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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렘파이트-170화 (170/173)

< #49 월드 그랑프리 재개 >

#49 월드 그랑프리 재개

악튜러스의 패배로 인해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왔다.

주인을 버리고 악튜러스를 따라갔던 모든 골렘들은 악튜러스 패배 이후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중엔 악튜러스를 한심하게 보는 이도 있었다.

바로 막시무스였다.

‘한심한 놈. 그따위 실력으로 왕을 자처하다니.’

막시무스가 악튜러스 무리 중 가장 먼저 등을 보였다.

반면 베가는 스피카와 악튜러스의 싸움을 멀찌감치 떨어져 지켜보았다.

악튜러스는 패했고, 더 이상 의지할 수 없게 됐다.

무리 중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베가마저 발길을 돌리자 골렘 왕국을 건설하려는 악튜러스의 야욕은 허무하게 막을 내리게 됐다.

악튜러스가 죽고 남은 외골격은 석민 고물상으로 옮겨졌다.

다시 살리기 위해서다.

물론 안전장치는 필수.

“수고했다 마법사.”

검은 정장의 수행원들과 석민 고물상을 방문한 므라두앙느가 가게를 지키고 있던석민에게 말을 붙였다.

석민은 소녀의 방문을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일단 필요하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황녀는 저 혼자 좋아서 떠들어댔다.

“역시 그대를 믿은 보람이 있구나.”

그런 황녀가 지팡이를 앞세우며 다음 말을 이었다.

“그대는 전쟁을 막은 영웅이다. 그럼 상을 내려야겠지.”

석민이 빤히 쳐다보자 황녀가 설핏 웃었다.

“무엇을 원하느냐? 원하는 게 있다면 뭐든 들어주겠다.”

석민은 그냥 무시하려다 좋은 게 생각났다.

“월드 그랑프리를 다시 열어줘.”

“월드 그랑프리?”

별 희한한 소원이었지만 마법사가 부탁하니 그녀도 별 수 없게 됐다.

그게 그리 큰일도 아니었고.

“그 정도야 그리 어려운 부탁이 아니니 가능한 다시 재개될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다.”

사실 기약 없이 중지된 2030년 월드 그랑프리 재개야 돈이 문제였다.

그 부분을 라시타 컴퍼니에서 감당한다면 석민은 월드 그랑프리 재개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봤다.

“다른 건 또 없느냐?”

황녀는 주려는 게 많은 것 같았다.

“또? 음...”

석민은 생각해봤다.

저 얄미운 황녀에게서 무엇을 뜯어내면 좋을지를.

“딱히 생각나는 건 없는데. 골렘 수리비만 줘.”

“알았다. 다른 건?”

“다른 거? 글쎄. 생각나면 나중에 전화할게.”

그 말을 듣자 황녀는 알아서 수긍했다.

“필요한 게 있다면 언제든 말하거라. 라시타는 항상 그대 편이다.”

전과 다르게 태도가 살가워진 소녀.

전설적인 마법사가 전설 속 고대 골렘을 막아내자 제국의 황제는 정신감응으로 딸에게 무언가를 주문하게 됐다.

라시타의 번영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

그리고 그 주문에 의해 므라두앙느는 지금 저 삼선 슬리퍼를 신고 서 있는 변방의야만인에게 항상 잘 보일 수밖에 없는 입장이 되었다.

어쩌면 황제의 전언이니 라시타의 뜻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터.

어찌됐건 므라두앙느는 소년에게 항상 좋은 모습만 보이기로 했다.

싫어도 싫은 기색을 내지 않고.

항상 웃는.

그런 모습을 말이다.

그러다 소년이 데려온 골렘이 생각났다.

“그런데... 그대가 데려온 골렘은 어찌할 생각이지?”

악튜러스는 제국의 해가 되는 골렘이었다.

마법사가 막았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존재 자체가 용서되는 건 아니었다.

“악튜러스는.”

석민은 여기서 확실히 매듭짓기로 했다.

그렇지 않다면 라시타 쪽에서 계속 태클을 걸어올 테니까.

“내 골렘이야. 너희가 신경 쓸 일이 아니지.”

“그래?”

옛날 기질이 나오려는 걸 므라두앙느가 가까스로 참아냈다.

라의 말이 없었다면 제 성격대로 갔을 터.

하지만 이제 그런 일은 없었다.

