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 진실을 마주하다. >
#44 진실을 마주하다.
악튜러스가 사라진 날.
이후로 석민은 잠자리마다 꿈을 꾸었다.
대부분 악튜러스와 관련된 과거였다.
게이트 안 어딘가.
푸른 하늘. 골렘의 발치 아래.
옷조차 제대로 입지 못한 사람과 몬스터들이 마치 노예처럼 부려지고 있었다.
그들은 헐벗고 굶주렸으며, 골렘들의 지배 아래 힘겨운 노동을 강요받았다.
불쌍한 그들.
그런 이들을 가장 높은데서 가만히 내려다보는 자가 있었으니.
바로 악튜러스였다.
왕궁은 마침내 완성되었고, 악튜러스는 그곳의 왕좌를 차지했다.
황금빛 찬란한 도시.
겉으론 화려하지만 실상 인간과 몬스터가 흘린 피와 땀으로 세워진 고대 왕국이었다.
석민이 부수수한 몰골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머리를 긁적인다.
표정이 좋지 못했다.
또 악몽이다.
악튜러스가 사라진 뒤론 매일 같이 악튜러스의 안 좋은 과거만 보고 있었다.
‘내가 예전에 봤던 건... 전부 빙산의 일각이었어. 왜 이런 과거들은 보지 못했을까.’
악튜러스가 의도하기라도 했던 것일까?
예전에 봤었던 과거들은 대부분 좋은 모습과 악튜러스가 골렘으로 변하게 된 일련의 과정이었다.
여기서 악튜러스를 나쁜 골렘으로 단정지을만한 것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연민을 느끼거나 기분 좋게 웃을 수 있는 것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악튜러스가 사라진 뒤로 접하게 된 과거들은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잔학무도한 장면들의 연속이었다.
인간과 몬스터는 그의 노예였으며, 그들을 지배하려 했다.
그리고 그 악몽들은 악튜러스가 킬제덴과 수호자에 의해 처단당하며 끝나게 됐다.
악튜러스는 철저하게 속여 왔던 것이다.
자기가 어떤 골렘인지.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어두운 과거를 거리낌 없이 보여줬다면 그 주인 된 자가 과연 어떻게 했겠는가?
답은 뻔했다.
잠자리에서 일어난 석민은 아직 덜 깬 상태로 티비를 틀었다.
습관 같은 것이다.
그리곤 아침 뉴스를 봤다.
식상한 뉴스들이 이어진다.
관심도 없는 뉴스들.
석민은 지루했는지 지난날을 떠올렸다.
월드 그랑프리가 기약 없이 중지되고 대회에 출전한 선수들은 전부 짐을 싸서 본국으로 돌아갔다.
우승도 패배도 없이 돌아온 선수들을 환대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들은 전부 사라진 골렘 이야기로 바빴으니까.
사라진 골렘들과 돌아온 선수들.
월드 그랑프리는 그렇게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석민은 골렘들이 사라지고 나서 2주 뒤, KRG 관계자들과 함께 한국에 돌아왔다.
돌아오지 않는 골렘을 때문에 계속 프랑스에 머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날.
그들을 맞이하는 기자들이 있긴 했지만 축하하기 위해 찾아온 건 아니었다.
그들은 전부 사라진 악튜러스에 대해 물어보았다.
여기서 석민은 아무런 말도 해줄 수 없었다.
“골렘들이 사라진 건 다 악튜러스 때문이에요. 악튜러스가 시공안으로 포탈을 열었거든요.”
이렇게 말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 전 세계적으로 골렘이 사라진 일은 누구를 탓할 것도 없이 그냥 미스테리로 남아 있었다.
석민은 그 일의 주동자가 악튜러스라는 걸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말할 수 없었다.
악튜러스가 그 일을 주도했다면 그 주인 된 자도 욕을 먹기 마련.
그래서 계속 시무룩해져 있었는데, 그런 석민을 본 강준이 의기소침한 석민의 한쪽 어깨를 꽉 잡아주었다.
“석민아, 곧 돌아올 거야. 힘내.”
아니요.
악튜러스는 돌아오지 않을 거예요.
애당초 저를 떠나는 게 목적이었는데요 뭘.
석민은 그렇게 말하고 싶었으나 고맙다는 말 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고물상까지는 한미라가 태워다줬다.
“골렘은 우리가 어떻게든 찾아볼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알았지?”
“고마워요 아줌마.”
그렇게 석민은 낡은 고물상에 돌아왔다.
있지도 않은 재개발 이야기로 인해 석민은 아직도 고물상에서 살고 있었지만 불만을 표하진 않았다.
