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 개구리 왕 >
경기장 영상은 대한민국 전체로 뻗어나갔다.
자사의 방패가 전면에 나오자 회의실에 위치하던 회장이 입을 열었다.
“내가 볼 땐 베타고가 예측한 것보다 저 깡통이 더 불리해 보이는데, 내가 잘못 보고 있는 건가?”
레드 데빌이 상황적 우위를 계속 가져가자 우려에서 나온 말이었다.
회장의 물음에 검은색 뿔테 안경을 가볍게 추켜올린 전속비서가 입을 열었다.
“보기에는 그렇습니다만, 베타고의 판단은 그대롭니다. 54대 46입니다.”
“그렇게 안 보여서 해본 소리였어. 딱 봐도 깡통이 불리해보이잖아.”
“개입하시겠습니까?”
“개입?”
회장의 얼굴이 살며시 일그러졌다.
“미쳤나? 내가 저번에 한 번 말아먹은 걸 보고도 그딴 소리가 나오나?”
“그냥 해본 소리였습니다. 회장님 성격이라면 개입하실 거 같아서.”
회장은 개입할 생각이 없었다.
아직은 말이다.
“일단은 좀 더 보자고. 그보다 꼬마놈이 베타고 명령을 얼마나 잘 따르고 있지?”
“거의 따르지 않는다고 보시면 됩니다. 가끔씩 추천하는 대로 움직이긴 합니다만, 거의 무시되고 있습니다. 박대한 대위와는 확실히 다르네요.”
“그러면 개입도 힘들겠군. 뭔 수로 개입하나?”
씩 웃는 회장이 팔짱을 끼고 대형 스크린 화면을 주시했다.
“이럴 땐 그냥 믿어줘야지. 저런 위기조차 스스로 극복하지 못한다면 저 아이는 그저 남들보다 골렘을 좀 더 다룰 줄 아는 한낱 애새끼에 불과할 테니까.”
“회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누군가 회장을 불렀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어느 중년의 남자였다.
회장은 돌아보지도 않고 답했다.
“왜.”
“아이의 소속사가 KRG로 변경된 점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그게 뭐 어때서? 애새끼를 돌봐주는 유치원이 바뀌었는데, 그걸 나보고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 건가?”
“기존에 아이를 돌봐주던 G 매니지먼트야 아직 구색도 갖추지 못한 영세 매니지먼트였기에 저희 쪽 관리가 수월하다고 판단했습니다만. KRG의 경우 국내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매니지먼트입니다.”
“그래서?”
“다음 재계약 때 일이 복잡해질 수도 있습니다. KRG에서도 자기들 이권을 생각하겠죠. 저희에게 뭐라도 받아내려고 할 겁니다.”
“KRG? 아, 이제야 기억나는군.”
회장은 제 앞에서 건방지던 한미라를 떠올렸다.
한 마디로 재수 없던 여자였다.
“그 버러지 같은 년이 대표로 있는 매니지먼트였나? 레드 데빌도 그쪽 골렘이었고.”
“네 맞습니다 회장님.”
회장의 고민을 짧았다.
“다 된 밥상머리에 버르장머리 없이 제 숟가락을 올려놓지 못하게, 선수 개인과 단독으로 계약을 체결하도록. 나는 그년이 꼴도 보기 싫거든.”
회장의 말은 현실적으론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선수가 매니지먼트와 계약한 내용이 있기 때문에 힘듭니다 회장님.”
“힘들어? 뭐가? 우리가 갑이잖아. 아닌가?”
이쯤에서 회장이 고개를 살짝 돌렸다.
역시나 인상이 무서운 남자였다.
보는 이가 알아서 움츠러들 정도로 말이다.
“우리가 갑 아니었냐고 묻잖아. 그쪽 눈치를 왜 봐?”
“하지만 그쪽 계약이...”
“갑자기 끼어든 버러지들에게 아량을 베풀어줄 정도로 우리가 그렇게 호락호락했었나?”
“그건 아닙니다. 다만 일이 복잡해질 것 같아서...”