“알겠다. 마법사의 뜻이니 라께 그리 전하겠다.”

그녀는 웃는 얼굴로 떠나갔다.

생각했던 것보다 쉽게 물러나자 석민은 약간 어리둥절했다.

‘그냥 가네.’

솔직히 악튜러스에 관해선 뭐라고 할 줄 알았다.

그런데 고분고분 말을 잘 들었다.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건가?’

석민은 검지로 제 뺨을 긁적였다.

만약 다른 생각이 있다면 악튜러스를 다시 살리진 않을 것이다.

그건 라시타 입장에선 바보 같은 짓이니까.

‘일단 어떻게 나오는지 지켜봐야겠다. 당장은 모르겠어. 태도가 저러니까.’

그렇게 소녀는 떠나가고 대신 아다만틴을 다룰 수 있는 마법사들을 보내주었다.

두 골렘의 수리를 위해서였다.

이리하여 완파 된 두 골렘의 수리가 가능해졌다.

그렇게 악튜러스와 스피카는 석민 고물상에서 수리를 받게 되었고, 악튜러스는 스피카처럼 개목줄이 채워진 상태로 다시 부활하게 됐다.

죽음에서 또 다시 살아난 악튜러스가 눈을 떠 제 발치에 서 있는 어린 소년을 보았다.

깨어난 악튜러스는 조용했다.

어느 정도 눈치 챈 것이다.

“생각이 있다면 나를 곱게 살려주진 않았을 터. 내가 모르는 뭐라도 있는 건가?”

이때 석민 뒤로 다가서는 스피카가 대신 답해주었다.

“빙고. 그게 뭔지는 곧 알게 될 거다.”

그 아래 석민이 악튜러스의 말을 받았다.

“앞으론 전과 같은 일은 없을 거야. 스피카도 마찬가지지만 너한테도 특별한 장치를 해놨어. 만약 전처럼 말썽을 피운다면 넌 바로 흙으로 돌아갈 거야.”

본디 골렘은 주인 말을 잘 듣는다.

하지만 말을 안 듣게 될 경우 골치가 아파지는데.

이때를 대비하여 오래전부터 마법사들은 제가 만든 골렘에게 특별한 장치를 해두었다.

악튜러스는 대충 그런 것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렇군.”

“악튜러스. 이제부터 말썽 피우지 말고 가만히 있어. 너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고 또 불안에 떨었는지 알기나 해?”

악튜러스는 대꾸하는 대신 비릿하게 웃어보였다.

한동안 아이와 시선을 주고받던 악튜러스는 곧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명상할 때의 자세였다.

그러면서 확고부동한 제 뜻을 알렸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절대 변하지 않지. 언제나 나는 라시타를 증오하며 살아갈 것이다.”

악튜러스는 그대로였다.

아마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다.

석민도 그 점을 모르진 않았다.

“나도 알아. 네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는 걸. 하지만 내가 있는 한 말썽은 안 돼. 평생 참고 살아. 벌이야.”

“평생 참아라. 참으로 어려운 주문이로다.”

악튜러스는 눈을 감고 명상에 들어갔다.

고대 카발라에서 전승한 이 명상법이 없었다면 아주 오래전에 미쳤으리라.

그런 악튜러스를 내려다보는 스피카가 석민에게 말했다.

“요놈은 내가 감시하겠다. 대장.”

석민은 어느샌가 대장으로 불리고 있었다.

“그래. 특이사항 있으면 바로 보고해. 나는 가게에 있을 테니까.”

그렇게 두 골렘을 두고 가게 안으로 돌아온 석민은 평상에 앉아 명상에 들어간 악튜러스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명상에 들어간 악튜러스는 미동조차 없이 고요했다.

화를 다스리기 시작한 골렘은 아마 한 동안 말이 없으리라.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악튜러스는 계속 명상 중이었고, 스피카는 그 근처에서 서성거렸다.

마지막으로 석민은 안방 티비를 켜고 뉴스를 지켜보고 있었다.

“갑자기 사라진 골렘들로 인해 무기한 연기되던 2030년 프랑스 월드 그랑프리가다시 재개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라시타 컴퍼니에서 주도적으로 나서며 대회 관계자와 각국 선수들을 설득하고 있는데요. 여러 군데에서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무기한 연기되던 2030년 프랑스 월드 그랑프리가 재개 또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될 것으로 보입니다.”

