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파이트-139화 (139/173)

< #41 월드 그랑프리 >

다른 나라면 몰라도 남조선에게 지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그랬다간 본국에도 못 돌아가고 그대로 도망쳐야 했으니까.

아니, 가족이 북한에 있으니 돌아가긴 해야 할 것이다.

대신 그 이후 어떤 일이 생길지는 생각하기도 싫었다.

현재 북한의 지도자로 있는 김정은은 완벽한 또라이였다.

장성택.

김정일의 매제였으며 김정은 본인에게도 고모부가 되는 그를 모두가 보는 앞에서공개 처형시키지 않았던가?

그런 전례가 있었기에 남조선에게 지는 일은 절대 불가했다.

리명국의 전속 코치가 그의 어깨 위에 손을 얹으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리명국 동무, 무조건 이기라우. 지는 일은 없갓지?”

걱정하는 건 비단 리명국만이 아니다.

리명국과 한 팀이 되어 이번 월드 그랑프리에 참가하게 된 그의 코치, 매니저, 기술팀 모두 리명국과 한 마음 한 뜻이었다.

절대 남조선에게 져서는 안 된다.

그들은 벼랑 끝에 선 북한 전사들이었다.

“걱정마시라우. 내가 아무리 그라도 애새끼한테 지갓어?”

리명국은 큰 자신감을 보였다.

전투짐승은 그 자체 전력만으로도 서울을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는 북한 최고의 병기였다.

몇 년 전 핵개발은 성공했지만, 무력과시용 외엔 쓸 수 없는 핵무기는 남한에겐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했다.

때마침 게이트가 열리고 새 시대가 열리자 북한은 새로운 전략 병기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대전 골렘이란 게 소개되었다.

헌터 따위는 가볍게 압살하는 전력.

철갑으로 무장한 원소 병기.

대전 골렘을 처음으로 보게 된 김정은은 그 자리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았다.

핵무기 말고도 남한을 효과적으로 위협할 수단을 말이다.

이후 북한은 국제 사회로부터 고립된 상황 속에서도 중국과 러시아의 지원을 받으며 대전 골렘을 개발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북한의 모든 자원이 투입된 전투짐승이 태어나게 된 것이다.

전투짐승.

정식 명칭은 대(對) 남조선 적화통일 선봉장, 전투짐승 1호기.

국가 주도로 개발된 전투짐승의 전투력은 실로 놀라웠다.

개발된 그 해 아시아 랭킹 2위를 차지했으며, 지금까지 월드 그랑프리 출전을 단 한 번도 놓친 적이 없었다.

전투짐승의 성적이 나날로 좋아지자 북한은 전투짐승을 자국 무력 과시용으로 선전하기 시작했다.

핵무기 따윈 없어도 전투짐승 한 대만으로 서울을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다느니 그런 개소리를 해대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 정부도 부랴부랴 KA 청룡을 개발시켰지만, KA 청룡은 아직 걸음마 수준에다가 세계 대회는 구경도 못해본 갓난아기 수준이었다.

그러니 아직 쓴 맛을 보지 못한 북한이 최근에도 전투짐승을 앞세워 심심할 때마다 남한을 위협했다.

그리고 그 골렘이 또 다시 남한을 위협하기 위해 월드 그랑프리에 나왔다.

한국 입장에선 눈엣가시인 골렘.

누군가는 저 전투짐승을 부숴야만 했다.

다시 한국 중계석이다.

남한 vs 북한의 세기의 대결인 만큼 해설진들도 입이 바빠졌다.

“전투짐승, 정말 무서운 상대입니다. 지금까지 한국보다 성적이 안 좋았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또한 월드 그랑프리에서도 항상 상위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북한 골렘이란 것만 빼면 나름 대단한 골렘이죠.”

“오죽했으면 그 폐쇄적인 북한이 전투짐승이 나오는 경기를 북한 주민들에게 생중계하겠습니까? 그만큼 전투짐승에게 거는 자신감이 대단하단 소리죠.”

이용호 캐스터가 물음을 던졌다.

“그럼 전투짐승이 어떤 골렘인지 전국에 계신 시청자분들께 소개시켜주실 수 있으십니까?”

“물론입니다.”

“전투짐승은 화력에 집중한 스톤 골렘으로, 4개의 포문을 가진 웨펀 마스터 타입입니다. 또한 육박전에 탁월한 인파이터의 속성도 갖췄습니다. 전신 장갑은 오리하르콘으로 주조됐으며 미스릴이 외부에 코팅되어 마법 내성에도 강한 모습을 보이고있습니다.”