“선수나 매니지먼트가 갑질을 하는 건, 선수가 확실했을 때의 일이지. 신인에게 그런 건 없어. 있어서도 안 되고. 절대 봐주지 마. 장비 지원 안 해준다면, 매니지먼트에서도 할 말이 없을 거다. 그렇게 해.”
악튜러스에게 빌려준 장비는 사실 족쇄와도 같은 것.
회장은 철저하게 자기 자신과 회사만 아는 이기주의자였다.
“밥상머리에 숟가락 하나가 더 들어오면 그만큼 우리 파이가 줄어드는 거다. 절대 봐주지 말도록.”
“네. 회장님.”
“그리고 우리 같은 공룡이 신인하고 노는 이유를 아직도 모르겠나? 값 싸고 쉽게 등쳐 먹을 수 있으니까 놀아주는 거야. 그런데 여기서 KRG가 끼어들어봐. 그게 안 되잖아. 안 그런가?”
“네, 맞습니다.”
“KRG이야 잘나가는 선수 광고비만 떼어먹어도 좋아라 할 거다. 신경 쓰지 말고 진행해.”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회장이 씩 웃었다.
“우리가 바로 슈퍼갑이야. 저기 깡통이 착용하고 있는 장비 태반이 다 우리꺼라고. 절대 꿇리지 마. 꿇릴 필요도 없고. 항상 세게 나가. 우린 그런 위치다.”
거만한 회장의 시선은 어느덧 경기 화면으로 옮겨졌다.
그가 보는 스크린 화면에서는 악튜러스가 방패로 레드 데빌의 꼬리를 막아내고 있었다.
무섭게 휘둘러지는 꼬리.
이를 막아내는 악튜러스의 전신이 뒤로 밀렸다.
요령껏 방패로 막고 밀리는 힘에 크게 저항하지 않아서 망정이었지.
만약 버티려고만 했다면 꼬리 힘에 방패와 함께 나자빠졌을 것이다.
악튜러스가 요령껏 버텨내자 오기가 생긴 레드 데빌이 다시 한 번 꼬리를 크게 휘둘렀다.
이번엔 출력을 최대로 높였다.
방금 전보다 더 무섭게 휘둘러지는 꼬리가 악튜러스가 내세운 방패에 다시 직격했다.
악튜러스의 시야가 좀 전보다 더 크게 요동쳤다.
‘이건 못 버텨.’
석민은 상대의 힘을 흘리는 법을 알고 있었다.
괜히 버티려했다간 꼴사납게 나동그라질 뿐.
그걸 잘 알았기에 악튜러스는 버티려하지 않고 요령껏 땅을 구른 뒤 다시 방패를 앞세웠다.
상대가 치는 힘을 그대로 흘려버린 것이다.
선수의 노련미가 엿보이는 장면이었다.
반면 상대하는 입장에선 미칠 노릇.
홍진영이 낯을 와락 구겼다.
요령으로 꼬리 공격을 막아대니 화딱지가 난 것이다.
‘저 쥐새끼가!’
홍진영은 다른 식의 공격을 꾀했다.
지금까지 계속 꼬리를 휘둘렀으나 이렇다할 성과가 없었으니까.
레드 데빌의 꼬리가 이번엔 휘둘러지는 게 아니라 창살처럼 쏘아졌다.
끝이 뾰족한 창처럼 깊숙하게 찌른 것이다.
목표는 머리.
이를 알아차린 악튜러스가 반사적으로 방패를 들어올렸다.
그 바람에 악튜러스의 미간을 노리던 꼬리 끝이 관자놀이 옆을 스쳐 지나가며 이마저도 실패로 끝났다.
“개 같은!”
홍진영이 크게 욕지기를 내뱉었다.
‘진짜 짜증나네! 대체 뭐하는 새끼야.’
한주먹거리도 안 되어 보이는 상대가 아직까지 버티고 있다는 게 화가 났다.
보통이라면 진작 잡혔을 것이다.
