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 롯데 호텔 >
#29 롯데 호텔
“오빠 경기 봤어?”
다짜고짜 찾아온 홍수아가 쏘아붙이듯 물었다.
“봤어.”
힘아리 없는 대답.
홍진영은 생각보다 충격 받은 모습이었다.
“그걸 이겨? 하 진짜 개어이 없더라. 안 그래?”
홍진영은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여기서 무슨 말을 하겠는가?
당연히 질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이겨 버렸다.
나름 대한민국 1위 파이터라 자부하고 있었는데 그런 것조차 예상하지 못하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안 그래도 금이 가 있던 자존심.
홍진영은 이번 일로 그 금이 조금 더 벌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개 같네 진짜.’
홍진영은 고급 소파에 앉아 그 앞에 있는 대형 벽걸이 TV만 말없이 쳐다보았다.
홍수아가 다시 말을 붙였다.
“오빠, 이러다 김철민까지 잡히는 건 아니겠지?”
악튜러스의 다음 4강전 상대는 현재 레드 데빌의 라이벌로 취급받는 김철민과 K나이트였다.
홍수아의 우려에 굳게 닫혀 있던 홍진영의 입이 사납게 열렸다.
“김철민이 왜 잡혀! K나이트가 아무리 좆밥이라도 그딴 쓰레기한테 잡힐 이유가 전혀 없잖아.”
“KA 청룡은 잡혔잖아? 그거 3천억이나 투자받은 골렘 아니었어? 그거 잡혔으면 K나이트도 잡히는 거 아냐?”
“아가리 닫아 이년아. 절대 그럴 일 없으니까.”
홍수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자기 오빠를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오빠, 솔직히 똥줄 타는 거 아냐?”
“뭐? 야! 내가 미쳤냐? 내가 무슨 똥줄을 타.”
홍진영이 홍수아를 무섭게 쏘아보았다.
아무래도 정곡을 찌른 모양.
홍수아가 미묘하게 웃었다.
“맞네. 찔리나 보네.”
홍진영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진다.
“야! 여기서 쫑알쫑알 거리지 말고 나가! 안 그래도 경기 전이라 신경 예민한데. 여기까지 와서 지랄이야.”
경기 전에 선수들의 신경이 예민해지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
홍수아는 정곡을 찌른 부분에 있어서는 더 이상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대신 할 말이 있었는지 다른 화제를 꺼내들었다.
“오빠, 그건 그렇고 오늘 저녁에 롯데 호텔에서 파티 하는 거 알고 있지?”
홍진영은 대답 없이 벽걸이 TV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홍수아가 계속 말했다.
“그거 아시아 선수들 다 모이는 자리니까 오빠도 꼭 참석해.”
동생이 참석을 강요하자 홍진영이 눈을 부릅떴다.
“야, 거기 안 나간다고 분명히 말했지? 내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처먹는 거냐? 거기 안 나간다고!”
홍진영은 말끝을 올리며 신경질을 냈다.
파티라면 사족을 못 쓰는 홍진영이 홍수아가 언급한 파티를 피하려는 이유가 있었다.
그 파티.
이번 년도 월드 그랑프리, 동아시아 지역 예선에 참가하는 선수들이 모이는 자리였다.
매년마다 각국에서 돌아가면서 축하 파티를 열었었는데 이번엔 한국 차례가 되어한국에서 열린 것이다.
그런데 홍진영은 그 파티에 참석하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굳이 그 이유를 꼽자면 지지부진한 성적과 슬럼프로 인한 자격지심이 가장 크겠지만 그것보다도 일본 국가대표 선수이자 자국 랭킹 1위인 나카무라 겐지와의 만남을 극도로 꺼려한 게 가장 컸다.
“오빠, 아직도 그때 일을 못 잊어서 그래?”
“그런 거 아냐. 그냥 내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래. 아무튼 나 불참이다.”
작년 중국에서 열린 파티도 같은 이유로 불참했다.
홍진영 개인 생각으론 그런 자리에 참석해봤자 조롱거리 밖에 안 될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홍수아는 한숨이 나왔다.
이것도 오빠라고.
“오빠는 그렇게 무시당했으면 사람이 복수할 생각부터 해야지 왜 겁쟁이처럼 숨고만 있어?”
홍수아가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자 홍진영이 오히려 날 선 목소리로 맞받아쳤다.
“야이! 누가 겁쟁이래? 나 홍진영이야 홍진영. 월드 그랑프리 진출자 홍진영이라고. 그딴 쪽바리 새끼 하나도 안 무섭거든? 이번에 만나면 완전 개처바를 거야. 두고 봐. 두고 보라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홍진영은 레드 데빌 장비가 JP보다 좋지 않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홍진영.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넘버원 골렘 파이터이자 국가대표인 그가 결정적으로 월드 그랑프리 진출을 포기하고 우물 안 개구리로 남게 된 배경.
그 배경에는 일본의 국가대표 대전 골렘인 JP가 있었다.
