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 결전 >
동력이 무력화되자 공간 사이에 걸쳐 있던 스피카가 해방됐다.
스피카는 급히 몸을 구르고 악튜러스의 이어지는 공격을 회피했다.
찰나였다.
만약 스피카가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내리치는 롱소드에 어떻게 됐을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이면세계에서 걸어 나온 악튜러스는 제 동력이 무력화됐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게 아니고선 공간 사이에 걸쳐 있던 스피카가 움직인 게 설명되지 않았으니까.
‘뭐지? 동력이 일순간 봉쇄됐다.’
해답을 찾아보려 하지만 천신 세트에 관련된 지식이 없는 이상 악튜러스가 바로 알아차리기엔 무리수였다.
하나 천신 세트는 몰라도 악튜러스는 수많은 경험을 가진 노련한 장수였다.
바로 알아차리진 못했어도 대략적으로 눈치는 챘다.
‘그러고 보니 놈도 마안을 가지고 있군.’
악튜러스는 가능성 있는 마안에 생각해봤다.
그러다 전설 속 마안 하나를 생각해냈다.
모든 걸 무력화시킨다는 절대 마안이다.
그 힘은 시간을 역행한다는 시공안에 견줄만했다.
바로 파쇄안이다.
‘파쇄안일 가능성이 있다. 일단 확인해볼 필요가 있겠군.’
악튜러스가 다시 한 번 시공안의 동력을 끌어냈다.
치솟는 코어 출력과 맞물려 주변의 모든 시공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멈춰버린 시간과 공간.
이곳에서 움직임을 허락받은 건 악튜러스 뿐이었다.
악튜러스는 시공 안에 붙잡힌 스피카를 향해 유유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곤 롱소드를 차분히 늘어트렸다.
그 순간.
얼어붙어 있던 시공이 깨지며 스피카가 다가오는 악튜러스를 시야에 담았다.
스피카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악튜러스가 파쇄안의 존재를 인정했다.
‘아무래도 내 생각이 맞는 모양이군.’
총탄처럼 몸이 튕겨나간 스피카가 손에 쥐고 있던 칼라드볼그를 뻗어냈다.
스피카의 특기인 섬광의 찌르기였다.
악튜러스는 섬광처럼 꽂히는 마창을 상체를 살짝 비트는 것으로 피했다.
하지만 스피카의 공격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찌른 창을 크게 휘저어 악튜러스를 그대로 엎어트린 것이다.
그리곤 양손에 쥔 창을 마치 둔기처럼 악튜러스를 향해 내리쳤다.
악튜러스는 넘어진 직후 몸을 데굴데굴 굴러 이를 가까스로 피했다.
자리에서 급히 일어난 악튜러스가 다시 한 번 들어오는 섬광 찌르기를 제 칼로 받아쳤다.
요란한 소리와 두 무기의 충돌에서 생겨난 충격파가 사방을 휩쓸고 지나쳤다.
악튜러스가 급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스피카는 그런 악튜러스는 곱게 놔줄 생각이 없었다.
또 다시 지척까지 거리를 좁힌 스피카가 칼라드볼그를 위에서 아래로 내리찍더니이를 피한 악튜러스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창을 피하고 이어지는 주먹은 이면세계를 들어가는 것으로 회피한 악튜러스가 미간을 좁힌다.
‘실력이 많이 늘었구나.’
같이 싸울 때는 몰랐었는데, 막상 적으로 두니 굉장히 골치 아픈 상대였다.
반면 석민은 악튜러스가 이면 세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자 이를 골치 아파했다.
‘확실히 이면세계에 숨는 건 상대에겐 정말 지옥 같은 일이구나.’
악튜러스의 여러 이능력 중 이면세계가 가장 껄끄러웠다.
석민이 생각했다.
‘그럼 나도 숨어야겠다.’
스피카 역시 이러한 이면세계에 준하는 은신이 있었다.
오색찬란한 케이프를 두른 스피카가 이를 활용하자 스피카 전신이 주변 환경에 녹아들었다.
은신이었다.
스피카가 감쪽같이 사라지자 이면 세계에서 기습을 노리던 악튜러스가 살짝 당황했다.
파쇄안과 마찬가지로 은신에 대한 정보도 없었기 때문이다.
‘숨은 건가? 아니면 어디로 간 거지?’
사라진 적.
하늘로 치솟은 것일까? 아니면 땅으로 꺼진 것일까?
확실히 천신의 능력을 잘 모르는 악튜러스에겐 불리한 싸움이었다.
