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파이트-140화 (140/173)

< #41 월드 그랑프리 >

*  * *

전 세계 47개국이 참가한 대망의 월드 그랑프리의 막이 올랐다.

개막식이 끝나고 전 세계에서 찾아온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내지르는 함성으로 귀가 먹먹한 그곳에서 64강 세 번째 경기가 준비되고 있었다.

이번 세 번째 경기는 분단국가로 유명한 남한과 북한의 경기였으며, 이로 인해 주목을 받는 경기가 됐다.

선수 대기실에서 제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석민은 뒤숭숭한 마음으로 출전 신호를 기다렸다.

잠시 후, 대회 관계자가 헐레벌떡 달려오면서 석민과 KRG 관계자들에게 준비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석민은 가만히 고개를 들어 제 머리 위에 설치되어 있던 커다란 전광판을 보았다.

곧 출전 신호를 알리는 녹색 등이 들어왔다.

석민은 미리 대기 중이던 악튜러스와 함께 우레와 같은 함성이 쏟아지고 있던 경기장으로 향했다.

악튜러스가 모습을 드러내자 한국 중계진을 포함한 외신들이 일제히 그 소식을 본국에 알렸다.

한국 중계진들이야 악튜러스 입장에 서서 중계를 하겠지만, 악튜러스 우승과 아무런 관계없는 외신들은 아주 객관적인 시각에서 중계하길 마련이다.

그럼 그들의 평가는 어떨까?

악튜러스야 본선 무대를 위한 지역 예선에서 당당히 우승을 하고 올라왔다지만 다른 쟁쟁한 후보에 비해 인기가 많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이유는 악튜러스가 신인이기 때문.

더군다나 동아시아 지역 출신인 게 컸다.

골렘 파이트는 전 세계적인 스포츠였다.

동아시아에 대한 평가는 결코 낮지 않았지만, 미국, 유럽에 비해서 살짝 뒤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더군다나 아시아 랭킹 1위인 동방불패가 지역 예선에 불참하면서 악튜러스의 평가가 자연스레 깎인 것도 큰 몫을 차지했다.

그러니 미국이나 유럽 중계진들이 악튜러스를 소개하면서 이런 말을 덧붙였다.

“동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챔피언으로 올라온 악튜러스입니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지켜볼만한 골렘으로 보입니다.”

“악튜러스, 고물상 골렘으로 유명한데요. 지켜볼만 합니다.”

외신들이 전하는 소개는 대부분 한결같았다.

지켜볼만하다.

딱 그 정도 선에서 소개를 끝마쳤다.

우승 후보란 말은 절대 안 꺼냈다.

왜냐면 그런 수식어는 다른 골렘에게 붙이기도 바빴으니까.

그 외에 덧붙인 말이 있다면 남한과 북한의 세기 대결이 될 것 같다. 라고 말하는 정도였다.

그만큼 악튜러스에 대한 평가가 아주 저평가되어 있었다.

하지만 골렘 파이트 그 자체로 열광하는 팬들은 누가 경기장에 나오든지 간에 우레와 같은 함성으로 맞아주었다.

그곳에서.

고물상에서 시작됐다는 어스 골렘이 슈트 차림의 귀여운 신사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지역 예선만 해도 금발벽안의 외국인들이 별로 없었는데, 여기 파리 경기장은 그런 서양인이 다수였다.

오히려 동양인처럼 생긴 사람들을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

경기장이 워낙 크다보니 한국 응원단은 악튜러스가 나온 출구 바로 뒤편에 앉아 목청 터져라 악튜러스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하지만 그 응원 소리는 대다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관중들의 소란스러움에 자연스럽게 묻혔다.

석민은 자신과 악튜러스를 응원하는 소리가 어디서 들려온 지도 모른 채, 북한의 전투짐승을 맞상대하기 위해 레드 진영에 위치하게 됐다.

악튜러스와 선수가 자리에 위치하자 경기장 곳곳에 자리하고 있던 대형 전광판에악튜러스 전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2030년 대한골렘대전 우승, 현 한국 챔피언2030년 동아시아 지역 예선 우승, 현 동아시아 챔피언2030년 프랑스 파리, 월드 그랑프리 본선 진출그 화려한 전적들이 전광판을 장식하자 악튜러스를 응원하는 함성이 더 요란해졌다.

악튜러스가 출전했으니 이제 상대 골렘이 나올 차례.

잠시 후 무대가 조용해지더니 전투짐승 주제곡이 흘러나왔다.

마치 김정은을 찬양하듯, 전투짐승을 찬양하는 웅장한 노래.

