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 월드 그랑프리 >
#41 월드 그랑프리
“안녕하십니까 전국에 계신 시청자 여러분. 국내, 지역 예선에 이어 올해 월드 그랑프리 진행도 맡게 될 캐스터 이용호입니다. 반갑습니다.”
이용호 캐스터의 말을 시작으로 두 해설위원이 제 이름을 알렸다.
“안녕하세요 해설위원 강동준입니다.”
“해설위원 김요한입니다. 반갑습니다.”
“3개월만이네요.”
“네 그렇습니다. 그 동안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왔는지. 정말 학수고대했습니다.”
다소 편하게 앉아 있는 그들 양 옆으로 두 명의 특별 게스트가 눈에 들어왔다.
이민호와 홍진영이다.
이민호와 홍진영은 다소 편하게 앉아 있는 형태로 양 사이드에 위치해 있었는데 벌써부터 서로를 향한 신경전이 팽팽했다.
카메라가 다시 이용호를 전면으로 잡았다.
“올해 본선에선 특별히 두 게스트를 모시게 됐습니다. 홍진영, 이민호 선수 시청자들께 인사 부탁드립니다.”
둘은 이용호 캐스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앞을 다투어 인사를 올렸다.
“네 안녕하세요 이민호입니다.”
“네 홍진영입니다.”
그러면서 둘은 서로에게 힐끗 시선을 주었다.
고까운 표정은 둘 다 마찬가지.
이용호 캐스터의 말이 이어진다.
“이민호 선수야 지역 예선에 이어 본선 중계도 저희와 함께 할 줄 알았는데, 이 자리에 홍진영 선수는 좀 의외다 싶었습니다. 실례가 아니라면 출연하게 된 배경에 대해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홍진영이 보란듯이 팔짱을 꼈다.
그러더니 누군가를 의식하듯 말을 흘겼다.
“웬 좆밥이 제 흉을 보더라구요. 그래서 나오게 됐습니다. 최소한의 방어전은 해야지 않겠습니까?”
이민호가 피식 웃었다.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말이다.
그게 거슬렸는지 홍진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새끼가 아가리를 아주 야무지게 털길래 이참에 교육 좀 시키려고요.”
웃는 표정을 고수하는 이용호 캐스터가 나섰다.
“하하, 홍진영 선수. 이 방송은 전국민이 보고 계시는 방송입니다. 말 좀 살살 부탁드립니다.”
“무슨 소리에요? 막말해도 된다면서?”
골렘 파이트 중계는 시청률을 위해서 약간의 욕설은 허용되고 있었다.
다만 본 방송을 보고 불쾌하게 생각할 몇몇 시청자를 위해 욕설 사용은 최대한 자제하는 편이었지만 그거야 이 방송으로 먹고 사는 캐스터와 해설위원들의 사정이었고, 특별 게스트로 초청된 홍진영에겐 그저 남의 일.
더군다나 홍진영은 최근 몇 달 사이 몇몇 구설수에 올라 더 이상 깎아먹을 이미지가 없기도 했다.
오히려 KRG에선 홍진영의 막말 영상이 인기를 얻자 되려 홍진영을 그 이미지에 맞추도록 주문했다.
무색무취의 홍진영보단 성격 있는 홍진영이 대중에게 어필되기 좋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이게 무슨 올림픽 중계도 아니고. 말은 좀 편하게 합시다. 안 그래요?”
“그럼 최대한 살살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용호 캐스터가 곤란한 눈치를 보이든 말든, 홍진영은 제 얘기를 하기 바빠졌다.
“아무튼 그 말 못할 좆밥 새끼가 자꾸만 누구 신경줄을 건드리기에 이렇게 나오게 됐습니다. 이제 다 늙어서 경기도 못 뛰는 퇴물 새끼가 대체 누구 흉을 다 보는지.”
그러자 이민호도 한 마디했다.
“퇴물이 퇴물한테 뭐라 하네요. 참 어이가 없어서.”
“뭐? 퇴물? 누가 퇴물이래. 넌 퇴물이지만 나는 아니야.”
“아니 왜 정곡을 찔리기라도 하셨습니까? 내가 누구라고 말도 안 했는데.”
사실 홍진영이 특별 게스트로 나온다기에 이민호는 본선 중계에는 안 나오려고 했었다.
하지만 이 자리서 홍진영이 무슨 말을 뱉어낼지 몰랐고, 본선 중계도 이미 하겠다고 공언한 상태에서 안 나오기가 애매했다.
반면 홍진영은 이민호 혼자 이 자리에 있게 되면 또 어떤 막말을 지껄일지 몰라 무조건 나온다고 했다.
그래서 이런 자리가 마련된 것이다.
“한국 골렘이 지역 예선 1위로 본선 무대에 진출한 것도 아주 대단한데, 한국 챔피언까지 지낸 두 선수를 이 자리에 모시게 되어 무척 영광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국 챔피언만이 아니죠. 이민호와 홍진영 씨면 세계 대회 출전 경험도 있죠.”
“아 그렇네요. 다만 두 분의 사이가 안 좋은 점은 시청자분들께서도 조금만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김요한 해설위원이 살짝 웃었다.
