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파이트-107화 (107/173)

< #34 디아블로 >

김정민이 이상한 요구를 하자 주변 헌터들이 말을 꺼냈다.

“정민 씨 또 저런다. 가끔씩 보면 정말 이상하다니까.”

“냅둬. 자기가 하고 싶다는데 우리가 끼어들 건 아니잖아.”

“저번에 유적지에다가 낙서 해놓은 것도 정민 씨죠? 거기다 낙서 하면 어떡해요.”

“어, 그거 어떻게 아셨어요?”

“여기서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정민 씨 말고 또 있나요.”

“거기에 제 사인도 남겨놨었는데 혹시 그거 보신 거예요?”

“잘 아시네요.”

괴짜 김정민.

그는 남들이 이상하게 쳐다볼 정도로 특이한 일이나 괴상한 짓을 꽤 좋아했다.

유적지에다가 제 이름을 새겨놓는다거나.

다 잡은 몬스터의 미간에 제 사인을 남겨놓고 풀어준다거나.

영역 표시라면서 몬스터가 잠자고 있는 둥지에다가 오줌을 싸지 않나.

이번엔 한국 챔피언인 악튜러스의 장비 중 하나에 제 이름을 새겨 넣고 싶단다.

“그런 걸 왜 하는 거예요? 남들이 보면 진짜 이상하게 생각하는데.”

여기에 대한 김정민의 변명은 한결 같았다.

“왜요? 재밌잖아요. 저는 재밌는데.”

김정민은 다시 석민을 찾았다.

그러면서 기필코 이번 일을 성사시켜야겠다는 오기 같은 게 생겼다.

“아저씨가 진짜 좋은 마안 구해다줄게. 거기다 내 이름만 박아줘라 알았지?”

“저야 상관없기는 한데, 어떤 마안을 구해주실 건데요?”

이때 김정민과 마주보고 있던 안경 쓴 헌터가 불쑥 끼어들었다.

“아 그러고 보니 정민 씨 이번에 데스 클로 잡지 않았어요?”

“네 잡았죠.”

“그거 주면 되겠네. 데스 클로 마안 좋잖아요.”

그러자 다른 헌터가 기가 찼는지 목소리를 냈다.

“아니 그걸 준다고요? 그 비싼 걸?”

개인 유흥을 위해 수백억 대의 가치를 지닌 물건을 아무 대가 없이 주는 게 과연 맞는 일일까?

적어도 지금 그들이 논하고 있는 데스 클로의 마안은 단순히 재미를 위해 아이에게 내주기엔 다소 과한 물건이었다.

데스 클로.

드래곤 피부를 가진 사람 형태의 괴물로 머리엔 뿔이 나 있었고, 강철도 꿰뚫을 날카로운 손톱과 발톱을 가진 몬스터였다.

정통으로 후려치면 모든 게 박살나는 꼬리는 덤.

그리고 피로 계승된 마안을 통해 강력한 동력을 사용할 수 있었다.

이처럼 데스 클로는 지상에서 맞닥트릴 수 있는 몬스터 중 가장 위험한 몬스터로 평가받고 있었다.

“데스 클로 마안이면 기본이 몇 백억일 텐데. 그거 진짜 줄 거예요?”

그 마안이 몇 백억이나 나가는 건 사실이다.

김정민 본인도 그게 적잖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김정민은 이를 팔아서 돈으로 바꾸는 것보단 석민에게 넘겨서 전 세계 사람들이 제 이름 달린 장비를 보는 게 더 가치 있다고 판단했다.

그게 괴짜다운 생각이었으니까.

“아니 무슨 상관이에요? 제가 주는 건데요 뭘.”

누구는 이해할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아저씨가 그 마안을 줄까 하는데, 어때? 갖고 싶지?”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차태식도 고개를 저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걸 제 아들한테 주려는 건지.

하지만 석민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김정민과 마주보고 있었다.

그의 똘기는 석민에겐 분명한 호재였으므로.

“데스 클로의 마안이면 대충 어떤 거예요? 마안도 종류가 많잖아요.”

“종류?”

모든 데스 클로로 같은 종류의 마안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종류도 가지가지.

김정민은 데스 클로와 맞닥트렸을 때를 떠올려보았다.

올 버프에 약물 도핑으로 1초가 10초처럼 느껴지던 그때.

그는 중력안으로 자신을 찌그러트리려던 데스 클로를 기억해냈다.

“중력안이야. 특정 범위 안에 중력장을 생성시켜서 상대를 찌그러트리는 마안이지.”

“중력안이요?”

중력안이라는 말에 석민은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얼마나 좋은 마안인지 속으로 재보는 것이다.

“중력안이 딱히 나쁜 건 아닌데... 잘 모르겠어요.”

“그게 무슨 말이야? 모르겠다니.”