“그래도 아다만틴보다는 물리 내성이 안 좋지 않습니까?”

“하지만 아다만틴은 무거운 장갑이죠. 오리하르콘도 가볍다고 볼 순 없겠지만 아다만틴으로 된 골렘보다는 기동성이 더 좋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악튜러스 장갑이 아다만틴으로 되어 있다고 해서 무조건 유리하다고 볼 순 없는 겁니다.”

“제가 추가하겠습니다. 현재 전투짐승이 쏘는 포는 60mm 대구경 철갑탄으로 정통으로 맞을 경우 탱크도 못 버틴다고 합니다. 거기다 마나까지 씌우게 되면 위력은수십, 수백 배로 오르게 되죠. 괜히 북한에서 전투짐승을 띄워주는 게 아닙니다. 전투짐승이 쏘는 화력이면 항공모함 같은 건 30초 이내로 침몰시킬 수 있다고 하네요.”

“위력이 상당하네요.”

“그러니 북한에서 맨날 전투짐승만 선전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예전에 미국에서 스텔기 폭격기를 몰래 보낸 적이 있었는데, 전투짐승 레이더에걸렸습니다. 그때 전투짐승이 스나이퍼 무기를 들었었는데, 격추됐죠.”

“여러모로 놀라운 골렘입니다. 다만 한국과 적이라는 게 아쉽네요.”

이용호 캐스터가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럼 그 전투짐승이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악튜러스와 붙게 되는데, 두 해설위원께선 승부를 어떻게 내다보고 계십니까? 악튜러스가 이길 수 있을까요?”

“악튜러스 정도면 예전 한국 챔피언들에 비해 나쁘진 않은데요. 본선 무대라 일단 지켜봐야할 것 같습니다. 북한이 지역 예선을 건너 뛴 만큼 어떤 식으로 준비했는지 아무도 모르고 있거든요.”

김요한 해설위원의 말이 끝나자 강동준 해설위원도 말을 붙였다.

“전투짐승도 작년에 비해 장비 수준이 전체적으로 상향됐다고 들었습니다. 악튜러스 장비도 나쁘지 않지만 저 역시 일단 지켜봐야한다는 입장입니다.”

“김정은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게 골렘 파이트라고 하는데요. 제가 들어보니까 오늘 이 경기를 보기 위해 몰래 찾아왔다고 하네요. 물론 풍문이라 확실한 건 아닙니다.”

이용호 캐스터가 그런 말을 흘리자 생중계하던 해설위원과 두 선수가 일제히 주변 관중석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찾아온 사람이 너무 많아 동양인을 찾는 것도 힘들었다.

“저는 도저히 못 찾겠네요.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요?”

“하하, 저도 김정은 아들이 어디에 앉아 있는지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말했듯이 풍문이라 안 왔을 수도 있습니다.”

“에이 왔겠죠. 북한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김정은 아들이면 왔다고 봅니다. 아들 이기는 아버지가 어딨습니까?”

“그러다 한국에게 지는 모습을 보면 대단히 실망할 텐데요?”

“그래도 됩니다. 북한은 져도 돼요.”

“하하하!”

박장대소하는 그들과 다르게 북한과의 경기를 준비하는 한국 KRG 진영은 상당히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선수 대기실에 위치한 강준이 걱정스레 입을 열었다.

“석민아 이전 경기는 다 챙겨봤지? 바쁘게 준비하긴 했는데...”

슈트 차림의 석민은 평소처럼 차분한 어조로 대답을 해주었다.

“네, 대강 훑어 봤어요.”

월드 그랑프리.

하지만 그 대진표는 전날 나오게 됐다.

본래 일주일 전에 나오는 것인데 잦은 해킹 시도로 인해 대진표가 전날에야 나온 것이다.

그래서 석민을 포함한 KRG 사람들도 64강전 상대에 대해 알아볼 겨를이 거의 없었다.

전날 대진표가 나오자마자 부랴부랴 준비한 게 전부.

그럼에도 석민은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상대에 대해 잘 모르는 건 저쪽도 마찬가지니까요.”

대진표가 나온 시점은 똑같았기에 석민은 오히려 이게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잘 할 수 있겠어? 내가 보니까 전투짐승 화력이 장난 아니던데?”

지역 예선부터는 웨펀 마스터 타입의 대전 골렘들이 자주 등장하게 된다.

기관포와 총탄을 쏟아부으며 상대 골렘을 벌집으로 만들어버리는 그런 골렘들을 말하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선 레일건을 장비한 신개념 대전 골렘이 소개되기도 했다.

