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파이트-110화 (110/173)

< #35 디아블로(2) >

그 동력을 악튜러스가 못 알아볼 리 없었다.

악튜러스는 바로 알아보았다.

‘시공안인가? 놀랍군.’

공간을 짓이기는 능력이며, 위기의 상황에서 벗어나는 힘까지.

악튜러스가 무언가를 해보기도 전에 경기장의 시간은 악튜러스가 중력안을 사용하기 전으로 되돌려졌다.

정지된 시간.

마치 테이프가 뒤로 감기는 것처럼 악튜러스와 디아블로는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고 이전의 대치 상황으로 되돌아갔다.

여기서 눈여겨 봐야할 점은 전체 시간을 건드리는 게 아니라, 악튜러스와 디아블로가 있는 경기장의 시간만 되돌려졌다는 점이다.

즉, 세상은 되감기 현상 없이 그대로 진행됐으며, 시간이 되돌려진 곳은 경기장만이 유일했다.

되돌려지는 시간 속.

악튜러스는 기회를 잃었고, 디아블로는 그 후유증을 얻었다.

-주의! 코어에 상당히 무리가 간 상태입니다.

-시공안의 동력이 감소됩니다.

-주변 시간을 되돌렸습니다.

무리가 간 디아블로의 시공안은 핏대가 서며 살짝 충혈 됐다.

존 마커가 눈을 껌벅였다.

때는 악튜러스가 중력안을 사용하기 바로 이전.

시공안의 영향에서 벗어난 존 마커는 이전 기억을 그대로 갖고 있었다.

그런 존 마커가 보일 다음 행보는 뻔했다.

악튜러스가 펼칠 중력장을 피하는 일이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몸을 날리는 디아블로가 이제 막 펼쳐지려는 중력장을 피했다.

악튜러스는 이전 과거를 알지 못한 채, 급히 몸을 피한 디아블로를 보고선 눈가를살며시 찌푸렸다.

‘피해?’

감이 좋다고 할까?

그다지 감이 좋은 상대라고 보진 않았는데 대처 능력이 좋았다.

자신이 가진 동력이 무엇인지 알지 못할진대 그 즉시 대응하고 피했으니까.

악튜러스의 시선은 그대로 도망친 디아블로를 쫓았다.

도망친 디아블로 위로 또 다른 중력장이 생성됐다.

디아블로는 또 다시 몸을 날려 그 중력장을 피했다.

악튜러스는 미간을 찌푸린 채 동력을 그대로 유지시켰다.

그리곤 도망치는 디아블로를 쫓아 계속해서 그 머리 위로 중력장이 생기게 했다.

그러나 디아블로는 일말의 호기심도 없이 계속 그 중력장을 피해 몸을 움직였다.

악튜러스는 구겼던 미간을 피며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무언가... 이상하군.’

디아블로는 악튜러스의 중력안을 우습게보지 않았다.

방금 전 시간을 되돌린 것도 중력안에 제대로 당했기 때문이다.

중력안이 가지는 장점과 단점은 명확했다.

장점은 그 위력에 제대로 휘말리게 되면 빠져나오는 게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코어 출력을 높이면 높일수록 생겨난 중력장은 더 강한 힘으로 짓누를 것이고, 같은 출력을 가진 골렘이라면 정상적인 방법으론 탈출이 불가능했다.

이게 장점.

그럼 단점은 무엇이냐?

강한 중력장이 그 즉시 생성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력장이 그만한 위력을 가지기 위해선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 동안 상대방이 적절히 대처한다면 중력안은 그다지 무서운 마안이 아니었다.

이게 단점이다.

디아블로는 계속 악튜러스 주위를 맴돌며 자꾸만 생겨나는 중력장의 영향에서 벗어났다.

악튜러스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놈이 계속 움직이는군. 범위를 넓힐 수도 없고.’

중력안의 적용 범위를 높이는 게 불가능하진 않았다.

다만 그렇게 하면 그 위력이 자연스레 감소하게 된다.

그 위력으론 동급의 출력을 가진 디아블로를 숨도 못 쉬게 짓누를 순 없었다.

결국 한 장소에 머물러 있을 때, 좁은 면적에 펼친 중력장으로 적을 찌그러트려야하는데 이게 불가능해졌다.

‘놈이 내 마안의 정체를 알고 있어.’

악튜러스가 동력을 거두고 도망치는 디아블로를 쫓기 위해 이면세계에 들어섰다.

이면세계에 들어선 악튜러스는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도망치고 있던 디아블로의 앞을 잡았다.