반면 상대는 자신의 힘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이 싸움에서 지게 된다면 패배 요인은 아마 그것이리라.
이런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악튜러스는 평정을 유지하며 사라진 스피카를 찾고자했다.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라면 여기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악튜러스가 두 손을 모아 흙의 지배력을 끌어올리자 수많은 어스 볼이 악튜러스 주변에 생겨났다.
일반적인 어스볼과 다른 점은 그 수와 크기다.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으며 그 크기 또한 엄청 작았다.
악튜러스는 흙의 지배력으로 만들어낸 어스볼을 주변을 향해 흩뿌렸다.
그러자 은신 상태로 근처에서 틈만 엿보고 있던 스피카의 존재감이 드러났다.
은신 효과는 카멜레온처럼 주변 환경에 녹아드는 것이지 몸 전체가 사라지는 마법은 아니었으니까.
노련한 악튜러스 대처로 은신한 스피카는 그 즉시 자리를 피해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악튜러스는 그 소리를 쫓아 두 손을 다시 모았다.
그리곤 원소술사처럼 두 손을 바쁘게 움직이며 대지의 힘을 크게 끌어냈다.
멀쩡한 바닥이 갈라지고 그 위로 흙기둥이 무섭게 솟구친다.
솟구친 흙기둥은 이윽고 악튜러스를 보좌하는 뱀의 형상을 취하기 시작했다.
종말의 뱀, 우로보로스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악튜러스는 소환한 여러 우로보로스 중 하나의 머리 위에 올라탔다.
잠시 후 악튜러스는 왕처럼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악튜러스는 계속해서 흙의 지배력을 끌어냈다.
대지 골렘답게 흙을 다루는 능력은 가히 최정상급.
더군다나 코어 출력까지 빵빵하니 전 대지가 악튜러스에게 놀아나는 모습을 연상시켰다.
심상찮게 요동치는 대지에서 흙이 치솟고, 그 흙들은 도망치고 있는 스피카를 뒤쫓았다.
석민은 계속 도망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싸워야 돼.’
도망치던 스피카가 멈춰서더니 저 멀리 우로보로스 머리 위에 타고 있던 악튜러스를 향해 창을 겨누었다.
씩 웃어주는 악튜러스가 흙의 지배력을 끌어올리자 주변에 소환되어 있던 우로보로스 몇 마리가 땅을 헤집고 스피카를 덮쳤다.
이에 굴하지 않는 스피카가 물러서지 않고 뱀들에게 맞섰다.
‘지금이야.’
파쇄안.
시공안과 마찬가지로 대단한 마안인 것은 맞지만, 이 역시 단점이 존재했다.
시공안처럼 많은 마나를 잡아먹는다는 것과 넓은 범위에 적용시키지 못한다는 점이다.
사용을 위해선 특정 범위에 집중해서 쓰는 게 가장 효과가 좋았다.
그렇지 않는다면 파쇄안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석민은 파쇄안의 적용 범위를 스피카 근처로 한정시켰다.
그러자 스피카 주위로 마법 무력화 지역이 생겨나고 이는 안티 매직쉘과 같은 효과를 보였다.
스피카를 잡아먹을 듯이 덮쳐오던 여러 우로보로스가 스피카 근처에 오자 무섭게그 몸이 무너져 내렸다.
종말의 뱀이 파쇄안의 동력 앞에서 흙으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
이를 본 악튜러스는 쓴웃음을 지었다.
파쇄안 동력을 얕본 탓이다.
‘뭐든 무력화시키는군. 그럼 이것도 막아봐라.’
악튜러스가 자세를 잡았다.
그리곤 흙의 지배력을 끌어내자 거대한 용 한 마리가 대지에서 튀어나왔다.
흙으로 이뤄진 거대한 용.
어스 드래곤이었다.
악튜러스가 소환한 어스 드래곤은 그 크기로 인해 하늘마저 가려버렸다.
그 아래 위치한 스피카는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맞서 싸우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이윽고 하늘에서 덮쳐오는 어스 드래곤이 그대로 스피카를 덮쳤다.
그 바람에 스피카는 흙더미 속에 완전히 파묻히게 됐다.
흙속에 파묻혀 보이지 않게 된 스피카를 주시하던 악튜러스가 잠시 후 미간을 구겼다.
스피카를 파묻던 흙이 요동치더니 이내 뻥! 하고 터져버린 것이다.
그 가공할 폭발력에 휩쓸린 흙들은 왕성 여기저기로 흩뿌려졌다.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스피카가 그 건재함을 과시했다.
전부 파쇄안의 힘이었다.
