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 디아블로 >
#34 디아블로
존 마커는 자기를 몰래 훔쳐본 아이가 어디론가 사라지더니 얼마 후 동네 아이들과 함께 우르르 석민고물상으로 향하는 걸 보았다.
‘그 아이로군.’
아이는 바로 알아보았지만 어떤 의도로 고물상에 가는지는 알지 못했다.
어떻게 알 것인가?
얼핏 보면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고물상에 놀러가는 것처럼 보였는데 말이다.
‘어릴 때가 기억나는군. 나도 저 나이 땐 저렇게 몰려다녔었는데.’
별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는 그는 어릴 적 기억만 떠올렸다.
그 당시 빈민가를 어슬렁거리던 그는 저 아이들처럼 우르르 몰려다니는 걸 좋아했었다.
씩 웃어넘기는 그는 지금 고물상에서 벌어지는 일 따윈 상상도 못했다.
그 시각 석민고물상에 들이닥친 아이들이 석민에게 해당 사항을 보고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목적은 단 하나.
아이스크림.
“엄청 수상했어. 그리고 외국인이야. 양키야 양키.”
“덩치가 산만했어. 나는 거인 보는 줄 알았다니까.”
“그래?”
석민도 베타고를 통해 한국에 입국한 블랙 맘바 리더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었던 터라 아이들이 말하는 외국인이 누구인지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키가 얼마나 컸는데?”
“엄청 컸어. 우리 아빠 두 개를 합쳐야 그 외국인만큼 커질 걸.”
아이들은 과장되게 설명했다.
석민은 곧이곧대로 믿지 않고서 가게 밖에 설치한 몰래 카메라를 다시 돌려봤다.
그 몰래카메라에는 아이들이 설명한 외국인의 모습이 아주 잘 나와 있었다.
“맞아 이 아저씨야.”
아이가 가리킨 대상은 베타고가 알려줬던 그가 맞았다.
‘찾아왔구나.’
“고마워 애들아. 보답으로 내가 아이스크림 사줄게.”
“와!”
환호성을 내지르는 아이들이 일제히 석민에게 따라붙었다.
“석민이 최고다!”
“석민이 은근히 잘생긴 거 같지 않냐?”
“응! 엄청 잘생겼어!”
“석민 오빠 최고!”
아이들을 이끈 석민은 동네 할인 마트에서 아이스크림을 잔뜩 사다주고 가게로 돌아왔다.
석민이 돌아오자 방안에서 빈둥거리던 이루리가 말을 붙여왔다.
“아까 무슨 일이야? 누가 밖에서 감시라도 하고 있대?”
“네, 똥파리가 낀 거 같아요.”
“똥파리?”
이루리는 그 똥파리가 무엇일까 잠시 고심하다가 이내 알아차렸다.
“진짜야?”
“네.”
“그럼 어떻게 할 건데? 대책은 있어?”
“대책이야 있죠. 가만히 기다리는 거요.”
“기다린다고?”
이루리는 석민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가끔씩 아이의 생각을 읽을 수 없었다.
세상에 찾아오는 도둑을 기다린다니.
신고해도 모자를 판국에 말이다.
“그러다 위험해지면 어쩌려고? 회사에 알려. 그럼 좋은 곳으로 네 골렘을 옮겨다줄 걸?”
“아니요. 그럴 필욘 없어요. 애당초 이런 일을 기다리고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너무 소란스럽게 행동하면 안 돼요. 똥파리가 겁에 질려 도망치잖아요.”
애당초 악튜러스를 위험에 노출시킨 것도 찾아오는 똥파리를 맞이하기 위함이었다.
이루리는 석민을 더 설득하려다 말았다.
어차피 자기 일이야 아이만 무사히 지켜내는 게 전부.
여기서 골렘의 안전은 자기의 소관 밖이었다.
‘나도 모르겠다. 알아서 잘 하겠지.’
관심을 끈 이루리는 다시 드라마에 집중했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게 방안에 틀어박혀 막장 드라마를 보면서 욕하는 것.
이루리와 대화를 마친 석민은 가게 뒷마당에 찾아가 악튜러스를 살펴보고 있던 이명준 팀장을 만났다.
“명준 아저씨.”
“오 석민아. 무슨 일이니?”
며칠 사이 친해진 둘은 서로 이름을 불렀다.
석민은 그간 놓치고 있던 것을 우연히 생각해냈다.
이명준 팀장과 마주보는 석민이 잠시 고심했다.
석민은 착한 어린애답게 생각했다.