준비된 검격이 사정없이 디아블로를 향해 내리쳤다.

하지만 반응 좋게 막아내는 디아블로가 피갈귀손으로 악튜러스의 검격을 쳐내며 제 건재함을 과시했다.

악튜러스는 다시 대검을 휘둘러 적의 상단을 베려했다.

하지만 이조차 막혔다.

생각보다 디아블로의 대처가 좋았다.

그러나 진실은 따로 있었다.

존 마커.

그의 시야엔 알파고의 지시가 함께하고 있었다.

KA 청룡의 박대한 대위처럼 그 역시 알파고의 지시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디아블로는 악튜러스의 이어지는 검격들을 예술처럼 막아내며 오히려 공세를 빼앗으려는 모습까지 보였다.

호각을 보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놀란 건 비단 악튜러스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존 마커가 더 놀라고 있었다.

‘알파고를 쓰고 있는데 나와 박빙이다?’

누가 들으면 웃겠지만, 존 마커는 나름 진심이었다.

지금까지 이런 상대는 없었다.

더군다나 저 골렘은 주인 없이 혼자 싸우고 있었다.

자기 상식에선 절대 불가능한 일.

‘어떻게 된 거야. 너무 잘 싸우잖아.’

“야오린.”

존 마커가 야오린을 불러냈다.

“예, 보스.”

“정말 신호 끊어진 거 맞나?”

“네, 두 번 세 번 확인했습니다. 아이는 간섭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왜 대처가 좋아.”

“보스. 혹시 고대 골렘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요?”

“고대 골렘?”

확실히 고대 골렘에 대해 알려진 바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 악튜러스가 보여주는 모습은 그들 상식으론 이해될 수 없었고, 이게 이해되려면 그들도 납득할만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런가?’

악튜러스의 검격을 예술처럼 받아치는 그 상황에서 존 마커는 해답을 찾지 못했지만, 그래도 어렴풋이 눈치는 챘다.

고대 골렘이란 게 사실 주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 괴물이라는 것을.

‘골치 아프군.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존 마커는 여유롭게 호텔 로비를 벗어나던 자신을 떠올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악튜러스를 노리면서 일이 이렇게까지 버거워질 줄은 생각도 못했다.

일단 아이의 간섭만 차단하면 골렘은 멍청이가 될 거고, 그럼 모든 일이 술술 풀릴 줄 알았으니까.

“이런!”

그 순간 악튜러스가 기교를 부렸다.

목을 찌르는 척 하면서 순간 턱을 쳐올릴 수도 있는 그런 검을 보인 것이다.

이로 인해 알파고가 제시하는 대응 방법도 두 가지로 나뉘게 됐다.

존 마커는 이중 하나를 택하여 막아야하는 상황.

존 마커는 둘 중 확률이 높은 걸 택했다.

목을 지키는 선택을 한 것이다.

그러나 기교를 부린 악튜러스는 상대 턱을 쳐올렸다.

이로 인해 목을 방어하려고 피갈귀손을 들어 올렸던 디아블로는 악튜러스가 쳐올린 대검에 의해 턱이 잘리며 뒤로 나자빠졌다.

요동치는 시야.

존 마커가 당황하며 뒤로 넘어진 디아블로를 급히 일으켜 세우려 했으나 이는 곧 소리 없이 다가와 사지를 무는 고대 뱀들로 인해 저지되고 말았다.

흙으로 된 요르문간드가 디아블로의 사지를 구속하고, 꼼짝달싹 할 수 없게 된 디아블로의 몸에 거대한 중력장이 내려앉는다.

디아블로의 움직임이 멈추자 악튜러스가 여유롭게 다가와 대검을 하늘 높게 던졌다.

던져낸 대검은 하늘 높게 치솟더니 이내 디아블로를 구속하고 있던 중력장과 하나가 됐다.

마치 섬광처럼 내려와 꽂히는 부러진 대검이 디아블로의 코어를 그대로 뚫어냈다.

악튜러스의 승리처럼 보였으나, 그 전에 디아블로의 시공안이 더 빨랐다.

디아블로는 또 다시 시간을 몇 십초 이전으로 되돌렸다.

때는 악튜러스가 기교를 부리던 순간.

악튜러스가 눕힌 대검을 찌르자 디아블로는 기다렸다는 듯이 턱을 노리는 악튜러스 대검을 쳐냈다.

존 마커의 입장에선 구사일생이었지만, 악튜러스에겐 나름 충격이었다.

전례 없는 일.

지금까지 이 공격을 막아낸 상대가 없었다.