“사이 안 좋을 수밖에 없겠죠. 제가 알기로도 여기저기서 티격태격 하신 거 같던데. 예전에 휴양지에서 대판 싸웠던 적 있지 않습니까? 괌이었나요?”
“네 괌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때 서로 주먹다짐하다가 경찰서에 끌려가서 국제적 망신을 당했었는데. 그때 일이 떠오르네요.”
긴 꽁지머리를 가진 홍진영이 나섰다.
물론 그 표정은 웃고 있었다.
“그러니까 한 주먹거리도 좆밥 새끼가 자꾸 주둥아리를 터니까. 제가 빡쳐서 이렇게 나온 거잖습니까? 현실은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놈인데. 안 그렇습니까?”
이민호가 비아냥거린다.
“여기 공영방송입니다. 지 성격대로 말을 찍 싸는 데가 아니죠.”
“야. 나 이거 컨셉이다. 알고 지껄여 새끼야.”
“뭐? 뭐라는 거야. 병신 컨셉도 있나봐.”
지켜보던 강동준 해설위원도 큭큭 대며 웃었다.
“저 두 분을 보니까 예전 일이 생각나네요. 그 당시 이민호 선수가 방어전을 할 때도 서로 티격태격하지 않았었나요?”
그 물음에 있어서 이민호는 입을 닫았고 홍진영만 살판났다.
“아 당연하죠. 그때 제가 스턴건을 찌발랐는데. 그냥 아주 콱!”
“그거야 제가 봐준 거죠.”
“뭐? 니가 뭘 봐줘. 찌발렸잖아.”
“봐준 거라고. 하 이 새끼. 또 해봐?”
두 선수가 서로 언성을 높여갈 때 이용호 캐스터가 파리에 위치한 대형 경기장에 대한 소개를 이어나갔다.
“올해 본선무대는 프랑스 파리 도심에서 살짝 벗어난 불로니으 공원에 마련됐습니다. 올해 완공된 불로니으 경기장이 세계에서 가장 크다고 하는데요. 경기장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파리 도심에서 살짝 벗어난 블로니으 공원에 지어진 이 경기장은 세계에서 가장 큰 골렘 파이트 경기장으로 최대 수용인원은 무려 60만입니다. K골렘 스타디움이 서울월드컵경기장의 6배 규모인데 반해 이곳 블로니으 경기장은 8배 규모이며, 정말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하고 있죠. 정말 엄청난 크기입니다.”
아나운서들을 비추는 화면이 파리에 위치한 블로니으 경기장을 비추기 시작했다.
“정말 크네요. 대체 얼마나 큰 겁니까?”
“제가 한 번 둘러봤는데. 돌다가 포기할 정도로 엄청나게 큽니다. K골렘 스타디움보다 더 크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K골렘 스타디움도 정말 큰데요.”
“이 블로니으 경기장을 완공하기 위해 들어간 돈만 해도 수십조에 달한다고 합니다.”
“수십조나요? 그런 돈을 대체 어디서 마련했을 까요?”
“글쎄요. 그건 파리 시청에 물어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 그러고보니 다다음 해에 한국에서 세계 최대 경기장을 또 짓는다고 하죠?”
“라시타의 선물!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유명하죠.”
“라시타 황녀를 처음으로 환대한 게 바로 한국입니다. 그런 한국 정부에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라시타 황제가 세상에서 가장 큰 경기장을 약속했는데요. 수용 인원만 백만입니다. 건설 비용은 수백조에 달한다고 하네요.”
“와, 정말 어마어마하네요. 그런 걸 진짜 지을 수 있는 건가요?”
“솔직히 건설이야 돈하고 부지만 있으면 되는 이야기라.”
“그렇죠. 정작 중요한 건 돈인데, 그걸 제국 황제가 대준다고 하니 누가 마다하겠습니까?”
“돈이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나 보네요.”
“제가 들었는데요. 제국이란 데는 순수 황금으로 지어진 성도 있다고 합니다. 여기는 그런데가 없잖아요. 그런데 제국엔 있다고 합니다. 그만큼 재력이 어마어마하다는 얘기죠.”
“황금으로 지어진 성이라... 마치 동화 같은 이야기네요.”
경기장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자 그들은 올해 본선 무대에 출전하게 될 악튜러스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악튜러스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이용호 캐스터가 최근에 화제가 되었던 이야기 하나를 꺼내들었다.
“아 맞네요. 악튜러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에 앞서 이번 본선 무대를 주관한 세계 골렘 협회 서버를 해킹했던 사건이 있지 않았습니까?”
“네 저도 들었습니다. 본선에 앞서 해킹 시도는 전에도 여러 번 있었는데요. 이번에도 어김없이 해킹 시도가 이뤄졌다고 합니다.”
“해킹이라. 대체 뭐 때문에 해킹을 했을까요?”
“글쎄요. 아무래도 해킹을 했다면 대진표를 수정하기 위함이겠죠. 어중간한 골렘이라면 제 실력보다 대진표를 잘 만나야 성적이 잘 나오지 않겠습니까?”
여기에 대해선 홍진영과 이민호가 나서서 각자 한 마디씩 해주었다.
