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파이트-111화 (111/173)

< #36 형제들 사이에 싸움을 일으키는 자 >

주변이 심상치 않자 존 마커가 바짝 긴장했다.

‘이러다 당하겠군.’

디아블로가 급히 동력을 사용하려 했으나, 방금 전 무리한 동력 사용으로 인해 그저 요원한 일이 되었다.

적색으로 된 시야는 그대로.

존 마커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때, 왕의 전음이 내려졌다.

‘그대의 한계는 명확하다. 그대의 마안은 더 이상 그대를 지켜주지 못할 것이다.’

그 전음은 존 마커가 아닌 디아블로에게 향했다.

디아블로가 동요한다.

시공안.

그 힘은 정말 강력하지만 한계 역시 명확했다.

악튜러스는 자신의 코어로도 저 시공안을 능숙히 다루는 게 무리라고 내다봤다.

그만큼 시공안의 요구 사항이 무식하게 높은 것이다.

‘그 동력은 오직 신만이 감당할 수 있다.’

본래 그 시공안의 주인은 아크리치 까르니아였다.

그렇다면 본 주인은 그 시공안을 능숙히 다뤘을까?

악튜러스는 절대 아니라고 봤다.

‘그만큼 사용자에게 높은 수준을 요구하는 마안이다. 그럼 묻겠다. 그대가 신인가?’

전음은 오직 존 마커와 링크 된 디아블로에게만 향했다.

디아블로가 동요한다.

동요한 디아블로는 주인과의 링크를 끊어내며 그 명령에 불복종하기 시작했다.

그런 디아블로의 태도에 존 마커는 그저 어이가 없었다.

이 멍청한 골렘이 왜 자신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것인지.

‘움직여. 뭐하는 거야. 어서 빨리 반격하라고!’

아무리 명령을 해도 디아블로는 반응하지 않았다.

악튜러스의 전음은 계속됐다.

‘대답하라.’

그 물음에 답하기 위해 디아블로는 고개를 저었다.

덩달아 존 마커의 시야가 좌우로 흔들렸다.

‘대체 왜 말을 안 듣는 거지?’

스트레스 게이지를 보니 그렇게 우려할 정도는 아니었다.

평소 수준.

그런데 디아블로는 주인과의 링크를 거부하고 있었다.

골렘은 하염없이 왕을 올려다보았다.

‘앞으로 누굴 따를 것인지, 그대에게 선택할 기회를 주겠다.’

악튜러스는 저항을 멈춘 디아블로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었다.

본디 꼬랑지를 내린 범에겐 철퇴보단 자비와 포용이 필요한 법.

‘복종은 자비를 내릴 것이오, 거부는 죽음을 부를 것이다. 선택하거라.’

지금 이 순간 디아블로는 제 운명을 그려보았다.

만약 저 자비를 물린다면 그는 죽음의 철퇴를 내릴 것이다.

이는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니었고, 본능으로 느끼는 감이었다.

존 마커의 명령을 거부하는 디아블로는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반쯤 쥐다 만 손아귀를 제 얼굴로 가져간다.

앞으로 무엇을 할지는 바보도 알 수 있었다.

악튜러스는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디아블로는 제 눈을 뽑아 이를 왕에게 바쳤다.

‘훌륭하도다.’

요르문간드 위에서 디아블로를 내려다보던 악튜러스가 내려와 제 눈을 바치려는 골렘과 마주섰다.

복종엔 자비와 포용이 뒤따랐다.

악튜러스는 디아블로가 바치는 마안을 어렵지 않게 건네받았다.

이어 그 마안을 중력안 옆에 위치시켰다.

섬뜩한 안광을 뿜어내는 마안이 이로써 두 개가 됐다.

‘시공안은 아주 특별하지.’

악튜러스가 앞서 말했던 것처럼 시공안은 오직 신만이 다룰 수 있었다.

왕인 악튜러스조차 버거운 마안이란 소리다.

‘자비를 내려주마.’

디아블로는 그 머리를 더욱 조아렸다.

시공안을 바친 어리숙한 골렘은 이어 자신이 장비하고 있던 피갈퀴손까지 왕에게바쳤다.

이후 악튜러스는 머리를 조아리는 디아블로에게 제법 의미심장한 말을 남겨주었다.

‘기다려라. 곧 때가 올지니.’

시공안을 건네받은 악튜러스가 그 동력을 사용했다.

멀쩡하던 경기장에 난데없이 어디론가 이어지는 차원 포탈이 생겨났다.

그 안에는 수많은 골렘들이 땅을 헤집고 있었다.

‘가라. 나의 아이여.’

악튜러스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존 마커와의 링크를 끊어낸 디아블로가 포탈을 타고 어디론가 이동해버렸다.

디아블로가 사라지자 악튜러스는 만족스런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쉽군.’

디아블로가 포탈을 넘어 사라지자 존 마커의 링크도 덩달아 끊어져버렸다.

“이 무슨!”

