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파이트-123화 (123/173)

< #38 JP >

경기 시작 전.

짱치앙과 타이페이 골렘을 응원하는 대만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함을 내지른다.

“타이페이 넘버원!”

침까지 튀기며 응원하는 그들의 함성 아래, 일본 사회자가 경기 시작을 알린다.

“Ready, Fight!”

그 함성을 잠재우는 두 골렘간의 격돌.

각자를 향해 덤벼든 두 골렘이 서로 뒷목을 잡고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대치 상황은 오래지 않았다.

악튜러스가 코어 출력을 더 높이자 타이페이 골렘이 살짝 밀렸다.

힘에서 밀리자 짱치앙이 표정을 구겼다.

‘역시 밀리네.’

짱치앙은 한국 골렘을 은연중 무시하고 있었다.

그 동안 레드 데빌이 저조한 성적으로 아시아 랭킹 9위에 머물고 있었고, 자신은 7위였으니 그가 한국 골렘을 알게 모르게 무시해왔던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세계 무대에서 대만 골렘이 한국 골렘과 비교 당하는 걸 굉장히 기분나쁘게 생각했다.

비교할 거라면 차라리 수준 높은 중국이나 일본에 비교할 것이지 어디서 같잖은 한국과 비교를 하는지.

그래서 짱치앙은 악튜러스란 새로운 한국 챔피언이 나왔음에도 이를 은연중 무시할 뿐 크게 위협이 될만한 상대로 보지 않았다.

장비 차이나, 그 동안 경기 내용들을 봐서는 절대 무시하지 못할 골렘인데도 그 동안 가져왔던 선입견 때문에 상대를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다.

‘그래봤자 한국 골렘이지.’

알 수 없는 자신감으로 무장한 짱치앙이 입꼬리를 건방지게 비틀었다.

그 자신감은 글레이셔 골렘의 냉기 발산으로 이어졌다.

제 냉기를 뽐내기라도 하듯, 타이페이 골렘이 거센 냉기를 뿜어내며 그 위력을 과시한다.

그러자 악튜러스는 이면세계로 들어가 그 냉기를 피했고, 그대로 타이페이 골렘을 지나쳐 그 뒤를 잡았다.

사라진 악튜러스를 두고 어리둥절하던 타이페이 골렘.

갑작스레 날아온 뒷발차기에 맞고 꼴사납게 나동그라졌다.

화가 난 타이페이 골렘이 꽉 그러쥔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치자 꽁꽁 언 땅이 마치얼음처럼 깨져 그 파편이 사방팔방 튀었다.

급히 몸을 일으켜 세운 타이페이 골렘이 고릴라처럼 제 가슴을 힘껏 두드리더니 이내 두 주먹을 땅에 짚고 악튜러스를 노려봤다.

두 골렘의 눈높이가 달라졌다.

몸을 수그린 타이페이 골렘은 상대를 올려다봤으며, 반대로 허리를 꼿꼿이 세운 악튜러스는 여유롭게 상대를 내려다보았다.

서로 다른 눈높이는 곧 강자와 약자를 나누는 기준.

악튜러스는 강자의 입장에서 여유롭게 적을 관망한다.

하지만 그 시선은 거만하기 짝이 없어서, 한 나라의 챔피언으로 군림하던 골렘이 쉬이 용납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한국 골렘을 은연중 무시하던 짱치앙에겐 더욱 더!

곧바로 반격에 나서는 타이페이 골렘이 마안 중 하나를 개안시켰다.

예지안, 미래를 보는 힘.

개안된 예지안이 가까운 미래를 꿰뚫는다.

그 미래를 맛본 짱치엔이 씩 웃었다.

‘가소롭군!’

미리 본 답안지.

그 답안지에서 악튜러스는 방패를 앞세워 적의 냉기를 막아내고 이어 롱소드를 내리그어 공간을 절삭시켰다.

절삭된 공간과 맞물려 팔 하나를 잃는 게 타이페이 골렘의 예정된 미래.

‘그렇겐 안 되지!’

미리 본 답안지처럼 악튜러스가 그 움직임을 보인다.

역시나 방패를 앞세우는 모습.

짱치앙의 거만한 미소는 그대로.

그는 곧 타이페이 골렘과 하나가 된다.

타이페이 골렘은 악튜러스의 방패를 피해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나 섰다.

그리고 보호안 개안.

한쪽 마안이 연노랑 광채를 뿜어내자 코어와 전신을 지키는 강력한 마나 보호막을 만들어냈다.

아무리 공간 절삭이라 할지라도 마나 보호막은 유효했다.

