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 형제들 사이에 싸움을 일으키는 자 >
그 물음에 트윈 오거는 그 즉시 반응을 보였다.
“칠죄종?”
“뭐야? 먹는 건가?”
무식한 오거답게 대답도 실망스러웠다.
실망한 악튜러스가 손에 든 자루를 들고 일어나 섰을 때, 바 테이블 위로 작은 고블린 하나가 뛰어올랐다.
제법 늙은 고블린이었는데, 외알 안경을 쓰고 뒷짐을 진 모습을 보니 이곳의 주인장처럼 보였다.
고블린은 혀를 차며 트윈 오거와 악튜러스 사이로 다가왔다.
“쯧쯧쯧, 이 무식한 것들.”
계속 혀를 차주던 그는 파리채 같은 것으로 트윈 오거 중 한 놈의 볼떼기를 세차게 때렸다.
“장사는 그따위로 하는 게 아니야.”
맞았으니 머리 중 하나가 울상을 지었다.
그러자 안 맞은 놈이 킥킥대고 웃는다.
화가 났는지 맞은 놈이 안 맞은 놈의 볼따구니를 향해 주먹을 날리자 제 주먹에 맞은 트윈 오거는 그대로 몸이 넘어갔다.
쾅!
그 모습을 보고 고블린은 계속 혀를 찼으며, 제 주먹에 나가떨어진 트윈 오거는 자기 얼굴을 무자비하게 구타하며 더 한심한 꼴이 됐다.
참으로 꼴사나운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한심한 종업원을 뒤로 하고 외알 안경을 고쳐 쓴 고블린이 악튜러스를 올려다보았다.
“그래, 칠죄종 세트라고. 그건 나도 처음 들어보는군.”
‘전혀 모르고 있나?’
아직도 제 얼굴을 때리고 있는 트윈 오거 따위야 사뿐히 무시해주는 악튜러스는 제게 다가온 고블린에게 관심을 돌렸다.
고블린은 검지 하나로 제 콧구멍을 후비적거리더니 이를 입속에 넣고 쪽 빨았다.
“요고 참 짭쪼름하군. 사실 나도 잘 몰라. 하지만 그 정보를 알법한 사람을 하나 알고 있지.”
‘그게 누구지?’
고블린은 심심하면 혀를 찼다.
기분 나쁘게.
“쯧쯧쯧, 이 무식한 골렘이 이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주인도 없는 놈이라 그런지 어른 앞에서 버르장머리가 없군.”
악튜러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먹은 나이로 치면 자기가 더 어른이거늘.
그 불편한 감정을 숨긴 악튜러스가 재차 물었다.
‘다시 묻지. 어디로 가면 그 정보를 얻을 수 있나?’
이젠 엉뚱한 방향을 바라보던 고블린은 마치 정해진 각본처럼 제 귀를 후비적거렸다.
“요놈의 입은 아주 비싸지. 황금의 주둥아리라 쉽게 벌려지지가 않아. 이걸 벌리게 하려면 고생께나 할 거야.”
악튜러스는 미리 준비해놨던 사금 자루를 바 테이블 위에 거칠게 내려다놓았다.
주머니 크기는 지금 악튜러스를 향해 주둥아리를 놀리던 고블린보다도 더 컸다.
제 덩치만한 무언가가 제 앞으로 꽝! 떨어지자 고블린이 크게 놀랐다.
“뭐, 뭐야...”
‘사금이다. 피오르 강에서 가져왔다.’
베른테스령 팡치앙 중립시.
그 근처엔 사금이 채취된다는 피오르 강이 있었다.
악튜러스는 어스 골렘.
어스 골렘의 최대 장점은 흙의 지배력을 활용해 특정 금속을 모으는 게 아주 쉽다는 점이다.
어차피 정보 흥정을 위해선 돈이 될 만한 게 필요했고, 그 점을 알고 있었던 악튜러스는 팡치앙 중립시로 들어오기 전 피오르 강을 들려 사금을 잔뜩 챙겨왔다.
“오오! 진짠가?”
‘확인해보면 알 것이다.’
헐레벌떡 사금 주머니를 열어젖힌 고블린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황금빛 금가루가 주점의 조명 아래서 반짝거리고 있었다.