“그 마안을 달고 결승까지 쭉 올라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소리에요. 중력안 말고 다른 마안을 사용할 수도 있으니까요.”

여기에 대해 김정민은 웃으며 제 생각을 말했다.

“아마 써보면 알 거다. 중력안 괜찮아. 아마 쓰고 나면 다른 마안은 절대 못 건드릴 걸? 우리도 중력안을 가진 몬스터는 상대하기 싫어하거든.”

“그런데 정말 저 주시는 거예요?”

그새 김정민은 제 포켓에서 데스 클로 마안이 담긴 캡슐을 꺼내 보이고 있었다.

“물론이지. 대신 여기다 아저씨 이름, 꼭 새겨줄 거지?”

석민은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는 제 이름 석자가 전 세계에 생중계 되는 걸 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수백억 가치를 지닌 마안을 아무렇게나 내놓는 것이고.

“그럼 아저씨 이름을 다는 조건으로 계속 사용할게요. 대신 언제까지 사용할지는저도 몰라요. 더 좋은 마안을 구하면 그걸로 바로 바꿀 거거든요.”

지켜보던 누군가가 비아냥거렸다.

“그러다 나중에 애한테 다시 돌려달라 하지 말고. 술자리라서 말이 헛나왔다 이러면 재미없는 거 알지?”

“아이 별로 취하지도 않았는데. 이거 말짱한 정신으로 말하는 거예요.”

“그럼 확실히 해둬.”

“아이 여기 사람들 다 지켜보고 있는데 제가 그까짓 몇 백억 때문에 거짓말 할까요? 안 해요. 나중에 말도 안 바꿀거고. 다 아시면서.”

이야기가 대충 마무리됐다.

석민은 마안을 챙겨 떠나갔고, 김정민은 다가올 월드 그랑프리를 생각하며 웃었다.

“저 이번에 월드 그랑프리 무조건 챙겨봅니다. 나중에 제 이름 나와도 너무 부러워하진 마세요. 아셨죠?”

김정민은 악튜러스 첫 경기에서 사람들이 제 이름을 가지고 놀라는 상상을 해봤다.

‘큭큭큭.’

김정민이 한 짓이 괴짜긴 해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은근히 재밌는 일.

술자리를 같이하는 어느 헌터는 제 뺨을 긁적이더니 김정민이 한 짓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있었다.

‘나도 해볼까? 은근히 재밌을 거 같은데. 일단 월드 그랑프리는 무조건 나가는 거같고.’

그도 경기 전에 두 골렘의 장비들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는 걸 모르지 않았다.

골렘 파이트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뭐니뭐니 해도 장비였으니까.

‘해봐?’

하지만 김정민이 준 마안의 가치만 해도 드래곤 하트와 맞먹었다.

한 순간 쾌락을 위해 그 정도 비용을 지출하는 건 아무리 네임드 헌터라도 어려운일.

그는 여러 번 생각해보다가 결국 그 뜻을 접었다.

그저 괴짜인 김정민이 대견스러울 따름이다.

‘에이 됐다. 안 할란다. 그게 뭐 대수라고.’

김정민도 석민에게 넘긴 마안의 가치를 절대 모르지 않았다.

다만 그걸 포기하면서 얻게 될 그 재미를 높게 평가했을 뿐이다.

기분 좋게 일어난 김정민이 모두에게 술잔을 권했다.

“자 모두 건배합니다. 올해 악튜러스의 우승을 위하여!”

다음날.

이른 아침에 깨어난 석민은 눈을 비비고 일어났다.

그렇게 넓지 않은 방구석에 어제 밤늦게까지 술을 퍼마신 헌터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이해할 수 없어.’

어린 석민은 고개를 저었다.

왜 저런 꼴이 되면서까지 밤늦게까지 술을 먹는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꼴사나운 짓이라 생각했다.

석민은 삼선 슬리퍼를 신고 악튜러스가 있는 뒷마당까지 갔다.

거치대에 걸려 있던 악튜러스는 석민이 다가오자 감았던 눈을 조용히 떴다.

악튜러스가 시선을 내리자 석민이 입을 열었다.

“악튜러스, 내가 어제 어떤 선물을 받았는지 알아?”

아이의 물음에 악튜러스는 말없이 빤히 쳐다만 봤다.

“너도 깜짝 놀랄 걸. 조금 있다가 보여줄게.”

석민이 직접 나서서 새 선물을 줄 수 있었지만, 이제 그런 일은 자기보다 더 전문적으로 해주는 아저씨들이 있었다.

날이 밝고 해가 중천에 걸리자 신음하는 헌터들이 하나둘씩 잠에서 깨어났다.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그들이 마실 물을 찾고 있을 때, 석민은 아침 일찍부터 찾아온 회사 관계자들하고 함께 송파구에 위치한 K골렘 스타디움에 가 있었다.

