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파이트-129화 (129/173)

< #39 철의 장막 >

뜬금없는 소리.

그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흰머리가 보이는 최 노인이었다.

“무슨 좋은데? 나는 태식 씨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아 그게 말이죠. 제가 근래에 헌터가 된 건 알고 계시죠?”

차태식이 상황 설명에 들어갔다.

“아 알지. 그걸 모르면 쓰나. 우리 태식 씨가 성공한 거 이 동네 사람들이 다 아는 건데. 아들내미도 엄청나잖아. 손주 녀석들이 가서 사인받아달라고 난리야 난리.”

“그게 아들하고 상의하다가 근처에 집 하나 짓기로 했거든요. 아시잖아요. 돈도 벌었겠다 좀 더 나은 집에서 살고 싶은 거.”

“알지. 그 맘 누가 모를까.”

“여기가 바로 고물상 옆 건물이니까. 이 건물하고 주변 건물들 사서 집 하나 크게지으려고 합니다.”

“뭐? 집? 얼마나 크게 지으려고.”

그는 어리둥절했다.

두 부자가 돈 좀 만진다는 소문을 듣긴 했으나 고물상 옆에다 커다란 집을 지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좀 크게요.”

“아니 그 말은 나보고 여길 나가라는 건데 갑작스럽게 그러면...”

“영감님. 제가 그냥 나가라 하겠습니까? 시세보다 좀 더 내어드릴 테니 이참에 좋은 데로 옮기시죠. 이런 기회 흔치 않습니다.”

최 노인은 난데없는 제안에 머릿속이 어지러워졌다.

“태식 씨가... 그렇게 돈을 벌었어?”

차태식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뭐 나쁘지 않게 벌었죠. 여기 근처에다가 집 지을 정도는 벌었습니다.”

“아니 잠깐만. 그래도 여기 건물이면 못해도 13억은 될 텐데.”

40년에 육박하는 건물 수명.

서울권에 위치한 건물이라지만 역세권과도 멀었고, 주변 상권도 거의 죽어 있었다.

듬성듬성 남아 있는 옛 향취의 가게들만 터줏대감처럼 지키고 있는 이곳.

건물 가격은 생각보다 비싸지 않았다.

“13억이요? 이 건물 시세가 13억이면 음...”

차태식이 잠시 고심하더니 이내 생각하던 바를 입으로 뱉어냈다.

“그럼 15억을 드리죠. 지금 파시면 2억 정도 이익보시는 겁니다.”

평소 건물 가격에 관심 없던 차태식도 이 근방이 죽은 땅이란 건 잘 알고 있었다.

“뭐 2억?”

처음엔 이게 웬 봉창 두드리는 소린가 했더니, 뒤에 이어지는 돈 이야기를 듣고는최 노인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재개발된다는 소리도 없었고.

매물로 내놓아도 사는 사람 하나 없는 이 건물을 시세보다 2억이나 더 높게 사주겠단다.

“허허, 이거 참. 2억이라고?”

“네. 2억 더 얹어드리는 겁니다. 그 정도는 챙겨 드려야죠.”

생각지도 못한 2억이란 큰 돈 앞에서 눈이 뒤집히기 직전.

하지만 그가 무조건 산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일단 생각해보세요. 아 그리고 저희 고물상 왼편 아니면 오른편을 싹 밀어버리고 건물을 올릴까 생각 중이거든요. 여기가 오른편이니까 제가 오른편 건물주들과 이야기 좀 해보고, 만약 가격 협상이 좀 애매하다 싶으면 왼편에 있는 건물주들과 상의해서 그쪽을 사들일 생각도 있습니다. 그럼 제가 여기서 한 이야기는 없던 걸로하시면 됩니다.”

“그게 무, 무슨 말이야?”

“꼭 이 건물을 사겠다는 말이 아니라는 겁니다.”

“뭐, 뭐? 그럼 고물상 왼쪽 건물들도 생각 중이라고?”

“네. 뭐 저희야 건물만 올리면 돼서요.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뭐 그런 거죠.”

“어어, 일단 알았어. 일단 알았으니까 차 씨는 이만 가봐. 내가 좀 생각 좀 해볼게.”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밖을 나가려던 차태식이 돌연 뒤에 있던 최 노인을 불렀다.

“저기 영감님.”

“응?”

“이런 기회 흔치 않은 거 잘 아시죠? 그럼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최 노인의 머릿속은 오직 2억의 시세 차익 밖에 없었다.

차태식이 다른 건물주를 만나기 위해 가게를 나서자 최 노인은 부랴부랴 가게를 나섰다.

차 씨가 마음이 바뀌어 고물상 왼쪽 땅을 사들인다면 방금 전 이야기가 아예 없던것이 되기 때문이다.