벗어낸 스카우터를 꽉 쥔 존 마커가 이를 운전대를 향해 내리쳤다.

‘뭐야. 대체 뭐냐고.’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상대 골렘이 위엄을 보인 순간 갑자기 제 명령을 거부하더니 이내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마지막 시야에 잡혔던 것은 분명 게이트 안쪽 어딘가였다.

푸른 하늘 위 바위산이 솟아 있는 장관은 오직 게이트 안에서만 볼 수 있었으니까.

그곳엔 수를 헤아릴 수 없는 골렘들이 땅을 헤집고 있었다.

야오린이 존 마커를 여러 번 불렀으나 존 마커는 대답도 없이 심각한 표정만 짓고있었다.

제 명령을 무시하고 어디론가 떠나가 버린 골렘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방금 전 일은 모두의 상식을 깨는 일이었다.

주인에게 절대 복종한다는 그 골렘이 주인의 말을 어기고 제 의지대로 움직였다.

골렘이 주인 명령을 거부한 적이 아예 없다고는 볼 수 없겠지만, 이렇게 난감한 경우는 존 마커도 처음이었고, 골렘을 다루는 모두에게도 생소한 일이 분명했다.

‘하나도 모르겠군.’

아무튼 일은 실패했다.

디아블로는 사라졌고, 남은 건 무빙 아머리에 타고 있는 자신이 전부였다.

‘그나저나 큰일 났군.’

존 마커와 비밀스레 이어진 그들은 그렇게 자비롭지 않았다.

일이 실패했다는 걸 알게 된 순간, 그들이 취할 태도야 뻔했다.

더군다나 존 마커의 가장 큰 자산인 디아블로가 사라졌으니 그들은 이렇게 생각할 게 뻔했다.

이용 가치가 없다고.

방금 전까지 혼란에 빠져있던 존 마커는 제 살길을 찾기 위해 급히 움직였다.

벗었던 스카우터를 다시 썼을 때 그리 반갑지 않은 전화가 걸려왔다.

크리스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존 마커는 받지 않으려다가 마지못해 받았다.

혹시 몰랐으니까.

“어떻게 됐지?”

차가운 저음이 전해지자 존 마커는 화색이 돈 거짓된 표정으로 목소리를 냈다.

“오 크리스. 일이야 아주 잘 됐지. 오늘 항공편으로 보낼 테니까 그리 알아.”

“그래? 그런데 왜 상대 골렘이 멀쩡한 거지. 여기 위성사진을 보니까 자네 골렘만 안 보이는데.”

“무슨 소리야? 난 성공했는데...”

존 마커의 표정이 적나라하게 구겨졌다.

그들 수준은 존 마커가 상상하는 이상.

왜냐면 그들은 진짜였으니까.

“이봐 존. 내가 바보인줄 아나?”

“아니 잠깐만. 이번 일은 좀 실수가 있었어. 갑자기 골렘이 말을 안 들었다고.”

“존, 나는 변명 따윈 좋아하지 않아. 그냥 넌 실패한 거야. 그리고 날 실망시켰지.”

“이봐 크리스. 우리 이러지 말자고. 내가 지금까지 해준 게 얼만데 설마 여기서 손절하기야?”

대답은 이어지지 않았다.

절박한 존 마커의 목소리가 뒤따랐다.

“크리스? 크리스 대답해.”

재차 불러도 대답 없는 상대.

등골이 서늘해지며 무서운 침묵이 이어졌다.

이후 크리스라 불리는 사내가 그에게 마지막 말을 남겼다.

“Good Luck.”

그것은 작별인사나 다름없었다.

관자놀이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손등으로 훔쳐낸 존 마커가 다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상대는 받지 않았다.

아니 애당초 없는 번호였다.

‘완전 좆됐군.’

존 마커는 급히 야오린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대방이 전화를 받자 존 마커는 기다렸다는 듯이 준비된 말을 쏟아냈다.

“지금 당장 비행기 표 알아봐. 그리고 내 계좌, 스위스 계좌로 돌려놔. 빨리!”

그러나 돌아오는 목소리는 충격을 넘어 소름에 가까웠다.

도로 위를 질주하던 무빙 아머리가 요란스레 멈춰 섰다.

존 마커는 제 귀에 들려오는 목소리를 믿을 수 없어 두 눈만 껌뻑였다.

이럴 수가...

한편 존 마커가 충격에 휩싸여 있던 그 시각.

아직도 꿈나라에 머물고 있던 석민은 저도 모르게 잠꼬대를 했다.

“잘했어 악튜러스.”

#36 형제들 사이에 싸움을 일으키는 자오랜만에 등교를 나선 석민은 어제 일이 아직도 믿기지가 않았다.

그제 홀로 밤을 지새운 악튜러스가 걱정되어 찾아가봤더니 세상에나 없던 칠죄종세트가 두 개씩이나 생겨났다.

스카우터를 쓰고 있는 석민은 제 눈을 의심했다.

‘왜 칠죄종 세트가...’

