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파이트-103화 (103/173)

< #33 재계약 >

악튜러스의 별빛 갑옷을 제외한 현존하는 장비들 중 최고 등급은 AAA였다.

그런데 장비 등급 판정이 AA-를 넘어가려면 게이트에서 희귀 아티팩트를 구하던가 아니면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하여 개발할 수밖에 없었는데, 회사 관계자들은 그런 현실을 석민에게 설명한 것이다.

석민도 모르는 일이 아니었기에 굳이 토를 달지는 않았다.

“그럼 장비 두 개 정도는 AA+ 등급 이상으로 맞춰주실 수 있다는 거죠?”

“네, 맞습니다.”

그들에게 어떤 장비를 AA+ 등급 이상으로 개발시키는 게 나을까?

‘칠죄종 세트랑 겹치면 안 돼.’

천신과 칠죄종 세트.

올해 월드 그랑프리 출전에 앞서 그나마 모을 가능성이 높은 세트가 있다면 칠죄종 세트가 유일했다.

칠죄종 세트는 까리뽕이 있어 모으는데 수월했고, 천신 세트는 반지 이후로는 인연이 아예 없었으니까.

석민은 스카우터를 쓴 채 악튜러스 장비창을 떠오르게 했다.

-인터넷에 접속하여 장비 목록을 불러옵니다.

[무장 목록]

우(右)무장 : [AA-] 브로큰 블레이드좌(左)무장 : [A-] 스턴건 피스트 브레이커보조 무장 : [A-] 코리아 일렉트로닉스, 안티 매직 미스릴 방패

[장갑 목록]

듀얼 코어 : [BB-] 쌍둥이 가고일 심장예비 코어 : [B+] 중형 크라켄 심장코어 캡슐 : [A] 코리아 일렉트로닉스, 스마트 코어 캡슐 SC 머리 가리개 : [A-] 코리아 일렉트로닉스, 미스릴 해드어깨 가리개 : [A-] 코리아 일렉트로닉스, 미스릴 덧대몸통 가리개 : [S-] 별빛 갑옷우(右) 손목 가리개 : [S-] 별빛 가리개좌(左) 손목 가리개 : [A-] 스턴건 피스트 브레이커다리 가리개 : [A-] 코리아 일렉트로닉스, 미스릴 각반우(右) 손 보호구 : [A-] 코리아 일렉트로닉스, 미스릴 강화 장갑좌(左) 손 보호구 : [A-] 스턴건 피스트 브레이커발 보호구 : [AAA] 칠죄종, 악한 일을 하려고 서둘러 달려가는 두 발

[골격 목록]

전체 골격 : [A-] 코리아 일렉트로닉스, 특수처리 바질리스크 뼈대시야상에 투영 된 장비들을 쭉 훑어보던 석민은 회사 관계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서 까리뽕을 데려왔다.

기분 나쁜 보라색 혓바닥.

더군다나 말까지 한다.

“저를 부르셨습니까?”

“까리뽕, 나 물어볼 게 있어.”

“물어보십시오.”

“나머지 칠죄종 세트에 대해 알려줘. 이분들이 악튜러스 장비를 맞춰준다는데 칠죄종 세트랑 안 겹치게 할 거라서. 알았지?”

아이의 말에 까리뽕이 대답을 이어나갔다.

“그런 일이라면 도와드려야죠. 우선 칠죄종 세트는 저를 포함한 총 7개로, 여기엔 마안, 포켓, 피갈퀴 손, 심장, 장화, 마력원과 마지막으로 검이 있습니다.”

“그래? 잠깐만.”

석민은 스카우터를 쓴 채 베타고를 불렀다.

“베타고.”

베타고 AI : 듣는 중.

“아까 까리뽕 말 들었지? 이거 정리 좀 해줘.”

베타고 AI는 석민이 요구한 대로 까리뽕에게 들었던 정보들을 토대로 보기 좋게 정리하여 이를 석민의 시야에 투영시켰다.

-해당 정보를 출력합니다.

거만한 눈 : 마안

거짓말하는 혀 : 포켓

무고한 피를 흘리는 손 : 피갈퀴 장갑간악한 계획을 꾸미는 마음 : 심장악한 일을 하려고 서둘러 달려가는 두 발 : 장화거짓말을 퍼뜨리는 거짓 증인 : 마력원형제들 사이에 싸움을 일으키는 자 : 검베타고 AI : 정리되었습니다.

“고마워 베타고.”

석민은 해당 정보와 현재 악튜러스 장비들을 비교해가며 필요한 장비들에 대해 생각해봤다.

‘칠죄종 세트랑 안 겹치는 것 중에서 고를 수 있는 게 코어 캡슐이랑 뼈대, 그리고방패 정도겠네.’