출력 차이가 거의 1000hp 가까이 나고 있는데, 이걸 요령으로 버틴다는 게 말이 되겠는가?
적어도 홍진영 상식으론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오 저걸!’
그 순간.
악튜러스가 반격을 위해 방패를 들이밀었다.
당황한 레드 데빌이 급히 말아 쥔 주먹으로 악튜러스를 내리쳤으나, 그 공격은 허공을 갈랐다.
마치 준비된 것처럼 옆쪽으로 몸을 돌린 악튜러스가 이걸 또 요령껏 피한 것이다.
홍진영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좆됐다.’
급히 예지안을 개안한 레드 데빌이 악튜러스의 다음 공격을 예측했다.
보이는 미래에서 악튜러스는 방패를 크게 휘둘러 공격하고 있었다.
이 미래에서 레드 데빌은 악튜러스가 휘두른 방패에 맞아 그대로 나자빠졌다.
‘그렇겐 안 되지!’
악튜러스가 방패를 휘둘러 치기 전.
레드 데빌이 앞쪽으로 구르며 이를 간신히 피했다.
골렘을 구르게 하는 건 홍진영이 자주 보이던 모습은 아니었으나, 홍진영도 나름 상대 선수에게서 배운 것이다.
모든 공격을 알고 대처하는 레드 데빌의 모습에 지켜보던 팬들이 크게 열광하며 소리를 내질렀다.
그들에겐 홍진영은 아주 노련한 선수로 보였다.
모든 공격을 예측한 것처럼 행동하고 대처했으니까.
어느샌가 경기장은 레드 데빌과 홍진영을 응원하는 함성으로 가득 차올랐다.
홍진영! 홍진영!
제 이름 석자가 경기장 전역으로 뻗어나가자 홍진영이 씩 웃었다.
‘그래, 이거 내 경기야. 저딴 애새끼한테 절대 안 진다고!’
본래라면 레드 데빌 안면부를 가격했어야할 악튜러스의 방패는 허공을 가르고 말았다.
석민은 살짝 동요했다.
‘예지안이라 공격들을 다 예측하고 있어. 역시 단순한 공격들은 안 돼.’
어디 예지안 뿐이랴?
보호안도 문제였다.
출력을 최대로 높인 상태로 보호안을 사용한다면 악튜러스에겐 공격할 재간이 없었다.
다 막을 테니까.
아나운서들도 그 입이 바빠졌다.
나름 격전이었으니까.
“역시나 악튜러스가 밀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예지안 없이는 악튜러스도 많이 힘들어 보이네요.”
“제가 볼 땐 예지안보다는 악튜러스 출력이 다소 아쉬운 듯싶습니다. 힘에서 안 되니 악튜러스도 자꾸 요령을 부리는데, 그 요령들도 예지안에 전부 막히고 있으니까요.”
이용호 캐스터가 의문을 내뱉었다.
“제가 보는 홍진영 선수는 정말 신기합니다. 국내에선 저렇게 잘 싸우는데 왜 세계 무대에선 저런 모습을 보이기 힘들까요?”
그 의문에 대해선 김요한 해설위원이 답해주었다.
“보통 레드 데빌 수준만 돼도 예지안은 거의 필수 장비가 됩니다. 없이는 못 싸우는 거죠.”
“하긴 상대 공격들을 다 예측한다면 이기기가 힘들겠네요. 지금 악튜러스처럼요.”
“그래서 월드 그랑프리에 출전하는 대부분의 골렘들은 거의 다 예지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예지안이 웃긴 게 같은 예지안끼리 만나게 되면 거의 무용지물이 된다는 사실이죠.”
“저는 이해가 잘 안되는데요. 예지안이 예지안을 만나게 되면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겁니까?”
“쉽게 말해서 같은 미래를 보기 때문에 서로 대처가 달라져서 예지안이 거의 무용지물이 되는 겁니다. 쓸모가 없어지는 거죠.”
“그럼 예지안이 필요 없는 게 아닙니까?”
