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파이트-112화 (112/173)

< #36 형제들 사이에 싸움을 일으키는 자 >

“진짜?”

유이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둘을 뒤에서 지켜보던 페트리샤가 혼자서 중얼거렸다.

들리지도 않는 작은 소리였지만 험담이었다.

석민은 둘에게 관심을 끈 채 핸드폰 화면만 집중했다.

네이버 포털 뉴스들.

그중엔 피살된 40대 외국인 남성에 관한 기사도 있었다.

거구의 체구, 신원 불명인 그는 인천을 떠나는 여객선에 몸을 싣기 전 어느 괴한에게 총격을 받아 피살당했다.

총을 쏜 범인은 그 즉시 도주했으며, 사건 장소에 출동한 경찰들은 범인이 흔적을남기지 않은 것으로 보아 능력자 소행으로 결론짓고 헌터부로 해당 사건을 이관했다.

범인은 아직도 잡히지 않았단다.

‘참 흉흉한 세상이야. 조심해야 돼.’

어차피 모르는 사람.

석민은 짧은 감상평을 남기며 다른 기사로 관심을 돌렸다.

이번엔 골렘 파이트에 관한 뉴스를 접할 수 있는 스포츠 기사들을 눈여겨봤다.

쭉 훑어보니 JP 겐지의 인터뷰가 눈에 띄었다.

[JP 겐지, 올해 지역 예선에서 강한 자신감. 올해 목표는 세계 1위.]

언젠간 잡아야할 상대라 석민은 관심 있게 해당 기사를 읽어 내렸다.

특별한 것은 없었고, 겐지 선수의 강한 자신감이 엿보이는 기사였다.

댓글들을 살펴보니 우리나라 네티즌들이 욕한 게 대부분.

가장 눈에 들어오는 댓글은 겐지를 방사능 원숭이로 취급하는 댓글이었다.

‘지역 예선이 앞으로 한 달 뒤였지.’

석민은 한 달 뒤에 있을 동아시아 예선을 떠올렸다.

이 지역 예선은 본선과 다르게 리그전이며 각 나라 골렘들과 한판씩 붙게 된다.

여기서 성적 좋은 골렘은 월드 그랑프리 진출을 확정짓고 주변의 큰 관심을 받게 된다.

여기서도 선수들이 이기려고 기를 쓰는데, 이것은 지역 성적이 좋아야 본선 성적도 좋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나가면 그 아저씨도 보겠지?’

석민은 롯데 호텔에서 보았던 리준을 떠올렸다.

말이 없는 과묵한 선수였는데, 그 선수가 동아시아 랭킹 1위이자 동방불패라 불리는 골렘의 파이터였다.

다른 기사들을 살펴보니 올해도 리준이 좋은 성적을 거둬 본선에 진출할 거란 이야기가 참 많았다.

북한 선수 리명국에 대한 이야기도 간간히 흘러나왔으나 거의 무시되는 수준.

댓글 반응을 봐도 폄훼하는 이야기가 많았다.

‘북한 선수라 그럴 거야. 실력 자체는 좋아.’

석민도 리명국에 대해 모르지 않았다.

선수 이전에 골렘 파이트 광팬으로 국가 대표급 선수에 대해선 어지간하면 거의 다 알고 있었으니까.

석민이 겐지와 마찬가지로 리명국 기사에 대한 댓글들을 쭉 훑어봤다.

역시나 욕이 대부분.

특히 북한 외무상이 막말한 서울 초토화 발언에 발끈하는 댓글러들이 정말 많았다.

그 댓글들을 대충 훑어본 석민은 다른 기사를 찾아보다가 자신과 관련된 뉴스 기사를 발견하게 됐다.

‘와, 나도 나온다.’

[악튜러스, 월드 그랑프리 문턱을 과연 넘을 수 있을 것인가? 지역 예선은 확정!]

석민은 옅게 미소를 띠었다.

저와 관련된 뉴스라 그러했다.

‘나랑 악튜러스 완전 유명인 다 됐다. 예전엔 홍진영 아저씨 기사만 잔뜩 봤던 거 같은데.’

그 당시 석민의 기억으론 홍진영도 막말을 일삼는 겐지와 정치적인 관계로 욕을 먹는 리명국 못지않게 욕 댓글이 많이 달리는 파이터였다.

성적이 좋았을 땐 신처럼 추앙하더니, 성적이 좋지 않자 사람들은 굶주린 개처럼 홍진영을 물어뜯었다.

그딴 성적으로 어떻게 월드 그랑프리에 나가 우승할 거냐는 둥.

올해는 꼭 JP를 꺾어서 한국땅을 밟으라는 둥.

정말로 안 좋은 댓글들이 많았었다.

‘그 자리를 내가 대신하려나?’

석민은 제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쭉 훑어봤다.