그들에게 전혀 다른 장비를 요구할 수도 있었으나, 코어캡슐과 뼈대는 두 번 강조해도 나쁘지 않을 만큼 핵심 장비였다.

석민은 방패를 버리고 이 두 개부터 챙기는 게 낫다는 생각을 했다.

“결정했어요.”

석민이 말을 꺼내자 까리뽕만 말없이 쳐다보고 있던 회사 관계자들이 다시 석민을 쳐다보았다.

“결정하셨나요?”

“저 코어 캡슐이랑 뼈대가 필요한 거 같아요. 나머지 장비들은 칠죄종 세트로 대신할 생각이거든요.”

“칠죄종 세트요?”

선수 이야기가 비단 선수만의 이야기가 아닌 만큼.

그들도 석민이 말한 칠죄종 세트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원하신다면 저희 정보팀이 나서서 칠죄종 세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저희 정보팀은 최고거든요.”

그들은 최고라는 말을 강조했다.

하지만 석민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괜찮아요.”

“네?”

“저한테 주신 베타고 AI가 있잖아요. 그거 베타고에게 물어보면 되는 거 아닌가요?”

“아... 제가 거기까진 생각을 못했네요. 네, 베타고 AI에게 직접 물어보셔도 됩니다. 그 베타고는 좀 특별하니까요.”

그들 말처럼 석민에게 주어진 베타고 AI는 아주 특별했다.

일반적인 베타고와 달리 최우선적으로 일을 처리해주는 것도 있었지만, 대화가능한 성장형 AI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었다.

어느 정도 대화가 마무리되자 찾아왔던 관계자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주문하신대로 코어 캡슐과 뼈대부터 빠르게 개발해보겠습니다. 나머지 장비들도 최대한 노력해보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건 감안해주시길 바랍니다. 아그리고 이건 다른 얘긴데.”

떠나기 전 그들의 대장격으로 보이는 남자가 석민에게 우려의 말을 전했다.

“다른 건 모르겠는데, 지금 악튜러스의 보안 상태가 좀 걱정되네요.”

그는 낡은 고물상에 출입하면서 그 생각을 줄곧 가지고 있었다.

악튜러스 자체도 귀했지만 악튜러스와 함께하는 장비들도 천문학적인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는 만큼, 여기에 따른 보안 문제는 두 번 세 번 강조해도 아쉬울 게 없었다.

“원하신다면 저희 본사나 연구소 쪽에 자리를 마련해보겠습니다. 그쪽은 보안이 확실하거든요. 믿고 맡기셔도 됩니다.”

코리아 일렉트로닉스.

방위산업체답게 군부대 못지않은 시설과 장비들로 최고의 보안을 자랑하고 있었다.

석민은 그 말을 듣고 곧바로 미소를 띠웠다.

“아니요. 저 일부러 악튜러스를 이곳에 놔둔 거예요.”

“예? 그게 무슨 말인지.”

그는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보안이 너무 철저한 곳에 놔두면 도둑 아저씨들이 슬퍼하잖아요.”

이어지는 석민의 말에 그의 표정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걸 듣고 웃어야할지 아니면 뭐라 해야 할지.

“물론 악튜러스가 한국 챔피언이긴 한데...”

여기에 대해 석민은 확실하게 답해주었다.

“한국 챔피언이니까 어설픈 도둑들이 찾아오진 않겠죠. 적어도 악튜러스한테 비벼볼 수 있는 도둑들이 찾아오지 않을까요?”

“그거야... 그렇죠. 그러니까 제가 보안 문제를...”

“아니요. 저랑 악튜러스는 겁쟁이가 아니에요. 오히려 함정을 파놓고 기다리는 사냥꾼 입장이죠.”

악튜러스 장비에 선수 개인 재산만 있는 게 아닐 텐데.

하지만 저번 재계약으로 인해 그들의 발언권은 힘을 잃은 상태였다.

‘일단 보고는 해야 할 것 같은데.’

“입장이 그러하시다면야 저야 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만. 그래도 보안 문제는 두 번 세 번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겁니다.”

그는 이 일을 곧장 상부에 보고했다.

보고된 사안은 그 즉시 회장에게 닿았고, 회장의 표정은 그 즉시 썩었다.

“애새끼가 가지가지 하는군. 그러다 문제 생기면 어쩌려고?”

전속비서는 해당 사안을 보고하는 것과 동시에 정보팀에서 넘어온 몇몇 사진들을회장에게 건네주었다.

“이 새끼는 누군데?”

배경은 인천국제공항.

사진 속 떡대 주인공은 회장도 모르는 자였다.

“이름은 존 마커. 골렘 장비만 전문적으로 터는 전문 도둑 중 하나입니다. 며칠 전 노턴 변호사들을 대거 이끌고 한국에 찾아왔습니다.”