이게 진짜 사금이라면!
“어마어마한 양이로군. 어스 골렘이라 해도 이 정도까지 사금을 모으진 못했을 텐데. 얼마나 걸렸나?”
‘몇 분이면 충분하더군. 당분간 피오르 강에서 사금 체취는 불가능할 것이다.’
“허허... 이런 일이.”
그래도 확인은 필요한 법.
고블린은 제 검지에 침을 묻히더니 이를 사금 주머니에 콕 찍었다.
그리곤 이를 가져와 제 혓바닥에 비볐다.
사금 맛을 본 고블린의 입에서 활짝 웃음꽃이 피어났다.
“크하하핫! 이럴 수가! 언빌리버블! 진짜 금이로군.”
악튜러스는 마치 정해진 각본처럼 고블린에게 보였던 사금주머니를 낚아채듯 도로 가져갔다.
‘내줄 정보가 없다면, 나 역시 줄 게 없다.’
“잠, 잠깐만. 이봐 친구. 너무 성급하군.”
대체 언제부터 친구였는지.
고블린의 태도는 금세 180도로 바뀌었다.
“하하하! 자네 나랑 일을 해볼 생각은 없나? 아니지. 골렘이니까 주인이 있겠군. 그 주인하고 말 좀 섞고 싶은데, 어때 괜찮겠나? 주인 좀 데려와 봐.”
‘미안하지만 내게 이래라저래라할 주인 따윈 없다. 나는 의지를 가졌으니까.’
“뭐? 골렘이 의지를 가져? 이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리야.”
고블린은 머리털 하나 없는 제 머리를 긁적였다.
‘그랬던 적이 있었던가?’
이래저래 생각해봤지만 의지를 가졌다는 골렘은 이 자리서 처음 봤다.
“거참 신기하군. 골렘이 주인도 없이 돌아다니다니. 자연계에 서식하는 야생 골렘도 아닐 테고. 더군다나 말까지 하는데...”
악튜러스가 꽉 그러쥔 주먹으로 바 테이블을 거칠게 내리쳤다.
‘말이 길군. 건질 게 없다면 다른 정보상을 찾아가겠다.’
그 말에 고블린이 화들짝 놀랐다.
“워워워! 진정하라고 친구. 거 성격 급한 친구로구만. 지금 말하려고 했어. 왜이리 성질이 급해.”
성질이 급하단 말에 악튜러스는 자기도 모르게 아버지를 떠올려버렸다.
허름한 로브를 입은 젊은 마도사.
그는 어린 악튜러스를 구하고 에아로 향하는 도중, 이곳 중립시장에서 악튜러스를 돌아보았다.
많이 지친 아이가 그의 로브 옷가락을 당기며 자연스레 마주본 것이다.
꼬르륵~
아직 소년이던 악튜러스가 주린 배를 움켜잡고 자신을 아버지라 소개한 그에게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저기... 너무 배가 고픈데 뭐라도 먹을 게 없을까요?”
그 당시에도 존재했던 이곳 중립시장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온갖 몬스터들의 천국이었다.
물론 여기엔 인간들도 극소수 포함되어 있었지만, 그 수가 월등히 작았기에 시장 자체는 몬스터 시장이라 봐도 무방했다.
그런 곳에서 아이가 굶주린 배를 알려오자 마도사는 쓰고 있던 로브 후드를 벗고선 주변을 둘러봤다.
피부는 거칠었고 지팡이를 쥔 손은 투박했다.
“미안하구나 악튜러스. 내가 미쳐 신경을 못 썼구나. 우선 먹을 걸 찾아보자꾸나.”
대개 마법사와 달리 그는 금전적으로 여유가 없었다.
거지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거지였던 이유가 있었다.
돈이 필요하게 되면 어떻게든 만들면 됐기 때문이다.
마법을 다룬다는 게 본디 그런 게 아니겠는가?
다만 필요 이상으로 가지지 않을 뿐.
중립시를 벗어난 마도사는 악튜러스를 이끌고 사금이 체취 된다는 피오르 강으로향했다.
