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파이트-127화 (127/173)

< #38 JP >

요르문간드의 등장.

겐지의 눈빛이 칼처럼 변했다.

성가신 존재들이 등장했다.

JP가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자신을 노려보는 뱀들이 살벌하다.

그냥 덤벼들었다간 저 뱀에게 잡아먹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엄습한다.

‘그래, 그 뱀이로군.’

겐지는 악튜러스의 지난 경기들을 분석했었고, 지금 불러낸 게 무언인지 그리 어렵지 않게 알아냈다.

흙으로 빚어낸 뱀 소환 마법.

‘소환마법인가?’

하지만 흙으로 이뤄져 있었다.

본디 흙은 바람에 휩쓸리기 마련.

JP가 악튜러스보다 좋은 코어를 앞세워 마나 출력을 높여갔다.

‘흙이야 바람 앞에 등불이지. 다 쓸어버리마.’

주변에 일던 바람이 더욱 매섭게 휘몰아친다.

관중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마나 보호막 안에 있었기에 내부에 이는 바람의 정도를 알 수 없었으나, JP가 끌어낸 광풍은 토네이도에 버금갔다.

그 광풍이 지금 막 소환된 요르문간드의 살점을 뜯어간다.

어디 그뿐이랴?

악튜러스 역시 흙으로 되어 있기에 요르문간드와 마찬가지로 대량의 흙을 소실해갔다.

그럼에도 악튜러스가 건제한 것은 잃었던 만큼 땅에서 새로운 흙은 퍼올려 제 몸을 채우기 때문이다.

광풍과 치솟는 흙더미.

경기장은 한치 앞도 안 보이는 흙먼지로 가득해졌다.

사막에 이는 모래 폭풍도 저 정도는 아니었다.

그보다 더 심했다.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경기장.

그곳을 중계하는 아나운서들이 열변을 토해낸다.

“아무 것도 안 보입니다! 안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여기선 전혀 파악이 되질 않습니다.”

“역시 윈드 골렘과 어스 골렘의 결전답네요. 어스 골렘이 그다지 선호되는 골렘은 아니라서 많이 볼 수 없는 모습이지만, 세계 정상급 골렘 결전에서 간혹 나오는 장면입니다.”

“비선호 골렘이라면 윈드 골렘도 마찬가지긴 하죠. 솔직히 JP 외엔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윈드 골렘이 없긴 합니다.”

“어스 골렘이 바람 속성에 약한 건 모두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윈드 골렘또한 약점이 있죠. 다른 골렘들에 비해 공기압으로 모든 공격이 이뤄지기에 그 위력이 많이 약합니다.”

윈드 골렘.

이 골렘은 바람을 지배하는 골렘이다.

자연계 속성이며 어스 골렘을 속성상 이기는 대표적인 골렘 중 하나.

하지만 어스 골렘이 그다지 선호 되는 골렘도 아니고, 대부분 대지 골렘들도 바람에 쉽게 휩쓸리지 않는 돌이나 금속 등으로 되어 있기에 사실상 윈드 골렘도 골렘 대전에서 자주 볼 수 없었다.

또한 윈드 골렘에겐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으니.

다른 골렘들과 다르게 물리 공격보단 속성 공격에 중점을 둔다는 점이다.

윈드 골렘은 바람으로 이뤄져 있었다.

바람은 곧 공기의 흐름.

그리고 공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이 윈드 골렘을 어떻게 식별할까?

답은 간단했다.

바람에 흙먼지나 무언가가 끼게 되면 윈드 골렘의 형태가 드러나는 것이다.

대부분 자연계에선 바람이 순수한 공기로만 이뤄져 있지 않았다.

모래에 이는 바람이면 모래를 포함했고, 대지에 이는 바람이면 흙먼지를 포함했다.

이야기가 다른 데로 샜지만 아무튼 윈드 골렘에게 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물리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때 모든 게 공기압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힘을 전달할 매개체가 공기 밖에 없으니 당연한 거겠지만, 아무리 출력이 높다고 한들 공기압만으로 물리력을 행사하려면 그 한계가 있는 법이다.