차태식이 바로 옆 건물에 있던 구멍가게를 방문하자 최 노인이 근처 부동산으로 뛰어갔다.

잠시 후.

이 동네에서 조그마한 부동산을 하는 하 씨가 부랴부랴 최 노인과 함께 가게를 나섰다.

앞장을 선 하 씨는 인근 일대 부동산 건물주들에게 급히 연락을 넣었다.

얼마 후 하 씨는 최 노인과 함께 근처 국밥집을 하고 있던 왕 서방네 가게를 찾아갔다.

“왕 서방.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순대 고기를 썰고 있던 왕서방은 갑작스런 하 씨 출현에 당황했다.

최 노인은 왜 왔을까?

주인 허락도 없이 주방과 가까운 식탁 의자에 앉은 하 씨가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왕 서방, 고물상 집 젊은 차 씨 알지? 이번에 헌터 됐다고 하던 그 차 씨 말이야.”

“아 태식 씨? 알죠. 그 사람 누가 몰라요.”

“지금 그 차 씨가 이쪽 건물들을 막 사들이고 있대.”

그 말에 놀란 건 그 국밥집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있던 인근 상가 주인 오 씨였다.

오 씨가 구수한 사투리를 구사하며 말을 붙여왔다.

“뭐시여? 차 씨가 시방 건물을 사들여? 왜 여기 재개발이라도 된대?”

“아니 재개발은 무슨. 그게 아니라 자네도 들었잖는가? 차 씨가 헌터고 그 아들내미가 골렘 파이터인 거.”

“골렘 파이터? 아 챔피언? 알지. 그 아들놈이 엄청 영특하다면서? 나도 길가다 몇 번 봤지. 고놈 쭈쭈빠 빨면서 걸어 다니는 게 아직도 눈에 선해. 그런데 그 부자가 그렇게 돈을 벌었어?”

“아따 말도 못해. 지금 엄청 부자야. 지금 이 동네에서 차 씨 부자가 완전 벼락부자라니까.”

“그래서 이 건물을 산다고? 대체 얼마에 산다는데?”

“시세보다 좀 더 높게 쳐준다고 하나봐.”

부동산업자 하 씨를 따라 나온 최 노인이 나섰다.

“우리 건물이 13억 정도 나가는데, 차 씨가 와서 하는 말이 2억 정도 더 얹어주겠대.”

“뭐?”

국밥을 우겨넣고 있던 오 씨가 입에서 밥알을 뿜어냈다.

너무 놀란 나머지 벌인 일이다.

“지금 뭐라고 했어? 뭐 2억씩이나? 그게 참말이여?”

“그렇다니까.”

“오메. 그럼 내 건물은 얼마나 줄려나.”

“그건 모르지.”

차태식은 어느 건물이든 시세보다 2억 높게 불렀다.

이야기가 퍼지자 동네 건물주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모인 곳은 동네에서 소문난 순대국밥집.

“자자, 모두 이야기는 다 들으셨겠죠?”

젊은 동네 반장이 운을 떼자 여기저기서 말들을 쏟아져 나왔다.

“아 들었지. 한놈도 빠짐없이 모인 거 맞지?”

“다 모였어. 아 맞네. 만물상 이 씨가 해외여행을 가버렸네. 그 아들놈이랑 홍콩 갔다고 하나봐.”

“뭐 홍콩? 이 사람이 지금 때가 어느 땐데 홍콩을.... 그래서 연락은 돼?”

“연락이야 넣었지. 알았다고 했어. 그냥 여기서 결정 나면 그대로 따르겠대. 우리만 잘하면 돼.”

젊은 반장이 다시 대화를 주도했다.

“자 영감님들. 지금부터 제 말 잘 들으세요. 지금 고물상 차 씨 아시죠? 그 잘생긴 젊은 사람 있잖아요.”

“아 알지. 그 사람 모르면 이 동네 사람이 아니지.”

모인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젊은 친구가 이참에 이쪽 라인 건물들을 싹다 사들이겠답니다. 보니까 어느 건물이든 시세보다 2억 정도 더 높게 부른 거 같더라고요.”

수긍하는 모두.

젊은 반장이 말을 이었다.

“여기에 대해 얘기 좀 해봐야할 거 같아서 제가 전부 모이게 했습니다. 자, 하실 말씀 있으시면 이 자리서 전부 하시면 됩니다.”

누구에게는 시세 차익으로 얻게 될 2억이란 돈이 엄청 커 보일 수도 있겠지만.

또 누구에게는 같잖은 돈일 수도 있었다.

왜냐면 그들은 나름 건물주였으므로.

모여 있는 이들 중 돈을 가장 밝히는 서 씨가 나섰다.

그는 나이가 젊었고 가지고 있는 건물도 두 채나 됐다.

“좀 뻐팅겨 볼까요? 들어보니까 차 씨가 돈을 많이 벌었다면서요? 그럼 2억보다 더 받아낼 수 있을 거 같은데.”

