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 네거티브 >
궁중 마법사가 어느 정도 위치인지 잘 모르는 석민은 그냥 가볍게 웃어 넘겼다.
그러다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있잖아.”
석민이 말을 이었다.
“절대 무적의 마법사라고 하지 않았어? 그런데 왜 죽은 걸까?”
‘절대 무적의 마법사?’
까리뽕이 나섰다.
“제가 레우 부라우흐를 소개하면서 절대 무적의 마법사라 소개시켜주었습니다.”
절대 무적.
그 유치한 말을 해석하자면 적수가 없으며 또한 모든 걸 초월한 존재다.
그런 자가 죽었다면 절대 무적이란 수식어가 붙으면 안 됐다.
적어도 석민이 생각하는 관점에서는 말이다.
악튜러스가 입을 열었다.
‘그는 명망 높은 마법사였다. 절대 무적까지는 모르겠지만, 그 명성과 실력은 다른 마법사에 견주어 꿇릴 정도는 아니었지.’
“나는 그 할아버지의 끝을 봤어. 좀 허무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나 역시 의문이로군. 하지만 철두철미하다는 느낌까지는 받지 못했다. 한 순간 기습으로 돌아가셨다면 납득하지 못할 일은 아니다.’
오히려 까리뽕이 의문을 드러냈다.
“지금 그게 무슨 소립니까?”
둘과 다르게 까리뽕은 레우 브라우흐의 마지막 모습을 알지 못했다.
석민은 악튜러스의 눈치를 봐가며 까리뽕에게 자신이 봤던 악튜러스 과거 일을 짤막하게 언급해주었다.
“그 할아버지가 그렇게 돌아가셨거든.”
“이상하군요. 그 정도 위치에 있는 마법사가 죽는 순간치고는 많이 허무하군요. 제 과거 위상을 생각해본다면 그다지 납득할 수 없는 최후입니다. 저도 그렇게는 안죽을 겁니다.”
아무래도 절대 무적이란 수식어가 붙기엔 그 최후가 너무나도 초라해보였다.
악튜러스는 그 부분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다른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와 꽤 오랜 시간 같이 있었다. 그가 보였던 수많은 기적들과 함께 했었지. 하지만 그대들이 언급한 절대 무적이란 말은 그다지 납득되지 않는군. 다소 모자란 느낌이다.’
“저는 고대서에 묘사된 그대로를 말해주었을 뿐입니다. 절대 무적이란 수식어는 제가 붙였다기 보다는 그 당시 사람들이 붙여준 수식어였습니다. 저도 자세한 건 모르나, 고대 사람들이 바보가 아니라면 그 이유가 있기에 그에게 그런 수식어를 붙여주지 않았겠습니까?”
‘의미 없는 대화 같군. 어차피 과거 일이다.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다면 조용히 있고 싶은데?’
악튜러스는 시끄러운 걸 좋아하지 않았다.
과거 회상 속에 나오는 인간 악튜러스는 지금 악튜러스만큼이나 성숙한 면을 보이지 않았으나 석민은 그 부분에 대해선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그 과거는 악튜러스의 과거 중 아주 극히 일부분일 뿐.
전체를 본다면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악튜러스는 인간일 때보다 골렘일 때가 더 많았다고 했으니까.’
* * *
서울 강남에 위치한 코리아 일렉트로닉스 본사 회장실.
회장이 자신의 전속비서에게 몇 가지를 보고받고 있었다.
“못 이긴다?”
일상적인 보고 내용들은 무시하다가 악튜러스 이야기가 나오자 그가 의문스레 반문했다.
“네, 가상 시뮬레이션을 수차례 돌려보았습니다. 결과는 변함이 없더군요. 못 이깁니다.”
그들은 베타고를 이용해 막시무스와 악튜러스간의 모의 전투를 시뮬레이션 해보았다.
수차례 진행해보았으나 결과는 항상 같았다.
악튜러스 패배.
“그래도 기량 차이가 있다면 결과가 다를 수도 있잖아?”
“회장님. 상대는 막시무스입니다. 제리코 코퍼레이션이 작정하고 밀어주고 있는 최강의 골렘이죠. 그리고 이 골렘에겐 알파고가 있습니다. 알파고가 있는 한 일방적인 결과는 나오지 않을 겁니다.”
“알파고라... 손익분기점이 본선 몇 강이라고 했었지?”
“8강입니다 회장님.”
“8강이라.”
잠시 뜸을 들이던 회장이 뜻밖의 말을 꺼냈다.
