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파이트-83화 (83/173)

< #28 KA 청룡 >

가장 어이없는 건 박대한 대위였다.

‘뭐야? 왜...’

하트다운.

베타고의 무리한 지시로 인해 하트다운 됐지만, 이는 박대한 대위가 적절한 선에서 베타고의 지시를 무시하고 자기식대로 KA 청룡을 움직였다면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베타고의 지시를 따랐던 박대한 대위에겐 무리였던 일.

어쩌면 이 모든 일의 책임은 박대한 대위에게 있었다.

‘아니 계속 몰아붙이라면서! 그런데 무슨 하트다운이야 쪽팔리게.’

하트다운은 곧 경기 패배를 의미하기에 선수들도 하트다운만은 무조건 피하려고 했다.

단 몇 초 차이로 승패가 갈리는데 그 몇 초를 적에게 고스란히 내준 것은 진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이제 턴이 넘어갔다.

석민은 KA 청룡이 숨고르기에 들어가자 바로 알아차렸다.

실컷 무리하더니 결국 이 사달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해할 수 없어.’

절대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베타고가 이상하게도 너무 무리하게 움직였다.

분명 의문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찾아온 이 황금 같은 기회를 놓칠 순 없는 법.

악튜러스가 양손으로 대검을 꽉 잡았다.

방금 전까지 KA 청룡에게 얻어맞아 꼴은 말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검을 못 휘두를 정도는 아니었다.

턴이 넘어왔으니 되갚아줄 차례.

악튜러스가 부러진 대검에 마나를 가득 싣는다.

부러진 칼날은 마나로 이뤄진 칼날이 대신하고, 그 대검을 꽉 잡은 악튜러스는 그시선을 KA 청룡에게 고정시켰다.

지켜보던 관중들이 혼란에 빠졌다.

방금 전까지 기세 좋게 악튜러스를 몰아붙이던 KA 청룡은 대체 어디로 갔는가?

골렘 파이터는 대체 뭐하고 있기에 KA 청룡을 저대로 놔두는가?

아나운서들도 그 입이 바빠졌다.

“하트다운!”

“KA 청룡, 반응이 없습니다!”

“10초! 앞으로 9초!”

“이제 악튜러스에게 턴이 넘어간 상태!”

대검에 마나를 가득 채운 악튜러스가 신속기를 이용 KA 청룡과의 거리를 단숨에 좁혔다.

이어 대검의 끝으로 적의 코어를 노린다.

그 다음 모두가 예상했던 대로 적의 코어를 향해 브로큰 블레이드를 뻗어냈다.

마나로 된 칼날.

그 칼날은 적의 코어 캡슐을 뚫고 그 안에 있던 심장마저 꿰뚫어버렸다.

하트다운만 피했다면 충분히 막았을 텐데.

아쉽지만 패배는 패배.

하트다운 뒤 코어를 공격당한 KA 청룡은 그대로 침묵하며 두 무릎을 꿇었다.

그 앞으로 우뚝 선 악튜러스.

악튜러스가 4강 진출을 확정지었다.

“세상에! 악튜러스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KA 청룡을 꺾었습니다!”

“하트다운 된 KA 청룡! 저항 한 번 못해보고 패했습니다. 너무 아쉬운데요.”

“아니 왜 그런 판단을 했을까요? 박대한 선수, 적절치 못한 판단으로 하트다운 뒤 패배를 하게 됩니다.”

“베타고의 지시는 아니었겠죠?”

“물론이죠. 만약 베타고였다면 분명 말렸을 겁니다. 하트다운은 무조건 피하는 게 상책인데, 아마 베타고도 하트다운을 피하는 걸 최우선으로 박대한 선수에게 주문했을 겁니다.”

지금 이 상황을 아니꼽게 보고 있는 별의 무리가 있었다.

별 네 개의 사령관들이 일제히 책임 화살을 쏘아댔다.

지금 국방부에서 3천억 투자받은 골렘이 고물상에서 조립된 골렘에게 패했다.

너무 충격적인 일이었다.

만약 이번 일이 최악으로 치닫는다면 여기서 누구는 옷을 벗을지도 모를 일.

“아니 하트다운은 또 뭐야? 그건 뭔데?”

나이 지긋하게 먹으신 분들인지라 하트다운에 대해선 전혀 무지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골렘 파이트를 아예 모르진 않았다.

다만 최근에 그 인기가 폭발적으로 상승한 대체스포츠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을 뿐.

“잠시 숨고르기 같은 겁니다 장군님. 이때 대전 골렘은 잠시간 무방비상태가 됩니다.”

어느 부관의 말에 포스타 하나가 감정적으로 크게 일갈했다.

“아니 슈퍼컴퓨터가 도와준다면서! 베타고 지시는 듣기나 한 거야!”

“그러게 슈퍼컴퓨터 지시는 듣기나 한 거야? 빨리 알아봐.”

“네, 장군님.”

사령관들이 노발대발하자 부관 하나가 급히 연락을 취했다.

그리곤 박대한 대위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전달해주었다.

“베타고 지시를 충실히 따랐답니다 장군님.”

베타고가 시키는 대로 충실히 했단다.

장군들은 그 즉시 말을 바꿨다.

그들에겐 책임질 대상이 필요했던 것이다.

“아니 그걸 왜 따라해. 지금 상황이 저 지경인데 고작 컴퓨터 말이나 들었다는 거야 뭐야?”

“그거 아직도 개발단계라면서? 그럼 박대한 대위가 적절하게 대처해야 됐던 거 아니야? 물론 들을 건 듣고, 버릴 건 버려야지. 컴퓨터 말이라고 해서 다 주워들어!”