그 노래와 함께 경기장 여러 전광판에서 전투짐승이 기록한 그 화려한 과거들이 소개됐다.

2025년~2030년 조선인민공화국 골렘대전 우승, 북한 챔피언2026년 동아시아 지역 예선 출전2027년 동아시아 지역 예선 준우승2028년 동아시아 지역 예선 4위2029년 동아시아 지역 예선 3위2026년~2030년 월드 그랑프리 진출, 최고 성적 6위동시에 북한의 리명국 선수가 오리하르콘을 전신에 씌운 스톤 골렘과 함께 입장했다.

그 둘을 응원하기 위해 저 먼 북한에서 찾아온 응원단이 김정은 얼굴과 ‘전투짐승맘껏 부숴라!’라는 응원 문구를 반복적으로 보였다.

그 놀라운 광경이 전 세계에 생중계된다.

게이트 안에서 환상 고블린을 찾느라 분주한 차태식도 그 장면을 스카우터를 통해 보게 됐다.

멀리 떨어져 있던 동료들도 마찬가지다.

“태식 씨 아들 나오네요. 북한이랑 첫 경기에요?”

그들은 서로 몸은 떨어져 있었지만 멀티 채팅을 통해 실시간 대화가 가능했다.

“네 맞아요. 북한이랑 첫 경기래요.”

“이 재밌는 걸 놓칠 뻔했네. 태식 씨 아들이 경기한다는데, 잠시 쉬죠?”

사방팔방으로 흩어져 환상고블린을 찾던 팀원들이 근처 쉴만한 곳으로 몸을 숨겼다.

물론 사정이 여의치 않은 팀원들은 그러지 못했지만 두 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악튜러스 경기를 시청할 수 있었다.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쓰윽 닦는 팀원 하나가 운을 뗐다.

“북한 같은 건 쉽게 잡겠죠?”

“아까 해설하는 사람들 말 들어보니까 마냥 쉽지만은 않다고 하던데?”

“에이 그래도 북한 이겨야죠.”

“북한 놈들은 봐주면 안 돼. 봐주면 기어올라. 더군다나 저 골렘 심심하면 뉴스에나오는 그거 아냐? 저런 건 때려 부숴야 돼.”

“태식 씨, 절대 봐주지 말라고 하세요.”

북한이 하는 짓을 보면 그들도 이번 경기에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었다.

북한이 심심할 때마다 선전하는 게 전투짐승이 가진 전력이었다.

전투짐승 한 마리면 서울을 초토화시킬 수 있다고 하니, 그들도 그 골렘이 얼마나잘 싸우는지 구경하고 싶은 것이다.

“저 말아먹을 북한놈들이 맨날 선전하는 게 저 전투짐승인데. 어디 한국 골렘 상대로 얼마나 잘 하는지 보죠. 대체 얼마나 대단하기에 그리 선전하는지 예전부터 궁금했는데.”

“그래도 북한 골렘 무시하면 안 돼. 내가 듣기론 항공모함 같은 건 몇 십초면 침몰시킨다는데.”

“에이 그건 다 해요. 세계 대회 나온 골렘들이 얼마나 무서운데.”

다시 경기장.

악튜러스와 전투 짐승이 서로 마주보고 섰다.

악튜러스 외양은 지역 예선 때부터 장비 변동이 없었기에 거의 그대로였다.

그에 반해 전투짐승은 그 외양이 작년에 비해 몇 군데 바뀌었다.

새로운 장비로 업그레이드한 것이다.

석민이 스카우터를 통해 전투짐승의 장비들을 훑어 내렸다.

본래 알고 있던 장비가 아닌 5개 정도의 장비가 바뀐 게 눈에 들어왔다.

‘전부 한 단계씩 올라갔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게 코어 수준이 악튜러스보다 한 단계 위였다.

네임드 드래곤 하트.

전투짐승이 달고 나온 코어였다.

그에 반해 악튜러스는 아직도 레어 드래곤 하트에서 못 벗어나고 있었다.

상황이 이러니 제아무리 악튜러스가 칠죄종 세트 아티팩트를 거의 다 모았다고는하나, 북한 리명국 선수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갈만 했다.

왜냐?

코어 수준이 상위로 갈수록 한 등급에 의한 출력 차이가 말도 안 되게 벌어지게 된다.

보통 레어 드래곤 하트로 낼 수 있는 출력은 3500마력에서 5000마력 사이.

반면 네임드 드래곤 하트는 최대 출력이 10000hp까지 가능했다.

즉, 코어 수준은 불과 한 단계 차이지만 출력 차이는 두 배 이상 나는 게 가능하단소리다.

