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파이트-117화 (117/173)

< #37 지역 예선 >

#37 지역 예선

“악튜러스는 지금까지 어디에 있었던 겁니까?”

어느 시사 프로그램에서 악튜러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게이트 안쪽에 있었다고 하네요. KRG에서 직접 확인한 내용입니다.”

“아니, 아무 이유 없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날 이유가 있는 겁니까?”

“뭐, 말이 많습니다만. 전날 KRG의 공식 입장으로는 악튜러스가 그 목적을 이뤘기에 다시 돌아왔다고 발표했습니다.”

“저기 잠깐만요.”

출연자 중 하나가 기가 찼는지 대화 중간에 끼어들었다.

“그게 말입니까? 아니 골렘이 무슨 생각이 있다고 목적을 이루고 돌아왔다는 겁니까? 골렘이 무슨 사람도 아니고.”

다른 출연자들도 동조하는 눈치.

“말이 안 되죠. 무슨 골렘이 생각을 한다고.”

“애당초 갑자기 사라졌다는 것부터 말이 안 됩니다. 분명 뭔가가 있어요.”

“KRG 입장도 웃깁니다. 아니 한국 대표 골렘이 홀연히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는데, 무슨 해명이 그렇습니까? 모두가 납득할 만한 대답을 내놓아야 하는 게 정상 아닙니까? 안 그래도 월드 그랑프리에 목말라 있는 국민 모두가 사라진 악튜러스 때문에 전전긍긍한 사실은 여기 있는 모두가 알고 있는 건데. 안 그래요?”

“맞습니다. 그쪽 해명도 어이가 없어요. 그걸 해명이라고 생각하는지 나 원 참.”

총 출연자는 여섯.

진행을 맡은 아나운서를 포함한 도합 여섯 명의 출연자들이 악튜러스에 대한 이야기로 말들이 많았다.

“그럼 KRG 말은 악튜러스가 제 장비를 구하러 스스로 게이트 안쪽까지 들어갔다는 건데, 이게 말입니까? 이걸 상식적으로 납득하라고요?”

“골렘이 무슨 생각을 해요! 말도 안 되지. 골렘은 그냥 골렘일 뿐입니다. 사람만큼 생각할 수 없어요.”

언성을 높인 출연자들은 골렘의 가능성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대다수는 제 의지로 사라진 악튜러스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들이 알고 있는 상식으론 갑자기 사라진 악튜러스를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골렘이 주인 말에 껌뻑 죽는 거야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인데. 그런 골렘이 제 멋대로 사라진 건 진짜 문제 있는 겁니다. 이런 골렘이 세계 무대에 나가 과연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지 참으로 의문이네요. 막말로 골렘 파이터 말을 잘 들어야 성적도 좋을 거 아닙니까?”

“자자, 잠시만요. 저는 여러분들과 전혀 다른 입장입니다. 저는 말입니다. KRG 공식 발표대로 골렘이 제 의지를 가지고 게이트 안에 출입하는 게 가능하다고 봅니다.”

“무슨 생각이 그렇습니까? 아니 골렘이 생각이라니. 그냥 주인 말 잘 듣는 개 아닙니까?”

“개라뇨. 골렘도 엄연한 인격체입니다. 그리고 KRG 발표대로 게이트 안으로 사라진 악튜러스가 장비도 가져오지 않았습니까?”

“칠죄종 세트요?”

“네, 칠죄종 세트요. 일단 악튜러스가 스스로 칠죄종 세트를 구해온 건 사실이지 않습니까?”

“아니, 송정훈 씨는 지금 그걸 믿으세요? 누가 줬을지도 모를 일인데.”

“아니 정명호 씨야 말로 그걸 누가 준답니까? 그게 더 말이 안 되네요. 그리고 게이트 안쪽 일이잖습니까? 전문가들도 잘 모르는 영역인데, 우리가 이렇게 섣부르게판단하는 것도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지켜보던 다른 출연자가 불쑥 끼어들었다.

그는 악튜러스 일을 설명하기 위해 중국에 있는 스피카를 들먹였다.

“저도 한 마디 하겠습니다. 악튜러스가 고대 골렘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비단 악튜러스 뿐만 아니라 스피카라고 불리는 고대 골렘도 정말 말이 많거든요? 개인적으로 스피카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악튜러스 일은 어느 정도 해명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스피카 이야기는 왜 나옵니까?”

“같은 고대 골렘이지 않습니까? 같이 엮을 수도 있는 거죠.”

“그래서요? 스피카가 대체 무슨 일을 저질렀기에 갑자기 스피카 이야기를 꺼내신 겁니까?”

“이 스피카가 말입니다. 세상에 사람처럼 행동한답니다.”

중국에선 크게 이슈화되고 있는 문제였지만, 한국에선 다른 나라 이야기인지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스피카에 대해 무지한 사람이 많았다.