김요한 해설위원이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힘겨루기에서는 오히려 악튜러스가 더 유리할지도 모릅니다. 윈드 골렘이 물리력 행사에 완전 잼병이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JP가 윈드 골렘이냐?

그놈의 초경량화에 따른 고기동성을 선호했기에 나온 일이었다.

대신 JP는 이 분야에 있어서는 독보적인 위치를 고수했다.

오죽했으면 골렘이 하늘에 떠다니겠는가?

김요한 해설위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광풍을 뿜어내던 JP가 또 다시 하늘에서 섬광처럼 날아들어 그 쌍대검을 악튜러스에게 내리꽂았다.

루슬렉 쌍대검에 깃든 세트 효과는 바로 광란.

미치광이 검사처럼 대검을 무자비하게 휘둘러 수많은 적을 도륙 내는데 최적화 된 세트 효과였다.

물론 다수의 적을 상대로 쓰는 게 더욱 효과적일 테지만 이처럼 한 명의 적을 상대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하는 게 무엇이냐?

루슬렉 쌍대검 중 하나인 버쳐.

도살자 앞에선 칼 자랑하지 말라.

이 검은 도살자의 칼로 서슬 퍼런 칼날에 어린 광기와 숙련된 기술을 전승받는다.

검신 자체는 짧았어도 폭이 넓어 그 위력은 상당했다.

그 광기에 얼룩진 JP의 움직임이 더욱 무모해지고 숙련된 솜씨를 보인다.

서슬 퍼런 대검이 악튜러스를 양단하듯 내리그어진다.

하지만 그 궤적을 모조리 꿰뚫어내고 대응하는 악튜러스에겐 그조차 많이 모자라보였다.

섬광처럼 내리그어도 그 앞엔 항상 악튜러스의 롱소드가 버티고 있었다.

아무리 버쳐의 기억을 전승받아도, 어린 꼬마의 천부적인 재능 앞에선 무용지물인 것이다.

그런 악튜러스를 상대로 JP는 한 자루의 대검만 휘두르지 않았다.

나머지 한 자루, 바로 머셔너리.

그 대검엔 숱한 전장을 누비던 용병의 혼이 깃들어 있었다.

머셔너리는 버쳐와 다르게 검신이 꽤 길었다.

모두가 생각하는 그 대검이란 소리다.

그리고 이 대검엔 이능의 힘이 깃들어 있었다.

바로 바람의 상처.

머셔너리로 벤 자리는 그 힘을 거둘 때까지 상처가 지속적으로 남게 된다.

그리고 그 자리에 닿은 모든 것들은 예외 없이 베이게 된다.

즉, 바람에 상처를 남기는 고유 기술.

버쳐의 숙련된 기술 전승과 바람의 상처.

광기에 얼룩진 JP의 쌍대검은 갈수록 요란하게 악튜러스를 때려댔으나, 악튜러스는 한 자루의 롱소드와 다른 손에 걸린 피갈퀴 손으로 이를 쉽게 맞받아쳤다.

서로 주고받는 검들이 많아질수록 주변에 남겨지는 바람의 상처 또한 많았으나, 이 역시 경기장이 넓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었다.

상처가 남은 자리야 피하면 그만.

그래도 확실히 버쳐의 기억 전승은 위력적이긴 했다.

겐지의 기량이 석민에 비할 바가 아니었건만.

이미 비기고 있었으니까.

다만 여기서 아쉬운 점은 바로 속성.

만약 JP가 윈드 골렘이 아니었다면 악튜러스가 지금보다 더 곤란했을 것이다.

확실히 코어 자체는 JP가 더 좋았음으로 검을 계속 주고받았다면 악튜러스가 당연히 궁지에 몰렸을 테니까.

하지만 JP는 윈드 골렘이라 높은 출력의 이점을 살리지 못했다.

