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파이트-96화 (96/173)

< #32 개구리 왕 >

한미라가 차태식과 통화를 하던 사이, 석민에 대한 소형 다큐도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다큐가 끝나자 곧바로 홍진영 인터뷰 장면으로 넘어갔다.

여러 기자들에게 쫓기는 홍진영에게 젊은 여기자가 다가가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악튜러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짧게 말이라도 해주세요.”

홍진영은 인터뷰가 귀찮았는지 손사래를 쳤지만 마이크는 집요하게 그의 입 앞까지 파고들었다.

“아, 자꾸 물어보지 마세요. 저 모릅니다.”

“당연히 레드 데빌이 이기겠죠?”

이 당시 인터뷰 시점이 K 나이트와 악튜러스가 붙기 전이었다.

“누가 올라오든 제가 이길 겁니다. 저 홍진영입니다 홍진영. 대한민국에서 저를 뛰어넘을 선수는 없다 이겁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다시 아나운서 화면으로 넘어갔다.

이용호 캐스터가 미소로 운을 뗐다.

“네, 잘 봤습니다. 차석민 선수와 따로 자리한 적은 없지만 사연이 많은 아이였네요.”

같이 있던 두 해설위원도 입을 열었다.

“아이가 참 야무진 느낌을 받았어요. 저라면 저 나이 때 저러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그런 곳까지 찾아가 아빠가 필요한 돈을 벌 생각을 했을까요?”

“철이 일찍 든 거겠죠. 개인적으로 응원하는 선수입니다.”

이용호 캐스터가 갑작스레 이민호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아, 이번 결승전을 위해 이민호 선수가 할 말이 있다고 해서 짧게 인터뷰를 했다고 합니다. 같이 보시죠.”

TV 속 화면은 어느 짬뽕 가게를 배경으로 둔 이민호 화면으로 바뀌었다.

“석민아, 아저씨 기억하냐? 기억나겠지. 아저씨가 피스트 브레이커를 주고 갔는데.”

이민호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석민아, 이 아저씨는 은퇴하고 신장개업했다. 아직 오픈 빨이 있어서 장사는 잘되고 있어.”

팔짱 끼고 인터뷰에 응하는 이민호는 파이터 슈트가 아닌 요리사들이 즐겨 입는 새하얀 위생복을 입고 있었다.

“네가 베가랑 싸울 때부터 알아봤다. 너는 내가 봤던 선수 중에서 가장 가능성 있었어. 너는 세계로 나갈 그릇이다. 한국 골렘 파이트가 더 이상 우물 안 파이트가 되지 않도록, 네가 꼭 세계로 나가주길 바란다. 진심이야. 그리고 홍진영, 그 까짓 거 꺾어버려. 그 새끼, 생각보다 좆밥이야.”

해당 인터뷰는 석민만 보고 있던 게 아니었다.

출전 대기 중인 홍진영도 스카우터를 통해 해당 인터뷰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이민호가 자신을 욕보이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랐다.

“개시발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새끼가. 뭐 좆밥? 저 새끼가 진짜 미쳤나?”

반면 석민은 미소 짓고 있었다.

‘이민호 아저씨다. 요즘 잘 지내시는지 몰라.’

인터뷰가 끝나기 전 이민호는 짤막한 가게 홍보와 함께 석민에게 응원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저희 집 짬뽕, 존나 맛있습니다. 한국 챔피언이 만드는 짬뽕입니다. 그리고 석민아, 꼭 이겨라. 그리고 세계로 나가.”

인터뷰가 끝났다.

마지막까지 지켜보던 홍진영이 크게 욕지기를 뱉어냈다.

근처에 있던 스텝들이 전부 홍진영을 쳐다볼 정도로 홍진영은 이민호를 곱씹고 있었다.

‘저 좆밥새끼가 진짜.’

가까스로 화를 진정시킨 홍진영이 근처에 있던 코치진에게 물었다.

“정말 코어 그대로에요? 그거 확실한 거죠?”

“예, 방금 확인하고 왔습니다. 코어는 그대로에요.”

홍진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해가 안 되는데. 왜 코어를 그대로 뒀죠? 우승하려면 코어만 바꿔 끼면 되는데.”

“저희도 그쪽 사정까지는 잘 모릅니다. 아무튼 코어는 그대로인 걸 확인했습니다.”

“이상하네.”

납득은 안 됐어도 홍진영에겐 기회였다.

‘시발 이러면 이길 수 있잖아.’

홍진영이 씩 웃자 매니저 겸 동생인 홍수아가 달라붙었다.

“오빠, 이길 수 있지? 꼭 이겨야 돼.”

이번 결승전에서 홍진영이 지게 된다면 SNS에서 여왕으로 활동하는 홍수아도 그끝을 맞이하게 된다.

적어도 내년까지는.

꼭 여왕으로 남아있기를.

홍진영이 자신감을 내비쳐주었다.

