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파이트-86화 (86/173)

< #29 롯데 호텔 >

“선물? 무슨 선물이야?”

“하하, 비밀이지롱. 아빠가 조만간 찾아가서 보여줄게.”

“아이 그런 게 어딨어. 빨리 알려줘. 아들 궁금하단 말이야.”

궁금증을 참지 못한 석민이 차태식을 보챘으나 차태식은 그저 웃어넘길 뿐이다.

“하하, 아빠 곧 돌아갈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아빠 언제 오는데?”

차태식이 있는 곳은 용의 계곡.

모두가 알다시피 드래곤은 최상위 몬스터로 일반 헌터들은 레이드 자체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국내 최상위 팀에겐 드래곤이야 그저 날아다니는 돈 덩어리일 뿐이다.

김정민과 한 팀을 이룬 차태식은 용의 계곡에서 수백억 대의 수익을 냈다.

일반인은 꿈도 못 꿀 그런 어마어마한 돈을 게이트 안에서 만들어낸 것이다.

“슬슬 돌아갈 거야. 왔던 만큼 돌아가야 하니까 앞으로 한 달?”

“빨리 와. 아들 기다리잖아.”

“알았어. 곧 갈게. 이번에 돌아가면 아빠가 당분간 아들 곁에 있어줄게.”

이야기를 엿듣고 있던 한미라의 귀가 솔깃해졌다.

아들한테 붙어있겠다니.

이보다 더 좋은 소식은 없었다.

“정말? 아빠, 레이드 안 나가는 거야?”

“아빠가 어딜가. 우리 아들 지켜줘야지.”

석민이 가지고 있는 칠죄종 포켓.

그 포켓으로 인해 위험에 노출되었다는 이야기를 어느 싱가포르 헌터에게 들었다.

그래서 차태식은 지금도 마음이 편치 않은 상태였다.

한시라도 빨리 아들 곁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아빠 최고야.”

“아들, 주변은 항상 경계하고. 모르는 사람은 절대 따라가면 안 된다?”

“아빠, 아들 그런 바보 아니야. 잘 알면서 그래.”

“그래, 우리 아들이 그런 건 잘하겠지. 아무튼 돌아가면 보자.”

“응!”

통화를 마친 석민에게 한미라가 입을 열었다.

“아빠는 잘 계신대?”

“네, 잘 계신대요. 그리고 이제 곧 돌아오신대요.”

“그래?”

“돌아오시면 당분간 레이드도 안 나가실 것 같아요.”

“정말?”

“네.”

“다행이다.”

“네?”

“아니야.”

석민이 은근슬쩍 한미라의 표정을 살폈다.

표정을 보니 자기보다 더 좋아하는 모양.

“아줌마.”

“응?”

“아빠 좋아하세요?”

“뭐? 아니, 아니야. 무슨 이야기야. 내가 왜? 아니야.”

한미라가 잡아뗐지만, 석민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표정에서 다 보였던 것이다.

석민은 흘리는 말로 무언가를 전했다.

조언? 아니면 팁?

“아빠가 화장 진한 여자를 싫어한대요.”

“뭐? 정말?”

놀란 한미라가 석민을 쳐다봤다.

석민은 그녀를 보지도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화장 진하고 집착 심한 여자가 제일 싫대요.”

“진짜? 왜?”

석민은 잠시 뜸을 들였다.

“엄마가 그랬대요.”

풀메이크업의 한미라가 알게 모르게 그 표정을 구겼다.

“대표님, 거의 도착했어요.”

앞좌석에 앉아 있던 김미연이 한미라에게 도착 소식을 전해왔다.

기분 상한 한미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차창 밖을 바라보며 제법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쩐지... 보는 눈이 심상찮더라니. 문제가 그거였어?’

그 눈빛이 약간의 경멸이었다는 것은 이제야 알게 됐다.

바보 같게도 이제야 알아차린 것이다.

차가 멈춰선 곳은 로비 라운지로 이어지는 롯데 호텔 입구였다.

입구는 벌써부터 찾아온 기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한미라가 석민과 함께 내리자 주변에 있던 기자들이 웅성거렸다.

KRG 대표가 악튜러스의 차석민 선수랑 무슨 관계일까?

서로 연관성 없는 둘이 동시에 등장하자 기자들의 의문은 증폭됐다.

포토라인을 통과하고 로비 라운지로 들어선 석민에게 앞서 도착해 있던 한성철과강준이 다가왔다.

어울리지도 않는 정장차림의 둘은 한미라를 보자마자 고개부터 숙였다.

“오셨습니까 대표님.”

“대표님 오셨습니까?”

둘에게 한미라는 편하게 대했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그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성철 씨, 아직도 결정 안 내렸어?”

