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파이트-121화 (121/173)

< #37 지역 예선 >

경기 시작과 동시에 석민은 악튜러스의 시야로 맞은편에 서 있는 아수라란 골렘을 보았다.

아수라.

중국 내 랭킹은 2위.

아시아 랭킹은 5위로 월드 그랑프리 출전 경험이 많은 골렘이다.

라바 골렘이며, 전신은 뜨거운 마그마로 이뤄져 있었다.

라바 골렘의 특징이라 한다면 대지 속성과 불 속성을 동시에 지닌 골렘이란 점이다.

두 속성을 가진 만큼 굉장히 위력적인 골렘이지만 그런 골렘에게도 단점은 있었다.

그 뜨거운 온도 때문에 외골격은 열처리에 신경 써야 했으며, 다룰 기술력이 없다면 대전 골렘으로 만들 생각조차 하면 안 됐다.

그나마 게이트 학문과 연관된 마법 공학의 힘을 빌려 지금처럼 라바 골렘에 외골격을 씌우는 게 가능했으며 경기에도 내보낸 것이다.

그리고 이 골렘은 특이하게도 마안이 없었다.

‘너무 뜨거워서 마안도 못 가지나봐. 하긴 마안도 몬스터 눈인데, 그런 걸 꼈다간 다 타버리겠지.’

마나를 다루는 그 위대한 마법 공학으로도 처리하지 못할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용암 안에 마안을 박는 일이다.

그래서 아수라는 마안이 없었다.

하지만 그 주먹은 지금도 불타고 있으니, 단순 주먹질은 헬파이어를 머금은 주먹질과 맞먹는다.

‘그렇다고 무시하면 안 돼. 굉장히 뜨거운 골렘이거든.’

생각을 마친 석민이 악튜러스의 가드를 견고히 했다.

악튜러스가 장비하고 있던 미스릴 방패를 올리자 이를 본 왕웨이가 씩 웃는다.

‘가소롭긴.’

경기 시작 전.

왕웨이는 제 코치로부터 상대 선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 든 생각은.

가소롭기보다는 기가 찼다.

예상도 못했으니까.

“네?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JP를 무시하더라고.”

“누가 누굴 무시한다고요?”

“그 한국 챔피언이라는 꼬마 말이야. 이번에 레드 데빌 잡고 한국 챔피언 된.”

“아, 그 꼬마요?”

“그 꼬마가 JP를 무시하더라고. 2등이라면서.”

“하, 기가 막히네.”

사실 한국이란 나라는 골렘 파이트에 있어서 주변국에게 무시를 당해왔었다.

그다지 좋은 성적을 내는 나라도 아니었고, 꼴에 챔피언이란 골렘 자체도 월드 그랑프리 문턱을 간신히 넘을 정도였으니 당연히 무시할 수밖에.

그런 나라인데도 왕웨이가 악튜러스와 석민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그 특이한 배경 때문이다.

고물상에서 조립되어 한국 챔피언을 먹은 골렘.

그 이야기는 비단 한국에서만 유명해진 게 아니다.

다른 나라의 기자들이 악튜러스 이야기를 가져와 자국 기사에 실었다.

그 반응은 생각보다 엄청났다.

그래서 골렘 자체는 무시할망정 석민과 악튜러스를 모르진 않았다.

“세상에 겁도 없네. 아, 맞네. 그쪽 양반들 원래 입이 싸잖아요.”

왕웨이는 비웃듯 씰룩거리는 입술을 주체하지 못했다.

“저번에도 그 한국 챔피언이란 새끼가 JP한테 막말 찍 내뱉다가 개털렸는데. 주제를 알아야지.”

“아무튼 자신감이 엄청나. 내가 준 꼬마 경기들은 다 챙겨봤지?”

“그걸 왜 봐요?”

왕웨이는 고개를 저으며 굉장한 자신감을 보였다.

“범이 개를 사냥하면서 준비도 하나요? 안 해요.”

“아니 그래도, 어떤 골렘인지는...”

한국은 지금까지 골렘 파이트 약소국.

더군다나 중국 2위라는 자신감에 차있던 왕웨이는 상대 전력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않는 거만스러운 모습까지 보였다.

“이봐요 코치님.”

팔짱까지 낀 왕웨이가 다시 한 번 입꼬리를 끌어올린다.

“제가 쳐다보는 건 리준 밖에 없습니다. 고물상 골렘? 그냥 말 안 하겠습니다.”

딱 거기까지.

왕웨이는 그런 성향의 파이터였다.

사실 악튜러스는 왕웨이 입장에선 그냥 같잖았던 것이다.

어차피 범과 개의 싸움이라 무엇을 해도 자신이 이길 거란 걸 확신하고 있었던 모양.

하지만 경기 시작 전 악튜러스의 개체 등급을 보고선 살짝 표정을 구길 수밖에 없었다.

‘아수라와 동급이라고?’

악튜러스가 그 동안 개체 등급을 비밀로 했었고, 이는 베타고의 지원을 받아 철저하게 보안 유지가 되었기에 왕웨이를 포함한 그 누구도 악튜러스의 개체 등급을 예측할 수 없었다.

