았고, 개삽질을 준비했다.

“이대로 가면 결승전인데… 그 시간에 맞춰 베타고를 해킹할 수 있다면 막시무스가 지는 일은 아마 없을 겁니다.”

이제 그들의 초점은 악튜러스가 아닌 베타고 해킹으로 모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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