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파이트-155화 (155/173)

< #44 진실을 마주하다. >

‘아그니로 될까?’

아그니가 있긴 했지만 악튜러스의 대항마로 보기엔 어려웠다.

‘악튜러스는 고대 골렘이야. 아그니는 그냥 일반 골렘이고. 게임이 안 돼.’

“흠...”

침음성을 흘리는 석민이 눈가를 좁히며 생각에 잠겼지만 역시나 썩 내키지는 않았다.

‘힘들 거야.’

그렇다고 이렇게 있을 수도 없는 일.

일단 아그니라도 있으니 다행이었다.

“아그니, 나랑 같이 가자.”

석민은 아그니와 두 골렘을 데리고 고물상으로 돌아왔다.

고물상으로 돌아온 석민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아그니를 스캔하는 일이었다.

-인터넷에 접속하여 해당 개체를 스캔하는 중입니다.

-죄송합니다. 미등록 골렘입니다.

우리의 아그니.

미등록 골렘이었다.

“아 맞다. 등록 안 했었지.”

보통 골렘의 소유권을 얻게 되면 악튜러스와 마찬가지로 헌터협회에 방문하여 등록을 해야 한다.

하지만 곧바로 게이트로 넘겨버린 아그니는 지금까지 미등록 된 상태였다.

‘굳이 등록할 필욘 없겠지?’

석민은 아그니 장비만 따로 스캔해보기로 했다.

-인터넷에 접속하여 골렘의 세부 정보를 갱신합니다.

[무장 목록]

보조 무장 : [BB-] 제리코, 안티 매직 라운드 쉴드 MLS 보조 무장 : [AA+]천신(天神), 하늘의 계승자(The God Father, A Heir of heaven)

[장갑 목록]

듀얼 코어 : [BB-] 쌍둥이 가고일 심장예비 코어 : [B+] 중형 크라켄 심장코어 캡슐 : [CC] 한국중공업, 코어 캡슐 C-01

머리 가리개 : 無

어깨 가리개 : 無

몸통 가리개 : 無

우(右) 손목 가리개 : [CCC] 강철 가리개

좌(左) 손목 가리개 : 無

다리 가리개 : [DDD] 미등록 강철 각반우(右) 손 보호구 : [CCC] 강철 장갑

좌(左) 손 보호구 : 無

발 보호구 : [DD] 한국중공업, 대전 골렘용 강철 장화 2025-A1

[골격 목록]

전체 골격 : [CC+] 남원 대장간, 강철 뼈대

장비 종합효율 : 85%

장비 종합판정 : ?

현재 아그니 장비는 예전에 악튜러스가 쓰고 버린 장비의 총 집합체였다.

석민이 악튜러스가 남긴 장비들을 대부분 아그니에게 몰아줬으니까.

‘이 장비론 몇 초도 못 버티겠다. 내가 키웠다지만 악튜러스가 너무 강해.’

아그니로는 힘들어보였다.

석민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그때였다.

고물상 밖에서 요란한 인기척이 들린 것이 말이다.

‘누구 왔나?’

뒷마당에 있던 석민이 가게로 들어서니 그곳엔 검은 정장의 어른들이 우르르 몰려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따라 온 눈에 익은 소녀도.

“넌...”

“여기 있었구나.”

차태식도 소란이 일자 밖으로 나왔다가 라시타 컴퍼니에서 찾아온 사람들을 보고선 당황했다.

“여긴 무슨 일로... 아들. 아들이 불렀어?”

석민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 부른 적 없는데.”

이때 소녀는 소년을 마주보며 그의 아버지를 잠깐 힐끔했다.

두 부자 모두 나쁘지 않게 생겼다.

참 잘 생겼다.

“그대에게 전할 말이 있어 이렇게 무례를 무릅쓰고 찾아왔느니라.”

“대체 무슨 일로 온 거야?”

“자세한 건 라께 물어보아라.”

이윽고 소녀가 비켜서자 그 뒤로 모세의 기적이 펼쳐지더니 붉은 장발의 미남자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환상적인 슈트 차림.

라는 이곳 문화에 맞춰 옷을 바꿔 입었고, 제 딸이 말했던 마법사를 보기 위해 이곳까지 찾아왔다.

그는 연예인이라 해도 믿을 만큼 잘생겼었는데, 낡은 고물상에 들어선 직후 저기 멀리 서 있는 저와 비슷한 체격의 남자를 보고선 잠시 멈칫했다.

“흠...”

