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 코리아 일렉트로닉스 >
#30 코리아 일렉트로닉스
“계약 내용은 간단합니다. 악튜러스는 앞으로 저희 회사 제품만 써야 합니다. 그 어떤 경우에서도요.”
아시아 지역 예선을 축하하는 파티가 열린 다음 날.
한성철과 강준은 코리아 일렉트로닉스 관계자들과 만남을 갖게 됐다.
후원이나 투자 문제를 상담받기 위함인데, 그들의 요구는 한결 같았다.
모든 경기에서 코리아 일렉트로닉스 제품만 사용할 것.
대신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해줬다.
그게 전부였다.
“골렘 장비라는 게 단순히 회사 제품만 있는 게 아니라 가공이 불가능한 아티팩트 같은 것도 있는 건데. 이런 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강준이 묻자 관계자들이 그 즉시 대답해주었다.
“물론 아티팩트 같은 경우에는 어쩔 수 없겠지만, 최대한 저희 회사 제품을 이용하셔야 합니다. 그게 저희가 내거는 조건입니다.”
“그럼 그쪽 회사에서 나온 어떤 제품이라도 이용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다만 저희 후원 마크를 달고 경기를 직접 뛰는 골렘이니 아마 시중에 나온 제품보다 더 좋은 제품이 지원 될 겁니다. 경우에 따라선 저희가 독자 개발한 무기 등을 공급해드릴 수도 있고요. 물론 당장 있을 일은 아니고, 악튜러스 성적이 계속 좋아야 합니다.”
“그럼 당장 내일 있을 시합은 어떤 지원이 있는 겁니까?”
“일단 시중에 나와 있는 저희 회사 제품이 지원 될 겁니다. 여기엔 저희 전문 기술팀이 파견될 예정이고요. 장비 교체는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 기술팀은 일류입니다.”
일류라는 말에 강준은 침을 목구멍으로 꿀꺽 집어삼켰다.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난데없이 찾아온 대기업에서 후원해주겠다니.
“그리고 저희는 악튜러스의 국내 우승, 더 나아가서는 세계 우승까지 지원할 예정입니다.”
“하하, 이거...”
강준이 너무 좋은 지 그 입이 찢어지다 못해 귀까지 걸려버렸다.
한성철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코리아 일렉트로닉스라는 대기업에서 후원해준다기에 잘못들은 줄 알았다.
지금 이 자리가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파티가 있던 날.
석민은 어느 회장이란 남자로부터 명함을 받았고, 이를 강준에게 보여주었다.
강준은 바로 연락을 취했고, 이 자리가 마련되었다.
악튜러스의 국내 우승.
그것은 비단 석민만의 바람이 아니게 됐다.
코리아 일렉트로닉스 관계자들은 대화를 계속 이어나갔다.
“저희가 이렇게 후원하게 된 것은 악튜러스의 관심이 전보다 높아진 것도 있겠지만, 그것보다 저희 회장님께서 특별 지시를 내린 게 컸습니다.”
“베타고 역시 차석민 선수가 가진 가능성을 아주 높게 봤고요.”
이쯤에서 가만히 귀만 열고 있던 석민도 그들 대화에 끼어들었다.
“당장 필요한 건 코어인데, 코어도 지원해주실 수 있나요?”
석민의 물음에 관계자들이 서로를 쳐다보더니 다소 곤란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게... 요즘 마정석 충전에 대한 연구가 한창 진행 중인지라 가용할 몬스터 심장이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중간한 코어야 당장 구할 수 있겠지만, 대전 골렘용이면 아주 좋은 심장을 써야하니까요. 이건 좀 알아봐야겠네요.”
강준이 끼어들었다.
“아니 대한민국 굴지의 대기업 아닙니까? 설마 코리아 일렉트로닉스 같은 대기업에서 몬스터 심장이 없진 않을 텐데요?”
“네 맞습니다. 있습니다.”
“그런데요?”
“그게 연구팀 소관이라서요.”
“아니 회장님께서 특별 지시를 내리셨다면서요? 그럼 연구용으로 쓰는 걸 이쪽으로 가져올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그게... 골렘 파이트가 저희 주력 사업은 아니라서요. 회사 내 우선순위를 따져보면 국내 우승을 위해서 연구소에 있는 몬스터 심장을 빼오는 게 사정상 녹록치 않습니다. 이게 월드 그랑프리라면 모를까.”
특히나 요즘 같은 시기에는 몬스터 심장이 귀했다.
당장 돈이 문제가 아니라 매물 자체가 없는 것이다.