‘저 동력 앞에서는 정말 모든 게 무력화되는군.’
파쇄안은 전설 속에 묘사된 그대로였다.
파쇄안의 동력 앞에는 그 무엇도 부질없어 보였다.
“성가신 힘이로다.”
악튜러스를 향해 다시 한 번 창을 움켜쥐는 스피카는 큰 거 한방을 준비했다.
스피카와 링크 된 석민은 과거 악튜러스의 모든 기억을 엿본 것처럼 스피카의 기억도 엿보았다.
그리고 그 기억 속에서 아주 재미난 걸 찾아냈다.
마법의 창으로 모든 걸 꿰뚫으리라!
스피카가 칼라드볼그의 힘을 끌어내자 검고 부정한 기운이 칼라드볼그에 내려앉았다.
이를 던지려고 마음먹은 스피카가 앞으로 몇 발자국 내딛으며 도움닫기를 시작했다.
리드미컬하게 달리다 점프 몇 번.
이후 크게 젖힌 마창을 악튜러스를 향해 힘껏 내던졌다.
“부류- 나크!”
검은 빛줄기를 연상케 하는 검은 실선.
날아가는 창은 찰나보다 더 빨랐다.
악튜러스는 이 마법의 창을 피할 겨를이 없었다.
스피카의 손에서 떠난 직후 곧바로 악튜러스 상체에 직격했으므로.
피격 당한 악튜러스가 우로보로스 머리 위에서 굴러 떨어졌다.
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떨어진 악튜러스의 머리 위로 뿌연 흙먼지가 흩날렸다.
하지만 스피카는 절대 방심하지 않고 빛의 요대를 만지작거렸다.
방금 전 공격이 크게 먹히긴 했어도 악튜러스에게 큰 데미지를 못 줬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 사이 가슴을 피격당한 악튜러스가 분한 마음에 꽉 그러쥔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쳤다.
‘피할 수 없는 창이라니.’
악튜러스도 인정했다.
방금 전 스피카의 공격은 절대 피할 수 없는 찰나 같은 꿰뚫음이라고.
다행인 건 상체 장갑이 가진 견고함이었다.
악튜러스 본인도 제 상체 장갑이 대단한 걸 알고 있었다.
아마 신이 와도 뚫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악튜러스가 몸을 일으키고 다음 공격을 준비하는 스피카를 보았다.
또 무엇을 하려는지 빛의 무기고를 꺼낸 스피카가 그곳에서 활을 잡아들었다.
활이다.
빛을 뿜어내는 활.
악튜러스는 스피카 뒤로 생겨난 빛의 무기고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또 뭐하려는 거지? 별 희한한 걸 다 가지고 있군.’
궁금증이 일지만 그것보다 상대 공격이 먼저였다.
평소 모습과 다르게 활을 든 스피카가 활시위를 크게 당겼다.
활의 왕 니므라츠하트.
한 번 노린 적은 맞출 때까지 계속 날아가는 마법의 화살.
악튜러스를 노리는 스피카의 눈매가 매처럼 아주 가늘어진다.
그리고 그런 스피카를 마주한 악튜러스는 표정이 구겨졌다.
‘활이라고?’
창만 쓰는 녀석이 활이라니.
많이 어색했다.
하지만 어색할 것도 없었다.
지금 자기가 맞닥트리고 있는 상대는 자신이 예전에 알던 스피카가 아니었다.
자신을 데려가려하는 한 아이였다.
‘활도 다룰 줄 알았나? 못하는 게 없군.’
그런데 스피카가 엉뚱한 곳으로 활을 겨누었다.
하늘이었다.
스피카는 하늘을 향해 계속 화살을 쏘아댔다.
그 모습을 보자 악튜러스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왜 자신을 안 쏘고 하늘을 향해 쏘아대는지.
하지만 그 의문은 머잖아 풀리게 됐다.
잠시 후 하늘에서 화살비가 쏟아져 내렸다.
그것도 한 목표만 관통하려는 화살비가 말이다.
쏟아지는 화살들을 본 악튜러스가 급히 몸을 피했다.
하지만 화살들은 그 방향을 틀어 악튜러스를 집요하게 노렸고, 기어코 맞추려 했다.
순간 낌새를 눈치 챈 악튜러스가 이면세계에 숨어들었다.
이를 통해 화살비를 피하고자 함이었는데, 문제는 이 화살비가 이면 세계까지 쫓아왔다는 점이다.
악튜러스가 몸을 숨긴 이면세계.
그곳에서 화살비가 쏟아져 내렸다.
< #48 결전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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