무섭게 웃고 있는 리명국이 악튜러스의 장비창을 가소롭게 훑어 내리고 있었다.

“간나새끼, 이래가지고 내를 잡을 수 있갓어? 공화국 골렘이 무서운 건 남조선에게 안 갈켜줬것디.”

가소롭게 웃는 모습이 아주 가관.

그때 그가 쓰고 있던 스카우터를 통해 연락이 왔다.

보아하니 무조건 받아야하는 번호였다.

리명국이 크흠!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전화를 받았다.

전화 받기가 무섭게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 동무, 꼭 이기라우. 이건 위에서 내려온 특별 지시야.”

“내 알간. 동무는 걱정말라우. 꼭 이겨주갔어.”

“상대는 남조선이야. 다른 나라는 몰라도 남조선에게 지는 일은 없갓디?”

“걱정말라우.”

자신감을 보이는 리명국 선수가 손가락 관절을 만지며 뚜둑 소리를 냈다.

‘아새끼라 했디. 내래 본때를 보여주갔어.’

씩 웃는 리명국이 전투짐승과 링크를 시도했다.

시야가 바뀌며 저와 마주하고 있는 거대한 어스 골렘이 보였다.

상체는 붉은 색.

나머지 장갑들은 그 귀하디 귀하다는 아다만틴으로 되어 있어 검은 빛이 났다.

‘고 비싼 걸 씌웠디. 그래봤자 전투짐승 주먹질 몇 방이면 쓰러디갓디.’

두 골렘이 자리에 위치했다.

이제 신호만 남은 상황.

경기 진행을 맡은 프랑스 사회자가 큰 목소리로 관중들을 향해 목소리를 냈다.

“신사숙녀 여러분! 지금부터 월드 그랑프리 64강전 세 번째 경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두 선수 전부 됐습니까?”

사회자가 두 선수 진영을 쳐다봤다.

결의 찬 선수들 얼굴이 훤했다.

이어 대회 관계자를 쳐다봤다.

관계자들은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리며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Ready! Fight!"

남한과 북한.

그 세기의 대결이 시작함과 동시에 전투짐승이 두 주먹을 맞부딪히더니 4개의 포문을 일제히 악튜러스에게 겨눴다.

항공모함도 침몰시킨다는 4개의 포문이 겨눠지자 악튜러스가 그 앞으로 두 손바닥을 펼쳐냈다.

이어 허공 위로 마법진이 그려지더니 눈에 익은 마법 보호막이 펼쳐졌다.

이를 본 리명국이 그 입꼬리를 사정없이 찢었다.

“그래갓고 막을 수 있갔어? 뒤지라우.”

전투짐승이 장비하고 있던 포문에서 일제히 불이 뿜어졌다.

4문포에서 쏟아지는 철갑탄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날아가 악튜러스가 펼쳐낸 3중보호막에 닿았다.

쾅쾅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마법 보호막을 펼쳐낸 악튜러스의 전신이 사정없이 밀리기 시작했다.

철갑탄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이를 버텨내는 악튜러스 주변으로 폭염과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그럼에도 얄짤 없이 밀어붙이는 전투짐승은 4개의 포신이 전부 시뻘겋게 달아오를 때까지 무자비한 포격을 계속 이어나갔다.

몇 십초 동안 이어지는 포격 속.

리명국은 악튜러스가 이면세계에 숨을 수 있다는 걸 상기하고선 포격을 멈췄다.

리명국과 링크 된 전투짐승의 시선은 자욱하게 피어오른 흙먼지 속으로 향했다.

‘죽었니?’

그러나 리명국의 기대를 산산이 부수는 골렘 하나가 흙먼지 속에서 그 건재함을 과시했으니.

집중 포화에도 끄떡없이 버텨낸 악튜러스가 흘어지는 흙먼지 아래 그 모습을 드러냈다.

“기레. 그래 디지면 재미 없디.”

오히려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리명국이 살며시 웃었다.

이제 진짜다.

전투짐승이 두 손을 내려 땅을 짚었다.

그 모습은 마치 고릴라와 같았다.

전투짐승이 왜 전투짐승으로 불리는지.

리명국이 그 이유를 가르쳐주려 했다.

“이건 골렘이 아니라 짐승이라우. 짐승이 왜 짐승인지 내 보여주갔어.”

거대한 전투짐승의 신형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전신은 돌덩이.

그 외부는 오리하르콘으로 휘감아 자체 무게가 엄청났으나, 최대 출력 8000마력에 육박하는 짐승에겐 아무런 제약이 되질 못했다.

8000마력 전투짐승이 악튜러스와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혔다.

< #41 월드 그랑프리 > 끝

ⓒ 대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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