어지럽혀져 있는 경기장.

전날 밤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분명해보였다.

석민을 따라왔던 까리뽕이 어수선한 경기장 위 잔존하는 마나의 내음을 맡으며 그 소란스런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어젯밤 여기서 대판 싸웠나보군요. 마나 냄새가 진동합니다.”

대답도 없는 석민은 악튜러스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없던 칠죄종 세트는 갑자기 왜 생긴 것일까?

예전에 존 스미스란 헌터가 팔던 거만한 눈과 정보조차 없었던 피갈퀴 손이 악튜러스 장비창에 추가되어 있었다.

석민에겐 큰 의문이 아닐 수 없었다.

“악튜러스, 어제 무슨 일 있었어? 왜 없던 칠죄종 세트가 두 개씩이나 생겨난 거야?”

악튜러스는 석민을 내려다보며 그 입을 열었다.

‘어제 나를 노리는 자가 있었다. 이것은 그가 주고 간 선물이다.’

“선물? 그런데 왜 칠죄종 세트야?”

‘놈이 가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날 노린 목적이 칠죄종 세트였던 것 같군.’

“그래?”

석민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럼 싸웠던 골렘은 어딨어? 안 보이는데.”

‘채굴장으로 보냈다. 그곳에 친구들과 있을 것이다.’

“아 진짜?”

석민은 믿기 힘들었지만 악튜러스가 하는 말이라 의심하진 않았다.

까리뽕이 나섰다.

“이거 엄청난 수확입니다. 도둑놈이 제 발로 찾아와 칠죄종 세트를 내주고 갔으니 이 얼마나 경사스런 일입니까? 이제 남은 건 세 개군요. 세 개만 더 모으면 됩니다.”

범상치 않은 도둑이 찾아와 무언가를 주고 갈 줄은 알고 있었지만 그게 칠죄종 세트였을 줄이야.

충격은 곧 기쁨이 되었다.

“잘 됐네. 잘했어 악튜러스.”

이게 어제 있었던 일이었다.

석민은 수다스런 까리뽕과 함께 등교를 했다.

“앞으로 세 개만 더 모으면 됩니다. 개인적으론 남은 아티팩트 중 검부터 찾는 게순서일 것 같군요.”

“검? 무슨 검이야? 대검이야?”

“대검은 아닙니다. 아주 멋스럽게 생긴 롱소드죠.”

“그건 어딨는데?”

“게이트 안쪽입니다. 그런데 거리가 좀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거기에 있는지는 저도 확신할 수 없군요.”

“괜찮아 듀란의 성까지 뚫어놨잖아. 거기서 찾아가면 되지.”

“보니까 애비가 좀 마나를 다루는 것 같은데, 차라리 애비한테 부탁하시는 게 어떠실지?”

“까리뽕. 입조심.”

“험험, 죄송합니다. 요놈의 혓바닥이 또 말썽을 부리는 군요.”

학교까진 이루리가 태워다줬다.

스포츠카에서 내리는 석민에게 이루리가 윙크를 날렸다.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해. 누나는 근처에 있을 테니까 알았지?”

“네.”

석민이 오랜만에 등교하자 그 소식이 학교 전체에 퍼졌다.

여기저기서 몰려오는 아이들.

석민보다 고학년인 아이들도 석민을 보기 위해 몰래 찾아와 교실 문턱에서 기웃거렸다.

“와 석민이다!”

“한국 챔피언이야!”

난리법석을 떠는 아이들이 우르르 석민 주위를 에워쌓았다.

“석민아 싸인해줘!”

“나도 싸인!”

그런 소란은 담임인 홍담비가 들어오고 나서야 어느 정도 진정되었다.

홍담비는 시끄러운 교실 안을 보더니 대충 어떤 상황인지 눈치 챘다.

‘석민이가 왔나보네.’

그런데 석민만 온 게 아니었다.

전학 온 뒤로 깜깜 무소식이던 페트리샤도 아주 오랜만에 등교를 했다.

누가 보면 석민을 따라 등교한 것처럼 보일 정도로 페트리샤는 유독 석민이 등교한 날만 골라서 등교했다.

‘쟤도 정말 오랜만이네. 아무 소식 없길래 독일로 돌아간 줄 알았는데.’

수업이 시작하자 석민의 뒷자리에 앉아 있는 페트리샤는 말없이 석민만 노려봤다.

얼마나 뚫어보는지 뒷통수가 따가울 정도.

반면 석민의 옆자리에 앉은 정유이는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상체를 엎드린 채 석민만 귀엽게 쳐다보고 있었다.

“석민아.”

유이가 부르자 석민은 감흥 없이 대꾸해주었다.

“응?”

“나 이뻐?”

수업은 나 몰라라 핸드폰 화면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던 석민은 옆에서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던 유이를 힐끔 쳐다보더니 영혼 없는 대답을 이어주었다.

“응 이뻐.”

< #36 형제들 사이에 싸움을 일으키는 자 > 끝

ⓒ 대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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