“대진표 정말 중요하죠. 선수된 입장에서 대진표를 건드리기 위해 해킹을 한다. 뭐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는 몰라도 정말 공감되는 말입니다. 대진표가 은근히 중요하거든요. 막말로 64강부터 막시무스를 만나면 끝난 게임이니까요.”
이민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홍진영도 고까운 표정을 짓더니 이내 이 부분에 있어서는 동조하는 입장을 취했다.
“네, 맞습니다. 대진표, 진짜 중요하죠. 솔직히 실력이 어중간하면 믿을 건 대진표뿐인데, 초반부터 강한 상대를 만날 순 없잖아요.”
성적이 곧 돈이 되고 인기가 되는 선수들 입장에선 대진표를 수정하기 위한 해킹 시도가 어느 정도 납득이 되는 모양이었다.
“그럼 두 선수께서는 대진표를 수정하기 위해 해킹을 시도할 수도 있다고 보는 겁니까?”
“그렇다고 보는 거죠.”
“네, 저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렇군요.”
두 해설위원이 나섰다.
“맞습니다. 멀쩡한 협회 서버를 해킹할 이유야 미리 짜여진 대진표를 살펴보는 것 외엔 없어 보입니다. 이렇게 되면 대진표를 어쩔 수 없이 수정하게 되거든요. 이번 해킹 공격은 총 3회 이뤄졌다고 들었습니다. 공격자가 원하는 대진표가 나올 때까지 계속 공격한 거죠.”
“우승 후보인 막시무스 같은 경우는 초반부터 누굴 만나든 상관없겠지만, 다른 골렘들은 전혀 그렇지가 않거든요. 저 역시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라고 봅니다.”
이용호 캐스터가 모두에게 질문을 던졌다.
“협회 서버는 알파고에서 관리하지 않습니까? 세계 1, 2위를 다투는 슈퍼컴퓨터가 털렸다는 사실이 저로서는 믿기지가 않네요.”
“알파고가 협회 서버를 관리하기는 하는데, 바쁜 알파고가 그 일만 하는 건 아니라서요. 방심하고 있다가 해커들의 집중 공격을 받게 되면 털릴 수밖에 없겠죠.”
“그런데 저는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딱 하나 있습니다. 해킹 시도가 한 번도 아니고 총 세 번이나 이뤄졌는데, 이걸 알파고나 협회 측에서 알고도 쉬쉬했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가 않습니다. 공식 발표도 없었고, 숨기기 급급했다죠? 그러다 내부 고발자로 인해 폭로되지 않았습니까?”
“해킹 당하면 또 다시 추첨을 통해 대진표를 다시 짜면 그만이니까요. 그래서 협회 측도 수수방관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알파고가 전면으로 나서지 않은 것도 앞서 말해드렸던 것처럼 막시무스는 누굴 만나도 관계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서일지도 모르겠죠. 아시다 시피 협회 본사는 미국에 있지 않습니까? 미국 본사에선 그 일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죠.”
막시무스는 현존하는 골렘 중 최강이란 칭송을 받고 있었다.
애당초 누굴 만나든 막시무스가 우승 후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으니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세계골렘협회에서 수수방관한 것이다.
“아무튼 해킹을 떠나서 악튜러스의 대진표는 나름 잘 짜여진 것 같습니다. 본선 첫 상대가 지역 예선에 불참한 북한의 전투짐승이죠?”
강동준 해설위원이 답했다.
“네 맞습니다. 북한의 골렘, 전투짐승 엄청 유명하죠. 절대 무시 못 할 상대지만 본선 전체적으로 보면 악튜러스 첫 상대로는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홍진영이 표정을 무섭게 하며 그 입을 사정없이 비틀었다.
“그 새끼들 입을 콱 찢어버려야 하는데. 북한외무상이라고 나와서 돼도 않는 개소리 지껄이는 거 보면 그 골렘 입도 콱 찢어버리고 싶은 적이 진짜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리고 말입니다. 리명국 이 새끼가 또 아주 유명해요. 개소리로. 전에 나한테 뭐라 했더라? 남조선 이 간나새끼. 내래 골렘 맹주국의 힘을 보여주갔어?”
“큭큭. 홍진영 선수 또 시작했네요.”
김요한 해설위원은 뭐가 그리도 좋은지 큭큭 대며 웃었다.
“제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게 일본하고 북한입니다. 여기서 출전한 골렘들은진짜 금으로 된 거 빼고 모조리 씹어먹어줘야 제 직성이 풀리는데 말이죠. 개인적으로 악튜러스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전투짐승인지 개짐승인지 뭔가 하는 건 숨도 못 쉬게 때려 부쉈으면 하네요. 응원합니다.”
그 시각 64강전 세 번째 경기를 준비하고 있던 북한의 리명국 선수가 상대 선수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홍진영 만큼이나 그 표정을 구겼다.
“배꼽으 딱지도 양이 마른 간나새끼가아 내 64강 상대야?”
그러다 한쪽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린다.
그 표정은 어떻게 보면 섬뜩하기까지했다.
“고 남조선 애새끼 내래 본때를 보여주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