회장은 말없이 웃었다.

“좋은 냄새가 풀풀 나니 벌레가 꼬이는 군. 자네가 보고한 걸 보니까 목적이야 뻔한 것 같은데... 아이는 알고 있나?”

“저희가 말하지 않더라도 베타고가 알려줬을 겁니다. 리스크 관리는 베타고 전문이잖습니까?”

“그래서 한다는 소리가 함정을 파놓고 기다리겠다?”

“무모한 생각은 아니라고 봅니다.”

“무모한 생각이 아니다?”

“그쪽 세계에선 저희가 모르는 불문율 같은 게 있습니다. 전문 도둑들이 일에 실패할 경우 모든 걸 포기하게 되죠. 골렘이나 장비 모두.”

“그런 게 있었나?”

“네.”

“그럼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는가?”

“상대 골렘이 좋은 장비를 가지고 있다면야 가치야 넘치고도 남겠죠.”

“도박이로군.”

“네 맞습니다. 도박입니다.”

함정을 파놓고 기다린다는 아이.

회장은 내키지가 않는지 자꾸만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애새끼가 싫어. 무슨 생각인지 좀처럼 종잡을 수가 없단 말이야. 그래서 아직까진 무슨 소식 같은 건 없고?”

“제가 볼 땐 존 마커 쪽에서 계속 간을 보는 것 같습니다. 악튜러스가 쉬운 상대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도 있겠지만, 앞서 실패도 했었거든요. 물론 그의 부하 이야기입니다.”

“실패도 했었어?”

“대형 로펌 변호사들이랑 같이 온 것도 전부 그 이유입니다. 일에 실패한 부하가 지금 구치소에 수감 중이거든요.”

“아주 지랄 났군. 그래서 언제쯤 시도할 것 같나? 예상으로.”

“너무 질질 끌지는 않을 겁니다. 악튜러스가 보안에 취약한 고물상에 언제까지 머무를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니 일을 서두르려 할 게 분명합니다.”

“계속 감시해. 움직이면 바로 알리고.”

“지금도 모니터링 중입니다. 움직임을 보인다면 곧바로 보고될 겁니다. 베타고와함께 있는 아이도 알게 되겠죠.”

그 시각.

석민고물상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건물 옥상 위.

부하인 스티븐이 그랬던 것처럼 존 마커 역시 그 아래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바바리코트를 걸친 거구의 남자.

존 마커가 씩 웃는다.

‘저기 보이는군.’

스티븐 때와 다르게 존 마커가 찾아왔을 때는 고물상 뒷마당에 위치한 악튜러스가 너무나도 잘 보였다.

먹음직스런 먹잇감.

그는 비릿한 웃음이 나오는 걸 참지 못했다.

“큭큭큭.”

‘아주 맛있어 보여.’

칠죄종 세트를 모으는 것은 그의 오랜 숙원과도 같은 것.

장비 하나하나가 고가인 것도 있었지만, 다 모은다면 막시무스도 두렵지 않았다.

‘저기에 칠죄종 세트가 두 개. 내꺼까지 합하면 총 네 개로군. 벌써 네 개야.’

존 마커는 스카우터를 쓰고서 저 아래 보이는 악튜러스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액세스 불가. 정보가 제한되는 중입니다.

월드 그랑프리 이전까지 악튜러스의 장비는 비공개로 전환되었다.

존 마커는 씩 웃으며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꼴에 수작을 벌여놨군.’

존 마커는 알파고를 통해 악튜러스의 장화 부분을 살펴봤다.

만약 베타고였다면 정보를 허용하지 않았겠지만, 알파고는 달랐다.

알파고는 영상 판독만으로 해당 장비가 칠죄종 세트일 거라고 99% 확신했다.

존 마커의 입가에 긴 호선이 드리워진다.

‘그럼 그렇지.’

이제 남은 건 아이가 가진 포켓과 칠죄종 장화를 강탈하는 일.

이때 뒤에서 수상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놀란 존 마커가 뒤를 쏘아보자 옥상 문틈으로 자기를 엿보고 있던 어떤 아이가 화들짝 놀라 도망쳤다.

‘애? 방금 애였지?’

스카우터를 통해 보았기에 방금 전 자기가 봤던 영상을 되돌리는 게 가능했다.

-10초 전 영상을 다시 재생합니다.

돌려본 화면에서 문틈 사이로 저를 쳐다보고 있던 존재는 확실히 동네 아이였다.

‘뭐야 애였잖아. 나도 신경이 너무 예민해졌군.’

피식 웃어넘기는 존 마커는 다시 옥상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러면서 자기를 몰래 훔쳐보던 아이의 존재는 금세 잊어버렸다.

스티븐이 그랬던 것처럼.

< #33 재계약 > 끝

ⓒ 대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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