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 개구리 왕 >
우승시켜야 된다는 점에선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무조건 밀어준다는 점에선 이견이 있었다.
“하지만 너무 퍼주지는 마.”
왜냐?
그가 바라는 우승은 국내가 아니라 바로 해외였으니까.
“그래선 재기가 어렵잖아. 적당히. 아주 적당히 밀어줘. 그래야 충분히 잴 수 있으니까.”
물론 그의 생각이 위험하다는 건 모두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다 국내 우승을 놓치게 되면 손해였으므로.
회의에 참석한 간부 하나가 조심스레 나섰다.
“회장님. 어설프게 밀어주면 저희 쪽 리스크가 커집니다. 적어도 국내 우승은 확실히 해두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국내 우승만큼은 확실히 가져가야 그들도 본전을 챙길 수 있었다.
물론 그 이상 투자를 안 한다는 가정 하에서.
그 우려에 회장의 얼굴엔 그늘이 드리워졌다.
“그딴 푼돈 건지려고 내가 저딴 깡통에게 투자한 줄 아나?”
그 물음에 말을 꺼낸 간부가 고개를 숙인다.
“아닙니다.”
“국내에서 우승을 못해도 그 정도 리스크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어. 끽해야 푼돈일 테니까.”
회장이 바라보는 시각과, 그 아래서 밥벌어먹고 사는 그들 간의 시선 차는 분명히존재했다.
“얼마나 푼돈인지 한 번 계산해봐.”
그 물음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노트북과 마주하던 전속비서가 답해주었다.
“베타고는 대략 2백억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2백억.
누구에겐 억소리 나는 돈.
그러나 누구에겐 푼돈.
“고작 2백억이야. 국내 우승을 놓치면 끽해야 2백억이라고.”
골렘 장비가 A- 등급을 넘어가게 되면 그 가격이 천문학적으로 뛰게 된다.
장비 하나당 최소 수십억에서 많게는 수백억 단위.
그들이 악튜러스를 후원하면서 지불한 돈만 해도 벌써 7백억을 넘어갔다.
여기엔 골렘 장비, 전문 인력, 드래곤 피스트와 같은 마법서 비용 지출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이중 회수가 불가능한 돈이 2백억.
악튜러스가 국내에서 우승하지 못할 경우 그 2백억이 허공으로 증발하는 것이다.
간부들은 그 금액을 우려해 회장을 설득했던 것인데, 회장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었다.
“우리가 어느 동네 구멍가게 거지새끼도 아니고 그깟 2백억이 아쉬워서 지금보다 더 큰 리스크를 감당할 순 없지.”
적어도 2백억의 가치는 그에겐 아무 것도 아니었다.
“다시 묻지. 만약 월드 그랑프리 진출이 확정된다 치고, 우리가 전폭적으로 밀어줬을 때, 손익분기점은 대충 언제쯤 오지?”
전속비서는 무표정한 얼굴로 이어진 질문을 베타고에게 전했고, 베타고는 그 즉시 답변을 내놓았다.
“베타고가 추정한 손익분기점은 악튜러스 8강 진출입니다. 월드 그랑프리 8강 진출을 확정지어야 손익분기점을 넘기게 됩니다. 그 다음부터는 매출 증대효과가 투자비용을 압도하게 됩니다.”
지금 가정은 코리아 일렉트로닉스에서 죽기 살기로 악튜러스를 밀어줬을 때의 이야기였다.
설렁설렁하게 지원해준다면 이야기가 다를 테지만, 회장은 확실히 밀어줬을 때를 가정했다.
“만약 8강 진출에 실패하면 우리 쪽 손해는?”
“대략 3천억대로 추산됩니다. 물론 전폭적으로 밀어줬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래, 이렇게 된다고. 그깟 2백억 아끼려다가 뒤에서 3천억을 까먹게 돼. 이런 건 병신들이나 하는 짓이야.”
그제야 회장의 뜻을 알아차린 간부들이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회장은 악튜러스를 환호하는 경기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딴 우물 안에서 우승 못해봤자 기껏 2백억 정도 날려먹겠지만. 저 우물 밖은 스케일부터가 달라. 거긴 공룡들이 많이 있거든.”
그가 말하는 공룡들은 코리아 일렉트로닉스와 같이 글로벌 대기업이었다.
특히나 미국의 제리코, 중국의 춘밍그룹처럼 무기를 팔아 매출을 올리는 방위산업체를 가리켰다.
갑갑했던 넥타이를 살짝 풀어낸 회장이 근처에 있던 간부 하나를 불렀다.
“최 이사.”
“네 회장님.”
“춘밍 그룹에서 이번에 얼마나 지원해줬나? 그쪽도 고대 골렘 하나 주웠다면서?”
“스피카 말이십니까?”
“그래.”
