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파이트-142화 (142/173)

< #41 월드 그랑프리 >

급히 몸을 뒤집고 반동을 주어 자리에서 일어난 전투짐승이 제 앞에 서 있는 악튜러스를 보았다.

달린다.

머리박치기라도 하려는 모양.

하지만 악튜러스가 달려오는 그 머리를 발로 뻥 차버렸다.

또 다시 고꾸라지는 전투짐승.

하지만 왜 전투짐승으로 불리겠는가?

그 투지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방금 전 공격이 실패했다고 해서 굴할 전투짐승이 아니었다.

전투짐승은 아까 전 그 자세로 다시 덤벼들었다.

저돌적인 박치기를 기어코 성공시키려는 모양.

악튜러스는 이번엔 그 머리를 깍지 낀 두 손으로 내리쳤다.

그 바람에 전투짐승의 머리가 아래로 쳐지며 악튜러스 가랑이 사이로 들어갔다.

악튜러스가 가랑이 사이를 좁힌다.

무언가를 연상시킬만한 자세가 나오자 리명국이 당황했다.

전투짐승이 빠져나오려했으나 이미 늦었다.

악튜러스가 전투짐승을 그대로 들어올렸다.

파워밤!

악튜러스 어깨 위까지 올라간 전투짐승이 그 앞으로 무섭게 던져졌다.

재밌는 기술이 나오자 흥분한 관중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크게 환호성을 내질렀다.

조용한 건 북한 응원단 뿐.

그들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앞서 선취점을 따낼 때는 언제더니 이젠 실점을 연달아 내주었다.

그 꼴사나운 모습에 몇몇은 고개까지 저었다.

오늘 이 경기를 보기 위해 북한에서 찾아온 고위 공직자들도 당황했다.

당연히 이길 줄 알고 자신만만하게 생중계로 내보내기 시작했는데, 생중계와 동시에 전투짐승이 처참하게 발리는 게 아닌가?

“동무, 이게 어찌된 일이요? 왜 지고 있어.”

“지금 전화가 왔어.”

“전화? 어서 받아보시라우.”

꼴사납게 패대기쳐진 전투짐승 주변으로 장갑 파편이 튀었다.

전투짐승이 다시 일어서기 전 리명국에게 통신이 왔다.

무조건 받아야만 하는 전화였다.

“리 동무! 지금 공화국에 생중계 중인 거 모르진 않갓지? 꼭 이겨야한다우!”

“내 모르간? 걱정말라우!”

전투짐승이 악튜러스와 거리를 벌리고 섰다.

전투짐승이 손바닥으로 제 머리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제 분을 못이기는 모습.

전투짐승의 눈에서 붉은 안광이 한 차례 번뜩이더니 이내 악튜러스와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혔다.

거리를 좁힌 전투짐승이 악튜러스의 손을 낚아채더니 제 상체를 수그리며 상대를날려버리는 암 드래그 기술을 선보였다.

날아가는 악튜러스가 바닥을 구르고 전투짐승이 의기양양하게 섰다.

환호하는 관중들 아래.

바닥에 나자빠진 악튜러스가 다시 일어서고 그 앞에 서 있는 전투짐승과 마주보았다.

석민은 예전부터 하고 싶었지만 장소와 상대가 없어서 못하던 걸 이 자리에서 해보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그래, 그거나 해보자.’

석민이 반격기를 생각하고 있을 때, 역시나 전투짐승이 적극적으로 거리를 좁혀왔다.

자신감 있는 모습.

정면에 서 있던 악튜러스가 손을 내주자 전투짐승은 그게 미끼인 줄도 모르고 덥석 붙잡았다.

‘간나새끼 잡았다!’

악튜러스는 그 상태로 마주하던 상대를 향해 달려가더니 이내 지나치며 팔을 힘껏 잡아당겼다.

가진 힘이 좋아도 가속도가 붙은 상대가 무게로 밀어붙이니 전투짐승은 그 상체가 앞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었다.

악튜러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전투짐승의 복부에 킥을 날렸다.

복부를 얻어맞은 전투짐승의 몸이 위아래로 들썩였다.

전투짐승은 순식간에 무방비 상태가 됐다.

이때 석민이 웃었다.

기술이 완성되기 직전.

악튜러스가 전투짐승의 머리를 두 손으로 잡았다.

이어 아래로 내팽개치자 페이스버스터라는 기술이 완성됐다.

또 다시 바닥과 정면으로 키스하게 된 전투짐승은 분한 마음에 주먹 쥔 손으로 바닥을 힘껏 내리쳤다.

쾅! 하는 소리가 들릴 정도.

‘내 봐줬는데 이 간나새끼가 보자보자하니까!’

