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파이트-149화 (149/173)

< #42 일레븐 스타, 베가 >

예의 없는 행동은 하지 말라고 경고했거늘.

황녀는 황금으로 된 지팡이를 똑바로 세웠다.

우뚝 선 지팡이는 지엄한 황권을 상징했다.

그리고 이 지팡이 상단에 박힌 보석은 지팡이를 쥐고 있는 본인을 가리키며, 이를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자들은 그녀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예를 보이는 게 제국의 법이었다.

그 법대로 황녀 앞에 꿇어앉은 두 신하가 머리를 조아리며 한쪽 손바닥을 높게 보였다.

므라두앙느 데 라시타.

그녀가 예를 보이는 두 신하에게 다음 말을 이었다.

“어리석었다. 주인이 네거티브 마법사인데, 그 힘을 너무 얕봤구나.”

두 신하는 조용히 귀만 열어두었다.

할 말이 없었다.

그들이 아는 네거티브 마법사란 바로 절대 무적의 마법사.

라시타 제국에서 내려오는 전설이 하나 있었으니.

그 전설이 바로 대적할 자가 없다는 네거티브 마법사였다.

황가에서 구전으로 내려올 정도로 아주 유명한 마법사로 그 마법사는 그 어떤 마법사보다도 진실 된 마법사라 하였다.

그 힘은 라에 필적하며 경우에 따라선 라와 비등하단다.

라처럼 전지전능하기 때문이다.

황녀의 앳된 얼굴에 잠시나마 머물러 있던 웃음기가 싹 가신다.

전설 속 마법사와의 만남은 그녀를 흥분시켰지만, 그 존재감이 엉뚱한데서 발휘되고 있었으니까.

그건 좋지 못했다.

“이제 황금으론 아무도 매수할 수 없다. 그들은 더 이상 농락당하지 않을 것이다.”

돈으로 굴복하는 건 비단 이 세계만이 아니다.

여기서 돈이란 의미는 제국 입장에선 황금이었다.

그리고 그 황금으로 못 사는 것, 그리고 못 하는 것은 그 무엇도 없었다.

하지만 네거티브 마법사 앞에선 그 황금이 전부 무력화된다.

왜냐면 그는 진실 된 마법사이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두 신하가 머리를 조아리며 입을 열었다.

“큰일입니다. 존재할 수 없는 마법사가 절대 깨어나서는 안 되는 골렘과 함께라니. 이는 분명 라께서도 우려하실 것입니다.”

“미천한 소인의 생각으로는 이번 일은 라께 보고하여 그 뜻을 물어보심이 좋을 듯 하옵니다.”

보이지 않는 황권 다툼 속.

두 신하는 그녀의 충실한 개였다.

그들의 조언은 하나도 버릴 게 없었다.

오직 그녀만을 위한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모든 게 달콤한 것은 아니다.

황녀가 바로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또 라께 보고하라?”

“그렇사옵니다.”

두 신하는 이마를 바닥에 붙이며 제 위치를 더욱 낮췄다.

자신의 위치를 낮춘다는 것은 윗사람에 대한 예의.

자신은 하등한 존재이며 그녀를 모시는 것 외엔 아무런 뜻이 없음을 알리는 바였다.

황녀는 탐탁지 못한 표정을 지었다.

“하나 그렇게 하는 건 내 무능을 알리는 것과 비슷하지 않느냐? 짐은 더 이상 어리광을 부리는 아이가 아니다. 그리고 항상 라를 찾는 아이도 아니고.”

황녀는 어른스러워지고 싶었다.

아바마마 품에서 아바마마에게 모든 걸 묻는 아이가 되고 싶지 않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도 어렸다.

두 신하는 다시 한 번 간청했다.

“이번 사안이 매우 중대한 만큼, 라께서도 분명 이해하실 것이옵니다.”

황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불쾌했지만 그들의 말을 잘 들어야만 했다.

“오히려 이 일을 방치했다가 나중에 큰일이 되어, 이것이 전하의 무능으로 바꿔질까 그것이 더 염려스럽습니다.”

“그것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구나. 일을 키울 순 없겠지.”

황녀가 황금 지팡이를 한 번 찍었다.

여기엔 두 가지 의미가 있었다.

존재감의 과시.

그리고 지팡이를 쥔 본인이 그 뜻을 확고히 정했을 때 신하들에게 알리는 일종의 신호였다.

