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파이트-113화 (113/173)

< #36 형제들 사이에 싸움을 일으키는 자 >

생각해보니 아이가 가진 골렘의 추정 가치만 해도 수천억이었다.

조 단위일수도 있었고.

‘그래, 장비 하나만 해도 엄청나지. 나 같은 서민은... 사실 서민은 아니지만 아무튼 언감생심 꿈도 못 꿀 테고.’

그리고 아빠 역시 S급 헌터.

24억 차야 장난감 수준일 것이다.

‘부럽다 부러워.’

*  * *

미국 수도 워싱턴 D.C에는 미국의 육해공 3군을 총괄하는 미국방부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 미국방부에 가장 많은 무기를 납품하는 방위산업체이자 글로벌 대기업인 제리코 코퍼레이션 역시 그 위치가 미국방부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제리코 코퍼레이션 본사.

어둑한 실내에 위치한 한 남자가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됐나.”

“처리했습니다. 앞으로 문제 될 일은 아마 없을 겁니다.”

“성가시게 뒤를 밟히진 않았겠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런데...”

“왜?”

“너무 쉽게 버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번 더 기회를 줬어도 됐을 텐데요.”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창가에 위치한 블라인드 사이를 벌리며 밖을 내다보았다.

제법 괜찮은 야경.

그가 무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비밀을 너무 많이 알고 있어. 골렘도 잃은 마당에 이용할 가치도 없어졌고.”

“이해는 합니다만.”

“지금 어디지?”

“델레스 국제공항입니다.”

“빨리 왔군.”

“거기에 있어봤자 좋을 게 없잖아요.”

“내일 이쪽으로 오게. 할 말이 있어.”

무엇 때문에 오라고 한 것일까?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할 말은 이미 정해져 있는데.

“그럼 내일 뵙도록 하죠.”

다음 날.

흑발, 흑안의 소녀가 제리코 코퍼레이션을 찾아왔다.

서늘한 눈매에 차가운 인상.

가느다란 몸에 교복만 입히면 영락없는 중학생처럼 보일 소녀.

하지만 진실은 따로 있었다.

알 수 없는 복합적인 문제로 성장이 멈춰 있을 뿐이지, 사실 그녀의 나이는 서른에 근접했다.

헌터로 각성되면서 육체 성장이 멈춘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선 본인을 포함한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야오린이 비서의 안내를 받아 어느 집무실 안으로 향하자, 낯익은 목소리가 그녀를 반겨주었다.

“왔나? 오랜만이군.”

“너무 어둡네요.”

“난 어두운 게 좋아. 그보다 이쪽으로 와서 앉지.”

실내는 어두웠다.

참으로 특이한 성향을 가진 자였다.

하지만 생김새는 멀쩡했다.

말끔한 정장 차림에 나이는 마흔이나 됐을까?

금발 벽안의 남자가 어둑한 실내에서 마주앉은 야오린을 향해 천천히 입을 뗐다.

“존은 잘 처리했어. 언제 봐도 일은 정말 잘하는 거 같아 크리스.”

“제 특기죠. 그래서 또 부탁하실 일이라도?”

“곧 월드 그랑프리야. 특별한 일이 없다면 올해도 우승을 가져가겠지. 다른 건 몰라도 골렘 하나는 확실하니까.”

“그런데요?”

“그게... 약간의 문제가 생겼어.”

“문제? 어떤 문제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근처에 있던 조그마한 바로 찾아갔다.

진열되어 있던 여러 술병 중 하나를 잡은 그가 야오린을 불렀다.

“자네도 한 잔 마시겠나?”

“사양할게요. 별로 안 좋아해요.”

그는 위스키 한 잔을 따르더니 제 목을 축였다.

그가 말을 이어나갔다.

“큰 건 아니고. 이쪽 골렘 파이터에 문제가 생겼거든.”

야오린은 가만히 시선만 주고서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계속 들었다.

“꼴에 골렘을 다루고 싶나봐. 그저 시키는 대로 하면 될 것을.”

그제야 야오린은 그가 말하는 문제에 대해 눈치 챘다.

“그런 일이 있었나요?”

“그래서 말인데. 대체할 파이터가 필요해. 놈은 버릴 예정이라.”

“대체품이라면 주변에 많지 않나요? 공고라도 낸다면 수많은 파이터가 관심을 보일 겁니다. 막시무스잖아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기엔 이쪽 구린내가 너무 심해.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지.”

“그게 저라고 생각하십니까?”

