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 JP >
아수라와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그 거리가 지척까지 좁혀졌을 때 악튜러스는 주저 없이 롱소드를 휘둘렀다.
마치, 보이지 않는 선을 따라 베는 느낌.
공간 절삭.
시공안을 사용한 공간 절단과 비슷하지만 차이점은 바로 비용.
시공안은 막대한 마나를 잡아먹으며 두 공간을 어긋나게 하지만, 칠죄종 아티팩트 중 하나인 형제들 사이에 싸움을 일으키는 자는 단순히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두 공간을 절삭시킬 수 있었다.
이것이 차이.
예리한 칼날이 아수라의 전신을 양단했다.
그리고 아수라의 곡예와 같은 움직임에 맞서는 악튜러스의 신비에 가까운 검격.
너무나도 깔끔하게 내리그어진 칼날은 마치 허공을 베는 듯 아수라를 양단했으며, 이후 아수라는 두 쪽으로 갈라져 폭삭 무너져 내렸다.
승패가 났다.
악튜러스는 뽑아낸 칼을 갈무리하며 그 건재함을 과시한다.
아수라는 반응이 없었다.
“끝난 건가요?”
한국 중계석에서 가장 먼저 말을 꺼낸 건 이용호 캐스터였다.
“악튜러스가 아수라를 단칼에 양단했습니다. 아수라, 움직임이 없는데요? 이거 끝난 거 맞나요?”
당황과 놀람.
너무 빨리 끝난 것도 있지만, 그가 더 놀란 것은 악튜러스의 성장이다.
악튜러스가 저렇게나 강했던가?
이용호 캐스터의 말이 떨어졌지만 다른 아나운서들은 충격과 공포로 아직 그 입조차 놀리지 못했다.
그들 중 가장 충격이 컸던 사람은 이민호였다.
‘맙소사...’
중국 랭킹 2위가 한국 챔피언에게 허무하리만치 그 최후를 맞이했다.
그 어떤 한국 챔피언도 이뤄낼 수 없었던 일.
하지만 고물상에서 조립된 고대 골렘과 그 골렘과 함께하는 꼬마가 해냈다.
“기가 막히네요.”
이민호가 첫 마디를 내뱉자 뒤따라 김요한 해설위원과 강동준 해설위원도 목소리를 냈다.
“네, 그렇습니다. 정말 예기치 못한 장면이네요. 악튜러스가 아수라를 가볍게 베어내며 승리를 가져갑니다.”
“와우, 저는 예상도 못 했습니다. 악튜러스가 엄청 성장했네요. 그러고 보니 칠죄종 아티팩트를 거의 다 모았다고 했었죠? 처음엔 아무 느낌이 없었다가 막상 결과를 보니 그게 엄청 크긴 했네요. 장비빨로 압살했습니다.”
처음엔 말이 없던 그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수다쟁이처럼 말들이 많아졌다.
역경과 고난이 생략된 압도적인 승리. 이를 설명하기 위해선 할 말들이 많은 것이다.
“악튜러스, 이렇게 승리를 가져갑니다. 보니까 칠죄종 아티팩트의 힘인 것 같은데, 저 정도면 본선 상위까지 치고 올라가겠는데요?”
“네, 저도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저 정도 기량이면 상위권에 가서도 기대해볼만 하겠습니다.”
“아무튼 악튜러스가 아수라를 꺾었습니다. 중국쪽 아나운서들을 보니 말이 없어졌네요. 패배가 실감되지 않는 모양입니다.”
충격적인 아수라의 패배 아래.
중국측 중계석의 아나운서들은 충격의 도가니에 빠졌는지 조용해졌다.
반면 중국과 한국 아나운서들을 번갈아 비추는 일본 중계석은 한국처럼 말이 많아졌다.
예상치 못했던 강자의 등장.
리준의 동방불패와 리명국의 전투짐승이 불참한 지역 예선에서 당연히 JP의 독주를 예상했건만, 그 독주에 제동을 걸 신인 강자가 나타난 것이다.
일본 중계석.
캐스터로 있는 후지사키 히로시의 입이 바쁘다.
“한국이 중국을 꺾었습니다. 저 고물 골렘이 JP의 아성을 넘을 수 있을지 조금 긴장되는데요.”
대부분 나라가 그렇지만.
골렘 파이트 자체는 엔터테인먼트로 오락을 중요시 여겼고, 다소 무게감이 있고 중립적인 위치를 고수하는 올림픽 중계와는 많이 달랐다.
경우에 따라선 자국 골렘만 추켜세우는 편파 중계도 허용되는 편.
그게 골렘 파이트 중계였다.
“한국에서 온 깡통 골렘이 차이나 넘버 투를 단칼에 베어버리네요. 한국 골렘이 저렇게까지 강할 줄은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래도 JP의 상대는 아니라고 봅니다.”
다시 한국 중계석.
출연진과 이민호는 악튜러스의 다음 경기에 대한 이야기로 바빠졌다.
