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파이트-169화 (169/173)

< #48 결전 >

악튜러스가 발견한 사실은 석민에게도 새로웠다.

그런 게 가능했을 줄이야.

하긴 시공안이 가진 그 놀라운 능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해보였다.

말을 마치자 악튜러스는 보란듯이 이면세계에 들어섰다.

석민이 노리던 바를 철저하게 부순 것이다.

이면세계에 거리낌 없이 들어선 악튜러스는 순식간에 스피카 옆으로 이동했다.

그리곤 그 옆구리에 훅을 꽂았다.

쾅!

강한 파공음과 함께 스피카의 전신이 흔들렸다.

그게 끝이 아니다.

아까 스피카가 악튜러스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인 것처럼 이번엔 악튜러스가 여기저기서 모습을 드러내며 스피카에게 주먹을 날렸다.

쾅쾅쾅!

이면세계를 통한 주먹질이 여기저기서 이어지자 석민의 시야가 요동쳤다.

스피카는 급히 바닥을 굴러 가까스로 악튜러스의 공격을 끊어냈다.

악튜러스가 도망치는 스피카를 쫓으려하자 스피카가 은신을 사용해 자취를 감추었다.

사라진 스피카.

악튜러스가 마력원을 통해 흙의 지배력을 끌어냈다.

“도망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마라.”

또 다시 땅이 용솟음치려 한다.

그러자 은신하고 있던 스피카가 파쇄안을 사용하여 용솟음치는 대지를 빠르게 잠재웠다.

전 대지가 울부짖으려 했던 것처럼.

이를 잠재운 힘도 정말 대단했다.

악튜러스가 그 표정을 사정없이 구겼다.

‘정말 골치 아프군.’

마법과 동력에 관한 건 죄다 막아냈다.

이래선 제대로 싸워볼 수가 없었다.

‘이런 식이면 지루한 싸움만 계속될 뿐이다.’

지루함에 지친 악튜러스가 끝장을 보기 위해 용왕의 힘을 전부 끌어냈다.

악튜러스 머리 위에 있던 용왕의 형상이 악튜러스에게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강한 마기를 머금은 악튜러스 덩치가 급속도로 팽창했다.

용왕의 힘을 전부 개방시킨 것이다.

대지의 흙들은 용왕으로 현현하려는 악튜러스에게 빨려 들어갔으며 이로써 악튜러스 등에 날개가 치솟고 그 몸이 드래곤처럼 변형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악튜러스는 칠흑 같은 어둠을 지닌 마신으로 현현하게 됐다.

과거 전설로만 전해지던 용왕 베헤모스로 직접 탈바꿈한 것이다.

용왕으로 변한 악튜러스가 입을 여자 사악한 마기가 흘러나왔다.

“구질구질한 싸움은 여기서 끝내도록 하지.”

악튜러스의 말에 가만히 있을 스피카가 아니다.

석민이 무어라 말하지 않아도 스피카는 제가 할 일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거 좋은 생각이다. 나도 따분하던 참이었거든.”

악튜러스와 마찬가지로 스피카 역시 빛을 머금고 그 덩치가 급속도로 커지기 시작했다.

전신은 빛으로 가득 찼으며, 빛의 창을 가진 위대한 천신으로 현현했다.

어둠을 뚫고 하늘에서 내려온 거대한 빛줄기가 천신을 더욱 찬란하게 비추었다.

찬란한 하늘 아래.

천신으로 현현한 스피카가 입을 열었다.

“그럼 이제 제대로 놀아볼까?”

용왕과 천신.

두 절대자가 현현하자 주변은 더 크게 난장판이 됐다.

용왕이 뿜어낸 브레스에 대지가 녹고 불타올랐으며, 천신이 뻗어낸 창끝에 대지가 쪼개지고 산에 커다란 구멍이 났다.

진정 먼치킨의 대결이었다.

불행히도 이 싸움에 석민은 나설 수 없었다.

왜냐면 천신의 의지가 직접 개입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나약한 의지로는 천신의 의지를 감당할 수 없었다.

대신 석민이 비운 자리는 스피카가 대신했다.

천신과 스피카는 하나가 되어 용왕으로 현현한 악튜러스를 향해 창을 휘둘렀다.

마찬가지로 용왕과 하나가 된 악튜러스는 제게 맞서는 천신을 향해 브레스를 뿜었다.

두 절대자가 현현한 대지는 앞서 두 골렘이 맞섰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게 망가지기 시작했다.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었다.