공기압이 아무리 좋아봤자 제대로 된 힘의 전달이 이뤄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출력이 높아도 그 힘을 온전하게 칼에 실지 못하니 이처럼 JP가 오히려 악튜러스에게 밀리는 모습까지 연출됐다.

겐지가 표정을 사정없이 일그러트렸다.

겐지도 JP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잘 알고 있었다.

윈드 골렘의 장단점은 본디 그 주인이 더 잘 알고 있는 법.

여기서 겐지가 아쉬워하는 건 JP의 속성이 아니었다.

‘이 새끼 괴물인가?’

버쳐의 기억을 전승을 하고도 그 검격들을 태연히 맞받아치는 상대 선수에게 있었다.

저건 괴물이다.

겐지는 딱 그런 생각이 들었다.

A급 아티팩트에 깃든 도살자의 기억을 전승했는데도 어떻게 그 검격들을 태연히 맞받아친단 말인가?

저 꼬마놈은 정녕 천재란 말인가?

자꾸만 뒤로 밀리는 JP에게 요르문간드가 달라붙었다.

맹렬하게 공격을 해오는 뱀들이 살벌한 송곳니를 내보이며 JP를 물려했으나, JP는 즉각 동력을 끌어올려 이를 제지시켰다.

JP에겐 안티 매직 사이트가 있었다.

마법적인 힘을 무위로 돌리는 동력으로 매직 캔슬과 비슷했다.

이 동력을 앞세우는 JP는 덮쳐오는 요르문간드를 모조리 흙으로 돌려보냈다.

펑펑 터지면서 흙먼지로 흩뿌려지는 요르문간드.

그 흙먼지 아래 무섭게 튀어나오는 악튜러스가 롱소드를 휘둘렀다.

그 검격을 버쳐의 칼로 쳐내는 JP가 연달아 머셔너리 대검을 휘둘렀다.

그 바람에 두 골렘 사이로 바람의 상처가 새겨졌다.

보통이라면 악튜러스는 이 바람의 상처를 무시할 수 없어 뒤로 빠져야 했으나, 악튜러스에겐 이면세계가 있었다.

바람의 상처를 무시하려는 악튜러스가 이면세계에 들어선다.

그 바람에 악튜러스의 목을 쳐내려던 버쳐가 무섭게 허공을 갈랐다.

선수들의 희비가 엇갈린다.

이 순간 겐지가 크게 욕지기를 내뱉었다.

솟구친 짜증이 제 감정을 대변하는 욕설로 변형된 것이다.

그 모습은 추하기 짝이 없었다.

“개 같은 새끼가 또 어디로 숨은 거야!”

악튜러스는 죽은 자의 세상에서 제 앞에 놓여 있던 바람의 상처와 JP마저 통과해버렸다.

이후 실체화.

모습을 드러낸 악튜러스는 그 즉시 뒷발차기를 날려 어리둥절하던 JP를 엎어트렸다.

강한 충격에 앞으로 나동그라지는 JP는 거의 반사적으로 바람을 뿜어내며 하늘 높이 치솟아 올랐다.

JP 역시 일반적인 골렘이 아닌 만큼 대응이 빨랐다.

거센 바람과 함께 창공으로 솟구치는 JP가 또 다시 하늘에 걸렸다.

겐지가 뿌연 흙먼지 속에서 그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긴장이 풀렸다.

어차피 상대는 자신처럼 하늘을 날 수 없었다.

또한 시야가 안 보이니 마법적인 공격 역시 무의미했다.

이걸 무시하려면 하늘 전체를 공격해야하는데 그런 마법은 지금까지 본 적도 없었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이쯤에서 겐지가 숨을 돌렸다.

‘휴, 살았네. 잠시 숨 좀 돌리고 생각 좀 하자. 저 깡통 골렘을 어떻게 깨부술지.’

그 순간 뿌연 흙먼지를 뚫고 올라오는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창들이 있었다.

그 창들은 전부 흙으로 빚어졌으며, 모두 악튜러스의 작품이었다.

하늘로 뻗어나가는 수많은 창들은 흙먼지로 가득한 하늘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버렸다.