눈가를 좁히던 그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차태식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뉘신지?”

차태식이 말을 흘리자 그는 어느샌가 차태식과 마주보고 섰다.

“꽤 생겼구나. 짐만큼 생겼다.”

황제가 말했다.

차태식이 어리둥절했고, 석민도 마찬가지였다.

나머지는 모두 고개를 숙였다.

“만나서 반갑다. 여기가... 변방의 야만인들이 사는 곳인가? 마법사가 사는 곳이라 무척 기대했는데, 기대했던 것과 달리 사는 곳이 무척 초라하구나. 아니면 검소한 것인가?”

“누구세요? 누구신데 남의 집에 찾아와서.”

누군가 나서서 엄하게 꾸짖기 전에 라가 말렸다.

“됐다. 소개는 짐이 하겠노라. 짐은 라시타 제국의 216대 황제, 비욘 비스마르크레 라시타다. 그대는 제국 시민이 아니니 편하게 짐을 비욘이라 부르도록.”

어리둥절 하는 차태식이 저만큼이나 잘생긴 황제와 마주보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예? 황제? 황제요?”

“제국의 밖이니 그대에게 제국의 예법을 묻지 않겠다. 그러니 예와 격식을 갖추지 말고 나를 편하게 대하라. 이미 익숙해져 있느니라.”

시건방진 황녀와 달리 황제란 사람은 나름 털털한 면이 있는 사람이었다.

“정말 황제세요?”

“무엄하다!”

보다 못한 수행원들이 나섰지만 라는 가볍게 손을 들어 제지하는 것으로 이를 막아냈다.

“됐다. 여기는 변방이니 변방의 법을 따라야지. 짐은 마법사를 보러왔다. 그 마법사는 지금 어딨느냐?”

라가 묻자, 수행원들과 마찬가지로 고개를 숙여 예를 보이던 황녀가 나섰다.

황녀는 예법에 맞춰 석민이 서 있는 곳을 가리켰다.

“바로 옆에 있는 아이가 제가 말씀드린 그 마법사입니다 아바마마.”

“오, 그래? 네가 그 마법사라고?”

석민은 제 아빠만큼이나 잘 생긴 아저씨가 다가와 서자 잠시 당황했다.

상대는 제국의 황제.

석민이 고개를 가볍게 수그리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하지만 그 모습은 옆집 아저씨에게 좀 더 공손하게 인사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라는 무릎을 굽혀 앉았다.

근처에서 크게 놀랐으나 라는 신경 쓰지 않고 석민과 눈높이를 맞췄다.

“어디 보자. 네가 그 마법사더냐?”

“마법사요? 전... 마법사가 아닌데요.”

옆에 있던 차태식은 따라온 수행원들을 유심히 관찰하다가 자칭 황제라는 놈이 제 아들과 눈높이를 맞추자 당혹감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태가 됐다.

‘아니 진짜 황제 맞아? 분위기를 보면 좀 아닌 거 같은데... 설마 이거 몰래 카메라 같은 건가?’

차태식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게 석민은 준연예인에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며칠 전만 해도 방송국에 찾아가 촬영까지 했으니까.

그러니 차태식이 지금 이 상황을 몰래 카메라가 아닌지 의심하는 것이다.

“나도 아바마마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다. 그 마법사는 짐만큼이나 전지전능하다고 하더구나.”

라는 그 말과 함께 순수한 아이의 눈을 깊게 들여다봤다.

석민의 눈동자는 정말 맑고 깨끗했다.

“착한 아이구나.”

“감사합니다...”

“착한 아이니, 나중에 크면 착한 마법사가 되겠구나.”

어려운 상대라 석민도 말을 조심했다.

라는 석민의 몸을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딸의 말대로 이 아이가 정녕 전설 속 마법사가 맞는지 확인해보는 것이다.

한참을 살펴보던 라가 그 몸을 일으켜 세웠다.

“딸이 의심할만 하구나.”

근처에 있던 황녀가 고개를 숙이며 아뢰었다.

“아바마마에게 들은 그대로였사옵니다. 마나가 없는 대마법사. 바로 그 아이옵니다.”

“맞다. 이 아이는 가지고 있는 마나가 범인보다 못하구나. 하지만 체질은 대마법사에 준한다. 마나만 있었다면 꽤 대단한 마법사가 됐을 것이다.”

그러면서 라의 시선이 자연스레 차태식에게 향했다.

“그대가 이 아이의 아비더냐?”

“예? 아 네... 맞습니다. 제 아들입니다.”

