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파이트-135화 (135/173)

< #40 네거티브 >

#40 네거티브

전쟁 위협으로부터 한 달이란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석민은 TV 속 화면에서 저만큼이나 유명해진 적발, 적안의 소녀를 보았다.

소녀는 미국 백악관에서 화기애애한 표정으로 기자들 앞에 서 있었다.

그 옆엔 미국 대통령이 있었고, 근처엔 소녀를 호위하는 경호원들이 보였다.

특이한 점은 경호원들이 제국에서 찾아온 마법사란 점이다.

그들은 마법사 로브가 아닌 정장차림으로 소녀를 호위하고 있었다.

석민은 소녀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표정이 무척 밝아보였다.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쟤도 카메라를 좋아하나봐.’

이제 위화감조차 안 드는 TV 속 화면을 지켜보던 석민은 소녀와 있었던 일을 떠올려보았다.

소녀가 자신에게 한 말은 아직도 미스테리였다.

‘네거티브란 건 대체 뭘까?’

석민은 생각하듯 미간을 좁혔다.

며칠 전 우연히 베타고에게 물어봤었다.

하지만 베타고는 시원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베타고도 모르는 것이다.

“흐음.”

석민은 그 질문을 이번엔 까리뽕에게 던져보았다.

“까리뽕.”

허공에 떠있던 까리뽕이 그 물음에 답했다.

“저를 부르셨습니까 주인님.”

“물어볼 게 있어.”

“뭐든지 물어보십쇼. 제가 답해드릴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대답해드리겠습니다.”

“너도 네거티브란 게 뭔지 몰라?”

“네거티브요?”

까리뽕이 되물으면서 말끝을 올렸다.

“지금 네거티브라 하셨습니까?”

“응. 그게 뭔지 알아?”

“의미하는 바가 여러 개 있습니다. 제게 어떤 의미로 물어보신 겁니까?”

“그게 말이지. 전에 있잖아.”

석민은 소녀와 있었던 일에 대해 알려주었다.

“아하, 이제 기억났습니다. 그때 그 일이로군요.”

“그래서 너도 모르는 거야?”

“네거티브라... 그런 의미라면 제가 알고 있는 게 딱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뭔데?”

“음 이걸 어떻게 설명해드려야 하나. 쉽게 설명해드린다면 이 세상에는 절대로 나올 수가 없는 절대 무적의 마법사가 존재합니다.”

절대 무적의 마법사.

유치한 단어였지만 석민에겐 그 단어가 그리 유치하진 않았다.

석민이 눈빛을 반짝였다.

“절대 무적의 마법사? 그게 뭐야?”

“오직 네거티브 속성을 가진 자만이 그 절대 무적의 마법사가 될 수 있지요. 제가알고 있는 한 그런 속성을 지닌 마법사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딱 한명 존재합니다.”

“그게 누군데?”

“레우 브라우흐라 불리는 자입니다. 아주 먼 과거에 존재했다고 하는데, 네거티브 체질이라 오직 저만의 필드에서 마법을 구사하는 게 가능한 희대의 천재였습니다. 그가 어디서 왔는지는 지금도 불명입니다만... 아무튼 그가 네거티브란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 그런데 왜 나보고 네거티브라고 한 걸까?”

“네거티브는 보통 마나를 다룰 수 없어 마법을 구사할 수 없습니다. 체질이 그러하죠.”

“하지만 절대 무적의 마법사라면서?”

“맞습니다. 그는 절대 무적의 마법사입니다. 다만 평범한 마법사가 아니라서 그가 어떤 식으로 마법을 구사하는지는 전부 베일에 싸여 있습니다. 저 역시 알지 못합니다.”

“그럼 아무도 모르는 거야?”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고대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레우 브라우흐에 대한 묘사를 보자면 그는 대마법사의 몸을 가졌음에도 마나가 없어 참으로 안타까운 존재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말하길 자신은 네거티브 체질이라 그러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보란듯이 마법을 사용했지요. 웃기게도 말이죠.”

“그게 뭐야? 말이 이상하잖아.”

“그래서 네거티브라 부르는 겁니다. 실제로 보면 마나를 다룰 수 없어 마법사의 자질은 0점인데, 알고 봤더니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절대 무적의 마법사였던 겁니다. 사실 저도 많은 걸 알고 있지는 않습니다. 제가 살았던 당시보다 더 고대의 사람이기 때문이지요.”

잠시 뜸을 들인 까리뽕이 다음 말을 이었다.

“저한테도 그 사람은 전설 정도 됩니다. 그러니 사실 여부도 불투명하지요. 어쩌면 거짓일 수도 있습니다. 그냥 전설만 놓고 보면 말이 안 되거든요.”

“그래?”

석민은 실망한 듯 목소리를 냈다.

“너도 잘 모르는구나.”

“이런 건 제가 아니라 차라리 그 골렘한테 물어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누구? 악튜러스?”

