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파이트-133화 (133/173)

< #39 철의 장막 >

아티팩트로 무장한 어스 골렘.

황금 골렘을 때려눕혔으며 황족까지 사로잡았다.

황족이 가진 전능안은 사실 만능안이다.

그 어떤 동력도 흉내 낼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전능의 의미가 부여됐다.

분명 개안했을 그 힘을 무시하면서까지 황족을 사로잡았다는 건 보통 골렘이 아니라는 소리다.

“대체 누구냐?”

마법사의 물음에 악튜러스는 땅을 내리찍었던 주먹을 들어 올리며 섬뜩한 시선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대가 굳이 알 필요는 없다. 제국의 개여.”

늙은 마법사가 헛기침을 터트리며 악튜러스를 주시했다.

마법사는 한동안 악튜러스와 시선을 주고받다가 이내 자신을 찾아온 헌터가 입을열자 그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 황족이 저희에게 붙잡힌 건 알고 계시겠죠? 그런데 거짓말 같은 거 하면 재미없어집니다.”

“무언가 대단히 착각하고 있군. 전하는 전능하신 분이다. 그대들이 잠시 붙잡고 있다지만 그게 얼마나 갈까? 전하께서 자력으로 빠져나오시기 전에 곱게 풀어주는 게 맞지 않을까 싶네만?”

그들이 전하라 칭하는 소녀가 어떤 힘을 가졌는지는 미지수다.

그래서 차태식은 무언가를 쉽게 판단할 수 없었고, 노인의 말에 끌려 다닐 수밖에없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악튜러스는 달랐다.

‘순 거짓말이다. 그 소녀가 정말 전능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

노인은 눈에 힘을 주며 답했으나 악튜러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내가 계속 죽여도 괜찮겠지. 전능한 그녀는 무조건 살 테니까.”

“그, 그건...”

전하의 옥체에 변고가 생긴다면 그도 무사할 수 없었다.

황제가 그 죄를 물어 분명 벌을 내릴 테니까.

그게 죽음일수도 있었다.

악튜러스와 대면하는 노인의 표정이 좋질 못했다.

‘저 골렘이 많은 걸 알고 있어. 보통 골렘이 아닌데 대체...’

노인은 아는 게 많은 마법사였다.

대전 골렘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제 기억을 가만히 되짚어보니, 아주 오래전에 사라졌다는 고대 골렘들을 떠올리게 됐다.

“혹시... 일레븐 스타?”

노인의 물음에도 악튜러스는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섬뜩하게 내려다보는 표정은 그대로.

‘전능안은 절대 전능이 아니다. 동력은 본디 방대한 마나를 잡아먹길 마련. 만약 그 아이를 반복해서 죽인다면 그땐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나올 것이다. 그걸 바라는가? 제국의 마법사여.’

악튜러스가 협박조로 나오자 가만히 듣고 있던 차태식이 화들짝 놀라며 나섰다.

“아 잠시만요. 저희가 협박하고자 여기 이 자리에 있는 게 아니라 보다 평화로운 해결책을 찾기 위해 찾아온 겁니다.”

노인의 시선이 차태식에게 향했다.

노인은 아까 했던 거짓말을 물리고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알려주었다.

“평화로운 해결책? 흥. 그 평화는 그대들이 먼저 깨트렸다. 이따금씩 우리 영역에 침노하여 아무 허락도 없이 몬스터를 죽이고 아티팩트를 가져가는 게 바로 당신들이다. 그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가 떠안고 있지. 이런 상황에서 진정한 평화가 과연 있을 수 있을까? 그게 해결되지 않는다면 평화는 없다.”

“아니 그거야 우리가 몰라서 그랬던 거고. 이제부터라도 주의하겠습니다. 저희도먹고 살아야죠.”

먹고 살기 위해 남의 영역에 침노했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

헌터들도 제 배를 채우기 위해 상식적으로 침노해서는 안 될 땅까지 찾아가는 것이다.

만약 먹고 사는 일로 레이드를 뛴다면 현실 게이트와 그리 멀지 않은 필드에서 레이드를 뛰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그렇게 곱게 사는 헌터가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다들 제 배를 채우기 급급한데.

차태식이 모든 헌터들을 대변하여 변명을 하자 늙은 마법사는 고개를 저었다.

“위대하신 라께선 일방적인 관계에 있어서는 절대 그대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을 것이다. 전쟁을 원하는가? 그럼 좋다. 계속 그렇게 하거라. 우린 전쟁을 결코 마다하지 않는다.”