불타고 구멍이 난 대지.

그런 전쟁터에서 석민은 용왕과 천신의 싸움을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이제 운명에 맡긴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과거에도 그랬듯 천신이 우세하다는 점이었다.

천신은 천계에서 내려온 사냥꾼이었다.

아무리 상대가 전설적인 드래곤이라 할지라도 천계에서 내려온 사냥꾼에겐 한낱 사냥감에 불과했다.

대신 둘 다 먼치킨이라 싸움은 이틀 동안 계속되었다.

이틀 동안 잠도 안 자고 둘의 싸움을 지켜보던 석민은 하품이 입술 사이로 비집고나오는 걸 막지 못했다.

졸렸다.

더럽게 졸렸다.

그래도 눈은 부릅떴다.

‘끝까지 지켜볼 거야.’

석민이 의지를 불태우며 그 바람이 간절해졌을 때.

드디어 기적이 일어났다.

상처투성이로 창공을 배회하며 브레스를 뿜어내던 용왕이 천신이 사력에 다해 던진 빛의 창에 꿰뚫린 것이다.

창에 꿰뚫린 용왕이 그 힘을 잃고 대지로 끝없이 추락하였다.

추락한 용왕은 그 즉시 힘을 잃고 검고 부정하게 뭉쳐 있던 기운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 안에는 만신창이의 악튜러스가 있었다.

이를 본 천신도 그 힘이 다했는지 무릎을 꿇고 빛으로 화하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천신이 화하는 자리 밑엔 여기저기 망가진 스피카가 있었다.

둘의 싸움은 제로스 전설의 재현이었다.

그렇게 악튜러스와 스피카가 다시 본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두 절대자로 현현했을 때와 다르게 두 골렘의 장갑 상태는 많이 망가진 상태였다.

악튜러스의 별빛 갑옷조차 천신의 위력에 구멍이 나고 흠집이 났으며, 스피카의 갑옷 역시 용왕의 브레스에 견디지 못하고 대부분 녹아내린 상태였다.

이때까지 눈을 부릅뜨고 있던 석민이 근처에 있던 누군가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고마워 유이야.”

사실 석민이 이틀 동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옆에서 도와주는 조력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유이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가장 고생하면서 도와준 건 유이였다.

“석민아 힘내!”

유이는 전날부터 잠도 자지 않고 앉아 있는 석민 옆에 꼭 붙어 있었다.

응원하기 위해 손을 꼭 잡아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석민은 만신창이가 된 스피카의 통제권을 다시 가져왔다.

하지만 스피카의 꼴이 말이 아니었다.

덩달아 코어 출력도 말썽이었다.

18000hp의 어마무시한 출력을 내는 듀얼 코어조차 그 빛이 희미해질 정도였으니까.

통제권이 넘어가자 스피카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이봐. 때려 죽여도 못 움직이겠다.”

스피카의 말은 까리뽕을 통해 곧바로 석민에게 전달됐다.

석민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무시하며 저 멀리서 흐느적거리는 악튜러스를 보며 전의를 불태웠다.

‘지금이 기회야. 이번을 놓치면 두 번은 없어.’

석민은 쓰러지려고 발악하는 스피카를 닦달했다.

“안 돼! 지금이 마지막이야. 조금만 힘내.”

주인이 아무리 닦달해도 몸이 움직이지 않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계속 된 오버하트로 인해 코어 빛이 꺼지기 직전.

스피카는 정말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어렵사리 그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게 마지막이다.”

이때 석민은 악튜러스의 별빛 갑옷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저걸 뚫어내야만 했다.

‘어떻게 뚫지.’

걱정이 일었다.

천신의 힘은 악튜러스의 별빛 갑옷조차 뚫어낼 정도로 강력했지만 스피카의 힘은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스피카가 해결해주었다.

“이봐 주인. 내가 좋은 걸 알려주지.”

스피카가 빛나는 요대를 만지작거리자 그 뒤로 빛의 무기고가 펼쳐졌다.

스피카는 최대한 힘을 쥐어짜 창 하나를 꺼내 들었다.

창의 왕 아가레스였다.

하지만 아가레스조차 악튜러스 별빛 갑옷을 뚫기엔 무리였다.

“그걸론 못 뚫잖아.”

그 걱정에 스피카는 입가를 길게 휘었다.

“당연히 못 뚫지. 하지만 내가 누구야? 나는 혼돈이라고.”