텅 빈 경기장은 이제 악튜러스의 새로운 거처가 됐다.

미리 나온 한미라가 무빙 아머리를 타고 온 석민과 마주했다.

“어때? 아줌마 능력 좋지 않니?”

석민은 부정하지 않았다.

“최고에요. 이렇게 빨리 처리해주실 줄은 몰랐어요.”

“뭐 이런 일이야 식은 죽 먹기지. 그런데 보안 문제는 계속 걸리는데 이건 어떻게할 거니?”

아이의 협박에 어쩔 수 없이 경기장을 통째로 빌리긴 했으나, 여전히 보안 문제는거슬렸다.

차라리 군부대에 있었으면 안전했을 텐데.

왜 굳이.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오히려 지금이 기회에요. 악튜러스가 이 이상 성장하게 되면 도둑 아저씨들이 아예 포기할 테니까요.”

그런 석민의 생각이야 한미라도 모르진 않았다.

다만 위험하다고 느낄 뿐.

“네가 알아서 잘 하니까 아줌마도 더 이상 뭐라 안하겠는데, 그래도 너무 방심하면 안 돼.”

한미라는 미리 챙겨왔던 사진 하나를 석민에게 내밀었다.

석민은 사진 속을 들여다봤다.

사진 속에는 어느 호텔 로비로 들어서는 거구의 백인 남성이 있었다.

존 마커였다.

한미라가 입을 열었다.

“블랙 맘바라고 해서 전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양아치 집단이 있어. 지금 그 사람이 그쪽 보스거든? 그 사람이 지금 어딨는지 알고 있니?”

“알죠. 여기 저번에 갔던 롯데 호텔이잖아요.”

“그 사람이 먼 한국땅까지 왜 왔을까?”

“그야 뻔하죠. 노리는 먹이감이 있으니까 찾아왔겠죠.”

“딩동댕.”

전문 도둑 문제는 골렘 매니지먼트에서 가장 신경 쓰는 문제 중 하나였다.

잘 키운 골렘 하나가 전문 도둑들에게 털려 한순간에 망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으니까.

코리아 일렉트로닉스 못지않게 좋은 정보망을 가진 KRG에서도 존 마커는 위험인물로 취급하고 있었다.

“그 사람도 골렘 파이터야. 알아보니까 디아블로라는 골렘을 다룬다고 하더라.”

“디아블로요? 이름이 웃기네요. 게임 이름 같아요.”

석민은 한미라에게 받았던 사진을 돌려주었다.

“사실 사진 속 외국인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어요.”

“알고 있었다고?”

한미라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베타고가 미리 알려줬거든요.”

“베타고가 그런 것도 알려주니?”

“베타고 AI는 좀 특별해요. 리스크 관리가 확실하죠. 아마 근시일내로 찾아올 가능성이 커보여요. 한국 사람도 아닌데 언제까지 한국에 있진 않을 테니까요.”

“그래서 싸울 거니?”

“찾아온다면 싸워야죠. 나쁜 어른들은 본래 혼내주는 거예요.”

한미라는 옅은 웃음을 흘렸다.

아이다운 생각이었다.

“그런데 저 궁금한 게 있어요.”

“뭔데.”

“아줌마도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도둑인데 왜 안 잡아가는 거예요?”

그 물음에 한미라는 웃는 기색을 지워냈다.

“뒤를 봐주는 곳이 엄청 큰 곳이거든.”

“거기가 어딘데요?”

“어디라고는 확실하지 않아. 증거가 없거든. 하지만 이 사람 정보를 몰래 공유하는 우리들끼리는 대충 짐작하고 있지.”

석민은 한미라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제리코라고 세계적인 방산업체 중 하나야. 막시무스를 개발한 곳이기도 하고.”

“아 그렇게 되는 거예요?”

한미라가 어린 석민을 힐끔 내려다봤다.

대화를 하다보면 애가 전혀 애답지 않았다.

“하지만 추측이야. 증거가 없으니까. 하지만 누군가 이 사람 뒤를 봐주고 있는 건확실해. 그게 아니라면 진작 잡아갔겠지. 그만큼 유명한 도둑이거든.”

어떤 물건을 가지고 싶다.

그런데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가질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과연 무엇을 해야만 그 물건을 가질 수 있을까?

답은 뻔했다.

깔끔하게 포기하거나 아니면 훔치는 것이다.

“제리코에서 그런 식으로 골렘 장비들을 모았나보네요.”

“어디서 아줌마가 이런 얘기 했다고 하면 안 된다? 고소당하거든.”

한미라는 웃으며 말했지만 어느 정도 진심이었다.

< #34 디아블로 > 끝

ⓒ 대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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