“적어도 그쪽에서 작정하고 작업 들어올 일은 없겠군.”
“무슨... 말이신지?”
“베타고가 그렇게 추정했다면 알파고도 마찬가지일 거 아냐? 슈퍼컴퓨터 성능은얼추 비슷할 테니까.”
“네 맞습니다.”
“그럼 그쪽에선 당연히 이길 줄 알고 다른 생각은 안 하고 있겠지. 가령 우리가 작업치는 거 말이야.”
더러운 일을 꼭 상대만 하라는 법은 없었다.
그들도 충분히 더러운 일을 할 수 있는 마인드와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저희가 말입니까?”
“왜? 거슬리나?”
“아닙니다.”
“목적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 네 회장님 방식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얼마 안 있으면 월드 그랑프리야. 그럼 묻지. 뻔한 결과에 내가 손가락만 빨고 있을까?”
“그건 아니죠.”
“안 되면 되게 하라. 내가 좋아하는 말 중 하나지.”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들었습니다. 방법을 강구해보도록 하죠.”
“지시를 내리지.”
회장이 오랜만에 지시란 걸 내렸다.
“월드 그랑프리 대진표가 아직 안 나왔을 거야. 베타고를 시켜 해킹해. 막말로 막시무스만 피한다면 8강까지는 문제없잖아?”
“그건... 사실 이번 월드 그랑프리에선 변수가 좀 많습니다. 베가랑 스피카 같은 고대 골렘도 새롭게 출전하고 나머지 골렘들도 전년도보다 장비 수준이 더 높아진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수준 낮은 골렘들을 차례대로 밟아나갈 수 있도록 대진표를 건드리란 말이야. 이게 무슨 말인지 아직도 모르겠나?”
“네. 지시하신대로 하겠습니다.”
“그보다 아이한테는 알렸나?”
“어떤 부분을 말입니까?”
“막시무스 못 이긴다는 이야기.”
“저희가 말하지 않았어도 관심이 많다면 베타고에게 물어 알았을 겁니다.”
그들이 언급하는 부분.
석민은 이미 알고 있었다.
베타고에게 먼저 물어본 게 바로 석민이었기 때문이다.
스케줄이 없는 아침이면 어김없이 TV 앞에 앉아 있는 아들에게 차태식이 말을 꺼냈다.
“아들.”
“응 왜?”
TV 속 화면에는 북한 리명국 선수와 그의 월드 그랑프리 진출에 관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북한의 리명국 선수가 월드 그랑프리 진출 의지를 보였습니다.”
“이렇게 된다면 악튜러스와 만날 가능성이 커지는데요. 우선 준비 된 화면을 보시죠.”
화면이 바뀌며 북한 뉴스가 나왔다.
고운 한복을 차려입은 아줌마 하나.
그 아줌마가 격양된 어조로 말아먹을 독재자 찬양에 나섰다.
“위대한 영도자 김정은 동지께서는 악의 제국 미제 골렘 막시무스와의 결전에 앞선 전투짐승의 싸움꾼, 리명국 선수를 만나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남조선 일당들이 낡은 고철을 씌워낸 골렘에 대한 사냥도 명하셨습니다.”
차태식은 골렘 뉴스가 나온 김에 월드 그랑프리에 대한 질문을 불쑥 던져보았다.
“본선 나가면 우승할 수 있어?”
“우승?”
석민이 고개를 돌려 차태식과 눈을 마주쳤다.
“우승은...”
석민은 보기보다 생각은 깊은 아이였다.
어렵다고 한다면 분명 무언가를 할 게 뻔했다.
악튜러스 장비를 구하러 게이트 안으로 찾아간다든가 그런 위험한 일을 말이다.
그래서 석민은 거짓말을 해주었다.
“괜찮아. 문제없어.”
“혹시 힘든 거 아니지?”
“아빠, 악튜러스만 믿어. 악튜러스는 무조건 우승할 거야.”
석민은 그를 쳐다보지 않고 대답했다.
그 누구보다도 아들에 대해 잘 알고 있던 차태식은 이쯤에서 악튜러스 우승이 어렵다는 걸 어렴풋이 눈치 챘다.
그날.
가게로 찾아온 한미라를 보자 차태식은 카페에서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기분 좋게 따라나선 한미라는 그와 마주한 자리에서 본선 우승 가능성에 대한 물음을 듣게 됐다.
그 물음에 있어 한미라는 한 치의 거짓말도 하지 않았다.
차태식이 그녀에게 솔직하게 말해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우승이 힘들다고요?”