차태식이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자기가 생각하던 진행이 아니었기에 그러했다.

“그럼 저희가 그 전하라는 분을 풀어주면서 앞으로 제국 땅에 안 들어간다고 한다면, 저희를 봐주시는 겁니까?”

“그 동안 그대들이 제국 땅에 찾아와 배를 채운 게 있다면 그걸 전부 돌려줘야만 한다. 오직 그것만이 라께서 바다와 같은 넓은 아량으로 그대 야만족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차태식은 그 즉시 표정을 구겼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지금까지 전 세계 헌터들이 제국 땅에서 착취한 게 얼마인데.

그걸 다 취합해서 돌려주는 건 말도 안 됐고, 헌터들의 이기심을 봤을 때도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건 불가능할 거 같은데... 그럼 저희랑 전쟁하잔 의미고 당신 전하라는 분이 죽어도 괜찮다는 말입니까?”

“그건 아니다.”

늙은 마법사는 은근히 악튜러스를 신경 썼다.

이 자리에서 거짓말을 해도 됐지만, 그랬다간 뒤에 있는 어스 골렘이 나설 것이다.

그래서 거짓말은 하지 못했다.

“전하의 안전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럼 뭘 어쩌자는 겁니까?”

“사실...”

늙은 마법사가 말꼬리를 흐렸다.

“이건 내가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지금 이 불미스런 소식을 라께 전했으니 곧 라께서 명을 하달하실 것이다.”

“하 골 때리네. 그럼 그걸 기다려야한단 말입니까?”

“물론이다.”

보아하니 직접 협상을 위해선 제국까지 찾아가 그 황제를 만나야할 것 같았다.

하지만 머리에 총을 맞지 않고서야 제 발로 사지를 찾아간다는 건 있을 수도 없는일.

“저도 이쪽 결정권자가 아니니까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그나저나 그 라께서 내리신 명은 대체 언제 도착한답니까?”

“그리 오래지 않을 것이다. 빠르면 내일. 늦어도 모레면 명이 하달 될 것이다.”

“그럼 저도 그쯤에 다시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나 기억하라 야만인들이여. 라께선 제 배만 채우는 야만인들에게 그리 자비롭지 않을 것이다.”

대화를 마친 차태식은 군부대로 돌아왔다.

돌아와 보니 전날 없었던 미군들이 대거 추가되어 있었다.

그리고 군부대 상황실에선 소식을 듣고 찾아온 대통령의 모습도 보였다.

대통령 한대성이 차태식에게 아는 척을 해왔다.

“오 태식 씨. 다녀온 일은 어떻게 됐습니까?”

차태식은 앞서 마법사와 대화한 내용들을 전부 알려주었다.

그 말을 듣게 된 높으신 분들이 침음을 흘렸다.

사안이 결코 가볍지 않았다.

“먹을 걸 다 뱉어내라니요? 그런 건 불가능합니다.”

헌터들이 제국 땅에서 가져온 건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었다.

어느 골렘의 장비일 수도 있었고, 또 어느 헌터의 장비일 수도 있었다.

또 어떤 것은 연구실에 있을 터.

그러니 제국 마법사의 제안은 수용이 불가능했다.

“그럼 전쟁을 하자는 건데...”

“붙잡은 황녀만 잘만 이용한다면 전쟁은 피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쪽도 황녀 안전은 생각할 테니까요.”

“하지만 언제까지 붙잡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전쟁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서든 계속 붙잡고 있어야죠.”

어른들이 상황실에 모여 난리를 치고 있을 때.

석민은 악튜러스와 함께 붙잡은 황녀와 대면하고 있었다.

석민은 죽었다 살아난 소녀가 아주 신기하게 느껴졌다.

‘어떻게 살아났을까?’

하지만 소녀와 정상적인 대화는 불가능한 상태였다.

소녀의 전신은 포승줄에 포박되어 있었고, 입엔 재갈을 물리고 그 눈은 눈가리개가 씌워져 있었다.

그리고 죄인처럼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는데, 이는 군인들이 한 조치였다.

소녀가 마법사이기에 헌터들의 조언에 따라 이런 식으로 포박해놓은 것이다.

물리적인 마법 구사를 사전에 차단하고 언령이나 동력 사용을 미연에 방지한 것.

그리고 그 앞엔 악튜러스가 버티고 있었다.

총을 든 군인들도 넷이나 경계를 서고 있었지만 악튜러스에게 다가가는 석민을 따로 제지하지는 않았다.

골렘 주인이었으니까.

석민은 악튜러스를 불렀다.

“악튜러스.”