중국 다음 상대는 바로 대만.
대만에서 넘버원을 달리고 있는 타이페이 골렘이 악튜러스의 다음 상대였다.
“악튜러스 다음 경기는 대만과 붙게 됩니다. 이때도 기대해볼만 하겠죠?”
“네, 전체적으로 중국 다음이라고 평가받는 대만입니다. 타이완 넘버원이라 불리는 타이페이 골렘의 경우, 아수라보다 랭킹이 낮으니 저는 악튜러스의 연승을 기대해보겠습니다.”
이민호가 말을 꺼냈다.
“대만 사람들이 한국 골렘을 은근히 무시하던데. 이번에 좋은 교육이 됐으면 좋겠네요.”
“하하,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이 이렇게 무너졌으니, 대만도 아마 볼만 할 겁니다.”
석민은 경기가 끝나고 악튜러스와 함께 선수대기실로 돌아오자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시선들이 마구 쏟아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처음과 다른 느낌.
처음엔 다소 신기하게 쳐다보는 반응이었다면 지금은 은연중 경계하는 눈초리가 보였다.
그 불편한 시선으로 자신과 악튜러스를 훑는다.
석민은 내색하지 않고 태연하게 행동했다.
‘이제 시작인데 뭘.’
석민이 돌아오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강준과 한성철이 말을 붙였다.
“잘했다 석민아. 끝내줬어.”
“와, 단칼에 끝내버리네. 확실히 장비 차이가 많이 나긴 하나봐. 그래도 중국에선2위 먹는 골렘인데.”
석민이 당연하다는 듯 목소리를 냈다.
“악튜러스 장비가 좋아서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어요. 예선부터 골골거릴 순 없잖아요. 여기가 본선도 아닌데.”
석민이 내비치는 강한 자신감에 두 어른은 싱글벙글 난리도 아니다.
한국 응원팬들의 열기가 더욱 거세지는 나하 경기장에서 그렇게 악튜러스가 첫 경기를 잡아가며 선두로 치고 나갔다.
#38 JP
지역 예선은 본선과 달리 리그전이기 때문에 악튜러스는 지역 예선에 출전한 모든 골렘과 맞붙게 된다.
악튜러스가 첫 승리를 거두고 이틀이 지나자 또 다른 경기가 준비됐다.
대만 챔피언, 타이페이 골렘과의 결전.
석민은 이 경기 또한 강한 자신감을 내비쳐주었다.
그런 모습이 짙어질수록 한국에선 차석민에 대한 인기가 아주 대단해졌다.
전에 없던 모습에 한국팬들의 기대도 그만큼 높아진 것이다.
현재 한국에선 골렘 파이트 이야기로 정신없이 돌아갔다.
한국 골렘 최초로 본선에 나가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열망.
그 열망 아래 한국 매스컴에선 하루도 빠짐없이 차석민에 대한 뉴스 기사가 나왔다.
그리고 그 기사 중엔 이런 것도 있었다.
‘악튜러스에게 패배한 아수라, 본선 진출 포기 선언.’
그저께 악튜러스에게 쓰라린 패배를 맛보게 된 왕웨이는 전날 기자회견에서 본선진출을 공식적으로 포기했다.
예상도 못했던 패배에 멘탈에 금이 간 것은 둘째치더라도 악튜러스에게 양단 된 아수라가 정상적인 출전이 불가능할 정도의 데미지를 입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지역 예선에 출전한 여러 나라에선 신인 강자로 떠오르게 된 악튜러스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졌다.
동방불패, 전투짐승이 불참한 지역 예선에서 JP 아성을 넘볼 수 있는 유일한 골렘으로 취급받은 지 이틀째.
그 악튜러스가 오늘 대만 챔피언과 맞붙게 된다.
“안녕하십니까 전국에 계신 시청자 여러분. 저는 월드 그랑프리 지역 예선을 중계하고 있는 캐스터 이용호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해설위원 김요한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해설위원 강동준입니다.”
밝은 표정의 이민호도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어보였다.
그 표정은 마치 아이처럼 해맑아보였다.
“오늘도 특별 게스트로 초대된 이민호 선수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민호 선수,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벌써 예선 3일 차네요. 오늘은 악튜러스 두 번째 경기가 있는 날이죠?”
“네 그렇습니다. 오늘 악튜러스는 대만의 챔피언인 타이페이 골렘과 맞붙게 됩니다.”
“타이페이 골렘이라... 두 해설위원께서는 결과를 어떻게 예측하고 계십니까?”
캐스터의 물음에 두 해설위원은 전에 없는 모습으로 한국 시청자들을 놀라게 했다.
“저는 악튜러스의 압승을 예상해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악튜러스의 전력으로 볼 때 그나마 붙어볼 수 있는 상대는 겐지 선수의 JP 외엔 없어 보입니다. 대만 골렘도 나름 챔피언이고 대단하긴 한데, 악튜러스와 같은 레벨이라는 생각이 전혀 안 듭니다. 급이 다른 거죠.”