“제가 알기론 구입비용만 3천억이 들어갔고, 그와 비슷한 금액이 더 투자 됐다고들었습니다. 성적에 따라선 더 투자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받았습니다.”
“그럼 제리코의 막시무스는.”
“막시무스는... 그건 조 단위 지원이라...”
“조 단위. 좋아. 막시무스는 못 이겨. 나도 그 정도까지 리스크를 감당하진 않아. 그건 안 되는 게임이니까. 하지만.”
회장이 엄숙해진 회의장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우리의 지원 하에선 저런 깡통도 8강, 운 좋으면 4강까지 노려볼 수 있겠지. 우리가 그 정도는 되잖아? 안 그런가?”
“네 맞습니다.”
“물론 지금 저 스크린에 나오는 꼬마와 악튜러스란 골렘이 확실하다면 말이야. 그래서 그 가능성을 보자는 거야. 적어도 그 정도까지 올라갈 그릇인지 확실히 하자는 말이지. 그릇만 맞다면 우리야 반갑지. 우리야 항상 밀어줄 골렘을 찾고 있었으니까.”
어느 정도 네임 밸류가 있는 골렘들은 특정 대기업과 전속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다른 기업과는 상종 자체를 안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 동안 후원할 대상이 없었던 코리아 일렉트로닉스는 오늘 이때까지 투자할 대상을 간절히 찾고 있었다.
회장은 다시 전속비서를 찾았다.
“이봐, 제리코와 우리 매출액 차이가 지금 얼마나 벌어졌지?”
“작년 기준으로 6배 이상 벌어졌습니다 회장님.”
“재작년엔?”
“대략 3.5배 수준이었습니다.”
“그 지랄 맞은 골렘 파이트가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어. 단순히 골렘 파이트 분야에서 매출액이 크게 벌어진 게 아니야. 골렘이 달고 있는 미사일의 성능, 마법에 대한 이뮨 시스템, 장갑의 강도 등, 골렘 하나에 들어간 기술력만 해도 수천가지지.”
잠시 말을 끊어낸 회장이 다시 이어나갔다.
“세계 구석구석에 처박혀 있는 구매자들이 뭘 보고 우리 무기를 사들이겠나? 간단해. 어떤 골렘이 최곤지, 그리고 그 골렘은 어떤 회사 제품을 쓰고 있는지!”
방산업체 입장에선 골렘 파이트는 자사의 무기를 홍보할 최고의 무대였다.
간부 중 하나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회장님, 그럼 이번 결승전에서 악튜러스를 얼마나 밀어주실 생각이십니까?”
“아까 54대 46이라고 했나?”
“네.”
회장이 생각하듯 눈썹을 모았다.
“51대 49로 하지. 깡통이 살짝 유리하게.”
조용히 있던 그의 전속비서가 이쯤에서 입을 열었다.
“회장님.”
“왜?”
“그럴 바엔 그냥 놔두시죠? 괜히 51대 49 맞추는 것도 저희쪽 인력 낭비입니다. 회장님 말대로 가능성을 본다면 오히려 불리하게 놔두는 편이 낫습니다.”
오만도도한 그 모습에 회장이 웃는다.
“그래, 그것도 나쁘지 않지. 차라리 그게 낫겠군. 이번엔 아무 것도 밀어주지 마. 그냥 지켜보자고. 어차피 내가 보고 싶어 하는 건 깡통의 가능성이니까.”
회장이 추가적으로 말을 잇는다.
“악튜러스가 고대 골렘이라고 해서 게임이 다 끝난 게 아니야. 베가나 스피카 모두 고대 골렘이고, 이런 골렘들도 막시무스는 못 이겨. 고대 골렘이고 지랄이고 간에, 조 단위 예산이 들어간 괴물 새끼는 못 이긴다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악튜러스 우승을 바라지 않는 건 아니었다.
다만 더 높은 곳에 닿기를 바랄 뿐이었다.
물론 악튜러스와 차석민이 아닌, 그들의 욕심 때문에.
“말이 길어졌군. 아무튼 지켜보자고.”
#32 개구리 왕
야외에 위치한 풀장.
비키니 입은 여자들이 꺄르르 웃으며 떠드는 곳.
그런 풀장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홍진영이 꽉 쥔 주먹으로 제 앞의 테이블을 세게 내리쳤다.
웃던 여자들이 깜짝 놀라 홍진영을 쳐다보았다.
‘시발.’
그가 분노하는 이유.
악튜러스를 후원하는 어느 대기업의 존재 때문이다.
‘내가 그 꼬마새끼보다 못하다는 거야 뭐야? 왜 나 말고 그딴 새끼를 후원해주는 건데?’
코리아 일렉트로닉스가 자국 기업이 아닌 외국 기업이란 건 모두가 잘 알고 있었다.
본사만 한국에 있을 뿐, 무기를 생산하는 라인 자체는 국내보단 외국에 더 많았고, 자본도 외국 자본이 반을 넘어갔다.
