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파이트-162화 (162/173)

< #46 빛의 무기고 >

*  * *

장미 문양을 상징적으로 하는 장미친위대가 스피카를 맞이했으나 스피카의 상대는 되질 못했다.

스피카가 뻗어낸 날카로운 창끝에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장미친위대가 그 끝을 맞이했다.

장미친위대.

그들은 동물의 얼굴에 직립보행을 하는 다소 특이한 몬스터였다.

사막의 수호신을 섬기는 몬스터들이었는데, 창과 둔기로 무장하고 사막의 마법을구사했다.

샌드 스톰과 샌드 스파이럴.

전부 모래와 관련된 마법이었다.

아니면 소환마법을 쓰기도 했다.

사막 골렘이나 사막 웜을 소환하기도 했으나 그런 소환물조차 스피카의 상대는 되질 못했다.

스피카에게 당한 장미친위대가 바닥을 나뒹굴고, 불타는 모래를 흩뿌리며 저항했던 사막의 수호신 제르니아마저 마침내 그 무릎을 꿇었다.

사막 수호신 제르니아.

드래곤이다.

다만 모래로 이뤄진 인공적인 드래곤이었는데, 과거 시대에 존재하던 어느 대마법사의 작품이었다.

이 사막 수호신이 과거 천신으로부터 마법의 눈을 건네받게 되었는데, 이 마안이 바로 스피카가 찾고 있는 전능의 선안이었다.

스피카는 제르니아 미간에 개안되어 있던 마안 하나를 챙겼다.

‘이게 천신의 마안 중 하나인가?’

스피카는 바닥에 널브러진 수호신을 두고서 그 마안을 제 오른쪽 눈에 끼워 넣었다.

이어 눈을 뜨자 전과 다른 푸른 눈동자가 세상을 응시했다.

좋은 마안이라서 그런지 왠지 모르게 시야가 좋아진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스피카가 마안 하나를 챙기자 지금까지 맘 편히 구경만 하던 까리뽕이 목소리를 냈다.

“천신 세트 중 하나인 전능안이로군요. 제국의 황제도 그와 비슷한 동력을 가지고 있지요.”

천신의 전능안과 라시타 제국의 황족만이 갖는다는 전능안.

이 전능안만큼 다재다능한 마안이 없었다.

까리뽕이 계속 말을 이었다.

“천신 세트를 모으는 과정이 생각보다 수월하군요. 뭐 당연한 거지만서도.”

까리뽕은 이전에 악튜러스와 함께 칠죄종 세트를 모으러 돌아다니던 때를 상기시켰다.

그때도 별 어려움 없이 세트 아티팩트를 쉽게 모을 수 있었다.

“천신 세트만 6개나 가지고 있는데 당연하지. 아니 이제 7개인가?”

이제 하나만 남았다.

하지만 남은 하나도 그리 어렵지 않게 얻으리라.

“중요한 건 녀석이다. 녀석을 잡기 위해 천신 세트를 모으는 건 그냥 준비 운동일뿐이야.”

그 말대로 천신 세트를 모으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여기서 만난 사막 수호신이나 그 조무래기들은 스피카의 진행조차 막지 못했으니까.

그리고 이것은 천신 세트를 지키는 자들이 약한 게 아니라 그만큼 스피카가 강하다는 소리였다.

“이제 남은 건 파쇄안입니까?”

“그것도 곧 찾게 될 거다. 그럼 두 동력이 완성되지.”

전능안과 파쇄안.

이 두 개가 준비된다면 악튜러스를 찾아갈 모든 준비가 끝나게 된다.

“이번엔 안 질 생각이거든.”

“아무쪼록. 진행을 서두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하늘이 자꾸 어두워지는 느낌입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들과 같은 시야를 공유하고 있던 석민이 목소리를 냈다.

참고로 그 목소리는 까리뽕을 통해 바로 전달됐다.

“아까 라시타 컴퍼니에서 연락이 왔어. 악튜러스가 황금 산맥으로 들어간 거 같아. 그러니까 너희들도 서둘러줘.”

슬슬 결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스피카가 말없이 다음 진행을 서둘렀다.

그 시각.

제 부하들과 함께 황금 산맥에 찾아간 악튜러스는 에이션트 웜, 오슬로에 대한 사냥 준비를 마쳤다.

지금 악튜러스 주변엔 월드 그랑프리에서 우승 후보로 점쳐지던 베가, 동방불패,막시무스가 함께하고 있었다.

이들 중 하나만 나서도 오슬로는 쉽게 제압할 수 있을 터.