‘말하거라.’

“나 쟤랑 대화하고 싶은데, 괜찮을까?”

악튜러스는 가만히 있다가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마음대로 하도록.”

그 말은 안전하다는 의미다.

석민은 포박되어 있던 소녀에게 다가갔다.

그때 주변에서 경계를 서고 있던 군인들이 화들짝 놀라 소리쳤지만 이내 악튜러스가 노려보자 말리진 못하고 멀찍이서 손만 뻗어내는 제스쳐만 취했다.

군인들이 섣불리 나서지 못하는 것은 그들도 제 안전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석민은 소녀의 눈가리개와 재갈을 풀어냈다.

그러자 갑갑함에서 벗어난 소녀가 석민을 쏘아보며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무어라 소리치기 시작했다.

“락 크나 프라섹크라! 다나 메크라 루~ 싸막히!”

석민은 소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했지만 좋은 말이 아니라는 건 굳이 포켓이 없어도 알 수 있었다.

“악튜러스, 나 까리뽕 줘.”

석민은 악튜러스에게 맡겨놓았던 까리뽕을 되찾았다.

곧 악튜러스 입에서 혀 하나가 튀어나왔다.

까리뽕이다.

“부르셨습니까 주인님.”

석민은 포켓을 얻게 되자 드디어 소녀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미개한 변방의 야만족들 같으니라고! 이러고도 무사할 성 싶으냐! 위대하신 라께선 곧 그대들을 벌할 것이다!”

그 험악한 말에 석민은 웃으며 운을 뗐다.

“안녕? 만나서 반가워.”

흉흉한 말들을 늘어놓고 있던 소녀가 입을 닫고 석민을 노려보았다.

그때 보았던 소년이었다.

“그래, 그때 네거티브로구나.”

소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했지만 포박된 몸이 이를 불허했다.

소녀는 무릎 꿇은 자세에서 석민을 올려다보는 게 불만인지 표정을 구겼다.

석민은 소녀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무릎을 굽혀 앉았다.

둘의 시선이 맞춰졌다.

석민이 인사를 건넸다.

“난 차석민이라고 해. 넌 이름이 뭐야?”

소녀가 소년을 곱씹어보았다.

무슨 권리로 감히 말을 거는 것일까?

소녀는 기분이 언짢아졌는지 포켓으로도 해석이 불가능한 말들을 내뱉기 시작했다.

“푸, 까나 라챠. 쓰아.”

석민이 까리뽕을 쳐다보자 까리뽕이 입을 열었다.

“포켓으로도 해석이 불가능한 언어가 몇 개 있습니다. 아무래도 그것 같군요.”

“무슨 말일까? 너는 모르는 거야?”

“모를 리가요. 미개한 야만인. 주제를 알라 정도로 해석되는 군요.”

“그래?”

“보티스 층에 존재하는 소수 언어 중 하나입니다.”

석민은 소녀를 보며 웃었다.

“내가 싫어?”

소년이 짓는 미소 앞에서 소녀의 표정이 굳었다.

방금 전 노려보는 눈초리에서는 많이 발전된 형태.

소녀가 소년의 시선을 피했다.

그러면서 알 수 없는 말만 뱉어냈다.

“푸카.”

“저건 또 무슨 말이야?”

까리뽕이 빠르게 대답해주었다.

“웃지 마. 정도로 해석하시면 되겠습니다.”

석민은 더 웃어보였다.

그러다 놀란 아빠가 저 멀리서 다가오는 걸 보고는 재갈은 빼고 눈가리개만 소녀에게 씌워주었다.

소녀는 눈가리개가 싫은지 주변을 시끄럽게 했다.

“아들! 거기서 뭐하는 거야.”

“얘랑 얘기 좀 했어.”

“위험하잖아.”

차태식은 석민을 데리고 옆으로 빠졌다.

경계를 서던 군인들 중 하나가 그 상황을 보고했었고, 상황실에 있던 차태식이 그소식을 듣고서 부랴부랴 찾아온 것이다.

“아들, 쟤 마법사야. 위험한 거 몰라?”

“알아. 그런데 악튜러스가 대화해도 괜찮다고 했어.”

악튜러스가 그랬다면야 차태식도 딱히 할 말은 없었다.

“그래?”

차태식이 악튜러스를 쳐다보자, 악튜러스가 전음으로 설명을 해주었다.

‘불사의 힘은 생각보다 많은 마나를 잡아먹는다. 이미 여러 번 죽다 살아난 몸이니 그대가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 #39 철의 장막 > 끝

ⓒ 대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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