“그렇습니다. 레우 브라우흐... 제가 알고 있기론 그 골렘을 만든 자가 바로 그 레우 브라우흐입니다.”

“아...”

석민이 짧게 탄성을 자아냈다.

악튜러스 회상 속에 나오는 그 할아버지 이름이 레우 브라우흐일 줄이야.

“그건 몰랐네. 그럼 악튜러스는 뭔가 알고 있을 지도 모르겠네?”

“그럴 지도 모르지요. 아무튼 제가 알고 있는 건 이게 전부입니다. 나머지는 그 골렘에게 물어보는 게 나을 듯싶군요.”

석민은 곧장 송파구에 위치한 대형 경기장으로 향했다.

악튜러스는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경기장에 도착한 석민은 두 달 후에 있을 월드 그랑프리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던코리아 일렉트로닉스 관계자들을 지나 악튜러스와 마주치게 됐다.

악튜러스는 경기장 중앙에 마련된 거치대에 있었는데, 석민이 다가오자 알아서 눈을 떴다.

‘왔구나.’

기분 좋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왔어. 나 궁금한 게 있는데 질문해도 돼?”

악튜러스는 침묵으로 긍정했다.

어차피 교감이 있는 사이라 악튜러스가 긍정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석민은 곧바로 질문을 던졌다.

“레우 브라우흐란 이름을 오늘 듣게 됐거든. 그 이름이 그 할아버지 이름이야?”

‘실로 오랜만에 듣게 되는군.’

악튜러스는 그 물음에 답하기에 앞서 우선 놀라움을 표했다.

‘그런데 내가 보여주지 않았을 과거일 텐데. 그 이름은 대체 어떻게 알았지?’

“까리뽕이 알려줬어.”

‘어리석은 리치가 또 쓸데없이 혀를 놀렸구나.’

그 말에 흠칫 놀란 까리뽕이 헛기침을 터트리며 악튜러스의 사정거리에서 살짝 벗어났다.

주먹을 내리찍어도 닿을 수 없을 만큼 거리를 벌린 까리뽕이 그 방정맞은 입을 벌렸다.

“흐흠! 저한테 너무 뭐라고 하진 마십쇼. 저도 아는 걸 말하다가 그렇게 된 겁니다.”

‘변명은 됐다.’

석민이 퍽퍽한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래서 알려줄 수 있어? 레우 브라우흐에 대해서. 다르게 말하면 그 할아버지에대해 알려줄 수 있냐고 묻는 거야.”

‘그는...’

악튜러스의 말이 늘어짐과 동시에 석민이 보는 시야가 변했다.

또 다시 과거 회상이다.

“악튜러스, 괜찮느냐?”

“졌어요.”

회상 속 악튜러스는 성전에서 패한 패잔병으로 되돌아왔다.

성전을 주도했던 교단 사람을 포함한 그 누구도 살아 돌아온 그를 환대해주지 않았다.

패잔병에게 아량을 베풀 정도로 에아의 사정이 녹록치 않았던 탓이다.

그런 악튜러스가 집으로 돌아오자 장년의 마도사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무사해서 다행이구나. 정말 다행이야.”

“저는 왜 이 모양 이 꼴일까요? 저는 절대 킬제덴을 넘어설 수 없는 걸까요?”

에아에 도착한지 언 10년이 지났다.

그 사이 악튜러스는 건장한 청년으로 성장했고, 덩치는 평소 아버지라 불리는 그보다도 더 커졌다.

이 시간 동안 악튜러스는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됐다.

자신을 구해주고 스스로 아버지라 칭한 저 남자.

저 남자가 사실 제 친아버지가 아니란 사실을 말이다.

“알려주세요 아저씨.”

“아저씨라니? 난 네 아버지라니까?”

“이제 그만하세요. 진짜 제 아버지라면 저랑 닮으셨겠죠. 하지만 아니잖아요.”

그들과 어울려 살고 있던 이웃 사람들도 둘의 부자지간을 부정했다.

그만큼 둘의 생김새가 많이 달랐던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악튜러스는 그와 달리 마법사의 재능이 전무했다.

마나를 다루지 못하는 몸.

그렇기에 어느 순간부터는 그의 아들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제가 만약 아저씨의 진짜 아들이었다면 마나를 다룰 수 있었겠죠. 하지만 아니잖아요. 전 마나를 다룰 수 없어요. 그런 몸이구요.”

악튜러스는 그가 가진 마법사의 재능을 진짜 눈곱만큼이라도 넘겨받았다면 패잔병 형식으로 돌아오지 않았을 거라 확신했다.

그런 악튜러스를 보자 레우 브라우흐는 옅게 웃어주었다.

“사랑하는 내 아들 악튜러스, 네가 한 가지 잘못 알고 있는 게 있구나.”

“그게 뭐죠?”

“이 애비도 사실 마법사의 재능이 전혀 없단다.”

“예?”