그저 약소국 반도에 존재하는 골렘이라 생각했건만.

그 골렘이 자신의 골렘과 동급이란다.

왕웨이가 무서운 표정으로 다시 한 번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린다.

‘그래 봤자지. 이쪽은 범이라고.’

그의 눈빛이 매섭게 변하며 드디어 아수라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라바 골렘.

공기면과 맞닿은 표면은 검게 굳었으나, 아수라가 그 움직임을 보이자 그 표면에 금이 가며 그 아래 시뻘건 용암을 보였다.

‘이 주먹은 아주 특별하다고!’

성난 아수라가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고 그 이글거리는 주먹을 뻗었다.

시뻘건 용암 주먹이 날아오자 악튜러스가 몸을 살짝 비틀며 이를 피했다.

아수라는 당황하지 않고 곧바로 다른 주먹을 뻗어냈다.

악튜러스는 방패를 들어 그 주먹을 막아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악튜러스 전신이 뒤로 밀렸다.

주먹은 막았어도 그 충격이 대단했던 것.

아수라의 주먹을 정통으로 막아낸 방패 표면은 마치 운석이라도 맞은 듯 움푹 파였다.

아무리 미스릴 재질이라 할지라도 순간 출력이 5000마력에 맞먹는 주먹을 맞고도 멀쩡할 수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런 주먹을 버티려면 물리 내성에 강한 오리하르콘으로 주조된 방패가 있어야만했다.

다만 오리하르콘으로 주조된 방패였다면 라바 골렘의 뜨거운 열기로 인해 뻥하니구멍이 뚫렸을지도 모를 일.

만약 마법 내성과 물리 내성 모두를 챙기려 했다면 아다만틴으로 만들어진 방패가 있어야 했지만 그런 방패는 지금 악튜러스에게 없었다.

‘바로 치고 들어오네. 너무... 무모한 거 아닌가?’

짧은 격돌 뒤 석민은 짧은 감상평을 내놓았다.

생각보다 거침이 없는 골렘이었다.

두 주먹을 뻗어낸 아수라.

이번엔 다른 걸 준비한다.

용암이 이글거리는 팔을 확 뻗히니 손에서 용암으로 된 채찍 하나가 튀어나왔다.

사실 아수라는 악튜러스처럼 무장에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이글거리는 전신이 무기 그 자체였으므로.

붉게 이글거리는 채찍이 경기장 바닥을 거칠게 때리며 그 존재감을 알린다.

발로그 휩.

아수라는 발로그 휩을 악튜러스에게 날렸다.

보통이라면 저 채찍에 휘감긴 골렘은 채찍 자체가 갖는 뜨거운 열기로 인해 전신이 절단나길 마련이다.

하지만 그걸 당할 악튜러스가 아니었다.

왕웨이와 다르게 석민은 아수라란 골렘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 동안 어떤 공격을 선호했고, 어떤 식으로 행동할지 대강 알고 있다는 말이다.

악튜러스는 이면세계로 들어가 아주 가볍게 그 채찍을 피해주었다.

다시 이면세계로 나온 악튜러스는 순식간에 아수라와의 거기를 좁히고 피스트 브레이커를 힘차게 뻗어냈다.

쾅!

육중한 타격감이 아수라에게 직격했다.

하지만 엑스자로 교차시킨 두 팔로 이를 막아낸 아수라는 꿈쩍도 하지 않으며 그 건재함을 과시했다.

생각보다 만만한 상대가 아니란 것을 보인 것이다.

이어 주변 공기가 무섭게 끓어올랐다.

방금 전 아수라의 가드로 인해 아수라 몸에서 튀긴 불똥들이 악튜러스 몸에 닿으며 새하얀 연기를 냈다.

그 열기에 악튜러스가 두 발자국 물러나 서자 사방팔방으로 시뻘건 용암을 털어내는 아수라가 그 두 발자국을 쫓아가서 세운 손날로 악튜러스의 목을 치려했다.

악튜러스는 그 즉시 방패를 들어 올려 이를 막아냈다.

또 다시 튀기는 시뻘건 용암들이 주변 대지를 태웠으나 방패를 앞세우는 악튜러스에게 직접적인 타격은 주지 못했다.

다만 방패로 가리지 못한 부위에 용암 파편이 튀긴 했어도 녹아내릴 정도는 아니었다.

왜냐? 현재 악튜러스의 외골격은 별빛 금속, 아다만틴, 그리고 미스릴로 되어 있었다.

그나마 직접적인 타격만이 미스릴로 된 장갑을 찌그러트릴 수 있는 것이다.

아수라는 악튜러스의 방패가 거슬렸는지 그 방패를 두 손으로 잡았다.

시뻘건 두 손이 방패를 잡자 악튜러스가 이를 보고 선 인상을 구겼다.

흙으로 된 얼굴이 인상을 쓰자 이를 본 왕웨이가 씩 웃는다.

‘계집애처럼 방패를 앞세우다니.’

인상을 구긴 악튜러스.