[전체 댓글 7679]

12Da****

믿습니다 악튜러스

호감 8234 비호감 102

DSsd****

적어도 방사능 원숭이는 무조건 때려잡아야 함

호감 7358 비호감 342

jyes****

악튜러스 개체 등급이 A- 이상이라 월드 그랑프리 무조건 진출함. 지역 예선 성적에 따라 본선 성적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을 듯

호감 6543 비호감 392

ssdj****

홍진영 퇴물이 사라졌으니 이번엔 믿어도 되는 각?

호감 5332 비호감 222

우선 기대주라 공격적인 댓글보단 응원 댓글이 많았다.

‘아직은 응원해주나 보다. 하지만 나중에 성적이 안 좋으면 다른 댓글이 달리겠지.’

그것은 선수이기에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할 운명.

석민은 다른 기사들도 살펴봤다.

여러 댓글들이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응원하는 글들이 많았다.

‘또 무슨 기사가 있으려나.’

석민은 다른 기사들도 찾아봤다.

찾다보니 월드 그랑프리에 관한 기사가 눈에 띄었다.

[올해 개최국은 프랑스 파리. 파리 시청, 역사상 가장 큰 경기장에서 월드 그랑프리가 열릴 것.]

기사에 나온 것처럼 올해 월드 그랑프리가 열리는 곳은 프랑스 파리였다.

석민은 석달 뒤 파리에 갈 생각에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나 비행기 타는 건 이번이 처음인데 엄청 떨린다. 파리라는 곳은 대체 어떤 곳일까?’

석민이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있을 때 누군가 제 등을 콕 찔러왔다.

제 뒤에 있는 사람이라고 해봐야 딱 한 명.

석민은 조용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엔 고양이 눈으로 톡 쏘아보고 있는 페트리샤가 있었다.

눈에서 레이저라도 쏠 기세.

“야.”

날카롭게 쏘아붙이는 목소리.

“응?”

페트리샤는 목소리 톤을 낮추며 입을 열었다.

“지금 뭐 보는 거야?”

무슨 일인가 했더니 고양이 소녀의 호기심이었다.

석민은 고개를 돌리며 심드렁하게 대꾸해주었다.

“뉴스.”

“뉴스? 무슨 뉴스?”

그녀의 눈빛이 심각해진다.

대체 뭘 보고 있는 것인지.

마치 적을 염탐하듯 이리저리 살펴봤다.

그러나 등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대체 뭘 보는 거야.’

“진짜 뉴스야?”

이후 석민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고개를 이리저리 두던 페트리샤가 이내 짜증이 났는지 책상 위로 두 팔로 짚고 서서 석민 머리 아래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 아래 석민의 핸드폰이 보였고, 그 화면엔 이 나라 대표 포털 사이트 로고가 보였다.

그리고 무언가를 보고 있기는 한데, 한글로 되어 있어서 무엇을 보고 있는지 전혀알 수가 없었다.

무언가를 모른다는 건 그녀에겐 굉장한 스트레스였다.

페트리샤가 미간을 찌푸렸다.

‘빨리 이 김치나라 말을 배워야겠어. 녀석이 뭐하는지도 모르겠고 너무 불편해.’

페트리샤의 몰상식한 행동에 담임인 홍담비가 팔짱을 끼고 그녀를 지그시 노려보았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페트리샤는 황급히 제자리로 되돌아오더니 자꾸만 엉덩이를 들썩이며 석민이 무엇을 보는지 계속 살펴봤다.

제 딴에는 경쟁자를 감시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학교 수업이 끝이 났다.

가방을 챙긴 석민이 교실 밖을 나서려하자 유이가 쪼르르 따라붙었다.

“석민아, 같이 가자.”

“응, 그래. 같이 가자.”

석민의 대답은 시큰둥했지만 유이는 개의치 않고 해맑게 웃었다.

그런데 석민과 같이 떠나고 싶은 건 비단 정유이만은 아니었다.

반 아이들이 허겁지겁 가방을 챙기더니 떠나는 석민에게 우르르 몰려들었다.

“석민아 같이 가자! 내가 가방 들어줄게.”

“나도 석민이 따라갈 거야!”

“내가 따라갈 거야!”

“나도 갈 거야!”

같이 가는 걸로 서로 싸우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한심하게 쳐다보던 이가 딱 한 명 있었으니, 방금 전까지만 해도 석민을 따라가려던 페트리샤였다.

‘꼴에 인기는.’

같이 가려는 아이들이야 석민이 집에 도착할 쯤 되자 거의 다 떨어져나갔다.

남은 건 두 여자아이 뿐.

석민은 옆에서 따라오던 유이에게 입을 열었다.

“유이야.”

“응?”

“집에 안 가? 나랑 가는 방향이 반대잖아.”

“괜찮아. 저기 뒤에서 따라오고 있어.”

무슨 소린가 했더니 유이가 등하교 때 타고 다니는 고급 세단 하나가 뒤따라오고 있었다.