‘예전과 달리 골렘 수준이 높아져서 여기서 싸우면 큰일 날 거야. 악튜러스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돼. 그럼 어디가 좋을까...’
“저기요 제가 물어볼 게 있는데요.”
“말해봐라. 이 아저씨가 답해줄 수 있는 건 전부 답해줄게.”
이명준은 여유롭게 석민을 상대해줬다.
“아무래도 악튜러스를 옮겨야 할 거 같아서요. 여긴 위험하거든요.”
“아 그래. 그러고 보니 아까 회사 사람들이 보안 문제에 대해 언급하더라. 하긴 이런 곳은 보안이 취약하긴 하지.”
“아니요 보안 때문은 아니에요. 안전 때문이죠.”
“안전?”
“네 모두의 안전이요. 그래서 제가 생각해봤는데 악튜러스 정비는 앞으로 송파구경기장에서 하면 어떨까요? 지금 대회도 끝나서 텅텅 비어있을 거 같은데.”
“악튜러스를 경기장으로 옮겨달라고?”
“네.”
“글쎄다. 그건 나한테 물어보는 것보다 KRG 관계자들에게 물어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석민은 곧장 한미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준에게 전화를 해봤자 강준이 다시 한미라에게 전화를 걸 것을 모르지 않았기에 다이렉트로 그녀와 통화를 한 것이다.
“안녕하세요 아줌마.”
“우리 귀염둥이가 무슨 일로 전화를 했을까? 설마 아빠 오셨니?”
전화를 받는 한미라는 싱글벙글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원하던 전화는 아니었다.
“아니요. 아빠 아직 안 왔어요. 아줌마 저 부탁 하나만 해도 돼요?”
“무슨 부탁인데?”
“악튜러스를 경기장 쪽으로 옮기고 싶거든요.”
“경기장으로 옮기고 싶다고? 무슨 이유라도 있니?”
석민은 적당한 핑계를 댔다.
“이번에 악튜러스가 우승했잖아요. 그거 때문에 여기저기서 악튜러스를 보러 찾아오는 사람들도 불편하고, 그쪽에 있는 게 여러모로 편할 거 같아서요.”
“경기장이라...”
자기 인맥이라면 악튜러스의 거처를 송파구에 위치한 K 골렘 스타디움으로 옮기는 건 그다지 어려워보이진 않았다.
국내 대회도 끝난 마당에 적당한 비용만 지불한다면야 그쪽도 쌍수 들고 환영할 일.
“그거야 어렵진 않을 거 같긴 한데. 그런데 보안 문제는 어떻게 하려고? 차라리 코리아 일렉트로닉스나 저번처럼 신림 군부대에 놔두는 게 어떻겠니? 그쪽이 더 안전해.”
“그러면 안 돼요.”
“안 돼? 이유가 뭐야.”
“그렇게 하면 똥파리가 안 꼬이거든요.”
똥파리 이야기가 나오자 한미라는 이루리와 달리 석민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단박에 알아차렸다.
“그건 너무 위험한 생각 아니니? 자신 있어?”
“자신 있으니까 아줌마한테 부탁하는 거잖아요. 제 부탁, 들어주실 거죠?”
한미라 입장에선 당연히 껄끄러운 부탁이었다.
일단 골렘의 보안 문제는 어설프게 넘어갈 게 전혀 아니었으니까.
“안 돼. 그쪽은 보안이 너무 부실해서 나중에 문제 될 수 있어. 차라리 다시 군부대로 옮기자.”
석민은 한미라를 다루는 아주 효과적인 수단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아빠 곧 오시는데 저한테 이러실 거예요?”
참으로 영악한 아이였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협박에 한미라는 쓴웃음을 지었다.
“너 그러면 안 돼.”
“옮겨주실 거죠?”
고민은 짧았다.
“진짜 이번뿐이야. 다음엔 어림도 없다.”
“네 알고 있죠.”
“알았어. 바로 처리해줄게.”
“되도록 빨리요. 똥파리가 언제 꼬일지 모르거든요. 만약 꼬인다면 주변에 피해가 갈지도 몰라요.”
“그렇긴 하네. 알았어 내일 바로 옮기게 해줄게. 아줌마가 그 정도 능력은 있거든.”
“고마워요 아줌마. 나중에 아빠 만나면 좋은 말 해드릴게요.”
“또 필요한 건 없니?”
“그것 말곤 없는 것 같아요.”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렴.”
“네.”
그렇게 통화를 마친 석민은 마주보고 있던 이명준 팀장에게 말했다.