신경은 온통 다른 곳에 가 있었으니까.
‘악튜러스...’
악튜러스가 사라짐과 동시에 석민이 지난 몇 개월 간 일궈왔었던 모든 것이 마치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렸다.
악튜러스 없는 석민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니었다.
골렘 없는 골렘 파이터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사라진 골렘 이야기가 나온 건 악튜러스가 떠난 지 정확히 3주 뒤의 일이었다.
바로 오늘 아침 뉴스에 나왔다.
“한 달 전. 전 세계 골렘들이 갑작스레 사라진 일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게이트 안쪽에 위치한 발람 층에서 사라진 골렘들을 발견했다고 합니다.영상을 보시죠.”
뉴스 속 화면에는 게이트 세상이 비춰졌다.
푸른 하늘 아래.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몬스터들이 노역에 이용되고 있었다.
간혹 인간들도 보이긴 했으나 대부분 골렘보다 덩치가 작고 힘없는 몬스터가 많았다.
“사라진 골렘들. 드디어 발견했습니다. 이곳은 과거 악튜러스라 불리는 고대 유적지인데요. 여기에 모인 골렘들이 왕궁을 짓고 있다고 합니다.”
뉴스가 나오는 와중에 석민은 급히 핸드폰을 열어 악튜러스에 대해 검색해봤다.
‘발람 층에 있다고?’
석민은 여러 생각이 들었다.
‘찾아가볼까?’
그런 생각을 했을 때 석민을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아들.”
차태식이었다.
“또 뉴스야?”
부수수한 몰골로 눈을 뜬 차태식이 켜져 있는 티비를 보았다.
그러다 그 내용을 보고선 다시 감기려는 눈이 크게 떴다.
“어, 뭐야. 쟤들 저기 있었어?”
힘겹게 상체를 들어 올린 차태식이 평소와 다르게 뉴스 내용에 집중했다.
“저놈들이 저기 있었구나. 그런데 뭐하는 거야.”
악튜러스가 사라진 날.
차태식은 환상 고블린을 찾는 일을 그만뒀다.
애당초 환상 고블린을 찾으려는 이유가 황금 산맥에 위치한 오슬로를 잡아 악튜러스가 세계 대회에서 우승하기 위함인데.
월드 그랑프리가 허무하게 막을 내렸으니 더 이상 찾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저기에 아들 깡통도 있을까?”
평소라면 노발대발했을 석민은 웬일로 가만히 있었다.
차태식은 부수수한 몰골로 티비 속 화면에 집중했다.
뭔가... 이상했다.
“뭐야. 몬스터를 부려먹고 있네. 잠깐 저건 인간 아냐?”
“맞아.”
“와 골렘들이 이젠 사람까지 부려먹고 있네.”
차태식 같은 일반인에겐 몬스터와 사람을 오히려 역으로 부려먹고 있는 골렘의 존재는 생소한 걸 떠나서 충격 그 자체였다.
“골렘이 원래 저랬었나? 아니지 않나? 재들 주인이 있어야 하잖아.”
상식 밖의 일이 게이트 안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우리 깡통은 저런 일 안 시키고 말리겠지?”
차태식은 아직도 충격적인 화면 속을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생각해보니 저게 오히려 당연해보였다.
“골렘들이 맘만 먹으면 세상도 지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진짜로 저래버리면 와. 저러다 우리들도 끌려가서 노예가 되는 건 아니겠지?”
석민은 이후 일어날 일에 대해 생각해봤다.
골렘 무리가 당장 왕국 재건에 힘쓰고 있지만, 저 일이 끝나게 되면 골렘들은 군대를 조직해 악튜러스의 뜻대로 제국과 전쟁을 벌일 것이다.
‘악튜러스는 제국과 전쟁할 거야.’
게이트 안에서 일어나는 전쟁이었다.
그래서 게이트 밖에 위치한 여기 사람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
악튜러스도 이곳 사람들에게 악의를 품진 않았다.
하지만 그건 모르는 소리였다.
석민은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랑 관계없다는 건 바보 같은 소리야.’
라시타 제국은 라시타 컴퍼니를 앞세워 전 세계적으로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그 영향력이 얼마나 컸으면 제국 황녀에게 쩔쩔 매는 세계 지도자들이 수두룩했다.
경제적으로 라시타 컴퍼니에 의존하는 정도가 무척 큰 것이다.
그 정도로 라시타의 존재감은 대단했다.
그런데 그런 라시타 제국에서 전쟁이 일어난다?
경제적 의존도가 높은 나라일수록 라시타 제국의 위협을 가만히 지켜볼 순 없을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개입하려 할 테고, 그렇게 되면 확전될 가능성이 있었다.