악튜러스의 검격이 보호막에 맞고 튕겨져 나갔다.

그 순간 석민은 당황하지 않고 상황을 빠르게 인지했다.

‘예지안이겠지.’

상대 선수가 감으로 막았다고 하기엔 너무나도 완벽한 대처.

상대 기량을 꿰뚫어보고 있었던 석민에게 지금 짱치앙의 대처는 미래를 보지 않고서는 절대 할 수 없는 대처였다.

그만큼 그의 기량이 아쉽다는 말.

악튜러스는 다시 이면세계로 들어가 카운터 공격을 준비하던 타이페이 골렘을 농락했다.

또 다시 사라진 악튜러스.

타이페이 골렘이 거센 냉기를 뿜어내며 꽉 그러쥔 두 주먹을 바닥을 향해 내리찍었다.

원소 골렘이 그 마법적인 힘을 보인다.

아이스 그라운드.

날카로운 송곳 같은 빙하들이 바닥에서 솟아올라 어딘가에 있을 악튜러스를 노렸으나, 이면세계에 들어간 악튜러스에겐 무용지물.

헛된 공격이었다.

‘대체 뭐야? 무슨 마법이지?’

세계 대회에 출전하는 모든 선수가 경기 시작 전 철두철미하게 상대방에 대해 알아보고 경기에 임하는 건 절대 아니다.

보통 세계 대회에 출전할 기량이 되면 자국에서 챔피언 소리를 들으며 우쭐되는 경우가 많았다.

오히려 겸손해지기보다는 제 딴에는 경험이 아주 많다고 생각하여 오히려 대비 없이 경기에 나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러면서 나중에 기자들과 만나게 되면 꼭 이런 말을 했다.

“크게 준비 없이 나갔습니다. 막상 붙어보니까 별 거 없던데요?”

이런 식으로 무책임하게 건방떠는 걸 더 좋아하는 것이다.

특히나 대놓고 무시하고 싶은 상대가 있다면 더욱 더 그러했다.

물론 모든 선수가 그런 건 아니다.

대다수 선수들은 확실히 일국의 챔피언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앞서 말한 거만한 선수도 상대에 따라서는 치밀하게 경기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짱치앙도 아마 중국 골렘이나 일본 골렘과 마주했다면 철저하게 경기를 준비했을것이다.

하지만 은연중 무시하던 한국 골렘을 상대로 대만 챔피언인 짱치앙이 보일 자세는 아니었다.

그는 전자였다.

‘젠장. 좆도 없을 줄 알았는데.’

지표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그 지표들을 철저하게 무시해버렸다.

지표만 보면 JP와 동급인 악튜러스를 인정하기 싫었던 것이다.

그러다 악튜러스와 맞붙게 되자 그는 한국 골렘이라는 이유로 악튜러스를 얕잡아보던 전날의 자신이 다소 원망스러워졌다.

전날 짱치앙은 악튜러스에 대해 알아보는 것보단 JP의 자료들을 훑어보며 경기 뒤 기자들과 만나는 장면을 더 기대하고 있었다.

“역시 한국 골렘이네요. 수준이 낮아요. 앞으론 대만 골렘을 한국 골렘과 비교하는 걸 자제해주셨으면 합니다. 상대가 안 되잖아요.”

이 말을 하고 싶었는데.

왠지 모르게 다른 말을 준비해야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패배에 대한 구차한 변명 같은 것.

‘안 돼! 쪽팔리게 질 수 없지.’

한 차례 냉기 공격이 끝나자 다시 나타난 악튜러스가 손아귀에 어스 볼을 모았다.

휘몰아치는 흙먼지가 악튜러스 손아귀에서 흙으로 된 구체를 만들어냈다.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타이페이 골렘이 이번엔 예지안이 아닌 보호안을 개안시켰다.

악튜러스는 그 거리를 단숨에 좁히며 어스볼을 뻗어냈다.

흙먼지를 뿜어내며 돌아가는 어스볼이 마나 보호막에 가로막힌다.

개안된 보호안은 그대로.

타이페이 골렘이 급히 두 손을 모아 냉기의 힘을 끌어올린다.

극한의 한기.

악튜러스의 어스볼과 비슷한 아이스볼을 준비했다.

보호안이 그 힘을 거두자, 보호안 속에서 준비되던 아이스볼이 어스볼을 앞세우던 악튜러스에게 뻗어졌다.

악튜러스는 막지 않고 또 다시 이면세계에 숨어들었다.

악튜러스는 있는 그대로 짜증나는 상대였다.

무엇을 준비하든, 그대로 피해버리니까.