“아실지는 잘 모르겠는데, 최근에 마정석 충전 열풍이 불었습니다. 그거 때문에 몬스터 심장 자체가 엄청 귀해졌고, 저희도 간신히 구한 심장들은 전부 연구용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사실상 몬스터 심장은 그쪽으로 올인 됐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 부분은 정말 죄송합니다. 드릴 말씀이 없네요.”
그들은 몬스터 심장에 대해서는 미안하다고만 했다.
“하지만 최대한 노력해보겠습니다. 지금 연구용으로 쓰는 몬스터 심장을 악튜러스가 사용할 수 있도록 위쪽에 계속 건의해보겠습니다. 대신 이런 발언이 힘을 얻으려면 악튜러스 성적이 계속 좋아야 합니다. 그러니 좋은 성적, 부탁드립니다.”
강준과 석민은 그게 입발린 소리란 걸 모르지 않았다.
아무래도 코어를 얻는 건 힘들어보였다.
대신 관계자들은 다른 걸 언급해주었다.
“저희가 당장 코어를 준비해드리지는 못하지만, 다른 식으로 지원해드릴 수 있을것 같습니다.”
“다른 식이요? 아니 당장 필요한 게 코어라는데, 대체 뭘로 지원해주신다는 거죠?”
강준의 날 선 물음에 관계자들의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답했다.
“베타고입니다.”
베타고 이야기가 나오자 강준이 석민을 쳐다봤다.
석민은 눈빛을 살리며 귀가 솔깃해졌다.
적으로 두면 골치.
친구로 두면 믿음직스런 아군.
“악튜러스가 KA 청룡과 싸웠을 때 베타고가 박대한 대위를 지원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번엔 베타고가 차석민 선수와 함께 할 겁니다.”
“와 정말요?”
“네, 정말입니다. 이건 위에서 지시한 내용이라서요.”
“베타고면 좋죠. 그런데...”
석민이 생각하는 베타고는 정말 무서운 존재였다.
다만 완벽하지 않다는 게 흠.
석민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의문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 베타고 있잖아요. 슈퍼컴퓨터잖아요. 컴퓨터도 감정에 많이 휘둘리나요?”
“하하, 무슨 소립니까? 슈퍼컴퓨터가 감정에 휘둘리다니요.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그들은 손사래까지 치며 그 사실을 부정해주었다.
석민은 다시 의문을 뱉어냈다.
“잘하고 있던 베타고가 갑자기 흔들리던데, 무슨 이유가 있을까요? 경기가 끝난 뒤 상대 선수의 인터뷰 내용을 들어보니까 베타고 지시만 충실히 따랐다고 하던데... 그럼 경기 자체를 베타고가 풀어나갔다는 건데 저는 베타고가 보여줬던 몇몇 행동들이 아직도 이해되지 않거든요.”
아이가 예리하게 보았다.
하긴 고물 같은 골렘으로 준결승까지 진출한 희대의 천재 파이터.
회사 관계자들이 그 점을 모를 리 없었다.
찾아온 두 관계자는 서로를 쳐다보더니 잠시 후 목소리를 낮춰 관련된 이야기를 몰래 전해주었다.
“사실 그 경기 때 저희 윗선에서 몰래 개입했습니다.”
“개입이요? 그게 무슨 말이죠?”
“저희야 불가능한데, 최상위권자의 재량으로 베타고에게 강제 명령을 내리는 게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 당시 경기 때 저희 회장님께서... 크흠... 직접 개입하셨습니다.”
“회장님께서 직접 개입하셨다고요? 그게 가능해요?”
“베타고를 통한 간접 지시였죠. 박대한 대위가 KA 청룡을 조종할 당시 베타고 명령을 맹목적으로 수행했었고, 그런 이유로 저희 회장님께서 간접 지시로 KA 청룡을컨트롤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 박대한 대위가 베타고 지시를 무시했다면 상황이 다르게 됐겠지만, 아무튼 그렇습니다.”
“아 그게 회장님이 개입해서 그렇게 된 거였구나. 그 동안 의문이었는데 잘 해결 됐네요.”
파티가 있던 날.
회장이 뱉어낸 의문의 말도 여기서 해결될 수 있었다.
석민은 회장이 말했던, “내가 중간에 말아먹기는 했는데, 제법 잘 싸우더군.”을 기억해냈다.
‘그게 그렇게 된 거였구나.’
석민은 가지고 있던 의문 중 하나를 풀게 됐다.
그 무섭던 KA 청룡이 갑자기 실망스러울 정도로 망가진 배경.
그 배경에는 코리아 일렉트로닉스 회장이 있었다.