사방팔방으로 튀는 장갑 파편이 정말 요란하다.

그 사이 악튜러스는 아까 떨어트린 롱소드를 챙겨들었다.

악튜러스가 들고 있던 롱소드에 마나를 불어넣자 검신 주위로 오러가 생겨났다.

일도양단의 변형 기술로, 절단력을 극대화시키는 방법 중 하나.

전투짐승이 반격을 위해 벌떡 일어나 섰더니 상대가 칼을 들고 있었다.

“개간나 새끼가 감히 칼을 들어? 그러다 손모가지 날아간디?”

공간 절단.

악튜러스가 전투짐승을 향해 칼을 한 번 내리긋자, 어긋나려는 두 공간이 전투짐승의 상체 장갑에 걸렸다.

이어 악튜러스가 베어낸 공간을 벌리려는 듯, 두 손을 벌리자 전투짐승의 움직임이 멈췄다.

팔과 다리, 그리고 머리는 움직이는데 상체가 허공에 고정된 듯 움직이지 않는다.

리명국이 당황했다.

‘이건 뭐디? 왜 안 움직여?’

전투짐승이 움직이려 발악해보지만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다 미리 챙겨보았던 악튜러스의 경기가 떠올랐다.

전투짐승은 급히 상체 장갑에 마나를 흘려보냈다.

악튜러스의 공간 절단 기술에 저항하기 위해서였다.

이로 인해 지금 막 짓이겨지려는 상체 장갑이 가까스로 버티게 됐다.

출력이 서로 비등만 했어도 아티팩트 힘으로 전투짐승을 두 동강 낼 수 있었건만.

역시나 출력 차이로 인해 불가능했다.

악튜러스가 전투짐승을 놔주자, 두 공간 사이에 걸쳐 있던 전투짐승이 해방됐다.

리명국이 씩 웃는다.

“기레, 그렇게 날 찢으려 했니? 귀엽디.”

가소롭다는 듯이 리명국이 코웃음을 쳤다.

전투짐승이 상체를 수그리며 저만의 자세를 잡았다.

잠시 후, 누가 신호하지도 않았는데 전투짐승이 번개처럼 덮쳐왔다.

순식간에 좁혀진 거리.

‘오늘 제삿날이야!’

전투짐승이 악튜러스에게 로우 블로를 날렸다.

악튜러스 가랑이 사이로 파고든 발차기가 깔끔하게 적중했다.

그 바람에 악튜러스 전신이 들썩였지만 아쉽게도 그곳은 골렘에겐 급소가 아니었다.

악튜러스는 그 즉시 반격하여 전투짐승의 머리를 양손으로 붙잡았다.

그러더니 제 머리를 세게 부딪치며 박치기를 선보였다.

리명국의 시야가 요란하게 흔들렸다.

하지만 전투짐승은 건재했다.

다시 자세를 잡고 선 전투짐승이 두 주먹을 올렸다.

복싱 선수의 가드 자세.

‘내 레슬링만 할 줄 알았니?’

리명국이 씩 웃으며 원투펀치를 악튜러스에게 날렸다.

예상치 못한 공격.

날린 두 주먹이 악튜러스 상체 장갑에 연달아 직격했다.

악튜러스 전신이 흔들리며 사방으로 흙먼지가 튀었다.

원투. 원투. 이어 전투짐승이 악튜러스 복부에 어퍼컷을 꽂았다.

악튜러스 상체가 심하게 들썩이며 바닥에 엎어졌다.

쓰러진 악튜러스와 이를 두고 관중들을 향해 손을 크게 들어 보이는 전투짐승이 그 환호에 답했다.

하지만 어리석은 짓.

악튜러스는 쓰러진 상태에서 두 발을 비보이처럼 회전시키는 윈드밀 공격을 보였다.

이 역시 예상 밖의 공격.

그 발차기에 턱을 얻어맞은 전투짐승이 꼴사납게 나동그라졌다.

넘어진 전투짐승과 몸을 추스르며 일어난 악튜러스가 대조된다.

그러나 전투짐승도 빠르게 몸을 추스르며 그 몸을 일으켜 세웠다.

외골격이 오리하르콘으로 주조되어 그 맷집이 생각보다 좋았다.

전투짐승은 그 건재함을 과시하려는 듯 두 눈에서 붉은 안광을 뿜어냈다.

코어에서 뿜어지는 불빛도 그대로.

그런 전투짐승을 상대로 석민은 생각하듯 눈썹을 모았다.

‘쉽게 안 끝나네.’

출력만 엇비슷했어도 경기는 이미 끝났을 것이다.

‘코어 빼곤 다른 장비는 악튜러스가 훨씬 좋으니까. 문제는 출력인데...’