이쯤 되자 페트리샤가 앞서 가던 석민을 불러냈다.

“야.”

그 부름에 석민이 돌아보자 페트리샤가 목소리에 날을 세웠다.

“할 말 있어. 들어.”

“무슨 말?”

“언제 붙을 거야. 보니까 준비된 거 같은데.”

석민의 표정은 무덤덤했다.

‘또 지려고?’

해줄 말은 정해져 있었지만 저번처럼 울리기 싫은 모양인지 무시하며 계속 걸어갔다.

그 모습에 페트리샤가 당연히 뿔났다.

“저게 또 저러네. 사람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야! 언제 붙을 거냐고.”

그렇게 티격태격하던 셋은 고물상 앞까지 오게 됐다.

“유이야 잘 가.”

“응, 내일 또 봐.”

“내일? 나 내일 학교 안 갈 거야. 할 게 있거든.”

“안 올 거야? 그럼 나 내일 여기로 와도 돼?”

“안 돼. 유이는 학교 가야지.”

“싫어. 나 여기 올래.”

뒤따르던 페트리샤가 끼어들었다.

“넌 학교가야지. 야, 안 싸울 거냐고? 준비 됐잖아.”

은근히 집착하려는 여자와 옆에서 떽떽거리는 여자.

석민은 아빠가 누누이 강조했던 말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역시 여자는 멀리해야 돼. 안 좋은 생물이야.’

유이가 돌아가고 페트리샤는 마지막까지 고물상에 남았다.

본래 독일로 돌아가야 할 그녀가 한국에 남은 이유야 확고했으니까.

“언제 싸울 거냐고 묻고 있잖아. 그렇게 없는 사람 취급 할 거야?”

“또 지려고?”

“안 져. 이번에 절대 안 진다고.”

“또 지면 어쩌려고. 너 엉덩이로 이름 쓸래?”

“이게 진짜!”

엉덩이로 이름 쓰는 건 생각도 못한 일.

페트리샤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절대 안 해!”

“그럼 안 싸울 건데.”

“진짜 그런 게 어딨어!”

“여기 있지. 졌을 때 엉덩이로 이름 쓸 거면 붙어줄게.”

“너 이러기야? 품위 없게 엉덩이로 이름 쓰기가 뭐야 진짜.”

어디서 승부욕은 있어가지고.

석민은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엉덩이로 이름 안 쓸 거면 안 싸워줄 거야. 그렇게 알아.”

주먹을 꽉 쥐고 석민을 노려보던 페트리샤가 홧김에 고물상에서 나가버렸다.

씩씩거리면서 나가는 꼴이 생각보다 귀여웠다.

화난 고양이라고 할까?

“두고 봐! 사람들 앞에서 개망신 당하게 해줄 테니까!”

가게 밖으로 나간 페트리샤가 불현듯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고물상 문턱에 고개를 삐쭉 내밀고 혓바닥을 보였다.

“메롱이다! 흥!”

꼴사나운 모습에 석민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그런 석민에게 다가오며 이루리가 말을 붙였다.

“쟤 누구야? 엄청 귀엽다.”

“학교 친구요.”

“그래? 그런데 좀 이국적으로 생겼는데 혼혈아야?”

한국인이 절대 가질 수 없는 우월한 외모.

행동 자체는 못나도 외모 자체는 흠잡을 데가 없었다.

“네 맞아요. 아빠가 독일 사람이래요. 엄마는 우리나라 사람이고요.”

“아 그래? 어쩐지.”

“왜요?”

“아니야. 별 건 아니고 애가 예뻐서.”

“들었는데, 혼혈아가 엄청 이쁘데요.”

“넌 아무 생각 없어?”

“뭐가요?”

“쟤. 이쁘잖아.”

석민은 대답을 머뭇거리지 않았다.

“그냥 귀찮아요.”

이루리는 아직 애가 어려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직 연애할 단계는 아니니까.’

그러다 석민이 고개를 휙 돌렸다.

“아빠!”

석민이 가게 밖으로 뛰쳐나가자 못 보던 차를 끌고 온 차태식이 있었다.

“아들, 아빠 새차 뽑았다.”

“우와! 아빠 차 샀어?”

차태식은 보란 듯이 차문을 열어보였다.

“차문이 위로 올라가네? 이거 진짜 아빠 차야?”

“어때 아들? 아빠 차 죽이지? 이거 얼마 안 해. 24억이던가?”

“24억? 진짜 얼마 안 하네. 아빠 더 좋은 거 사지.”

차키를 검지에 끼고 휙휙 돌리는 차태식과 새로 뽑은 람보르기니 안으로 기어들어가는 아들.

그런 두 부자를 멀리서 지켜보던 이루리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24억이 개집 이름 됐네.’

< #36 형제들 사이에 싸움을 일으키는 자 > 끝

ⓒ 대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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