사실 오슬로 사냥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정작 문제가 됐던 것은 황금 산맥으로 향하는 길을 찾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길을 찾게 되었으니 이 일도 곧 마무리가 될 예정이다.

악튜러스가 황금으로 뒤덮인 산맥에서 오색찬란한 환상 고블린의 안내를 받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그 뒤로는 경기장에서 데려온 세계 최정상급 골렘들이 있었다.

‘왕이시여. 오슬로는 저희가 처리하겠나이다.’

주변에서 심상찮은 기운이 감지됐다.

발아래가 요동치고 있었고, 이는 무언가가 그들 발밑을 지나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러니 그 낌새를 눈치 챈 동방불패가 그런 말을 한 것이다.

하지만 악튜러스는 막시무스를 의식하여 제가 나서겠다고 했다.

‘아니. 내가 직접 잡겠다.’

막시무스는 악튜러스를 따라오긴 했지만 그가 왕노릇을 하는 것에 대해선 대단히큰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아그니가 대장인 악튜러스에게 불만을 드러내는 것처럼 말이다.

다만 지금까지 조용히 지내왔던 것은 필요성 때문이었다.

그가 있어야만 주인 없이 자유 의지를 얻을 수 있었으므로.

‘나는 말이야. 저 왕이란 놈이 여기 괴물을 잡는 걸 보고 싶군. 정말 왕이라면 그 정도야 쉽겠지.’

막시무스가 고깝게 말하자 베가가 그를 견제하며 입을 열었다.

사실 베가는 악튜러스의 오랜 친구로 그 누구보다도 악튜러스를 신뢰하고 있었다.

악튜러스의 코어 상태가 불안정해서 망정이지, 코어만 제대로 갖춰진다면 여기 있는 그 누구도 악튜러스를 감당할 수 없었다.

그걸 잘 알기 때문에 베가는 무한한 신뢰로 악튜러스를 옹호해주었다.

‘그를 의심하는 것이냐?’

‘의심이라기보다는 그 자격을 보고 싶은 거지. 과연 내가 따를 자인지.’

악튜러스는 막시무스 같은 부류를 잘 알고 있었다.

어린애처럼 제가 대장이 되지 못해 안달이 난 부류.

이런 부류들은 힘의 차이가 극명해진다면 별로 문제 될 소지가 없었지만.

얼추 비슷하다면 언젠간 제 야망을 보일 놈들이었다.

하지만 당장 내칠 생각은 없었다.

그를 내치는 시기 정도는 분명하게 알고 있었으니까.

‘제국이 무너진 뒤에 녀석도 같이 없애야겠군.’

지금 당장은 동료였다.

그리고 같은 적을 두고 있는 한 자신을 배신하진 않을 것이다.

정작 문제가 되는 때는 같이 싸우던 적이 없어졌을 때의 일이었다.

그땐 본색을 드러내며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에 대한 야욕을 드러낼 게 뻔해보였다.

‘그때 처리하면 된다. 지금은 놔둬도 돼.’

그 생각을 두고 악튜러스는 막시무스를 대했다.

‘오슬로의 심장은 내가 쓸 심장이니. 이 사냥 역시 내가 알아서 하겠다.’

막시무스는 알게 모르게 그 입가에 불손한 미소를 드리웠다.

확실히 거슬리는 놈이었다.

베가가 악튜러스만 들을 수 있는 전음을 날려주었다.

‘가만히 놔두면 언젠간 네 자리를 탐하며 기어오를 녀석이다.’

‘알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괜찮아.’

‘저대로 놔두면 골치 아파질 텐데? 그래도 가만히 놔둘 생각이냐?’

‘지금은 필요하니까.’

그 순간 거대한 에이션트 웜이 그들 앞에 나타났다.

땅을 뚫고 솟아난 에이션트 웜이 굉음을 내며 그 존재감을 알렸다.

악튜러스를 포함한 네 골렘이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그들 역시 작은 덩치가 아닌데도 에이션트 웜의 크기는 정말 대단했다.

‘저게 오슬로인가?’

저기 안에 과거 황금의 효교단에서 남겨놓은 칠죄종 세트가 있었다.

악튜러스가 오슬로를 향해 한 발자국 내딛었다.

‘저놈은 내가 처리하겠다.’

그 말에 따라온 골렘들은 나서지 않고 가만히 서서 지켜보기로 했다.

몇 발자국 나선 악튜러스를 보자 오슬로가 기가 찼는지 귀를 찢는 굉음을 한 차례뱉어냈다.

보통 사람이었으면 고막이 찢어졌을 터.

그리고 피가 주룩 흘렀을 것이다.