출력 차이가 거의 두 배다 보니 경기가 지지부진해졌다.

하지만 답이 없는 건 아니었다.

석민은 약간 무리를 해서라도 이 경기를 가져가고자 했다.

‘이기려면 그 방법 밖에 없겠지.’

석민에겐 비장의 카드가 하나 있었다.

바로 오버 하트.

출력 차이가 문제가 된다면 그 차이를 최대한 좁히면 그만.

오버 하트로 인한 출력 상승이 전투짐승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었다.

악튜러스가 오버 하트를 위해 가드를 올렸다.

그 모습을 본 리명국이 의아하게 받아들였다.

‘뭐야? 때리라는 기야?’

그래도 수작을 부리는 것 같아 잠시 간을 보았다.

하지만 가드를 올린 상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기레, 다 부숴주갓어!’

득달같이 달라붙은 전투짐승이 악튜러스를 무섭게 패대기치기 시작했다.

힘 좋은 고릴라 하나가 그 성깔대로 무자비하게 내리치는 모습이 섬뜩하기만 했다.

이때 악튜러스는 가드만 올리고 있었고, 석민은 악튜러스의 스트레스 게이지만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스트레스 게이지가 드디어 레이지 오버하트를 끌어낼 수 있는 60을 넘어섰다.

-현재 스트레스 게이지가 60에 도달했음으로 폭주경보가 ‘경계’ 단계로 격상됩니다.

-스트레스 게이지가 올라가고 있습니다. 현재 수치 61/100-주의! 현재 코어 출력이 한계치를 넘었습니다.

-알림! 오버하트 발생!

-코어 출력이 급속히 상승 중.

-알림! 코어 출력이 127%를 넘어섰습니다.

-알림! 코어 출력이 142%를 넘어섰습니다.

-알림! 코어 출력이 158%를 넘어섰습니다.

악튜러스 코어 출력이 어느샌가 170%를 넘어섰다.

두 배까진 아니더라도 전보다 출력이 더 높아지자 악튜러스가 가드를 풀어내고 드디어 전투짐승과 정면으로 맞붙게 됐다.

서로 치고 박는 난타전.

그런데 전과 다르게 악튜러스가 힘에서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몇 대 더 얻어맞자 코어 출력이 190%를 넘어서며 거의 두 배에 근접하게 됐다.

석민의 시야는 전에 없이 적색으로 물들여졌다.

-주의! 높은 출력은 코어에 상당한 무리를 줍니다.

-주의! 오버하트 상태가 장시간 지속될 경우 코어에 쓰인 몬스터 심장에 치명적인 데미지를 줄 수 있습니다. 더불어 하트다운의 위험성도 커집니다.

그 순간에도 석민은 끝장을 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전투짐승을 계속 몰아붙였다.

악튜러스가 어스 매직을 사용하여 요르문간드를 불러냈다.

저승사자처럼 찾아온 요르문간드가 전투짐승의 사지를 물어 잡고 늘어졌다.

무방비 상태에 놓인 전투짐승에게 악튜러스가 일도양단을 준비했다.

검게 휘몰아치는 검기.

이를 본 전투짐승이 맹렬하게 물고 늘어지는 요르문간드로 인해 두 무릎을 꿇게 됐다.

리명국은 이쯤에서 패배를 직감했다.

동시에 그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북한 고위 공직자들이 난리를 쳤다.

“이게 어찌된 일이야! 지게 생겼어!”

“빨리 방송을 끊으라우! 이걸 공화국 인민들이 봐선 안 된다! 빨리 끊으라우!”

모두가 숨죽이며 지켜보는 그때.

악튜러스가 아다만틴 롱소드를 크게 뻗어내어 전투짐승의 코어를 꿰뚫어버렸다.

코어가 뚫린 전투짐승이 약간 저항하긴 했지만, 그게 전부.

전투짐승은 출력이 서로 엇비슷해진 악튜러스에게 일방적으로 당하고 말았다.

전투짐승의 그 시뻘건 안광이 잠잠해지자, 덩달아 악튜러스의 안광도 그 빛을 잃어갔다.

악튜러스의 전신이 무너져 내리며 축 늘어진 전투짐승 위로 넘어졌다.

하트다운.

악튜러스가 쓰러지기 직전 코어 출력은 209%를 넘어섰다.

현실적으로 절대 나올 수 없는 출력을 악튜러스가 만들어낸 것이다.

석민은 그 출력이 코어를 무리시켜 만들어낸 출력임을 모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 역시 절대 작지 않음을.

어렴풋이 눈치 채고 있었다.

< #41 월드 그랑프리 > 끝

ⓒ 대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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