차태식은 아직도 몰래 카메라를 의식하고 있었기에 대답이 영 시원찮았다.

라는 그를 훑어보았다.

“그대도 아주 훌륭한 마법사구나.”

라의 말에 주변에 있던 모두가 수긍했다.

라의 말대로 차태식은 아주 훌륭한 마법사였다.

제국에서도 저런 마법사의 자질을 가진 자는 수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했다.

“그대 역시 대마법사다. 그 자질이면 짐의 옆에서 수행해도 되겠다. 물론 농담이다 하하하!”

라는 한동안 호탕하게 웃어보였다.

그런 라가 자기 손목에 차인 시계를 보더니 둘에게 식사를 권했다.

“이런. 벌써 점심시간인데. 같이 식사라도 하겠느냐?”

아무리 남의 나라 황제라 하더라도 그 제안을 거절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다른 나라 대통령이 찾아와서 같이 식사나 하자고 말한 것이나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

두 부자는 얼떨결에 승낙했고, 그렇게 모두는 매스 텔레포트를 타고서 두바이에 위치한 부르즈 할리파로 이동했다.

여기서 차태식과 석민은 얼떨결에 점심 식사를 해결하게 됐다.

라는 식사 도중 시답잖은 농담 같은 걸 계속 던져주었다.

재미도 없는 농담.

그러나 맞춰줘야 하는 입장에선 재미없어도 억지로 웃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점심식사가 거의 마무리되고 후식이 나왔다.

후식이 나오자 드디어 라가 하고 싶은 말을 꺼냈다.

“딸에게 들었다. 다행히도 마법사는 그 골렘과 함께 가지 않았다고. 그래서 하는 말인데. 우선 고맙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구나.”

그 고마움은 석민에게 향했다.

“저한테 하시는 말이세요?”

“그대에게 하는 말이다.”

석민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애당초 그들이 자신을 마법사라 부르며 치켜세우는 이유를 알지 못했으니까.

“저는 마법사가 아닌데...”

석민이 말하자 차태식도 나섰다.

“제 아들은 마법사가 아닙니다. 뭔가 대단히 오해하고 계신 모양인데. 아무튼 마법사는 아닙니다.”

라는 그들의 태도를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다. 이 세상에서 진실 된 마법사는 바로 그대 아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게 무슨 말이신지...”

“그대나 짐이나 전부 진짜 마법사를 흉내내는 가짜 마법사 같은 거지.”

왜 자꾸 자신보고 마법사라 하는 것일까?

석민이 나섰다.

“제가 진짜 마법사라면.”

석민이 제 앞에 놓여 있던 포크를 들었다.

“이걸 휘게 할 수 있겠죠?”

그 물음에 라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다. 마법사라면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지.”

석민은 바로 반박했다.

“하지만 저는 이 포크를 휘게 할 수 없어요.”

그러자 라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다.”

“왜요? 전 이 포크를 못 휘게 하는데.”

사실 라도 긴가민가했다.

제 딸이 긴가민가했던 것처럼.

“사실 짐도 조금 헷갈리는구나. 그대가 정녕 그 마법사가 맞는지. 아닌지.”

“그럼 전 그 마법사가 아니잖아요. 그렇게 헷갈려하시는데.”

“하지만.”

라가 전과 다른 태도로 다음 말을 이었다.

“언젠가 그게 휘어진다면 그댄 짐이 생각하는 그 마법사가 맞다.”

아리송한 말이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차태식이 나섰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멀쩡한 포크가 왜 휘어진다고.”

그러자 이제까지 조용히 앉아만 있던 황녀가 조심스레 나섰다.

“그 마법사는. 자기가 생각하는 모든 걸 이룰 수 있다 들었습니다. 다만 그 제약이 심해 일반적인 마법사와 좀 다르게 즉흥적으로 그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하지요. 이게 맞습니까 아바마마?”

“맞다. 아주 정확히 말해주었다.”

“아니, 그게 뭡니까? 그게 무슨... 제 아들이 신이라도 된다는 말입니까?”

“신이라니.”

라의 표정이 순간 엄해졌다.

“그건 신성모독이다. 신은 아니다. 그냥 마법사다. 단지 대단한 마법사지.”

석민은 그들의 말에 의문을 표하며 악튜러스 과거에서 보았던 레우 브라우흐에 대해 언급해주었다.

“혹시 레우 브라우흐에 대해 알고 계세요?”

< #44 진실을 마주하다. > 끝

ⓒ 대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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