하지만 그조차 실력이라.

사라진 악튜러스가 주변에 솟아난 빙하 위에 올라섰다.

이어 대지의 힘을 끌어내니, 경기장 바닥이 요동친다.

심상치 않은 기운.

당장이라도 뒤틀린 대지에서 무언가가 튀어 올라 타이페이 골렘을 먹어치울 기세다.

짱치앙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그렇겐 안 되지!’

타이페이 골렘이 냉기를 뿜어내며 요동치려는 대지를 순식간에 잠재운다.

흙과 냉기의 싸움.

냉기에 맞서 싸우는 땅은 얼어붙은 제 자신을 비틀며 끝까지 저항한다.

악튜러스는 냉기 발산에 온힘을 다하고 있던 타이페이 골렘을 내려다보았다.

왠지 모르게 처절해 보인다.

석민은 제 콧등을 긁적이며 생각했다.

‘확실히 냉기 골렘은 상대하기 까다로워. 더 싸워보고 싶지만 더 이상 볼 건 없겠지.’

질질 끌어봤자 좋을 것 없는 이 싸움.

어차피 마안 동력이면 악튜러스 역시 적에게 뒤지지 않는다.

사실 악튜러스가 경기 시작과 동시에 끝낼 이 싸움을 지금까지 끌고 온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경험이 필요했으니까.’

석민은 데뷔한지 얼마 되지 않는 불세출의 신인이다.

타고난 센스 같은 건 좋았으나 월드 그랑프리에 출전한 다른 선수들에 비해 경험이 적은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그 경험을 늘리고자 잠시 대만 골렘과 놀아준 것 뿐.

그 외에 다른 이유는 없었다.

끝을 보려는 악튜러스가 칠죄종 아티팩트 중 하나인 거짓말을 퍼뜨리는 거짓 증인을 사용하여 제 마나를 증폭시켰다.

거짓말을 퍼뜨리는 거짓 증인.

마력원이다.

본디 마법사가 제 마나를 증폭시킬 때 쓰는 유용한 아티팩트 중 하나.

그 형태는 여러 가지가 있으며 생김새 또한 가지각색.

악튜러스의 마력원은 거대한 눈깔처럼 생겨 악튜러스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마치 드래곤 눈처럼 생긴 그것이 섬뜩한 안광을 뿜어내자 악튜러스의 마나가 증폭되어 이제 막 개안시킨 시공안에 힘을 보탠다.

시공안의 개안.

시간과 공간을 지배하는 그 권능이 지금 발현된다.

공간 절단.

악튜러스는 롱소드를 휘두르지 않고도 방대한 마나를 소모시켜 멀리 있는 적을 절단시키려는 위엄을 보였다.

서로 어긋나려는 두 공간.

그 사이에 낀 타이페이 골렘이 허공에 걸린 듯 움직이지 않는다.

‘뭐야?’

짱치앙은 제 골렘이 움직이지 않자 순간 당황했다.

그런데 팔과 다리는 이상하게 움직인다.

참으로 기묘한 상황.

상황 타개를 위해 급히 예지안을 개안해본다.

‘이런!’

마나를 빨아먹는 예지안이 그 어두운 미래를 밝힌다.

그 미래에서 타이페이 골렘은 깔끔하게 절단됐다.

금속 장갑을 입힌 골렘이 저렇게나 깔끔하게 절단되다니!

짱치앙이 급히 도망치려 하지만, 애당초 피할 수 없는 미래에는 답이 없는 법.

그것은 운명이라.

무언가 대단히 잘못됐다고 생각했을 때, 서로 어긋나기 시작하는 두 공간은 한 나라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골렘을 무참하게 찢어발긴다.

좌상단에서 우하단으로 이어지는 깔끔한 선.

그 선을 따라 타이페이 골렘의 전신이 절단됐다.

그 절단된 면에는 코어도 맞물려 있었고, 어긋나는 두 공간과 함께 코어도 끝을 맞이했다.

거스를 수 없는 운명 앞에서 그 입을 다물지 못하는 짱치앙의 전신이 무너져 내렸다.

무릎을 꿇고 앉은 짱치앙이 스카우터를 벗어 내린다.

“뭐야...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아쉽게도 대만 골렘에겐 정해진 운명을 거스를 힘이 많이 모자랐던 것이다.

그렇게 승부가 났다.

한국 중계석에선 흥분한 아나운서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타이페이 골렘! 악튜러스의 동력에 속수무책으로 끝나고 맙니다!”

“대만 골렘을 그냥 찢어버리네요!”

< #38 JP > 끝

ⓒ 대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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