“아닙니다. 예지안은 꼭 필요하죠. 적어도 예지안이 없는 상대는 쉽게 잡을 수 있으니까요. 또한 상대가 가진 예지안도 무용지물로 만들고요. 그래서 예지안은 거의 필수 장비가 됐습니다.”
“아 그렇군요. 그래서 홍진영 선수가 세계 대회에선 힘을 못 쓰는 겁니까?”
“그렇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강동준 해설위원이 끼어들었다.
“그런데 홍진영 선수도 약간 실망스럽네요.”
“네, 어떤 부분이 실망스러우신 거죠?”
“악튜러스를 상대하려고 돌풍 마법을 쓴 건 알겠는데, 지금까지 제대로 쓰는 걸 못 봤습니다.”
“아 그렇네요.”
“아무래도 자주 쓰던 마법이 아니다보니 선수 본인도 놓친 것 같습니다. 팬으로서 좀 아쉽네요.”
이쯤 와서 홍진영도 까먹고 있었던 윈드 스파이럴을 기억해냈다.
‘이런... 까먹고 있었네.’
레드 데빌은 뒤늦게 소환해놓은 돌풍들을 다루기 시작했다.
소환된 돌풍들이 무서운 기세로 악튜러스를 덮쳤다.
그 바람에 악튜러스는 체내에 있던 흙들을 일부 소실했으나, 석민은 여유로웠다.
예전에 만났던 윈드 골렘에 비해 이 정도 바람 공격은 애들 장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홍진영 아저씨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할 걸.’
악튜러스는 급히 흙의 지배력을 끌어냈다.
소실된 흙이야 다시 보충하면 그만.
여기저기서 치솟는 흙더미.
그 흙더미 속에서 두 안광을 번뜩이는 악튜러스가 온전한 상태로 다시 그 모습을 드러냈다.
바람에 날린 흙을 땅에서 다시 보충한 것이다.
홍진영이 낯을 구겼다.
‘개 같은 어스 골렘.’
레드 데빌은 주변에 이는 돌풍들을 다시 잠재웠다.
애당초 윈드 스파이럴은 레드 데빌이 주력으로 다루는 마법도 아니었고, 단지 악튜러스를 상대하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익힌 마법일 뿐이었다.
또한 해당 마법에 대한 숙련도가 전혀 없다보니 괜히 어설프게 사용하여 마나를 소모시키는 것보다 차라리 안 쓰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한 것도 있었다.
‘존나 놀았더니 결국 이 꼴 나네. 너무 만만하게 봤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연습 좀 할 걸.’
오늘 이때까지 개구리 왕은 그저 놀기만 했다.
수영장 파티에서 비키니 입은 여자들과 어울리기만 했지, 악튜러스를 상대하기 위해 무언가를 연습하진 않았다.
물론 편히 놀진 않았다.
제 자리를 위협하는 어린 개구리가 좀 했으니까.
그래서 뒤늦게나마 윈드 마법을 배우긴 했는데, 숙련도 없는 윈드 마법이야 같잖게 보일 뿐.
홍진영의 표정은 계속 어두웠다.
‘시발 쪽팔리게. 이거 분명 말 나올 거 같은데.’
홍진영의 예상대로 경기를 중계하는 아나운서들은 홍진영을 적나라하게 까대고 있었다.
저따위로 할 거면 블러드 골렘이 윈드 마법을 왜 배웠냐는 둥.
마나 아깝다는 둥.
분명 놀았을 거라는 둥.
돌풍을 멈추게 한 레드 데빌이 다시 공세를 취하려 할 때, 악튜러스가 재차 흙의 지배력을 끌어냈다.
요동치는 대지가 심상찮았다.
‘어스 매직인가?’
레드 데빌이 주춤했을 때.
땅을 뚫고 올라오는 거대한 머리가 있었으니.
그 형상은 마치 뱀과 같았다.
그리고 그 뱀머리 위엔 악튜러스가 올라 서 있었다.
요르문간드.
종말의 뱀이 개구리 왕을 잡아먹기 위해 찾아왔다.
< #32 개구리 왕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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