그 말에 놀란 최 노인이 나섰다.

“아따 이 사람아. 이거 큰일 날 소리하네. 그러다 건물 안 산다고 하면 그땐 어쩌려고? 아까 차 씨 말 들어보니까 고물상 오른편 못 사면 왼편을 전부 사들인다고 했어. 이거 까딱하다가 우리가 아니라 저쪽 왼편 건물주들이 이익 보게 생겼다니까.”

그 말에 서 씨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좀 그렇네요. 근데 진짜 왼편도 사겠대요?”

“내가 차 씨가 왼편 건물주 만나는 거 몰래 보고 왔어. 진짜야. 까딱하면 우리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웃어.”

머리를 긁적이던 그가 짧게 고심하더니 이내 생각을 굳혔다.

“여기 땅 값도 잘 안 오르는 곳인데, 이참에 다 팔아버리시죠?”

8년 전, 과거 일본처럼 한국 부동산 시장도 크게 휘청거리던 때가 있었다.

강남을 포함한 몇몇 지역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인 부동산 가격이 크게 하락하게 됐는데, 그 이후로는 이곳을 포함한 서울 부동산 가격이 잘 안 오르고 있었다.

“그래도 나름 추억이 있는 곳인데... 선뜻 팔아버린다는 게.”

누군가 아쉬운 소리를 하자 젊은 반장이 나서서 한 마디 해주었다.

“그 추억은 2억으로 다시 만드시고. 아무튼 전부 파시는데 동의하시죠? 이거 한 명이라도 동의 안 하면 차 씨가 안 산다니까 전부 동의를 해줘야 합니다.”

그렇게 말이 맞춰지는가 싶더니 또 누군가가 아쉬운 소리를 했다.

“아니 차 씨가 헌터면 정부쪽 사람들하고 무슨 관계가 있을 텐데... 혹시 여기 무슨 재개발 되고 그러는 거 아니야? 그럴 수도 있잖아.”

그 말에 최 노인이 다시 난리였다.

“떽! 그러다 왼편 사람들이 웃는다니까! 무슨 재개발이여 재개발! 여기 재개발 절대 안 돼!”

“아니 재개발 될 수도 있죠. 아니면 그 많은 건물들을 왜 전부 사들인데요?”

“다 밀어버리고 자기 집 짓는다고 하잖아! 돈 많이 번 부자니까 큰 집 하나 지을 수도 있는 거지. 상식 아니야?”

“그러다 여기가 재개발되면요?”

“아 글쎄 재개발 안 된다니까!”

그렇게 고물상 오른편 건물주들이 난리를 치고 있는 동안.

고물상 왼편 건물주들도 부랴부랴 모여들어 회의를 열었다.

“차 씨가 지금 오른편 땅을 사들이려고 하나봐. 그런데 거기서 불발되면 이쪽 땅을 사들이겠대.”

그 말에 왼편 건물주들이 화색이 돌았다.

“그 말이 진짜지?”

“진짜지. 지금 저쪽 건물주들 다 모여서 회의하고 난리 났어.”

“잠깐만. 그럼 차 씨가 저쪽 건물을 다 사버리면 우린 뭐야?”

“뭐긴 뭐야. 나가리지.”

“그러니까 우리가 선수를 쳐야지! 우리가 가서 좀 낮은 가격에 팔아준다고 하면 되지 않을까?”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우리도 돈 때문에 파는 건데.”

하지만 여기서도 잡음이 있었다.

바로 재개발에 대한 희망.

“아니 잠깐만. 이거 수상한대? 지금 여기 재개발되는 거 아니야?”

“무슨 재개발이야. 재개발은 아니래.”

“아니 그걸 누가 알아? 여기 재개발 될 수도 있지.”

그들 역시 오른쪽 건물주들과 같은 추리를 했다.

“고물상 차 씨가 이 나라에 얼마 없는 S급 헌터라면서? 그럼 정부쪽 사람들하고 짝짝꿍해서 재개발 정보도 얻고 막 그랬던 거 아니야?”

“아니 설마. 차 씨가 그렇게 우릴 등쳐먹으려 할까?”

“이 사람이. 그걸 누가 알아? 세상일은 아무도 모르는 거야.”

“차 씨가 부자야. 그런 사람이 동네 사람들 원수로 두려고 그런 짓을 할까? 아니야. 그러진 않아.”

“이 사람 참으로 웃긴 사람일세. 야 이 사람아. 원래 부자들이 더 그러는 거야.”

“하긴. 그걸 누가 알겠어?”

좀처럼 모이지 않는 의견.

재개발에 대한 의심은 처음엔 얕았지만, 회의가 진행될수록 어느샌가 고물상 인근 땅은 재개발지역이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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