과거 JP를 잡으며 이민호를 누르고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1위 파이터가 된 홍진영과 레드 데빌.
하지만 재작년 동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최신예 장비로 재무장한 JP에게 속된 말로 개처발렸다.
레드 데빌에게 지고 나서 몇 년간 복수의 칼날을 갈았던 JP가 보란 듯이 복수에 성공한 것이다.
JP에게 깨지기 전.
국내 언론들은 레드 데빌의 장비가 JP보다 상대적으로 안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간 성적 등을 비추어 레드 데빌의 승리를 높게 점쳤었다.
그 당시 아나운서들은 이렇게 떠들어댔다.
“당연히 홍진영 선수가 이기겠죠. 저번에도 레드 데빌이 JP를 보란 듯이 꺾지 않았습니까?”
“네 맞습니다. JP는 일종의 디딤돌 정도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민호 선수도그랬고, 홍진영 선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JP는 우리나라 선수가 월드 그랑프리 진출에 앞서 사뿐히 즈려 밟고 가는 디딤돌 같은 존재였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번에도 홍진영 선수가 겐지 선수를 무난히 꺾고 월드 그랑프리에 진출하리라 봅니다.”
“그런데 장비 수준은 JP에게 밀리지 않습니까? 우려의 목소리가 있긴 한데요.”
“장비 수준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레드 데빌이 항상 불리했지만, 또 항상 이기지 않았습니까? 골렘 파이트는 장비가 다가 아닙니다. 선수 개인 실력도 엄청 중요하죠.”
“네 맞습니다. 파이터 실력도 골렘 장비만큼이나 엄청 중요한 겁니다.”
반면 해외 언론에서는 국내와는 정반대로 JP의 승리를 점쳤었는데, 그 근거로는 압도적인 장비 차이에 있었다.
결국 다수의 해외 언론이 예상했던 것처럼 JP는 레드 데빌을 상대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며 월드 그랑프리 진출을 확정지었고, 레드 데빌은 사상 처음으로 월드 그랑프리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가장 얕잡아보던 일본 골렘에게 된통 깨진 것이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레드 데빌이 졌습니다. 경기 시작 후 채 1분이 안 돼서 정리가 되는군요.”
“너무 충격입니다. 지금 골렘 파이트 최약소국 일본에게 진 게 맞습니까?”
“저는 장비 차이가 결국 이 결과를 만들어냈다고 봅니다. 제가 경기 시작 전부터 레드 데빌이 상대적으로 불리하다고 계속 강조하지 않았습니까?”
“결과에 대해선 분하지만 상대적으로 레드 데빌 장비가 JP보다 좋지 않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요. 또한 JP 파이터가 다케시 선수에서 겐지 선수로 전격 교체되면서 홍진영 선수가 그 역량을 너무 얕잡아봤던 것도 크나큰 실수 같습니다. 절대 얕보면 안 됐었는데... 정말 아쉽습니다.”
“겐지 선수. 절대 얕잡아볼 선수가 아닌데 독도 망언으로 홍진영 선수가 너무 흥분했나 봅니다.”
그 경기가 있기 전.
새롭게 교체 된 JP 파이터 나카무라 겐지는 일본 공영방송에서 이런 망언을 했었다.
“다케시마는 명실상부한 일본 땅으로 언젠간 JP와 함께 찾아가겠습니다.”
이에 발끈한 홍진영 선수가 세계 언론 인터뷰에서 겐지 선수를 미친개로 비유시켰다.
“섬에 사는 어느 미친개가 망언을 했다는데, 자고로 미친개는 때려야 제 맛이죠.”
그리하여 일명 미친개 사냥 준비가 완료된 것이다.
그랬는데...
“지금 보면 겐지 선수가 오히려 노렸던 것 같아요. 감정적으로 많이 휘둘리는 홍진영 선수를 잘 파악했다는 말이죠.”
“홍진영 선수, 너무 큰 충격인지 자리에 주저앉아 아직까지도 못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렇게 호언장담했는데, 오히려 물려버렸네요.”
“저기 일본 대표팀은 완전 축제 분위기네요.”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홍진영 선수, 올해 처음으로 월드 그랑프리 진출이 좌절됐습니다.”
장비 경량화의 기술적 혁신.
일본이 자랑하던 기술력이 재작년 골렘 파이트에서 빛을 발했다.
드래곤 스킨을 이용한 장갑의 초경량화.
초경량 장갑인 레더슈트가 처음 등장한 것도 이때였다.
그전까지 대전 골렘들은 대부분 금속 장갑만 사용했었는데, 일본에서 처음으로 드래곤 스킨을 이용한 혁신적인 장갑을 선보인 것이다.
이로 인해 비슷한 출력 대비 JP가 상대적으로 높은 기동성을 선보이며 레드 데빌을 압살시켰다.
물론 겐지 선수의 역량이 전 JP 파이터인 다케시보다 뛰어났던 것도 승리의 한 요인이었다.