“하하, 그게... 일단 더 생각해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무슨 생각이 그렇게 많아? 그러다 내 맘 바뀌면 어쩌려고.”

“하하 대표님. 조금만 더 시간을...”

“이봐요 성철 씨. 기다리는 입장도 생각해 줘야지. 언제까지 계속 시간만 달라고 할 건데. 이제 슬슬 결정 내릴 때도 됐잖아?”

“죄송합니다.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십시오. 정말 심사숙고하고 있어서요.”

“심사숙고할 게 뭐 있어? 그냥 돈이랑 아이 둘 중 하나 택하면 되는 거지. 그리고 석민이 입장에서도 우리한테 넘기는 게 좋아. 우리야 경험 많고 지원 빵빵하니까. 알지?”

“알죠. 당연히 압니다.”

“잘 생각하세요. 더 이상 말 안 할 테니까.”

뒤이어 도착한 홍진영이 포토라인에 섰다가 표정을 구기게 됐다.

어느 기자가 눈치 없게 KRG와 차석민 선수와의 관계를 물은 것이다.

“둘이 무슨 관계입니까?”

“예? 무슨 소리에요.”

“아까 KRG 대표가 차석민 선수와 동반 입장하셨거든요.”

“뭐라고요?”

표정을 구겼다가 다시 미소를 되찾은 홍진영은 잠시 후 로비라운지에서 제 동생에서 왕창 표정을 구겼다.

“진짜야?”

“넌 못 봤냐?”

“난 못 봤지. 바빴거든.”

홍수아는 미리 찾아와 있던 남자 연예인들과 어울리느라 바빴었다.

홍진영은 곧장 대표 한미라를 찾아갔다.

한미라는 로비 라운지에서 먼저 인사를 건넨 대기업 인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가 어느 구석진 곳에서 홍진영과 단둘이 마주하게 됐다.

“아니 대표님. 아까 그 이야기는 대체 뭡니까?”

“뭐? 무슨 얘기?”

“제가 무슨 말 하는지 다 아시면서 이러십니까. 사람 짜증나게.”

“네 맘대로 해.”

“예?”

“나가든지 말든지 니 마음대로 하라고. 나도 참을 만큼 참았으니까. 니 좆대로 하라고.”

악튜러스가 KA 청룡을 이긴 시점에서 한미라도 배를 갈아탈 생각을 했다.

홍진영이란 낡은 배를 버리고 차석민이라 불리는 새로운 배로 말이다.

홍진영이 어이 없어했다.

“아니... 대표님. 그렇게 나오시면 제가 섭하죠. 계약 모르세요?”

“알지. 그러니까 너 알아서 하라고.”

한미라는 더 이상 말 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는지 손을 내저으며 자리를 떠나갔다.

“이런 씨...”

홍진영이 욕지기를 내뱉으려다 뜻하지 않게 누군가와 마주치게 됐다.

“어, 이게 누구신가?”

노랗게 염색한 머리에 인상 험악한 남자.

그는 홍진영이 이곳에서 가장 마주치기 싫어했던 사람이었다.

“미친개를 사냥하려다가 미친개에게 물린 새끼가 아닌가?”

나카무라 겐지.

JP의 파이터이자 재작년 홍진영을 개구리 왕으로 만들어버린 자였다.

겐지는 양 옆에 드레스 입은 여자 둘을 끼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홍진영이 이따금씩 보이는 모습과 완전 판박이었다.

“아직도 골렘 파이트를 하나 보지? 은퇴 안 했나봐? 아니면 은퇴자 신분으로 찾아왔나?”

둘은 포켓이 있었기에 겐지가 무슨 말을 하든지 간에 홍진영은 그대로 전해들을 수 있었다.

여기서 홍진영은 아무 말도 못했다.

“왜? 꼬우면 다시 붙어보던가. 이번엔 10초 안으로 끝내줄 테니까.”

재작년 이후 레드 데빌과 JP의 장비 차이는 더욱 벌어졌고, 지금은 JP와 게임이 안 될 정도로 그 차이가 많이 벌어진 상태였다.

겐지가 농담 삼아 말하는 10초.

홍진영은 그게 농담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가자. 미친개가 무서워서 말도 못하나보네.”

대꾸조차 못하는 홍진영에게 흥미를 잃었던 탓일까?

겐지가 홍진영과 마주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홍진영이 떠나가는 겐지의 뒤통수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뭔 버러지 같은 여자 둘 끼고 와서 지랄하고 있네. 저 개새끼 주둥아리를 언젠간 콱 찢어놔야 하는데.’

그러려면 투자를 받고 레드 데빌의 장비가 지금보다 더 좋아져야 했는데, 현실은 시궁창이나 다름없었다.