하지만 골렘이었다.

악튜러스는 제 덩치보다 큰 오슬로를 올려다보았다.

‘와라.’

제 앞에서 당돌한 이 불청객에게 자비로울 오슬로가 아니었다.

오슬로의 입에서 금속조차 부식시키는 독액이 뿜어져 나왔다.

그 독액이 악튜러스 전신을 덮었으나, 부식은커녕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부식되는 철은 일반 강철에 한정.

아다만틴과 운철은 예외였던 것이다.

이에 발끈한 오슬로가 제 강철 같은 턱을 그대로 내려 악튜러스를 노렸다.

마치 둔기로 내리치는 것과 비슷한 공격이었다.

악튜러스는 물러서지 않고 피스트 브레이커를 위로 날려 그 턱을 올려쳤다.

오슬로의 턱과 악튜러스의 주먹이 맞부딪히자 주변은 아수라장이 됐다.

사방팔방으로 쓸려나가는 황금들.

그 황금들이 마치 산사태를 일으키듯 산맥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오슬로의 그 강철 턱 아래.

두 다리를 굳건히 하는 악튜러스가 피스트 브레이커의 힘을 더 끌어내어 자신을 내리찍던 턱을 위로 쳐올렸다.

그 바람에 오슬로의 머리가 위로 솟구쳤다.

그새 거리를 좁힌 악튜러스가 오슬로의 복부에 다시 한 번 피스트 브레이커를 꽂아 넣었다.

육중한 타격음과 함께 오슬로의 전신이 뒤로 넘어갔다.

‘싱겁군.’

악튜러스가 무언가를 보이기도 전에 쓰러진 오슬로의 전신이 바닥 안으로 빠르게빨려 들어갔다.

이를 본 막시무스가 뒤에서 비아냥거렸다.

제딴에는 오슬로가 만만해보였기 때문이다.

‘별 것도 아닌 상대에게 힘을 쓰고 있군.’

그때 땅을 뚫고 올라오는 세 마리의 에이션트 웜이 있었다.

전부 오슬로였다.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몬스터인지 머리가 세 개나 됐다.

악튜러스는 당황하지 않고 중력안을 개안시켰다.

펼쳐낸 중력장에 세 머리 중 하나가 바닥에 곤두박질치고 남은 두 머리가 악튜러스를 향해 덤벼들었다.

마치 뱀처럼 물고 늘어지는 오슬로의 머리들.

그 날카로운 이빨은 악튜러스의 장갑 사이를 무섭게 파고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독액을 주입한들.

골렘이었다.

악튜러스는 롱소드를 뽑아 이를 휘둘렀다.

그 검격에 오슬로의 몸통이 사정없이 잘려나갔다.

악튜러스는 절대 자비를 보이지 않았다.

오슬로는 저항도 못한 채 마치 도마 위 뱀처럼 썰려나갔다.

바닥은 금세 오슬로의 녹색 체액과 독주머니에서 나온 독액으로 범벅이 됐다.

그 독액은 황금조차 녹였으며, 이는 지켜보는 골렘들로 하여금 주춤하게 만들었다.

오리하르콘으로는 저 맹독에 의한 부식을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악튜러스는 운철과 아다만틴 장갑으로 된 외골격을 앞세워 그런 부식을 무시했고, 그대로 오슬로를 압박하여 마침내 그 머리를 전부 잘라냈다.

악튜러스가 오슬로를 끝장내자 지켜보던 골렘들이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으나 그래도 막시무스는 불만이 많았다.

‘내가... 싸웠다면 저것보다 더 깔끔했을 것이다.’

막시무스는 제 힘을 너무 과신하고 있었다.

베가는 계속 막시무스를 견제했다.

꼴을 보니 과거 악튜러스에게 야욕을 드러내다 끝장난 친구들이 생각났다.

일레븐 스타.

이중에 살아남은 골렘은 그들과 스피카가 전부였다.

나머진 전부 야욕을 드러내다 악튜러스에게 죽임을 당했다.

어찌됐건 필요에 의해 그를 가만히 놔두는 악튜러스가 오슬로의 사체에서 심장을찾아냈다.

그의 손안에서 뛰고 있는 심장은 분명 드래곤 하트였다.

‘이로써 용왕의 힘이 내 것이 되었다.’

악튜러스가 오슬로 심장을 얻게 된 순간.

탁해진 하늘에선 연신 검은 번개가 내리쳤다.

그 검은 빛줄기는 용왕의 재림을 알리고 있었다.

< #46 빛의 무기고 > 끝

ⓒ 대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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