“야, 오빠만 믿어라. 코어가 그대로면 레드 데빌이 더 유리한 거니까. 이 오빠가 제대로 찌발라줄게.”

“진짜 지면 안 돼. 알았지?”

“이년아, 몇 년이 지나도 이 자리는 오빠 꺼다. 누구한테도 안 내줘.”

대기 신호가 출전 신호로 바뀌었다.

신호가 바뀌자 레드 데빌과 홍진영이 가장 먼저 대기실 입구를 통해 경기장 중앙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전에 없던 함성들이 쏟아지고, 그 함성 아래 홍진영이 제 무대처럼 레드 데빌과 함께 레드 진영으로 나아갔다.

와아아아~!

레드 데빌보다 뒤떨어져 걷는 홍진영이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들어대자 홍길동의목소리가 경기장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저기 나오는군요! 대한민국 넘버원 파이터! 올해도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을 것인지! 소개합니다. 레드 데빌과 홍진영 선수입니다. 큰 박수로 맞이해주십쇼!”

엄지만 세운 채 말아 쥔 두 주먹을 불끈 들어 올리는 홍진영이 그 응원에 화답한다.

‘그래 시발 존나 응원해라. 올해도 내가 이길 테니까.’

관중석 태반이 붉은 물결.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서는 붉은 악마들이 밤새 제작한 피켓을 흔들어대며 홍진영과 레드 데빌의 이름만 부르짖었다.

역시나 수년간 1위 자리를 확고부동하게 지켜왔던 레드 데빌인만큼 그 응원열기가 아주 대단했다.

그 응원만큼이나 그 동안 움츠리고 있었던 홍진영도 씩 웃으며 자신감을 되찾았다.

‘그래, 여긴 내 나와바리라고. 어디서 같잖은 게 올라와서 지랄이야. 이참에 존나 밟아줘야지. 그래야 다음엔 기어오를 생각을 아예 못할 테니까.’

그 열기가 살짝 식어들었을 때, 홍길동이 블루 진영에 대한 소개를 이어나갔다.

고물상에서 우연히 주운 골렘.

쓰레기 더미에 파묻혀 버려져 있던 그 골렘이 오늘 이 자리에 섰다.

홍길동의 목소리가 다시금 커진다.

“자 그럼, 이번엔 블루 진영에 대한 소개해보겠습니다. 대한민국 굴지의 골렘들을 모조리 꺾고 올라온 불세출의 신인! 최근엔 대기업 후원까지 입어 승승장구하고 있는 차석민 선수와 악튜러스입니다. 모두들 박수로 맞이해주십시오.”

SNS, 인터넷, 매스컴에서 대대적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악튜러스였지만, 그래도 이곳 경기장에서만큼은 레드 데빌보다 그 응원 열기가 작았다.

아직 새파란 신인이라는 점이 컸을 것이다.

그래도 악튜러스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가지각색의 옷을 입은 채 환호성을 내질렀다.

하지만 그 환호성은 붉은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의 야유로 금세 사그라졌다.

이런 상황에서도 석민은 신경 쓰지 않고 경기에만 집중했다.

‘신경 쓰면 안 돼. 아직 나는 신인이니까.’

잠시 후.

두 골렘이 정중앙에서 마주보고 섰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

대형 전광판에 레드 데빌의 전적들이 표시됐다.

현 대한민국 랭킹 1위.

현 동아시아 랭킹 9위.

월드 그랑프리 출전 경험 2회.

이것은 그간 레드 데빌이 쌓아올린 훈장과도 같은 것.

홍진영이 씩 웃으며 그 자신감을 드러낸다.

‘그래, 저게 레드 데빌이다.’

이에 맞서는 악튜러스의 전적들이 대형 전광판을 새롭게 도배했다.

현 대한민국 랭킹 2위.

아시아 지역 예선 출전 경험 무(無).

월드 그랑프리 출전 경험 무(無).

단순히 그 전적들만 비교해본다면 레드 데빌이 악튜러스보다 우위에 있었다.

홍진영만큼이나 자신만만한 레드 데빌이 악튜러스를 노려보았다.

레드 데빌은 대화가 가능한 골렘이었다.

‘그 재수 없는 면상부터 찌그러트려주마.’

피로 이뤄진 얼굴이 보다 섬세한 표정을 그려냈다.

그 표정엔 오만이 가득했다.

반면 악튜러스는 표정이란 게 없었다.

레드 데빌이 주먹을 쥐었다 폈다.

홍진영이 펼친 손바닥을 비비며 링크 된 영상 속 어스 골렘을 쳐다보았다.

‘시발, 어디서 개좆밥 새끼가 기어오르나.’

석민 역시 링크 된 시야로 레드 데빌을 살펴봤다.

보통 골렘들은 두 개의 눈을 갖는다.

그러나 돌연변이처럼 아주 특이하게 세 개의 눈을 갖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 경우동아시아에선 삼개안(三開眼), 미국이나 유럽에선 트리플 사이트라 칭했다.