“그 일은 대표 아줌마가 처리해주신대요. 내일 연락 오는 거 봐서 바로 옮기시면 될 거 같아요.”
“그래? 그렇다면야 뭐. 알았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이번 일에 대해선 별 문제가 없어보였다.
한국 챔피언이 자기 거처를 경기장으로 옮기겠다는데 누가 막겠는가?
오히려 잘 됐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악튜러스를 살펴보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로 골치가 아팠으니까.
차라리 골렘 거처를 경기장으로 옮기면 좀 덜할 것이다.
그날 밤.
다행히도 악튜러스를 노리는 수상한 낌새는 없었다.
석민은 이루리와 함께하는 방안에서 자기 핸드폰만 들여다봤다.
그러다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석민은 네이버 뉴스 기사를 읽고 있었다.
‘이 아저씨 안 되겠네.’
석민이 보고 있는 기사 타이틀은 이러했다.
겐지 또 망언,
“일본 핵무장, 다케시마를 포함한 자국 영토 수호를 위해서라도 꼭필요한 일.”
석민은 기사 내용 따윈 대충 훑어보고 바로 댓글란을 읽어보았다.
[전체 댓글 4523]
DFDa****
방사능 국가가 낳은 최악의 폐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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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2d****
베댓처럼 방사능 쳐먹어서 머가리가 돌아버린 듯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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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dss****
개시발 쪽빠리 새끼 내가 저 새끼 모가지를 따버려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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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ej****
그때 홍진영이 저 새끼를 잡았어야 했음.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갈수록 가관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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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gs****
이게 다 대통령 때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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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민이 침음성을 흘렸다.
그러자 근처에 있던 이루리가 석민을 불렀다.
“왜? 무슨 일 있어.”
“누나 겐지 선수 아세요?”
“겐지? 겐지가 누구더라.”
이루리는 겐지가 누군지 몰랐지만 석민이 보여주는 사진을 보고선 금세 알아차렸다.
“아, 일본 대표 선수? 알지.”
“이 아저씨가 또 망언을 했네요. 요주의 인물이에요.”
이루리는 기사 내용을 대략 훑어보더니 흘리듯 말을 뱉어주었다.
“나중에 네가 혼내주면 되겠네.”
석민은 당연히 그럴 생각이었다.
‘내가 혼내줘야지.’
석민은 다른 뉴스를 찾아보았다.
이번엔 북한과 관련 뉴스를 찾게 됐다.
두 기사가 있었다.
김정은,
“전투짐승, 골렘 맹주국의 위상을 드높일 것.”
북한 외무상,
“핵 없이 전투짐승만으로 서울 초토화 가능. 한국 항상 말조심해야.”
석민은 두 기사 중 가장 첫번째 기사를 클릭하여 그 댓글들을 읽어보았다.
[전체 댓글 11531]
ewer****
정은아 이제 얼마 안 남았다. 곧 막시무스가 니 멱따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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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ww****
저번 월드 그랑프리 때 막시무스랑 싸우지도 않고 내뺀 주제에 무슨 골렘 맹주국임? 이 돼지새끼는 허구한 날 헛소리만 지껄이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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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da****
핵 깨물어 먹고 살던 동북아 거지새끼들이 게이트 열린 뒤로 아주 살판 났네. 이제 골렘 맹주국이냐? 지나가는 개가 다 웃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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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s****
레드 데빌은 지금까지 뭐했던 거임? 저 돼지 새끼 멱따러 가지 않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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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들을 읽어 내린 석민이 이루리를 불렀다.
“누나.”
“왜?”
“김정은이 북한보고 골렘 맹주국이래요.”
“그래? 또 미친 소리하고 자빠졌네.”
이루리는 꽤 직설적이었다.
정치에 관심 없었지만 그래도 북한에 대한 욕은 서슴지 않았다.
“그 거지 새끼들은 대체 언제 망하나 몰라. 좀 망했으면 좋겠다.”
“게이트 안에서 북한 헌터들 만나긴 하죠?”
“만나긴 하지. 아주 가끔씩. 그런데 서로 말도 안 섞어. 그쪽에서 엄청 조심하거든.”
“그래도 서로 싸우진 않겠죠?”
“그냥 서로 피하지. 서로 싸워봤자 좋을 거 하나 없으니까.”
그 순간 방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엎드려서 뉴스 기사를 읽던 석민이 번쩍 일어나 섰다.
석민의 표정이 한없이 밝아졌다.
반면 이루리는 긴장했다.
누군지는 몰라도 지금 이곳에 찾아온 이가 마나를 다루는 헌터인 것은 분명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