그리고 감정적으로 휘둘린 홍진영과 이에 따른 언론 인터뷰가 분명 큰 부담감으로 작용했을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관된 소견.
아무튼 그 일을 계기로 홍진영은 만인의 웃음거리가 됐다.
어느 미친개를 사냥하려다가 오히려 그 미친개에게 물려버렸으니까.
그때부터 시작 된 홍진영의 슬럼프는 아직까지도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었다.
“오빠, 그 쪽바리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나가자. 어차피 그냥 무시하면 돼.”
무시하려고 해도 무시할 수 없는 게 비교되는 성적에 있었다.
그때 레드 데빌을 잡고 월드 그랑프리에 진출한 JP는 첫 진출만에 8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일본 열도에 안겨다주었고, 작년 성적은 재작년보다 더 좋았다.
올해는 우승까지 노린다는 후문.
반면 홍진영은 그때 이후로 계속 슬럼프에 빠져 월드 그랑프리는커녕 국내에서 개구리 왕만 하고 있었다.
자격지심 때문이라도 그 자리엔 나갈 수가 없는 것이다.
“니가 무슨 말을 해도 안 나가. 그냥 그렇게 알아.”
“그게 오빠 마음대로 돼? 군말하지 말고 나와. 한국에서 열린 파티인데 오빠가 참석 안 하면 대체 누가 참석하는 건데?”
“나 말고 김철민 있잖아. 김철민은 거기 나갈 거 아냐.”
“김철민 그 아저씨는 월드 그랑프리에 나간 적이 단 한 번도 없거든요? 오빠가 나가야 한다니까.”
“글쎄 안 나간다니까!”
“아무튼 꼭 나와. 오빠 꼭 나가야 돼. 아까 청와대에서 연락 왔거든. 꼭 참석하라고.”
“왜?”
“대통령께서도 찾아오신대. 그러니까 오빠 꼭 나오래.”
“아니 무슨...”
“그리고 그 자리, 코리아 일렉트로닉스 회장님도 나오는 거 알고 있지? 오빠, 이참에 투자받아야지. 레드 데빌 장비 안 좋다며. 그럼 거기서 투자 받아야지.”
홍진영은 낯빛이 더욱 어두워졌다.
홍진영은 그 회장이란 사람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사나운 인상을 가진 사내로 미모의 여비서를 데리고 다녔는데, 그 성격이 자기보다 훨씬 까칠했다.
“아무튼 나가는 걸로 알고 있는다? 알았지?”
“안 나간다니까. 아니 무슨 대통령이 나와. 지금까지 관심도 없다가.”
“나도 몰라. 아무튼 꼭 나가야 돼. 난 분명 말했다.”
홍진영은 홍수아가 나간 시점에서 고개를 저었다.
정말 싫은데, 왠지 나가야할 것 같은 분위기다.
그래도 나가기 싫었는데, 뒤이어 한미라까지 찾아와 설득하자 두 손 들고 말았다.
“알았어요. 나가면 될 거 아냐. 나갈게요.”
“고마워. 진짜 고맙다.”
“됐고요. 그 머냐. 그 회장이란 사람 온다는데 알고 계세요?”
“누구 말하는 거야?”
“코리아 일렉트로닉스 회장. 그 인상 쓰는 새끼 있잖아요.”
“아, 그 사람? 당연히 알지. 성격 더러운 놈. 나도 그 새낀 싫어.”
“가서 투자 얘기 꺼내실 거죠?”
홍진영은 자신의 성적 부진을 전부 레드 데빌의 장비 탓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도와줄 유일한 희망이 그 파티에서 보게 될 회장이란 놈이었다.
“꺼내기야 할 건데, 아마 개무시 당할 걸? 원래 그런 사람이거든.”
“그쪽에서 꼭 투자 받아야 돼요. 못 받으면 저 이번에도 힘든 거 아시죠? 그 쪽바리 새끼. 이번엔 꼭 잡아야죠.”
“겐지?”
“네, 그 새끼. 이번엔 꼭 잡게요. 아이씨 쪽팔려서 파티도 못 나가고 있잖아요.”
한미라는 푹신한 소파에 몸을 뉘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코리아 일렉트로닉스에서 투자받을 길은 없어보였다.
받을 거였다면 이미 받았을 테니까.
“알았어. 일단 노력은 해볼게. 하지만 장담은 못해.”
“그리고 그 꼬마도 나와요?”
“누구? 지금 누구 말하는 거야?”
“아이씨 알면서. 그 꼬마 있잖아요. 이번에 슈퍼 루키.”
“아, 걔?”
“예.”
“큰일 없으면 나오지 않을까? KA 청룡은 깨졌으니까 그쪽 관계자가 나오진 않겠지.”
한미라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섰다.
“아니 대표님. 저랑 말하다말고 어디 가세요?”
“아 일이 있어서. 아무튼 오늘 나와. 알았지?”
한미라는 한쪽 눈을 찡긋하면서 떠나갔다.
대체 무슨 생각인지.
< #29 롯데 호텔 > 끝
ⓒ 대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