악튜러스의 한쪽 마안이 드디어 그 힘을 보인다.

방패를 빼앗으려는 아수라 위쪽으로 거대한 중력장이 생겨났다.

마안으로 쏠리는 마나의 양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방패를 빼앗으려는 아수라의 몸이 아래로 처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중력장이 완성되자 그 아래에 갇힌 아수라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마안의 동력은 그대로.

놀랍게도 아수라는 그 중력장을 버텨냈다.

무지막지한 코어의 출력으로 이를 버텨내는 것이다.

아수라는 모두가 지켜보는 경기장에서 그 무지막지한 중력을 이겨내고 굽혔던 한쪽 무릎을 힘겹게 펴냈다.

그 모습은 그 어떤 것에도 굴복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였으나.

악튜러스에겐 아등바등 몸을 일으켜 세우려는 가소로운 적에 불과했다.

중력장을 사라지게 한 악튜러스는 피스트 브레이커를 휘둘러 아수라의 턱을 후려쳤다.

꼴사납게 나동그라지는 아수라와 그 몸에서 떨어져나간 시뻘건 용암들이 마치 활화산에서 분출되는 마그마처럼 사방팔방으로 뿌려졌다.

지면은 새까맣게 탔으며, 멀리 날아간 용암의 파편이 관중들을 덮쳤으나, 그 바로 앞에 펼쳐져 있던 마나 장막에 막히게 됐다.

지금 이 순간.

출전 대기 중인 모든 골렘들은 코어에서 생성 된 마나를 경기장 심장부와 연결시켜 관중들 보호하는 마나 쉴드 생성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꼴사납게 나동그라졌던 아수라가 급히 두 다리를 배 쪽으로 끌어당기며 일어날 준비를 했다.

마치 엎어진 무술인이 몸에 반동을 주어 일어나는 것처럼, 아수라 역시 반동으로 그 몸을 일으켜 세웠다.

중국 2위라는 골렘이 그 재주를 보인 것이다.

몸을 일으킨 아수라는 저승사자처럼 다가오고 있던 악튜러스를 제 시야에 담았다.

왕웨이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그는 절대 악튜러스를 과소평가한 자신을 탓하지 않았다.

그런 건 머저리나 하는 짓.

‘그런 게 어딨어. 지면 다 실력 탓이지.’

다른 건 몰라도 왕웨이는 실력을 중요시했다.

여기서 진다는 건. 자신이 경기 전에 가졌던 안이함이 문제가 아니라 애당초 자기실력이 크게 모자랐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게 프로.

‘절대 안 진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애한테 질 순 없지.’

아수라가 두 팔을 뻗더니 이내 양손에 발로그 휩을 쥐었다.

뽑아낸 두 용암 채찍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아수라가 이를 악튜러스에게 날려 보냈다.

날아오는 발로그 휩을 보자마자 악튜러스는 곧장 이면세계로 숨어들어 이를 피했다.

석민은 아수라 양손에 잡힌 발로그 휩을 보자마자 그의 예전 경기를 떠올릴 수 있었다.

아수라가 전력을 다할 때 나오는 모습으로, 이글거리는 두 채찍으로 상대 골렘을 꼼짝달싹 할 수 없게 만들 뿐만 아니라 그 열기로 녹여버리기까지 했다.

모든 라바 골렘이 같은 뜨거움을 가지진 않는다.

코어 출력이 높으면 높을수록, 낼 수 있는 뜨거움도 다르고, 그 뜨거움에 따라선 절대 녹지 않는 외골격조차 녹일 수 있었다.

그리고 석민이 알고 있는 저 아수라란 골렘은 그 뜨거운 열기로 미스릴로 주조된 장갑조차 녹여버리는 게 가능한 골렘이었다.

물론 아수라의 열기가 지속됐을 때 이야기다.

아수라의 움직임이 전보다 더 기민해지며 마치 곡예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골렘을 쿵푸하는 무술인처럼 다룬다는 리준보다는 못한 실력이었지만, 그래도 그 다음 가는 실력자니 그 움직임이 볼만한 것은 당연지사.

지켜보던 관중들이 두 용암 채찍을 휘두르며 그 움직임이 화려해지는 아수라를 보고서 탄성을 자아냈다.

아수라와 링크 된 왕웨이의 표정이 조금 더 격렬해졌다.

‘이 경기는 내거라고!’

그런 아수라를 두고서.

석민은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페트리샤가 JP를 상대할 때 JP를 날파리 정도로 비유했었다.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위협적이지 않으니 날파리로 비유한 것이다.

마찬가지였다.

석민이 보기엔 아수라는 겉만 화려한 불나방쯤으로 보였다.

아무것도 모른 채 사지를 향해 날아오고 있는 불쌍한 불나방이 말이다.

악튜러스는 칠죄종 아티팩트 중 하나인 아다만틴 롱소드를 쥐었다.

브로큰 블레이드와는 다른 느낌.

날아오는 불나방과 마주한 악튜러스가 그 눈을 부릅떴다.

적을. 단칼에 벤다.

< #37 지역 예선 > 끝

ⓒ 대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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