이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란 말인가?

악튜러스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반문해주었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아저씬 그냥 마법사잖아요?”

“이 세상엔 잘 알려지지 않은 네거티브라는 속성이 있다.”

악튜러스 과거 회상을 보고 있던 석민은 제가 알고 싶어 하는 부분이 나오자 집중해서 들었다.

“그 속성을 가진 자는 일반적인 마법사와 다른 길을 걷게 된단다. 그게 어떤 길이냐면. 어디 보자. 이걸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잠시 뜸을 들이던 그가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 이렇게 설명해보지. 무의 공간에서 홀로 저만의 왕국을 그리는 일이라고 할까? 이 정도면 좀 괜찮은 설명이려나.”

“그게 무슨 말이에요? 홀로 왕국을 그려요?”

“말이 그렇다는 것이다. 다른 마법사와 다르게 혼자서 모든 걸 해야 하지. 완전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야. 아니지. 어쩌면 혼자만의 망상일 수도 있겠구나. 하지만 그 결과는 전부 현실이지. 마치 마법처럼 말이야.”

“전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어요. 대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내가 했던 설명이 어렵거나 이해할 수 없다면 미안하구나. 아무튼 한 가지 확실한 건 내가 다른 마법사와 다르다는 점이다. 엄밀히 말하면 마나도 다룰 수 없는 그런 몸이지. 하지만 같은 마법사는 나를 마법사로 볼 수 있단다. 일반적인 마법사가 마나를 가득 채운 단지라면 나는 마나 없는 단지거든.”

갈수록 이어지는 말들이 가관이었다.

악튜러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손부터 저었다.

“됐어요. 지금 저랑 장난하시는 것도 아니고 마법사가 무슨 마나도 못 다룬다고 하시는 거예요 진짜. 지금 저 놀리시는 건가요?”

“놀리는 게 아니라 진짜란다. 나는 네거티브 마법사다. 그리고 너처럼 마나가 없고, 다루지도 못하지. 이건 거짓 하나 없는 사실이란다.”

“그걸 누가 믿을까요? 아마 아무도 안 믿을 걸요.”

“이해한다. 어쩌면 이건 나만의 망상일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결과가 현실이란 게 문제지. 그래서 나 역시 나를 마법사로 인정하고 말았단다.”

악튜러스는 그가 장난치는 줄 알고 고개를 저으며 무시했다.

그러면서 다른 쪽으로 관심을 돌렸다.

“아무튼, 전 다시 떠날 겁니다. 수련이 부족했던 거 같아요. 이 몸을 극한까지 단련시켜야겠어요. 태생이 비루해서 마나를 다루진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제 자신과 제 진짜 부모를 탓하진 않을 겁니다.”

“이 녀석아, 내가 네 진짜 애비래도?”

“그걸 누가 믿습니까? 겉과 속 완전 다 다른데. 전 바보가 아니에요.”

잠시 고향 같은 집에 돌아와 체력을 보충한 악튜러스는 또 다시 떠날 채비를 했다.

“또 어딜 가는 게냐? 좀 더 있다가거라. 아버지 섭하게.”

악튜러스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싫어요. 그리고 킬제덴을 죽일 때까진 이곳엔 두 번 다신 안 올 겁니다. 만약 제가 안 돌아온다면 죽은 줄 알고 계세요 아버지.”

그래도 저를 키워준 은혜는 아는 모양인지 부랴부랴 떠날 때는 그를 무의식적으로 아버지라 불렀다.

대마법사라 불리는 레오 브라우흐.

놀랍게도 그는 사지로 찾아가는 악튜러스를 말리지 않았다.

왜냐?

악튜러스의 운명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그때가 안 됐으니 너무 걱정하진 않아도 되겠군. 문제는 그때인데...’

회상이 끝났다.

네거티브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됐지만 석민은 아직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 혹시 망상이 현실이 되는 그런 말일까?’

여기에 대해 악튜러스가 미안함을 전했다.

‘그는 스스로를 네거티브 마법사, 또는 망상가라 불렀다. 왜 그렇게 불렀는지는 본인만이 알고 있겠지. 아무튼 나 역시 속 시원한 대답을 해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아니야 괜찮아. 크게 중요한 일도 아닌데 뭘. 그리고 내가 네거티브인지도 확실하지 않아. 그 여자애도 잘 모르고 한 소리일 수도 있으니까.”

여기에 대해 까리뽕이 목소리를 냈다.

“그건 아닙니다. 고대서에 나온 것처럼 네거티브 마법사와 주인님과의 묘사가 많이 일치합니다. 우선 마나가 없을 뿐, 몸에 뻗혀 있는 마나의 맥 같은 걸 보면 대마법사 뺨치는 체질자입니다. 마나가 조금만 있었어도 궁중 마법사 정도는 가지고 놀았을 거라 추측됩니다.”

< #40 네거티브 > 끝

ⓒ 대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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