학수고대하던 뉴스였다.

확실히 라시타 컴퍼니에서 주도적으로 나서니 흐지부지되려던 경기가 다시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다시 열려야지. 올해 꼭 우승해야 하니까.’

뉴스에선 월드 그랑프리가 재개 될 것 같다는 추측들이 나오고 있었지만.

실무 관계자들은 이미 대회 재개를 기정사실화하고 있었다.

석민이 뉴스 화면에 집중하고 있을 때 강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석민아! 이야기 들었냐?”

“무슨 이야기요?”

“글쎄 프랑스 월드 그랑프리를 다시 재개한데. 결승전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맞춰서 다시 진행한다고 하더라. 이미 일정이 나왔어.”

“일정이 나왔어요?”

“그래! 내가 곧 그쪽으로 갈게. 가서 이야기하자.”

통화가 끝나자 이번엔 한미라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 다음은 한성철이었다.

전부 같은 이야기였다.

석민은 함박미소를 지었다.

“나이스.”

그렇게 기약 없이 연기되었던 2030년 프랑스 월드 그랑프리가 12월에 다시 재개되었다.

석민은 국가 대표 자격으로 인천공항에 도착하게 되었고, 기자들 앞에 섰다.

“차석민 선수! 월드 그랑프리가 다시 재개된 소감에 대해 말씀해주시죠.”

“소감이요?”

“네! 짧게 대답해주셔도 됩니다.”

“당연히 기다리고 있었죠. 꼭 우승하고 돌아올 거예요.”

“저기 악튜러스 상태는 어떻습니까? 악튜러스는 잘 돌아왔나요!”

“악튜러스는...”

아직도 토라져 있었다.

사실 좋은 컨디션은 아니었다.

“괜찮아요. 꼭 이기고 돌아올게요.”

“스피카에 대해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어디 소속된 골렘인 겁니까? 설마 선수 본인 소유는 아니죠?”

“스피카도 제 골렘이에요!”

“그럼 스피카도 올해 월드 그랑프리에 출전할 수 있는 겁니까?”

“아니요. 스피카는 올해 등록을 안 해놔서 출전은 못 해요. 내년이면 가능하겠죠.내년에 스피카도 보여드릴게요.”

“차석민 선수! 꼭 우승하고 돌아오세요!”

미리 찾아와 있던 팬들이 소리를 지르고 기자들의 질문은 계속 이어졌지만 KRG 관계자들이 나서며 석민은 공항출국장으로 향하게 되었다.

*  * *

2030년 프랑스 월드 그랑프리가 재개됐다.

수행원과 함께하는 금발벽안의 중년 사내가 개인 선수 대기실 앞에 진을 치고 있던 기자들을 뚫고 방안으로 들어섰다.

입구는 따라온 수행원들이 막아섰고, 기자들은 문틈 사이로 비추는 선수 뒷모습을 찍기 바빴다.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 중 우승 후보로 점쳐지는 오직 세 명에게만 배정해준다는 개인 선수 대기실에서 찾아온 그가 다음 경기를 준비하고 있던 선수에게 입을 열었다.

“이봐. 컨디션은 좀 어때?”

야오린이 고개를 돌려 찾아온 중년 사내를 보았다.

“제 컨디션이야 뭐.”

중년인은 근처에 있던 미니바에서 위스키 한 잔을 따랐다.

그리곤 야오린 옆자리로 가 앉았다.

위스키로 목을 축인 그가 말문을 열었다.

“잘 할 수 있겠지?”

그 말에 야오린이 설핏 웃었다.

“질문이 웃기네요. 다 아시면서.”

“그래. 자넨 그냥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 전에 있던 그 머저리처럼 꼴에 파이터랍시고 깝치면 안 돼. 그런 건 전부 리스크가 되니까.”

회사 중역답게 그는 리스크란 말을 잘 썼다.

“회사 입장에서 리스크 관리는 정말 중요하지. 특히나 나 정도 되는 사람은 변수 같은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 그냥 틀에 박혀도 좋으니 안정된 걸 추구하지.”

그는 위스키 잔을 내려놓고 근처 벽에 걸려 있던 그림 앞에 섰다.

그리곤 끊었던 말을 다시 이어나갔다.

“우승은 아마 문제없을 거야. 막시무스는 세계 최강이니까.”

< #49 월드 그랑프리 재개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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