그 무자비한 공격은 허공에서 잠시 숨을 고르던 나약한 천사를 대지로 추방시켰다.

겐지는 갑작스레 추락하는 JP를 보자 순간적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공격을 당했는지 감도 못 잡은 것이다.

‘출력은 문제없을 텐데?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지?’

겐지의 상식으로는 이 뿌연 안개 속에서 마법적인 공격은 불가능하다고 못을 박아버렸다.

앞서 생각한대로 이게 가능하려면 하늘 전체를 공격해야하는데, 그게 말이 되겠는가?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천사와 맞물려 휘몰아치던 광풍도 잦아들었다.

천사는 하늘에서 추방됐으나, 이를 맞이하는 땅은 자비란 게 없었다.

잠잠하던 흙더미가 악튜러스의 지배력 아래 하늘에서 추방당한 천사를 집어삼켰다.

그 바람이 JP는 완벽히 블라인드 상태가 됐다.

깜깜하여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겐지는 JP가 서 있는지, 누워 있는지, 아니면 어떻게 됐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보이는 건 끝없는 어둠 뿐.

JP의 미래였다.

‘아무 것도 안 보이잖아!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겐지는 JP가 일으키는 바람이 문제라는 것을 알아차렸으나, 그땐 이미 늦은 뒤였다.

하늘에서 추방된 천사는 이미 대지의 감옥에 갇혔다.

남은 건 예고된 처형식 뿐.

순식간에 잠잠해진 대지.

JP와 링크 된 겐지는 아직도 어둠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이거 스카우터 고장인가? 아니면 흙속에 파묻히기라도 한 거야 뭐야?’

흙먼지에 시야가 가려진 건 사실 악튜러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석민은 보이는 시야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느낌만으로 경기를 풀어나갔다.

그 느낌에서 JP는 땅속 감옥에 갇혀 있었고 처형식만 남겨두고 있었다.

‘심판의 시간이야.’

석민은 악튜러스로 하여금 JP를 찌그러트리게 했다.

두 손아귀에 잡힌 거대한 무언가를 찌그러트리듯.

악튜러스가 대지의 힘으로 처형식을 거행했다.

제 골렘이 처형장에서 처형당하는 것조차 모른 채.

발만 동동 구르는 겐지는 그저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아니! 대체 어디로 간 거야!”

오죽했으면 답답함을 이기지 못한 겐지가 쓰고 있던 스카우터를 벗어 내렸다.

경기장을 보니 흙먼지가 자욱해 한치 앞도 분간이 안 됐지만.

스카우터처럼 완전히 검지는 않았다.

이쯤 되자 겐지도 슬슬 눈치 챘다.

‘설마!’

겐지가 뒤늦게 알아차리며 스카우터를 썼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흙은 바람과 다르게 물리력 행사에 있어 그 어떤 애로사항도 없었다.

코어 출력을 있는 그대로 물리력으로 전환시킬 수 있었고.

그 힘은 지금 지하 수십 미터로 끌려간 JP를 그대로 생매장시켜버렸다.

여기서 JP를 채우고 있는 공기압은 지하 수십 미터에서 발생하는 대지 압력을 버텨내지 못했고. 미스릴로 만들어진 코어 캡슐 역시 그 압력을 버티기엔 많이 무리였다.

만약 겐지가 코치의 말을 들어 JP의 장비를 전부 아다만틴으로 교체했다면 아마 버텼을 지도 모른다.

아다만틴은 물리 내성에 있어서는 최고의 금속이었으니까.

하지만 미스릴보다 무겁다는 이유만으로 아다만틴은 선택되질 못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초경량화만 고집해온 JP다운 최후였다.

지하 수십 미터 아래에 위치한 처형장에서.

JP의 코어 캡슐이 사정없이 찌그러졌다.

찌그러지는 코어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점차 줄어들더니 이내 영원한 어둠 속에 파묻혔다.

처형 완료.

< #38 JP > 끝

ⓒ 대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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