인류 역사가 시작한 이래.

도검류는 원시 무기였고, 원거리에서 적을 사살할 수 있는 총과 같은 무기가 최고지 않던가?

그건 골렘 파이트에서도 어느 정도 적용되고 있었다.

“네, 대단하긴 하더라구요. 하지만 악튜러스 장갑이 좋아서 쉽게 뚫리진 못해요.”

“내가 들어보니까 그 화력이면 항공모함 같은 건 30초 만에 침몰시킨다고 하던데?”

“아저씨.”

석민이 부르자 강준이 석민에게 시선을 주었다.

“응?”

“여기 출전한 대전 골렘 중에서 항공모함 못 부수는 골렘은 없어요.”

“아, 그래? 하긴...”

“시간차만 어느 정도 있을 뿐, 항공모함 같은 건 금방 부수죠. 악튜러스도...”

석민은 항공모함이 있다는 가정 하에 완전 침몰까지 걸리는 시간을 계산해보았다.

“항공모함도 요즘엔 마법 내성이 있다고 하지만 악튜러스가 마력원으로 중력안을 증폭 개안하면 20초 정도 걸리겠네요.”

20초란다.

강준이 웃는 얼굴로 제 앞머리를 긁적였다.

“하하, 그래? 악튜러스는 20초였어?”

“그런데 상대가 무슨 마안을 달고 나올지 모르겠네요. 보통이라면 예지안 하나 끼고 다른 마안을 들고 나오긴 할 텐데.”

“북한도 레이드 강국이라 마안을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상당히 넓을 거야. 어쩌면 생전 처음 보는 마안을 달고 나올 수도 있으니까 절대 방심하면 안 돼.”

“야!”

그렇게 강준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던 석민에게 날카로운 목소리로 부르는이가 있었다.

석민과 마찬가지로 슈트 차림의 페트리샤였다.

석민이 시선을 흘리자 멀리 서 있는 페트리샤가 씩 웃으며 엄지로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석민이 무덤덤한 표정을 고수하자 페트리샤가 가만히 서 있다가 이내 무안했는지한쪽 눈을 뒤집어까며 길게 혓바닥을 내보였다.

“메롱~”

그 뒤로 화들짝 놀란 이진아가 따라붙었고, 페트리샤는 엄마가 오자마자 흥! 소리를 내며 그대로 떠나가 버렸다.

강준이 방금 전 페트리샤를 가리키며 석민을 찾았다.

“쟤 왜 저래?”

“다음 32강 상대일지도 모르거든요. 이번에 북한 잡으면 쟤가 데리고 있는 베가랑 붙게 돼요. 쟤가 이탈리아 골렘을 잡게 된다면요.”

“아 그래?”

강준은 급히 대진표를 꺼내봤다.

64강전 상대가 북한인지라 다음 32강 상대에 대해선 미처 알아보지도 못했다.

석민 말은 사실이었다.

“정말이네. 미안하다 북한 자료 찾아보느라 확인을 못 했어.”

“쟤도 슬슬 정리할 때가 됐어요. 건방지게 까부는 게 자꾸 마음에 안 들었는데 이참에 확실히 교육시켜줘야겠어요.”

석민의 표정은 무덤덤했지만 말에는 가시가 있었다.

‘꼭 울게 만들 거야.’

버릇없는 동갑내기한테 아량을 베풀 정도로 석민은 착하지 않았다.

특히나 제 잘난 맛에 사는 여자아이라면 더욱 더.

“석민아!”

그러다 또 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자 석민은 고개를 돌렸다.

유이였다.

“꼭 이겨. 화이팅!”

유이 역시 부모를 졸라 이곳 파리까지 찾아오게 됐다.

석민은 유이가 파리까지 오게 된 자세한 배경까지는 알지 못했지만 응원차 여기까지 온 것을 마냥 싫어하진 않았다.

“고마워 유이야.”

석민이 기분 좋게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따라 웃는 유이가 엄마 손을 잡고 선수대기실에서 떠나갔다.

석민은 떠난 유이를 보고 무언가를 떠올렸다.

전날 받은 선물이 생각난 것이다.

“아 맞다. 쟤한테 선물 사줘야겠다.”

“선물? 왜? 쟤 좋아하니?”

“쟤한테 받은 게 많거든요. 받은 게 있으면 베풀어줘야죠. 나쁜 건 나쁜 식으로, 좋은 건 좋은 식으로요.”

물론 영혼 없는 말투였다.

< #41 월드 그랑프리 > 끝

ⓒ 대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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