레드 데빌은 삼개안을 가진 블러드 골렘이었다.

그리고 그 삼개안은 전부 몬스터의 마안을 달고 있었다.

‘삼개안이야. 마안이 셋.’

레드 데빌과 관련된 정보들이 순식간에 석민의 시야를 점령했다.

-인터넷에 접속하여 해당 개체를 스캔하는 중입니다.

[블러드 골렘]

개체명칭 : 레드 데빌(Red Devil)

등록번호 : KR-1631009

개체등급 : BBB(에인츠 Mar 10th, 2029)

최대출력 : 3220hp

보유용도 : 대전 골렘용

-인터넷에 접속하여 골렘의 세부 정보를 갱신합니다.

[무장 목록]

우(右)무장 : [A] 에이젤 데스 사이드좌(左)무장 : [A-] 혼 바질리스크 피갈퀴손

<세트>

보조 무장 : [A-] 혼 바질리스크 붉은 꼬리<세트>

[마안 목록]

우(右)마안 : [BBB] 붉은 여우 예지안좌(左)마안 : [A-] 쾌(快) 가속안

상(上)마안 : [BBB] 보호안

[장갑 목록]

코어 : [A-] 노멀 드래곤 하트

코어 캡슐 : [BBB] 재팬 일렉트로닉스, 코어 캡슐 CC-C1머리 가리개 : [BBB] 육(肉) 군주 헬름<세트>

어깨 가리개 : [BBB] 육(肉) 군주 덧대<세트>

몸통 가리개 : [A-] 육(肉) 군주 고딕 플레이트<세트>

손목 가리개 : [BBB] 혼 바질리스크 보호구<세트>

다리 가리개 : [BBB] 육(肉) 군주 뼈 각반<세트>

손 보호구 : [BBB] 혼 바질리스크 손갈퀴<세트>

발 보호구 : [A-] 육(肉) 군주 바질리스크 슈즈<세트>

[골격 목록]

전체 골격 : [A-] 제리코, 미스릴 강화 뼈대

장비 종합효율 : 99%

장비 종합판정 : BBB

‘혼 바질리스크에 육 군주 세트야.’

레드 데빌의 장비 변동은 없었다.

악튜러스 장비가 준결승전 때와 마찬가지인 것처럼 말이다.

차고 있던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는 홍길동이 슬슬 운을 떼기 시작했다.

“자, 그럼 대한민국 넘버원 골렘은 과연 누가될 것인지! 오늘 이 자리서 확실하게가려보겠습니다. 두 선수 준비는 되셨겠죠? 그럼 달려볼까요?”

함성이 가득한 경기장 아래, 홍길동의 목소리가 강렬해진다.

“Ready, Fight!”

경기가 시작됐다.

레드 데빌이 삼개안 중 가속안을 발동시켰다.

주변 시간의 흐름이 달라진다.

인지능력이 향상되며 주변 환경이 느린 재생화면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홍진영의 흰자위에 붉은 핏대가 솟아올랐다.

레드 데빌과 링크된 순간부터 파이터도 알게 모르게 그 영향을 받게 되는데, 레드데빌이 가속안으로 인지능력을 향상시키자 그 여파가 홍진영에게 미친 것이다.

“주욱었어.”

마치 모든 사물이 시간에 붙잡힌 것 같은 시야 속.

홍진영의 머릿속에서 울리는 말소리도 한없이 늘어졌다.

그 시간 영역 속에서 홍진영이 레드 데빌을 움직였다.

레드 데빌의 움직임은 정말 느렸지만, 현실에서 보이는 움직임은 달랐다.

폭발적인 움직임으로 순식간에 그 거리를 좁힌 레드 데빌이 손에 들린 사이드를 크게 휘둘렀다.

가속안에 의해 빨라진 움직임.

악튜러스는 이면세계에 숨어드는 것으로 응수했다.

“어디이이일!”

레드 데빌은 뒤이어 붉은 여우의 예지안을 발동시켰다.

짧은 예지안이 발동 된 후, 홍진영은 잠시 후 이면세계에서 탈출한 악튜러스가 공격해올 것을 알았다.

이면세계에서 나온 악튜러스가 피스트 마법이 장전 된 왼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 주먹이 닿기도 전에 레드 데빌의 펼친 손바닥이 이를 막아냈다.

혼 바질리스크 피갈퀴손.

보기만 해도 소름 돋는 피갈퀴손이 악튜러스의 주먹을 잡았다.

홍진영이 웃는 것도 잠시.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날아온 주먹 하나가 레드 데빌의 턱을 가격했다.

솟구치는 시야.

홍진영이 당황했다.

‘뭐어지? 우왜?’

악튜러스에겐 미래를 내다보는 예지안 따윈 없었지만.

전 세계에서 연산처리 속도 1, 2위를 다투는 슈퍼컴퓨터가 함께하고 있었다.

< #32 개구리 왕 > 끝

ⓒ 대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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