혼돈의 진짜 힘은 진리, 법도, 상식의 파괴에 있었다.

그 힘이라면 절대 뚫을 수 없는 갑옷조차 뚫어낼 수 있었다.

그게 혼돈이었다.

“다만 이걸 쓰려면 준비시간이 길거든.”

스피카가 손에 쥔 아가레스에 혼돈의 힘을 주입시켰다.

이게 정말 마지막이었다.

절대자로 현현한 후유증이 코어의 빛을 꺼트리기 일부 직전이었으니까.

스피카는 두 무릎을 꿇고 상체만 가까스로 들어올렸다.

코어의 빛이 꺼지기 직전.

스피카는 혼돈의 창, 에비앙을 만들어내고 모든 걸 석민에게 맡겼다.

“됐다. 날려라.”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석민이 그 바통을 넘겨받았다.

목표는 악튜러스의 별빛 갑옷 너머에 위치한 마법의 문구였다.

창던지기 자세로 들어간 스피카가 힘껏 젖힌 아가레스로 저 멀리서 가까스로 버티고 있던 악튜러스를 노렸다.

악튜러스가 고개를 들어 혼돈의 창을 던지려는 스피카를 보았다.

알고 있었다.

피해야 한다는 걸.

하지만 악튜러스 역시 코어의 빛이 꺼지기 일부직전이었다.

“큭...”

지금 악튜러스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비는 것이었다.

저 빌어먹게도 실력 좋은 주인이 부디 실수하여 이번 한 번만 넘어가주는 게 악튜러스의 바람이었다.

어차피 스피카 상태도 좋지 않아 저쪽도 기회는 한 번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바람과 다르게 스피카가 던진 창은 깔끔한 궤적을 그리며 날아가 악튜러스의 상체 장갑에 직격했다.

절대 뚫을 수 없다는 별빛 갑옷도 스피카가 던진 혼돈의 창 앞에선 무용지물이 된것이다.

창에 꿰뚫린 악튜러스는 흙으로 된 전신이 흘러내리는 걸 보게 되었다.

“또... 또 이렇게...”

이것으로 두 번째였다.

모든 게 끝장난 순간이 말이다.

악튜러스의 코어 빛이 스르르 꺼졌다.

이때 스피카의 코어 빛은 그보다 먼저 꺼져 있었다.

두 골렘이 침묵하자 악튜러스 왕성에 때 아닌 평화가 찾아왔다.

평화는 오래지 않았다.

양쪽 골렘의 코어에서 잃었던 빛이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두 골렘의 코어가 빛을 잃어가던 것은 오버하트의 후유증이었다.

용왕과 천신으로 현현했으니 아무리 드래곤 하트라 할지라도 버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숨고르기가 끝난 코어가 다시 재가동을 시작했다.

다만 여기서 깨어난 골렘은 스피카만이 유일했다.

흙으로 돌아간 악튜러스 전신은 돌아오지 않았다.

동물이 죽고 뼈만 남기듯, 악튜러스 역시 죽고 외골격만 남긴 것이다.

의식이 돌아온 스피카가 몸을 일으켜 저기 죽어 있는 악튜러스를 보았다.

왠지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이겼군. 흥.”

그렇게 끝날 줄 알았는데.

그건 스피카만의 착각이었다.

근처에 있던 까리뽕이 석민의 목소리를 전달해주었다.

“뭐해! 빨리 문 열어!”

악튜러스를 제압했으니 그 주인 된 입장에선 바빠질 수밖에 없었다.

스피카는 전능안을 통해 주인을 위한 포탈을 열었다.

그러자 열린 포탈을 통해 고물상에서 지금 이 순간만을 기다리던 석민이 초췌한 몰골로 모습을 드러냈다.

짙은 다크서클이 내려앉은 석민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맑게 개인 하늘 아래 쑥대밭을 연상시키는 대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저 멀리 외골격만 덩그러니 남은 악튜러스가 보였다.

“잘했어 스피카.”

짧게 수고했다는 말을 남기는 석민이 곧바로 악튜러스를 찾아가 그 앞에 섰다.

외골격만 남고 사라진 악튜러스는 주인이 찾아왔음에도 대답이 없었다.

석민이 눈을 무섭게 떴다.

“잡았다 요놈.”

드디어 집나간 골렘을 찾게 됐다.

무섭던 석민의 표정은 머잖아 좋게 풀어졌다.

그 입가엔 미소가 머물고 있었다.

< #48 결전 > 끝

ⓒ 대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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