못 받은 투자만 생각하면 머리가 아플 지경.

‘시발 누가 투자 안 해주나?’

투자 이야기로 머릿속이 어지럽던 홍진영은 로비라운지로 나왔다가 우연히 한국중공업의 정태훈 부회장을 보게 됐다.

정태훈 부회장이 찾아오자 로비라운지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집중됐다.

그러면서 이런 의문이 들었다.

저 사람이 이곳엔 왜?

한국중공업은 골렘 파이트에 대한 관심이 낮은 대기업 중 하나였다.

최근에 와서야 골렘 장비들을 생산해내고 있지만 주력 사업은 아닐 뿐더러 시험적인 면이 강했다.

하나둘씩 발걸음이 그에게 향한다.

그에게 눈도장이라도 찍히려는 사람들이었다.

정태훈 부회장은 약간 울상이었다.

별로 나오고 싶지 않은 곳.

이곳에 나온 것도 전부 딸아이 때문이었다.

“아빠, 오늘 무슨 파티 있지 않아?”

“파티? 무슨 파티? 그런 거 없어.”

“아빠 무슨 파티 있대. 아빠가 빨리 알아봐.”

“유이야. 아빠 엄청 피곤해. 다음에 가자 응?”

“아빠, 빨리 알아봐! 나 파티가고 싶단 말이야! 아빠 빨리빨리!”

“하이고 나 죽는다.”

이게 딸인 정유이와 대화한 내용이었다.

그렇게 정태훈 부회장은 딸아이에게 끌려 롯데 호텔까지 찾아오게 됐다.

유이는 도착하자마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더니 어디론가 뛰어가기 시작했다.

놀란 정태훈 부회장이 뛰어가는 자기 딸을 향해 소리쳤다.

“유이야! 어디가! 뭐해 빨리 가서 애 잡지 않고.”

정태훈 부회장이 아내인 한소라를 쳐다보자 한껏 치장한 한소라가 급히 정유이를잡기 위해 움직였다.

어디론가 뛰어간 정유이가 멈춰선 곳은 다름 아닌 강준과 함께 있던 차석민 뒤였다.

“석민아!”

자기를 부르는 소리에 석민은 뒤돌아섰다가 깜짝 놀라게 됐다.

“유이? 유이 네가 여긴 왜 있어?”

“나도 파티 왔어. 아빠랑 같이 왔거든.”

“그래?”

강준이 시선을 내리며 드레스를 입은 꼬마 공주님을 보았다.

“얜 누구야?”

“제 짝꿍이요. 유이야, 여긴 내 소속사 아저씨야.”

“안녕하세요.”

예의 바르게 인사하는 유이 뒤로 뛰어온 한소라가 섰다.

“유이야, 어딜 가는 거니. 아빠 저기 계시는데.”

“엄마, 여기 내 짝꿍 석민이야. 석민아 인사해. 우리 엄마야.”

“안녕하세요.”

이쯤에서 한소라는 자기 딸이 이곳을 그토록 오고 싶어 했던 이유를 알게 됐다.

한소라의 표정은 마냥 밝지만은 않았다.

“네가 석민이니?”

“네.”

해맑게 웃으며 대답하는 아이.

묘하게 석민을 곱씹어보던 한소라에게 유이는 보지도 않고 목소리를 냈다.

“엄마, 나 이제 석민이랑 같이 있을게. 엄마 이제 가.”

그렇게 등 떠밀리다시피 쫓겨난 한소라는 자기 남편도 아닌 수행비서를 불러냈다.

“대체 쟤가 누구에요? 고물상 집 아들 아니었어요?”

한소라가 가리키는 방향엔 유이와 함께 있는 석민이 있었다.

“네 맞습니다.”

“여긴 어떻게 온 거야?”

“근래에 대한골렘대전에 참가한 모양입니다. 현재 준결승까지 진출한 상태고 그런 자격으로 찾아오지 않았을까요?”

“그래요? 그런데 무슨 돈이 있어서 골렘 파이트를 한데요.”

그녀가 아는 골렘 파이트는 돈이 굉장히 많이 드는 스포츠였다.

일개 고물상 집 주인 아들이 건들만한 스포츠는 절대 아니었다.

“자세히는 모르는데. 아빠가 최근에 S급 헌터로 각성한 차태식 씨라고 합니다.”

“아 그래요? 김원빈 닮은 헌터가 쟤 아빠였어?”

차석민을 벌레 보듯 하던 한소라의 시선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S급 헌터라...’

그녀는 머릿속으로 S급 헌터가 얼마나 대단한지 재보았다.

< #29 롯데 호텔 > 끝

ⓒ 대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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