그 당시만 해도 허가 없는 사금 체취는 전혀 불법은 아니었다.
그곳에서 마도사가 제 지팡이를 땅바닥에 내렸다.
마도사는 제가 알고 있던 마법을 행했다.
어트랙트 마법.
룬어로 된 고대어를 읊어주니 쥐고 있던 지팡이 끝에서 빛이 번쩍였다.
악튜러스가 놀랐다.
“지팡이에서 빛이 나요.”
집중을 위해 대답이 없는 마도사는 지팡이 끝을 조용히 내렸다.
그러자 강가에 파묻혀있던 사금들이 반짝 빛을 내며 그가 내린 지팡이 끝에 빠르게 모여들었다.
마법에 의한 사금 체취였다.
“와, 저게 다 금이에요?”
악튜러스는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올라오는 금빛 가루들을 보며 물었다.
잠시 후 어렵지 않게 사금 체취를 마친 마도사는 껄껄 웃으며 그렇다고 했다.
“이게 다 금이란다. 신기하지?”
“와, 진짜 신기하다. 전 이런 거 처음 봤어요.”
“그만큼 마법이란 건 대단한 거지. 하지만 기억하거라. 마법이란 만인을 위한 것.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해 이 힘을 사용한다면 결국 그 끝은 파멸에 이를 것이다.”
그렇게 사금을 모은 마도사는 굶주린 악튜러스를 배불리 먹일 수 있었다.
몬스터들이 흘깃하는 시장바닥에서 악튜러스는 정말 걸신이 들린 마냥 무섭게 먹어치웠다.
탁자에 쌓여가는 빈 그릇들.
그 모습을 보고 흐뭇하게 미소 짓던 마도사가 그 입을 열었다.
“맛있니?”
“네! 엄청 맛있어요. 다 먹을 거예요.”
“고놈 성질도 급하구나. 누가 안 뺏어가니 천천히 먹거라.”
그로부터 무수한 세월이 흐른 뒤.
다시 이곳을 찾은 악튜러스는 그때 당시 아버지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아주 짧게나마 상기시킬 수 있었다.
아주 잠시 동안 과거 회상에 젖어 있던 악튜러스에게 고블린이 입을 열었다.
“이거 다 주는 거 맞지?”
기분 나쁜 고블린의 말이 이어지자 악튜러스는 그 표정을 무섭게 했다.
‘이미 줬다.’
“뭐? 뭘 줘?”
‘방금 전 네놈의 입구멍으로 넘어간 사금. 그걸 이 자리서 뱉어내던가 아니면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뱉어내는 게 좋을 거다.’
“이, 이놈이!”
고블린은 대뜸 삿대질을 했다.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늙은 고블린이 중무장한 대전 골렘을 상대로 이리도 막 나갈 수 있는 것은 이 도시가 가진 특수성 때문이었다.
중립시에 위치한 중립시장.
이곳에서 말썽을 부린다면 온전히 이 도시를 빠져나갈 수 없게 된다.
고블린이 믿고 있는 건 오직 그거 하나였다.
하지만 악튜러스의 대응도 만만찮았다.
‘경고하는데 내가 아주 조금만 힘을 쓰면 이 가게 아래에 거대한 싱크홀이 생길 것이다. 그 싱크홀을 그대로 놔둔다면 이 가게는 언젠가 푹 가라앉게 되겠지.’
“지, 지금 날 협박하는 게냐! 감히 치안 좋기로 소문난 이곳에서 배짱 좋게 협박이라니! 네놈이 아무리 잘나봤자 몸 성히 이 중립도시를 빠져나갈 수 있을 성 싶으냐!”
‘협박? 세상에 협박이라니. 나는 이 아래 싱크홀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걱정해주고 있는 건데 그거 참 너무하군.’
악튜러스가 악의 가득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 미소를 보자 고블린은 속이 뒤집어졌다.
“이 버르장머리 없는 골렘 같으니라고! 네놈의 주인을 찾아 내 반드시 그 사지를 비틀어버리겠다! 네놈의 운명이 주인과 함께한다는 걸 내가 모를 것 같으냐!”
악튜러스는 고개를 저었다.