“자네야 일 잘하잖아. 골렘도 여러 번 다뤄봤고. 실력도 수준급이라고 들었네. 맞나?”

“저보다 골렘을 잘 다루는 파이터야 널리고 널렸는데요?”

그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내가 원하는 건 혼자서 잘 싸우는 파이터가 아니야. 그저 알파고 명령에 토 달지않고 따라줄 노예가 필요한 거지. 지금 그 머저리처럼 꼴에 골렘 파이터랍시고 알파고 명령을 무시할 놈은 필요하지 않아.”

“그거 기분 나쁜데요?”

“흐하하! 기분 나빴다면 사과하지. 기분 나쁘라고 한 소리는 아니야. 그냥 말 잘 듣는 파이터가 필요하다고 말했을 뿐이지.”

위스키 잔을 든 그가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그는 푹신하고 안락한 의자에 몸을 맡기며 슬슬 운을 뗐다.

“자네가 막시무스를 맡아줬으면 좋겠어.”

“왜 저야만 하죠? 지금까지 제가 한 일, 전부 아시잖아요?”

그간 벌여온 일들을 생각해본다면 야오린은 공개적인 자리에 나가는 걸 반길 수 없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알잖아. 이쪽 사정. 내가 볼 땐 이 일을 맡길 사람은 자네 밖에 없어.”

“돈은요?”

“좋아. 좋은 자세야.”

미소를 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섰다.

“돈이야 걱정 마. 우승만 하면 얼마든 내줄 테니까. 대신 우승은 무조건해야 돼. 알지? 절대 지는 일은 없어야 돼.”

그는 무섭게 경고했지만 야오린은 그 말을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왜냐?

“막시무스가 질 수 있나요? 바보가 조종해도 무조건 우승할 텐데.”

현존하는 최강의 골렘.

투입된 돈만 해도 수조원에 이르렀다.

항공모함에 버금갈 정도로 막대한 예산을 잡아먹은 그 골렘은 야오린이 말했던 것처럼 바보가 조종해도 우승할 만큼 세계 최고였다.

“부탁하지 크리스. 나는 자네가 필요해.”

야오린은 입술을 매만지더니 그를 쳐다보며 다른 말을 꺼냈다.

“사실 저도 그 파이터랑 같은 과에요. 나름 파이터 기질이 있죠.”

“우린 그런 파이터는 필요하지 않아. 파이터보다 알파고가 더 좋으니까.”

“하지만 돈 앞에선 파이터 양심 따윈 충분히 버릴 수 있죠. 돈만 확실히 해주세요. 나머진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야오린이 웃자 그도 따라 웃었다.

“훌륭해. 아주 좋은 자세야 크리스.”

*  * *

한국에서 가장 큰 경기장.

K 골렘 스타디움에 찾아간 석민은 곧장 악튜러스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전날과 다르게 석민은 오늘 등교를 하지 않고 악튜러스를 찾아갔는데, 이는 악튜러스와 할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석민은 안전을 이유로 게이트 안쪽을 출입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남은 칠죄종 세트와 악튜러스의 장비 향상을 위해서라도 게이트 안쪽으로들어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되었다.

악튜러스와 마주한 석민은 분주하게 움직이는 기술자들을 무시한 채 속으로 악튜러스와 대화를 이어나갔다.

‘나랑 같이 게이트 안쪽으로 가자 악튜러스.’

아이의 부탁에 악튜러스는 그 즉시 만류하는 입장을 보였다.

‘거기는 위험한 곳이다. 그대의 안전을 생각한다면 그런 생각은 물리는 게 좋다. 그대는... 아직 어리다.’

악튜러스의 말도 사실이었다.

석민은 고심하듯 미간 사이를 좁혔다.

‘맞아. 위험하긴 해.’

석민은 냉정하게 말해서 헌터가 아니었다.

마나를 다룰 수 없는 그냥 일반인이었고, 이런 몸으로 게이트 안쪽을 돌아다니는 것은 사실상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물론 아다만틴 채굴이나 칠죄종 신발을 만들기 위해 출입했던 적은 있었지만 이것은 찾아간 지역이 그다지 위험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자신을 지켜줄 골렘도 엄청 많기도 했고.

하지만 그보다 더 깊숙한 곳은 석민이 지금까지 갔던 곳과는 비교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위험한 곳이 맞았다.

안전을 생각한다면 그런 곳까지 찾아가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했다.

‘하지만 칠죄종 세트를 다 모을 수 없다면 우승은 못 할 거야.’

석민은 악튜러스의 가능성을 알았을 때 국내 대회쯤이야 충분히 우승할 줄 알았다.