“그럼 이민호 선수께서도 비슷하게 보고 계십니까?”
승리를 예상한 두 해설위원과 마찬가지로 이민호도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네 저도 마찬가집니다. 전날 차석민 선수와 같이 보냈었는데, 굉장히 컨디션이 좋더라구요. 저도 악튜러스의 승리를 예상해봅니다.”
“전날 같이 있었다고요?”
“네, 석민이랑 석민이 아빠랑 해서 오키나와 좀 돌아다녔습니다. 하하, 외국 나왔는데 모처럼 그냥 갈 순 없어서요.”
“돌아다녔다라... 오키나와는 어땠습니까?”
“오키나와요? 글쎄요. 저 같은 경우는 우리나라 제주도 같다는 느낌을 좀 받았습니다. 섬이 굉장히 작은 줄 알았는데, 막상 돌아다니다보니까 좀 크네요.”
“하하, 사실 저도 어제 두 해설위원과 오키나와 투어를 좀 했습니다. 저희 같은 경우는 시내에 위치한 성쪽을 다녀왔는데, 이런 곳에 예전에 나라가 있었다는 게 조금 놀랍기도 했고. 아무튼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 같습니다.”
오키나와 이야기를 끝낸 그들은 다시 대만과의 결전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까 그저께 대만측 중계석이 볼만 했네요. 왕웨이 선수의 아수라가 악튜러스에게 양단 당하자 분명히 그쪽에서 환호성을 크게 내질렀었거든요. 제가 분명 봤습니다.”
“아, 그쪽도 사이가 엄청 안 좋죠? 저는 중국하고 일본 쪽 신경 쓰느라 대만 쪽은 전혀 보질 못 했습니다. 정말 그랬나요?”
중국과 대만 사이가 안 좋은 거야 모두가 다 아는 사실.
“네, 좀 볼만 했는데. 오늘은 우리랑 붙게 되니까 대만 쪽은 잔뜩 긴장하고 있고, 저기 중국측은 다소 침체된 분위기 속에서 악튜러스 경기를 지켜보려는 모습이네요.”
“그럼 이번엔 대만 차례인가요?”
화기애애한 표정의 이민호가 묻자 한국 중계석은 때 아닌 웃음꽃이 피어났다.
“하하, 그렇겠죠. 오늘은 대만 사냥입니다.”
“대만도 잡아줘야죠.”
“이런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좀 그렇긴 한데. 대만도 가끔씩 밟아줘야 합니다. 저야 선수 출신이지 않습니까? 예전에 제 스턴건이랑 타이페이 골렘이랑 맞붙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대만팬들에게 받았던 야유가 아직도 기억나네요. 저는 예상도 못했던 일이라 나름 충격이었거든요.”
“아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네, 중국도 좀 대단하긴 한데, 뭐 대만도 그에 못지않습니다.”
이민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용호 캐스터가 한창 준비 중인 경기장 상황을 알려주었다.
“지금 차석민 선수가 악튜러스와 함께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맞은편에선 대만 챔피언 짱치앙 선수가 타이페이 골렘과 함께 출전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네요.”
짱치앙.
그는 165cm의 작은 키에 연한 갈색으로 머리를 염색한 선수였다.
피부는 햇볕에 많이 탔는지 검었으며, 슈트 차림에 엄지를 추켜세운 두 손을 번쩍들어 올리며 경기장에 입장했다.
“이제 짱치앙 선수가 입장합니다. 타이페이 골렘입니다.”
타이페이 골렘이 비춰졌다.
개체 등급은 A+
자국에선 넘버원 골렘이지만, 국가전에서는 그리 높은 등급은 아니다.
이러니 한국 해설위원들이 악튜러스의 승리를 높게 점친 것이다.
두 골렘이 경기장에 위치하자 해설위원들이 타이페이 골렘에 대한 소개를 이어나갔다.
“대만의 타이페이 골렘입니다. 아시아 랭킹은 7위로 전체적인 평가는 레드 데빌보다 살짝 위라고 보시면 됩니다.”
“타이페이 골렘은 글레이셔 골렘으로 아이스 계열입니다. 아수라가 엄청 뜨거웠다면 이번 타이페이 골렘은 엄청 차갑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보호안에 예지안. 마안은 가장 무난한 조합이네요?”
“네 그렇습니다. 가장 무난한 장비에 가장 무난한 마안 조합입니다. 악튜러스에게 예지안이 없다는 걸 안 모양인지 평소에도 잘 안 쓰는 예지안을 달고 경기장에 출전했네요. 제 생각인데 짱치앙 선수가 레드 데빌 경기를 안 봤나 봐요. 봤다면 예지안 말고 다른 선택을 했을 텐데 말이죠.”
“일단 지켜봐야할 것 같습니다. 두 골렘 자리에 위치합니다.”
< #38 JP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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