‘기억력이 좀 나쁜 것 같군. 나는 주인이 필요 없다고 말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지금 이 아래 조그마한 싱크홀이 생겼다. 시간이 없으니 잘 판단하도록.’
카사블랑카에 대한 직접적인 정보도 없는 양아치 주인이라 악튜러스는 제대로 대금을 지불할 생각이 애초부터 없었다.
그리하여 반협박식으로 정보를 얻어낸 악튜러스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트윈 오거와 아직도 화를 가라앉히지 못해 씩씩거리고 있는 고블린을 뒤로하고서 주점을 빠져나왔다.
이후 고블린이 말한 시청으로 향하는 악튜러스는 저도 모르게 올라가는 한쪽 입꼬리를 주체하질 못했다.
‘방금 전 그 싱크홀을 메꾸지 못했다는 걸 미처 말하지 못했군.’
그런 악튜러스의 모습에 까리뽕이 미소를 지었다.
“허허, 이거 다시 봤습니다. 이렇게 악질이실 줄이야. 처음부터 알아봤다면 더 친근하게 대할 걸 그랬습니다.”
‘시끄럽다 리치여. 내 일은 그대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험험, 그나저나 시장이라니. 이거 혹시 제가 갈구던 놈 중에 하나가 아닐까 걱정됩니다.”
전성기에 까리뽕은 수많은 부하를 뒀었다.
그 당시 떨쳤던 악명만큼 그를 따랐던 부하들도 만만찮았으며, 자기가 사라진 직후 뿔뿔이 흩어져 알아서 살고 있을 터.
대부분 부하들은 이런 도시의 수장들이 많았다.
이따금씩 신선한 재료를 공급받으려면 도시의 수장 자리에 부하들을 앉혀놓는 게여러모로 편했기 때문이다.
“그때가 참으로 그립습니다. 이 까르니아의 명성이 자자하던 그때로 돌아간다면 두 번 다시 그때 그 실수는 저지르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어리석은 리치여. 갑자기 말이 많아진 것 같군. 교육이 필요한가?’
“크흐흐흠... 지금부터라도 조용히 있겠습니다. 부디 그 화를 거두시길.”
악튜러스는 시장을 가로질러 시장이 살고 있다는 투기장으로 향했다.
듣자하니 시장이란 놈이 성격이 아주 괴팍하여 투기장에서 싸움 붙이는 걸 좋아한단다.
악튜러스가 시장이 있다는 투기장으로 찾아갔을 때, 그곳에는 중무장한 트롤 하나와 철갑을 두른 오거 하나가 거대한 둔기류를 들고 서로 맞붙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 위치한 단 위에서는 정체 모를 고기를 뜯고 있는 왕고블린이 하나자리하고 있었다.
왕고블린.
그 크기는 트롤에 맞먹을 정도로 거대하며 그 성정은 탐욕과 악의로 가득한 존재라 널리 알려져 있었다.
악튜러스는 거대한 의자에 앉아 뒷다리 고기를 뜯는 왕고블린이 제가 찾던 시장이란 것을 단박에 알아보았다.
‘저기 놈이 있군.’
악튜러스가 투기장에 찾아왔을 때만 해도 관심을 주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그러다 악튜러스가 제 앞에 맞붙고 있던 트롤과 오거를 단숨에 제압시켰을 때, 그제야 모두의 시선이 악튜러스에게 향했다.
넝마의 후드를 벗고 단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왕고블린을 향해 악튜러스가 전음을 날렸다.
‘그대에게 물어볼 게 있어 찾아왔다.’
왕고블린은 그 섬뜩한 시선을 내리며 입매를 부들부들 떨었다.
누가 명령하지도 않았건만.
곧 투기장 여러 곳에 문이 열리며 다음 경기를 위해 준비중이던 몬스터와 대전 골렘들이 한순간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 와중에도 악튜러스는 동요 없이 시장만 올려다봤다.
그때 조용하던 까리뽕이 의자에 앉아 있던 개돼지 왕고블린을 알아보았다.
“아니 저놈은.”
그는 까리뽕의 기억에도 있는 꼬봉 제 103호였다.
< #36 형제들 사이에 싸움을 일으키는 자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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