중동, 아프리카에 위치한 용병들이나 군인들도 한국은 모를지언정 코리아 일렉트로닉스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들이야 코리아 일렉트로닉스에서 생산한 무기를 들고 싸우는 입장이었으니까.
그만큼 방산업체로서의 위상이 높다보니 홍진영 입장에선 배알이 꼴렸다.
‘시발...’
다가올 결승전이 걱정됐다.
준결승전에서 악튜러스가 보였던 장비수준으로 보건데, 그대로 코어만 바꾼다면레드 데빌보다 장비가 더 좋았다.
지금까지 장비빨로 국내 1위 자리를 지켜왔던 레드 데빌도 슬슬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오빠, 왜 그래?”
비키니를 입은 홍수아가 찾아오며 심란해 있던 홍진영에게 말을 붙였다.
“꺼져. 지금 오빠 기분 안 좋으니까.”
“오빠, 설마 질까봐 그래?”
“뭐? 이년이...”
홍진영이 고개를 치켜들고 홍수아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아니라고. 그러니까 꺼져.”
“맞잖아. 지금 오빠 꼬라지 보니까 질까봐 두려운 거네.”
“야이!”
홍진영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칵테일 잔을 잡아 던지려했다.
하지만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홍수아가 씩 웃는다.
“맞네.”
“아니라고.”
“맞잖아. 세상에 우리 오빠가 언제 이렇게 됐데. 그것도 새파란 애를 상대로.”
홍진영이 칵테일 잔을 던졌다.
물론 홍수아에게 던진 건 아니었다.
홍수아를 비껴간 칵테일 잔은 그대로 풀장에 입수했다.
홍진영이 마른세수를 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시발 코리아 일렉트로닉스에서 후원해줬다잖아. 내가 받아도 모자를 판국에 그딴 애새끼는 왜 후원해줘.”
“그렇다고 오빠가 불리한 건 아니잖아?”
사실 홍수아는 사정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무슨 개소리야. 거기서 코어 하나만 바꿔 끼면 레드 데빌도 장비 싸움에서 밀려.”
“진짜?”
설마 그 정도일 줄은 홍수아도 예상하지 못했다.
“장비에서 밀리면... 오빠가 지는 거 아냐?”
“야이!”
홍진영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홍수아를 무섭게 쏘아보았다.
“아가리 닫아 이년아. 이년이 자꾸 와서 오빠 신경줄 긁고 있어. 꺼져. 진짜 기분 안 좋으니까.”
“오빠가 당연히 이겨야지. 오빠가 국내에서 지면 안 돼. 적어도 국내는 계속 이겨야지.”
홍진영의 패배는 홍수아가 누려왔던 삶의 끝이기도 했다.
홍수아가 홍진영 옆자리에 바짝 붙어 앉았다.
“오빠, 이겨야지. 지면 안 돼.”
개구리 왕의 동생으로서 누려왔던 삶.
그 삶이 위태로워진다.
“오빠. 이길 거지? 그렇지?”
“시끄럽다고. 짜증나게 옆에서 쫑알쫑알 거리지마 진짜.”
“아니, 대책도 없어? 장비 밀리면 끝이야? 오빠 실력 없어?”
홍진영은 말을 아꼈다.
홍진영이 한숨 쉬며 제 앞에 풀장과 비키니 입은 여자들을 말없이 바라봤다.
무언가.
무언가가 굉장히 허탈했다.
지금까지 너무 많이 누렸던 탓일까?
잃어도 잃을 것 같지가 않았다.
막상 잃어봐야 실감할 것 같았다.
지금 딱. 그런 느낌이었다.
홍진영이 심란해하고 있을 그 시각.
석민과 함께하는 강준도 찾아온 회사 사람들로 인해 심란해졌다.
“코어 지원이 없다뇨? 코어만 바꿔 주시면 국내 대회는 그냥 이기는 거예요.”
강준은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으며 말했다.
물론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다.
“네, 저희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니, 세상에 코리아 일렉트로닉스와 같은 대기업에서 더 이상 후원을 못해주겠다는 게 말이 됩니까? 적어도 코어는 주셔야죠. 아까 말씀하신 대로 악튜러스 장비가 좀 밀린다면서요?”
“네, 저희도 그 부분은 정말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에도 말씀 드렸다시피 마정석 연구 때문에 코어 여유분이 전혀 없는 상태입니다.”
“아니, 그게. 아니 그게 말이 안 되잖아요.”
강준은 아직도 납득이 안 됐는지, 막판엔 직접적으로 그들에게 물어보았다.
“우승은 해야죠. 댁들도 우승만 보고 오신 거 아닙니까?”
“네, 맞습니다. 저희도 악튜러스 우승을 바라고 있습니다. 진심입니다.”
< #32 개구리 왕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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