감이 아무리 좋아도 대부분 목을 지키려다가 턱을 공격당하길 마련.

그런데 막아냈다.

당황한 악튜러스가 몇 발자국 물러나 서자 이번엔 디아블로가 악튜러스의 상체 장갑을 노리며 시공안을 사용했다.

코어 출력이 일순간 상승하며 모든 마나가 시공안에 집중된다.

연이은 타임 루프로 부담감이 가중된 시공안에 또 다시 무리가 가해졌다.

하지만 아직까진 괜찮았다.

마나가 집중된 시공안이 그 힘을 선보인다.

이번엔 시간을 되돌리는 게 아니라 아까처럼 공간을 절단시켰다.

공간 절단.

두 공간을 서로 어긋나게 하여 그 공간에 걸치고 있는 상대를 절단시키는 동력으로, 이것은 아다만틴으로 주조 된 검의 검격보다 절삭력이 더 좋았다.

공간 자체가 뒤틀리는데 그 누가 버티겠는가?

하지만 놀랍게도 디아블로가 노리는 악튜러스의 상체 장갑은 그 공격을 버텨냈다.

존 마커는 변화 없는 상대를 보고선 시공안에 문제가 생긴 줄 알았다.

보통이라면 절단 된 공간 면을 따라 악튜러스의 상체 장갑이 비스듬히 어긋나야하는 게 정상이다.

그게 맞았고.

하지만 악튜러스의 상체장갑은 짓이겨지는 공간을 버텨낼 정도로 아주 놀라운 강도를 보였다.

존재할 수 없는 강도였다.

‘뭐야? 왜 멀쩡한 거지?’

존 마커는 어리둥절했다.

보통이라면 어긋난 공간을 따라 악튜러스의 상체장갑이 잘려나가야 하는 게 맞았다.

그런데 변화가 없었다.

존 마커가 무리를 하면 할수록, 상황은 안 좋게 흘러갔다.

-경고! 출력이 한계점에 다다랐습니다.

-주의! 무리한 동력 사용은 하트 다운의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공간을 절단하려는 시공안의 동력에도 멀쩡하게 서 있는 악튜러스는 있는 그대로기적이었다.

존 마커의 표정은 정말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면 짓이겨지려는 두 공간 사이에 낀 악튜러스는 움직임이 제한됐다.

어긋나는 두 공간 사이에 붙잡힌 것이다.

팔과 다리는 움직였지만, 두 공간 사이에 낀 상체 장갑은 세상과 고정된 듯 움직이지 않았다.

감이 좋은 악튜러스는 지금 이 상황이 이야기하는 바를 정확히 알아차렸다.

‘시공안인가? 뒤틀리는 공간 사이에 내 상체가 낀 모양이로군.’

시간이 되돌려지면서 악튜러스는 상대가 가진 시공안도 잊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세 알아보았다.

그만큼 노련한 경험을 가진 왕이란 소리다.

‘어리석군. 그대는 노려야할 부분을 잘못 골랐다.’

무리한 동력 사용으로 존 마커의 시야가 적색으로 물들여졌을 때, 악튜러스를 구속하던 공간 절단도 끝이 났다.

구속에서 해방된 악튜러스는 치켜든 대검의 끝으로 디아블로를 겨눴다.

디아블로는 붉게 충혈된 마안을 앞세우며 가만히 서 있었는데, 그 꼴이 참으로 애석했다.

적어도 악튜러스가 보기엔 그러했다.

‘시공안을 가지고도 그런 추한 모습이다니. 네놈에겐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힘이다. 그 힘은 곧 진정한 주인을 만날 것이다.’

악튜러스가 무섭게 눈을 부라리자 그 출력이 일순간 높게 치솟았다.

치솟는 출력과 맞물려 코어에서 샘솟는 마나가 악튜러스 전신으로 뻗어나갔다.

이어 흙의 지배력을 끌어내자 경기장 바닥이 부글부글 끓듯 요동쳤다.

어스 골렘.

그 힘을 보일 때다.

대지를 지배하는 그 힘으로 악튜러스는 거대한 요르문간드를 소환해냈다.

주변 흙을 무섭게 빨아들이는 거대한 뱀이 그 머리에 악튜러스를 태우고 솟아났다.

솟아난 거대한 뱀은 그 아래 초라하게 서 있던 디아블로를 아주 무섭게 내려다보며 혓바닥을 보였다.

악튜러스도 요르문간드와 맞춰 그 시선을 내렸다.

왕이 내려다보는 시선에 디아블로가 절로 움츠러들었다.

< #35 디아블로(2) > 끝

ⓒ 대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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