여기서 가장 염려스러운 나라가 바로 미국과 중국이었다.
이 두 나라는 서로 경쟁하듯 라시타 제국과 우호관계를 맺으려 애쓰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노다지 그 자체인 라시타 제국에 문제가 생긴다면 아마 이 두 나라는 앞을 다투어 도와주겠다고 전쟁에 참여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구까지 확전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아마 그렇게 될 거야.’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었지만 석민은 벌써 거기까지 생각이 닿았다.
‘확전되면 여기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 악튜러스도 처음엔 피하겠지만 계속 이쪽 사람들이 거치적거리면 분명 없애려 할 거야. 그런... 성격이니까.’
티비 앞에 앉아 있던 석민이 갑자기 방을 박차고 나갔다.
그런 아들을 본 차태식이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어디가!”
“아들 바빠! 까리뽕 따라와.”
대충 대답하고 나온 석민은 고물상 안 빈 창고로 가서 미완성된 이동 마법진을 완성시켰다.
게이트 안쪽에 위치한 골렘들을 보러가기 위해서였다.
‘악튜러스를 막아야 돼. 이대로 놔둔다면 전부 전쟁할 거야.’
주인 된 입장에서 석민은 강한 책임감을 느꼈다.
악튜러스는 제 손으로 만든 골렘이었다.
그 골렘이 문제를 일으킨다면 주인 입장에선 당연히 나서서 막아야하는 것이다.
석민은 저만 알고 있는 비밀 루트를 통해 게이트 안쪽에 숨겨놓았던 골렘 군단을 찾아갔다.
하지만 여기마저 악튜러스 손길이 닿아 있었다.
석민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적은 숫자만이 빈둥빈둥 놀고 있었다.
“다 어디 갔어?”
주인이 나타나자 빈둥빈둥 놀고 있던 골렘들이 찾아와 그 앞에 섰다.
분명 골렘 백 마리 정도 놔뒀던 거 같은데...
남은 게 고작 세 마리.
그나마 다행인 건 아그니의 존재다.
“전부 어디로 간 거야? 똘똘이는?”
그 물음에 아그니가 답했다.
‘전부. 따라갔다.’
“그럼 너희들은?”
‘남았다.’
모든 골렘이 악튜러스와 같은 뜻을 품진 않았다.
이처럼 저항하는 골렘도 있길 마련.
하지만 아그니가 남은 건 다른 이유가 있었다.
‘나는 대장. 지배받지 않는다.’
이곳에 찾아온 악튜러스는 스스로를 왕이라 칭하며 자신을 따르라고 했었다.
당연히 대장이 되고 싶어 하는 아그니 입장에선 반가울 리 없을 터.
그런 아그니를 악튜러스는 자비롭게 놔주었다.
언젠간 제 부하가 되리라 생각했을 수도.
그러면서 악튜러스는 아그니에게 생각이 바뀌면 다시 찾아오라고 했다.
아그니는 콧방귀를 꼈지만.
“그랬어?”
주변을 둘러보니 몬스터 대군도 사라져 있었다.
“몬스터들도 다 데려간 거야?”
초라했다.
남은 게 고작 골렘 세 마리라니.
그래도 곰 세 마리는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후...”
그래도 희망은 있었다.
이처럼 저항하는 골렘들이 있었으니까.
석민은 눈빛을 달리했다.
“내가 악튜러스를 막을 거야.”
악튜러스는 칠죄종 세트를 거의 다 모은 상태였다.
이제 동료까지 가졌으니 황금 산맥에 찾아간다면 오슬로 심장까지 모으는 건 시간문제일 터.
‘막을 수 없어. 오히려 내가 늦어.’
석민은 어떤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자신에게 있는 게 무엇인지 한 번 정리해보기로 했다.
“아그니, 반지는 어딨어?”
천신의 반지.
다행히도 아그니가 가지고 있었다.
아그니는 제 손가락에 끼인 반지 하나를 보여주었다.
“다행히 안 가져갔네.”
칠죄종 세트를 너무 과신했던 탓일까?
악튜러스는 천신 세트 중 하나를 남기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악튜러스도 자신감이 대단한가봐. 아니면 필요 없다고 생각했나?’
어쩌면 천신 반지가 필요 없을 수도 있었다.
천신 반지야 몬스터 지배 능력인데, 굳이 그런 능력이 없어도 힘과 공포로 몬스터를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말이다.
어찌됐건 천신 반지는 무사했다.
이제 남은 건 악튜러스에게 대항할 대항마를 키우는 일이다.
< #44 진실을 마주하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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