“그 이야기는 저도 얼핏 듣긴 했지만 확실히 확인 된 게 아니잖습니까?”

“아닙니다. 제가 준비한 영상이 있습니다. 함께 보시죠.”

준비된 영상에서는 거치대에 해방되어 마치 사람처럼 앉아 있는 붉은 골렘이 나왔다.

창을 장비한 붉은 거신.

그 골렘 앞에는 사람 하나가 있었는데, 그는 마치 무언가를 사정하는 듯보였다.

잠시 후 대기 신호가 출전 신호로 바뀌었음에도 붉은 골렘은 선수 대기실로 보이는 공간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골렘 파이터가 옆에 버젓이 있는데도 출전을 거부한 것이다.

잠시 후 골렘 파이터로 보이는 자가 안절부절 못하며 골렘에게 사정사정하다가 이내 무릎을 꿇는 장면까지 연출됐다.

그 기가 막힌 장면을 보고 있던 출연자가 마지못해 입을 열어 의문을 표했다.

“아니 저기서 뭐하는 겁니까? 지금 골렘한테 무릎 꿇은 건 아니죠?”

“자막에 나와 있는 그대롭니다. 스피카의 파이터가 지금 스피카에게 출전을 애걸복걸하는 장면입니다.”

“애걸복걸이요?”

골렘에게 애걸복걸하는 파이터라니.

어이가 없었지만 그보다 더 어이 없는 장면이 이어졌다.

붉은 골렘이 갑자기 말을 뱉어낸 것이다.

그것은 얼핏 듣기론 중국말로 보였다.

“아니 말도... 할 줄 아는 겁니까?”

“네, 중국말을 할 줄 안다고 하네요.”

“와, 말하는 골렘은 처음 봤습니다. 지금 저 영상, 설마 조작된 건 아니겠죠?”

“아니 진짜 중국말입니까? 진짜 중국말을 하는 거예요?”

“네, 자막에 나온 그대로 전부 중국말입니다. 저 골렘이 귀동냥으로 배웠다고 하네요.”

“귀동냥으로요? 무슨 천재라도 되는 겁니까?”

“그런가보죠. 자세한 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하답니다.”

“허허, 골렘이 말도 하네요. 포켓 없이는 불가능한 줄 알았는데.”

“골렘과 대화가 가능하다는 건 저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그런데 직접 말까지 하는 건 저도 처음 봤습니다. 진짜 신기하네요.”

“지금 고대 골렘이라고 알려진 스피카가 이 정도입니다. 그럼 같은 고대 골렘인 악튜러스가 제 의지로 장비를 찾아나서는 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지 않을까요?”

스피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악튜러스에 대한 이야기로 떠들썩했던 그들의 소란은 잠시 가라앉았다.

세상에 말을 배운 골렘이라니.

그렇다면 제 의지로 장비를 찾아나선 골렘도 더 이상 헛소리가 아니게 됐다.

골렘의 재발견이었다.

그들은 잠시나마 스피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상전이 바뀌었네요. 골렘 파이터가 보통 골렘의 주인일 텐데...”

영상 속 스피카는 꼭 상전처럼 행동했다.

그리고 스피카와 대면하는 골렘 파이터는 부려먹는 종처럼 보였다.

“출전을 애걸복걸하는데 스피카가 꿈쩍도 안 하네요. 무슨 저런 골렘이 다 있습니까? 저런 건 본때를 보여줘야 하는데 말이죠.”

그 말에 영상을 준비한 출연자가 크게 웃어보였다.

“하하하!”

“아니 왜 웃는 겁니까?”

그는 미리 준비해놨던 자료들 중 하나를 꺼내보였다.

“이걸 보시죠. 이게 스피카를 교육시키려 했다가 박살난 골렘들입니다.”

사진 속에는 다 부서진 골렘 잔해가 거짓말이 아니라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이게 다 뭡니까?”

“뭐긴요. 스피카에게 대들었다가 박살난 골렘들이죠. 중국은 저희랑 골렘 파이트시장 자체가 다릅니다. 그래서 막 대들다 혼쭐난 골렘들이 이렇게 산처럼 쌓여 있는겁니다.”

“이야 역시 중국이라 스케일이 엄청나네요. 그런데 이 골렘들을 전부 박살냈다는겁니까?”

“네, 그만큼 대단한 골렘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일각에선 동방불패에 견줄 수 있다고 하는데, 이건 지켜봐야 될 것 같습니다.”

“진짜 대단한 골렘이네요. 악튜러스도 저 정도는 아닌 걸로 아는데.”

“이거 골렘 파이터가 골렘을 업어 키워야 되겠는데요?”