“현실적으론 힘들죠. 막시무스라는 세계 최강 골렘도 있고, 악튜러스 같은 고대 골렘들도 무려 두 대씩이나 본선 무대에 나올 예정이거든요.”
“아들이 대답을 묘하게 하길래 힘들 줄은 알고 있었는데... 막상 들어보니 좀 그러네요. 무슨 좋은 수가 없을까요?”
“수요? 글쎄요. 골렘 파이트라는 게...”
본래 장비빨이 전부라.
뒷말을 삼키는 한미라가 사람 좋은 미소만 지어보였다.
그러다 차태식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놀란 한미라가 따라 일어섰다.
“벌써 가시게요?”
자리에 앉은 뒤 1분도 안 지났다.
놀란 그녀를 본 차태식이 피식 웃었다.
“아니요. 화장실 좀 갔다오려구요. 기다리세요.”
“아... 네 다녀오세요.”
그 뒤 한미라와 쓸데없는 잡담을 나눈 차태식은 돌아온 고물상에서 우연히 회장 비서라는 여자를 만나게 됐다.
정말 드물게 찾아오는 여자였는데, 아들과 관계된 일인지라 차태식은 그녀에게도 본선 우승에 관한 걸 물어보았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한미라의 것과 정확히 일치했다.
“힘들다고요?”
한미라와 다르게 그에게 좋게 보일 필요가 없는 회장 비서는 그의 사정 따윈 봐주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말도 할 수 있었다.
“네, 힘듭니다. 물론 아버님께서 칠죄종 아티팩트 중 마지막 세트 아티팩트를 구해오신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지금 악튜러스 우승이 불투명한 것도 전부 장비 때문이거든요.”
“그건 어딨나요?”
“저희가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환상 고블린을 통해 갈 수 있는 황금 산맥에 있다고 하네요. 그리고 그곳의 관리자인 에이션트 웜, 오슬로 심장이 바로 마지막 남은 칠죄종 아티팩트입니다.”
“그것만 있으면 우승이 가능합니까?”
“지금 악튜러스 코어 수준이 많이 낮습니다. 굳이 칠죄종 아티팩트가 아니더라도지금보다 더 좋은 코어가 필요한 건 사실이죠.”
“지금 달고 있는 게 드래곤 하트인데도 부족한가요?”
“본선 무대에선 개나 소나 다 드래곤 하트를 쓰죠. 모르셨나요?”
“아 그래요? 하긴... 그런데 그쪽 회사에선 코어 지원도 안 해줍니까?”
“사실 코어 문제는 돈이 문제가 아니라 매물 자체가 귀해서 저희도 곤란해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버님.”
“네?”
“저희 회사는 아드님 우승을 위해 항상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아버님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도 항상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죠. 이 점은 꼭 좀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회장 비서가 사람 좋은 미소를 드리웠으나 차태식은 그 미소가 지어낸 미소란 걸 모르지 않았다.
그에게도 감이란 게 있었는데, 이 여자는 자신에게 털 끝 하나도 관심이 없어보였다.
생각보다 보기 드문 여자였다.
왜냐면 대부분 여자들은 자신에게 호감을 갖기 때문이다.
차태식은 이쯤에서 고개만 끄덕여주었다.
“알겠습니다. 말씀 고맙습니다.”
회장 비서는 고개만 까딱 움직이고는 자리에서 떠나주었다.
차태식은 제 뺨을 긁적이며 악튜러스의 본선 우승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장비 진전이 없으면 우승은 힘들다라...’
아무래도 아버지로서 해야 할 일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 같았다.
차태식이 골동품 같은 핸드폰을 꺼내 전화부에 저장되어 있는 여러 연락처 중 하나를 골라냈다.
김정민의 연락처였다.
몇 번의 통화음 뒤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전화 받았어요.”
“정민 씨, 나야.”
“네, 무슨 일이세요?”
“우리 많이 쉬었지?”
“아, 무슨 일로 전화하셨나 했더니 일 때문에 전화하신 거예요?”
“뭐 그렇지.”
“생각해두신 곳이라도 있으세요?”
“나야 뭐 움직이는 거야 뻔하지. 아들 곧 본선이잖아.”
“아 알죠. 그걸 누가 몰라요.”
“아들한테 코어 좀 구해다 주려고. 그런데 이게 황금 산맥에 있다네.”
“황금 산맥이요? 설마 그 환상 고블린이 여는 황금 산맥 말하는 거예요?”
“응, 거기를 가고 싶은데 가능할까?”
“황금 산맥이라...”
< #40 네거티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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