황녀가 지팡이로 바닥을 가볍게 찍자 마치 물웅덩이를 가볍게 두드리듯 청명한 소리가 고풍스런 실내를 가득 메웠다.

두 신하는 그 즉시 입을 다물었고, 황녀는 했던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기다려 보거라. 직접 라께 물어보겠다.”

말을 마치매 주변은 숨죽인 듯 고요해졌다.

황녀는 주변이 조용해지자 두 눈을 가만히 감고 침묵했다.

그 침묵은 그리 오래지 않았다.

잠시 후 감았던 적안을 드러내는 황녀가 충격적인 사실을 고했다.

“라께서 오실 것이다.”

얼마나 놀랐던지 머리를 조아리던 두 신하의 눈이 크게 떠졌다.

“라께서... 이런 변방까지 말이십니까?”

놀란 두 신하가 서로를 힐끔 쳐다보았다.

라시타 제국의 태양이 온다는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었다.

가장 아끼는 딸이 붙잡혀 있을 때에도 라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만큼 이번 일이 중대하다는 의미기도 했다.

“라께서 직접 오실 줄이야...”

“그만큼 작지 않은 일이오.”

“세상에 라께서...”

어찌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 못하는 두 신하를 두고서 그 반응이 건조한 황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지팡이를 짚었다.

그 지팡이 앞에 평등한 두 신하가 다시 한 번 머리를 조아린다.

황녀가 입을 열었다.

“라께선 그 마법사를 직접 보고자 하신다.”

“그 아이를 말이십니까?”

“그러다 무슨 변고라도 생기시면...”

두 신하의 자잘한 걱정에 황녀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위대한 라.

라는 라다.

“위대한 라가 아니더냐. 그대들의 걱정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악튜러스의 주인이지 않습니까? 그 마법사는 몰라도 악튜러스란 골렘은 분명 라를 해할 것이옵니다.”

“저 역시 동의하고 있는 바입니다. 악튜러스를 결코 좌시 해서는 안 됩니다.”

황녀가 다시 한 번 지팡이를 바닥에 찍었다.

“그만.”

두 신하가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황녀가 말했다.

“이는 라의 뜻이다.”

라의 뜻은 곧 하늘의 뜻.

거역할 수 없는 뜻이기도 했다.

조용해진 두 신하를 두고서 황녀가 다른 걸 물었다.

“악튜러스란 골렘은 짐도 우려하고 있다.”

그녀의 표정이 노골적으로 적의를 드러냈다.

악튜러스에게 갖는 그녀의 감정.

절대 거짓이 아니다.

본래 모든 걸 가진 자들은 자기 자신이 가장 중요한 법.

이를 욕보인 게 바로 그 골렘이었다.

결코 용서하지 않으리.

“하지만 그 골렘 옆에 네거티브 마법사가 있으니 나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구나.”

황녀가 눈가를 살며시 좁힌다.

다시 한 번 과거를 들여다봤다.

전능안이 개안되며 네거티브 마법사와 만났던 순간이 재현되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소년.

소년은 정말 아무것도 모른 채 오히려 소녀에게 되묻고 있었다.

“만약 후에라도 그 힘을 자각하게 된다면 이는 악튜러스보다 더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두 신하가 다른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두 황자 전하께서 관심을 보일까 그게 더 염려스럽습니다.”

“그전에 포섭을 하시던가 아니면...”

황녀는 허튼소리를 하는 신하를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가끔 보면 멍청한 소리를 서슴없이 하는 게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네거티브 마법사를? 어떻게?”

“그럼 포섭을 하심이...”

“포섭은 또 어떻게? 방도가 있느냐?”

“그게...”

“어리석은 짓은 관두어라. 그 마법사는 피할 수 없는... 그래 재앙과도 같은 것이다. 재앙을 어찌 포섭해? 어찌 막고? 막지 못한다. 그래서 절대무적이란 말이 있지 않느냐.”

전지전능은 오직 라에게만 국한되는 말.

네거티브 마법사에겐 어울리지 않았다.

그에겐 절대무적이란 저급한 수식어가 따로 있었으니까.

머리를 조아리는 무능한 두 신하는 더 이상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쯤에서 뒤에 서 있던 무장이 나섰다.

“전하.”

감히 걸어온 그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손바닥 하나를 높게 뒤집었다.

“감히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이런 건 어떻겠습니까? 그 마법사에게 악튜러스의 진실을 알리는 것입니다. 그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면 마법사도 다른 생각을 품지 않겠습니까?”