“솔직히 골렘 파이터가 무릎을 꿇는다는 게 말이 되겠습니까? 그런데 일이 이렇게 되니 이쪽 파이터가 골렘에게 무릎까지 꿇어가면서 경기 출전을 애걸복걸하는 겁니다.”

“기가 막히네요. 더군다나 말까지 하고. 완전 사람이네요.”

“스피카가 이 정도입니다.”

“그 뭐냐 베가는 무슨 말 없습니까? 베가도 고대 골렘 아닌가요?”

“베가도 말이 많죠.”

“자료는 제가 가져왔습니다. 보시죠.”

베가에 대한 영상이 공개됐다.

공개된 영상에서는 베가의 주인으로 알려진 독일꼬마와 잘 어울리고 있는 검은 빛깔의 골렘이 보였다.

“스피카랑은 차원이 다르네요.”

“스피카에 비하면 베가는 양반이죠.”

“악튜러스랑 차석민 선수와의 관계는 어떤가요?”

“그 부분에 대해 알아봤는데, 차석민 선수는 친구라고만 대답했습니다.”

“친구요? 골렘이 친구라...”

프로그램에 출연한 사람들은 대부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글쎄요. 전 잘 모르겠네요.”

“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골렘이라고 하면 키우는 개 정도로 생각하면 딱 좋긴 한데. 하여간 고대 골렘들은 저희가 생각하는 상식 밖의 괴물들인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말입니다. 뭐 쓸데없는 이야기 같기는 한데.”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하자 그는 말을 이어갔다.

“그 스피카가 말입니다. 말이란 걸 처음 했을 때, 스스로를 수호자라 칭했답니다.”

“예? 수호자요?”

“네, 수호자요.”

“세상에 수호자라... 무슨 우리를 지켜주기라도 하겠답니까? 하하!”

모두는 크게 웃었다.

“말이 그렇다는 거죠. 하지만 발견 당시 헌터들도 고대 수호자를 발견했다고 했으니까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수호자치고는 너무 까탈스러운 거 아닌가요? 성격이 너무 더러운데요.”

“어쩌면 남에게 굽힐 이유가 전혀 없는 수호자일지도 모르죠. 수호자라 해서 항상 저자세로 행동해야한다는 법은 없으니까요.”

“그것도 그렇네요.”

“그럼 이제부터 지구는 독수리 오형제가 아니라 스피카가 지켜주는 겁니까?”

“하하하하!”

해당 시사 프로그램을 지켜보고 있던 석민이 티비를 껐다.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악튜러스는...’

게이트로 떠나간 악튜러스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석민은 원치 않게 악튜러스의 여러 기억들을 엿볼 수 있었다.

대부분은 아버지라 불리는 남자를 따라 에아라는 곳까지 향하는 여정이었다.

하지만 그 여정에서 석민이 느꼈던 것은 분노와 증오. 그리고 복수심이 전부였다.

석민은 고물상을 나와 악튜러스가 있는 K골렘 스타디움을 찾아갔다.

도착한 경기장은 악튜러스를 정비하고 있는 회사 관계자들과 기자들로 북적였다.

악튜러스 주인답게 무난하게 인파를 헤치고 경기장 안쪽까지 찾아간 석민이 악튜러스를 불렀다.

“악튜러스.”

그 부름에 눈을 지그시 감고 있던 악튜러스가 전음으로 답했다.

‘듣는 중이다.’

“우연히 네 기억들을 보게 됐어. 고의는 아니고 그냥.”

‘알고 있다. 그리고 그 기억들은 갈수록 더 짙어질 것이다. 언젠간 나와 같은 기억을 공유하게 되겠지.’

악튜러스는 이렇다할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있잖아. 나쁜 기억 밖에 없던데?”

‘그런가?’

“악튜러스. 넌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야?”

악튜러스는 잠시 침묵했다.

아이에게 할 말을 고르던 악튜러스는 잠시 후 그 무거운 입을 열었다.

‘나는 나의 길을 갈 것이다.’

“네 길? 그게 어떤 길인데?”

‘그대가 알 필요 없는 길이다. 하지만 이건 확실하게 말해줄 수 있겠군. 내가 걸어갈 길은 그대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렇기에 우린 친구로 남을 수 있는 것이다.’

악튜러스는 분명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석민은 그게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지금 이 자리서 꺼내 묻고 싶진 않았다.

돌아올 대답이야 뻔해보였으니까.

대신 석민이 다른 말을 꺼냈다.

“나랑 같이 우승할 거지?”

그 물음엔 악튜러스는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답해주었다.

‘시작을 했다면 끝을 봐야하는 법. 정상의 자리는 오롯이 그대의 것이다. 만약 그대 힘으로 앉을 수 없다면 내 힘으로 앉혀주겠노라.’

< #37 지역 예선 > 끝

ⓒ 대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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