“물론 이건 기밀입니다. 저희와 대화 내용은 꼭 비밀로 해줬으면 합니다.”
“네.”
찾아온 관계자들은 업무와 관련해서 그들을 상대하고 있었기에 나이 어린 석민에게도 존댓말을 사용했다.
석민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앞으로 있을 경기에선 베타고가 절 도와주게 되나요?”
“네, 베타고는 앞으로 차석민 선수의 우승까지 함께 할 겁니다. 대신 이게 가능하려면 특수한 티아라가 필요한데, 이걸 오늘 저희 기술팀이 기존 티아라와 교체할 예정입니다.”
“그 장비가 특별한가요?”
“네, 이 장비가 있어야 베타고가 최우선순위로 관련 업무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베타고는 지금 사회 전반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중입니다. 바쁜 몸이라 우선순위가 필요한 거죠.”
강준이 끼어들었다.
“그럼 베타고가 KA 청룡처럼 악튜러스한테 간접 지시를 내리는 겁니까?”
“네, 일종의 모범 답안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아직 개발단계이긴 한데, 저희는 그정도가 꽤 진척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만약 회장님께서 끼어들지 않았다면 KA 청룡이 악튜러스를 이겼을 수도 있습니다.”
“그건 아니에요.”
석민이 바로 맞받아치자 관계자들은 머리를 긁적였다.
“뭐 아무튼 그렇습니다.”
“이야 베타고면 알파고 다음 세대 아닙니까?”
“회사 자랑이긴 하지만 저희 베타고가 알파고보다 성능이 더 좋습니다. 알파고가가진 여러 문제점을 개선한 뒤 저희 회사가 독자적으로 개발시킨 슈퍼컴퓨터죠.”
“기술팀은 언제 옵니까?”
강준의 물음에 관계자들은 착용하고 있던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곧 올 겁니다. 그럼 계약은 그대로 진행하시는 겁니까?”
그 물음에 대해서는 석민이 대답해주었다.
“좋아요.”
계약이 끝나자마자 석민고물상으로 코리아 일렉트로닉스 마크를 단 회사 차량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찾아온 이들은 골렘 장비 전문가들로, 몇 시간 만에 골렘 장비를 개조 또는 변형시킬 수 있는 국내 최고의 기술자들이었다.
그들의 목적은 단 하나.
깡통이라 불리는 악튜러스를 개조시켜 국내대회에서 우승시키는 일이다.
석민고물상 밖.
조용하게 주차되어 있는 검은 리무진이 있었다.
도로변에 조용히 주차된 그 차량을 향해 계약을 마친 관계자들이 찾아가 허리부터 숙였다.
잠시 후 차창이 살짝 열리며 무거운 음성이 그들에게 넘어왔다.
“끝났나?”
“네, 회장님.”
“계약하면서 무슨 이야기 없었나? 쓸데없는 이야기 같은 거.”
살짝 찔리는 게 있었지만, 여기서 할 대답이야 뻔했다.
“그런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거짓말을 더럽게 못하는군. 거짓말 좀 배워야겠어.”
어떻게 알았을까?
혹시 도청장치?
아니, 그건 너무 나갔다.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됐어.”
문이 열리며 회장이란 자가 리무진에서 내렸다.
그는 곧장 석민고물상으로 찾아가 찾아온 기술자들로 어수선하던 곳에서 어느 꼬마와 마주보고 섰다.
“꼬마야.”
석민이 그를 올려다봤다.
언제나 마찬가지였지만 기분 나쁜 어른이었다.
“우승할 수 있겠지?”
“우승이요?”
“그래, 이 아저씨가 원하는 건 아주 간단해. 네 깡통이 우승하는 거다. 지금 이 지랄도 전부 그것을 위한 거야.”
“우승 못하면요?”
그가 무서운 시선을 내렸다.
“나를 실망시키는 건 좋지 않아.”
섬뜩한 시선.
석민은 침을 꼴깍 삼켰다.
석민이 봐왔던 그 누구보다 무서운 어른이었다.
그는 석민에게 내렸던 시선을 다시 올렸다.
그는 이상하게도 석민과 시선을 마주치려하지 않았다.
서로 보는 눈높이가 다르다고 광고라도 하고 싶은 걸까?
아무튼 그는 정면만 응시했고, 석민은 자기보다 어른인 그를 올려다보기 바빴다.
그러다 석민이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저기 회장 아저씨, 제가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물어봐라.”
“아저씨는 왜 악튜러스를 후원해주신 거예요?”
그는 씩 웃더니 대답도 없이 떠나갔다.
그때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는 정말로 시크한 어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