하지만 월드 그랑프리는 달랐다.

악튜러스와 같은 고대 골렘들도 둘이나 더 있었다.

이 말은 국내 대회에서 가졌던 악튜러스의 이점이 세계 대회에선 사라진다는 소리였다.

“악튜러스.”

석민은 주변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육성으로 목소리를 냈다.

아이가 골렘을 향해 말을 꺼내자 주변에서 분주하게 돌아다니던 기술자들이 석민을 힐끔거렸으나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일반인에겐 다소 생소하겠지만, 골렘 기술자들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영혼을 가진 골렘과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물론 통상적인 것은 아니어서 신기한 일이 맞기는 했다.

그럼에도 쉽게 납득하는 것은 악튜러스가 일반 골렘도 아닌 고대 골렘이기 때문이다.

“혹시 스피카라고 알아?”

순간이었지만 악튜러스의 상체 장갑이 붉은 빛을 뿜었다.

‘녀석은...’

악튜러스는 최대한 말을 아끼며 감정을 다스렸다.

다만 석민은 방금 전 악튜러스가 내비쳤던 감정이 분노와 증오였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그 골렘 있잖아. 세계 대회에 나올 거야. 이건 네가 알아줬으면 해.”

악튜러스의 입매가 요동쳤다.

치솟는 화를 애써 참고 있는 모습이었다.

석민도 저 모습을 어느 정도 예상했기에 스피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비밀일 수는 없는 법.

이제는 말해야할 때가 왔다.

‘언젠간 마주칠 상대라면 말해줬어야 했어. 그게 맞아.’

본래 악튜러스 성격 같았으면 이곳을 엉망진창으로 헤집어놨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감정을 억누르는 것은 그만큼 성숙했다는 증거.

거치대에서 제 멋대로 해방된 악튜러스는 그 즉시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들어갔다.

그 바람에 주변에 위치하던 기술자들이 깜짝 놀랐지만, 명상을 하는 악튜러스가 조용해지자 그 소란은 다시 잠잠해졌다.

악튜러스는 한동안 명상을 계속 했다.

석민은 악튜러스가 스스로 화를 가라앉힐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기로 했다.

잠시 후 악튜러스가 실눈을 떴다.

‘녀석도 나오는 건가?’

“응. 걔도 너처럼 대전 골렘이거든. 세계 대회에 무조건 나올 거야. 그리고 언젠간 만나게 되겠지.”

‘재밌군. 녀석은 오롯이 내것이다.’

“그래. 그건 말리지 않을게. 그런데 나 궁금한 게 있어.”

‘무엇이 궁금하지?’

“스피카 같은 고대 골렘들도 너만큼이나 강한 거야?”

질문하기가 어려워 그 동안 묻고 싶어도 물을 수가 없었다.

그 물음에 악튜러스가 아주 잠깐 동안 침묵했다.

그러나 그 침묵은 그리 오래지 않았다.

‘우습게 볼 상대는 아니다. 그들도 나처럼 자격을 갖췄으니까.’

악튜러스가 말하는 자격이란 건 대체 무엇일까?

“그 자격이란 건 뭐야?”

‘그대가 굳이 몰라도 되는 것이다.’

“아무튼 쉬운 상대는 아니란 거네?”

‘그렇다.’

고대 골렘이라는 이점이 사라진다면 악튜러스가 내세울 건 없었다.

있다면 딱 하나.

바로 장비 빨.

“하지만 칠죄종 세트를 다 모으게 되면 악튜러스 네가 스피카 따윈 쉽게 이길 수 있지 않을까?”

‘부정하진 않겠다. 지금보단 수월하겠지.’

“그런데 그 세트를 모으려면 무조건 게이트 안쪽으로 들어가야 된대. 까리뽕이 그렇게 말했어.”

악튜러스가 생각하듯 눈썹을 모았다.

칠죄종 세트를 모으는 건 맞았으나, 그런 위험한 일을 아이가 떠맡을 필요는 없었다.

그런 일은 저 혼자서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으니까.

‘남은 세트는 내가 모아오도록 하지. 그대가 안전을 버리면서까지 굳이 나설 필요는 없다. 여기서 기다리도록.’

악튜러스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섰다.

석민이 무언가를 말하기도 전에 악튜러스가 동력을 끌어올렸다.

시공안이 요동친다.

곧이어 악튜러스 앞으로 거대한 포탈이 생겨났다.

< #36 형제들 사이에 싸움을 일으키는 자 > 끝

ⓒ 대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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