“진실을 알려라?”

황녀, 아니 소녀는 소년과 마주했던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소년은 생각보다 심지가 굳었다.

강단도 있어보였다.

“친구는 파는 게 아니야.”

그 말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래서 포섭 같은 건 생각도 안 했었는데.

“하지만 친구라 두둔하며 감싸면?”

“그 마법사도 그 골렘은 감당할 수 없습니다. 악의, 증오, 그리고 복수심으로 똘똘 뭉친 악의 화신을 어찌 옹호할 수 있겠습니까? 그 골렘은 아무도 제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네거티브 마법사이지 않느냐?”

“그가 어떤 마법사인지 저는 잘 모르옵니다. 하나 가만히 지켜보니 절대 라와 같은 전지전능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오히려 우연이 아닐까? 그런 염려도 없지 않습니다.”

“우연?”

“그렇습니다. 저에겐 그 아이가 네거티브 마법사란 확신이 없습니다.”

그가 본 소년은 마법사의 자질은 있지만 마나가 없는 비루한 운명이었다.

황녀가 네거티브 마법사라 해서 다시 본 것이지, 제 시각에선 아무리 봐도 그 전설 속 마법사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저희들은 감히 전하의 뜻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합니다 전하가 지나는 돌을 보고황금이라 하시면 저희는 그대로 황금이라 생각합니다. 이 부분도 어느 정도 헤아려주셨으면 합니다.”

“내가 잘못 봤다?”

두 신하가 다시 서로를 쳐다보았다.

뒤에서 끼어든 장수의 말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서로를 마주보던 두 신하가 다시 그 머리를 조아린다.

황녀는 묘한 표정으로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내가 잘못 봤다고?’

그녀도 사실 긴가민가했다.

그럼에도 소년이 계속 네거티브 마법사로 있었던 것은 그녀가 황녀이기 때문이다.

“짐은 라를 불렀다.”

“의심한 일을 고한 것이니, 너무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찾아봤는데, 제국 그 어떤 마법서에도 네거티브 마법사에 대한 구분법은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건 황가에서 구전으로 내려온다.”

“수천 년에 한 번 나온다는 마법사로 알고 있습니다. 정녕 그 소년이 네거티브 마법사가 맞사옵니까?”

“지금 나를 의심하는 것이냐?”

“지금껏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기에 제가 감히 의심해보는 것입니다.”

불쾌한 말이었지만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래... 아닐 수도 있겠지. 그대 말대로 짐이 잘못 봤을 수도 있다.”

장수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황녀는 가만히 있다 다른 말을 꺼내들었다.

“하나 악튜러스의 존재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대책은 없느냐? 라께서 오시기 전에 뭐라도 보여드려야지. 짐은 무능한 모습을 라께 보이기 싫다.”

네거티브 마법사에 대해선 잠시 묻어두고 다시 악튜러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악튜러스의 존재는 안개 속 마법사보단 확실하기 때문이다.

“칠죄악에 비견될만한 아티팩트가 있습니다. 수호자에게 천신을 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수호자에게 천신을 주자? 하지만 천신은 칠죄악처럼 세트가 아니더냐?”

“전하께서 뜻을 보이신다면 천신 세트야 금방 모일 것이옵니다. 이미 발견 된 아티팩트는 이곳 야만인들이 좋아하는 돈으로 매수하시면 되시고, 남은 아티팩트는 제로스 전역에 현상금을 걸면 끝날 일이옵니다.”

“그래?”

황녀는 고심하다 다른 걸 꺼내 물었다.

그것은 악튜러스를 저지할 수 있는 것 중 하나였다.

“짐이 듣기론 이곳에 막시무스란 것도 있다고 들었다. 그 막시무스는 여기 야만인들이 만들어낸 골렘치곤 아주 훌륭하더구나.”

“하오나 전하. 제국의 청동 수호신, 탈로스보단 못할 것입니다.”

“그대들은 아직 이곳을 잘 모르는 것 같다. 막시무스면 탈로스에 비견할만 하다.”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의심하는 것이냐?”

“그, 그건 아니온데. 하오나 어찌 야만인들의 골렘이 탈로스에 비견될 수 있다고 하시는지...”

“그러고 보니 베가도 있구나.”

“베가라 하시면...”

“먼 옛날. 제국을 위협하던 열 한 개의 흉성 중 하나다.”

< #42 일레븐 스타, 베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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