“이거 문제가 있는데? 이번 일은 파일럿 문제가 커.”

“컴퓨터가 죽으라고 하면 죽을 거야! 왜 컴퓨터 말만 들어서 일을 저 지경으로 만들어놔! 머리 달린 사람이면 알아서 가려들어야지!”

“당장 저 새끼 데려와. 빨리!”

단 몇 십초 전까지 악튜러스의 4강 진출을 내다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KA 청룡이 그만큼 무섭게 악튜러스를 압박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악튜러스가 4강 진출을 확정지었다.

“악튜러스 4강 진출입니다! 이거 기적 아닙니까?”

“기적이죠. 그 누가 악튜러스의 4강 진출을 예상했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TV속 생중계 영상을 포함한 경기장 여기저기에서 악튜러스가 사람들의 입에 올랐다.

“정말이야?”

“거짓말 아니라니까. 지금 KA 청룡을 꺾었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그거 깡통이라면서. 깡통이 어떻게 국방부에서 투자한 골렘을 이겨.”

뒤늦게 소식을 접한 몇몇은 거짓말하지 말라며 버티다가 마지못해 핸드폰 속 생중계 영상을 보았다.

영상에선 아나운서들이 악튜러스 이야기만 줄기차게 쏟아내고 있었다.

“진짜네.”

“내가 진짜라고 했잖아. 지금 그 깡통이 4강에 진출했다니까?”

“하... 존나 어이없네. 국방부 새끼들 완전 호구 병신 새끼들 아냐? 지금 저딴 거에 졌다고?”

대부분은 그 사실을 어이없게 받아들였다.

누구는 몇 년을 준비해서 고작 본선 턱걸이를 하고 만족하는데.

어떤 골렘은 고물상에서 조립된 것도 모자라 본선까지 진출했고, 그것도 모자라 4강 문턱까지 밟았다.

그것도 8강전에서 잡은 상대가 우승 후보로까지 거론되던 KA 청룡이었다.

“완전 이민호네. 이민호도 저러지 않았냐?”

“이민호랑 다르지. 완전 애새끼인데다가 골렘도 완전 쓰레기인데. 저거 봐. 저딴 쓰레기로 4강까지 올라갈 줄 어떻게 알았겠냐? 최소한 이민호는 대기업 후원이라도 있었는데.”

“하긴.”

8강전에서 악튜러스가 승리하자 표정이 심각해지는 몇몇이 있었다.

다음 4강전 상대인 김철민도 그중에 한 명이었다.

“쟨 누구죠?”

휠체어를 탄 김철민이 근처에 있던 코치에게 물었다.

KA 청룡과 4강에서 마주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건만.

생뚱맞게 악튜러스란 골렘과 4강전에서 마주칠 확률이 높아졌다.

지금까지는 전혀 생각지도 않던 상대라 김철민이 당황하는 건 당연했다.

적어도 김철민은 자신의 4강전 상대가 국방부 후원을 받은 KA 청룡이 되리라 굳게 믿고 있었다.

거의 99.9% 확률로 말이다.

물론 경기 초반 악튜러스의 코어가 바뀌면서 그 생각이 약간 흔들리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 압도적인 경기를 보여 왔던 KA 청룡이 고물상에서 조립됐다는 골렘 정도는 가볍게 짓밟고 올라오리라 예상했었는데...

“몰라. 나도 신경을 안 쓰고 있었거든.”

“오늘 경기 끝나고 코치님께서 한 번 알아봐주세요. 전 경기 자료까지 전부요.”

“알았다. 내가 오늘 알아봐줄게. 그건 걱정마라.”

악튜러스와 차석민이 다크호스이고 슈퍼 루키였던 것은 맞았으나.

그래봤자 반짝 뜨고 사라질 신인 정도로 여겼던 탓에 몇몇을 제외한 대다수는 주의 깊게 그들을 살피지 않았었다.

적어도 우승 후보는 아니었으니까.

상식적으로 그런 골렘으로 우승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 경기로 인해 악튜러스는 이제 어엿한 우승 후보가 됐다.

8강전 첫 경기가 종료된 뒤, 다음 경기가 준비되는 동안 아나운서들은 이제 진지하게 악튜러스의 우승 가능성을 점치기 시작했다.

“그럼 악튜러스의 우승 가능성은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김요한 해설위원이 나섰다.

“이렇게 되면 또 모르게 되는데요. 하지만 장비 수준이 그대로 간다면 우승은 좀 힘들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KA 청룡이 우승 후보였던 것은 맞지만 사실상 레드 데빌의 장비 수준이 국내 최고 수준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우승은 좀 힘들 것 같네요.”

레드 데빌은 당장 월드 그랑프리 진출을 논할 수 있을 정도로 국내에선 최고 수준이었다.

이런 레드 데빌에 간신히 견줄 수 있는 골렘은 김철민의 K나이트 뿐.

그러나 K나이트도 전문가들 평가에선 아직까지도 레드 데빌에게 밀리고 있었다.

뉴월드에 기재된 자료에 따르면 10명의 전문가 중 단 2명만이 K나이트 장비를 레드 데빌보다 좋게 봤다.

그만큼 레드 데빌의 장비가 좋다는 소리다.

“레드 데빌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A 등급 코어를 가지고 있죠. 이 정도 수준이면 월드 그랑프리를 내다보는 수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럼 그 출력은 대충 어느 정도입니까?”

“제가 듣기론 최대출력이 3200정도 나온다고 들었습니다. A- 등급 코어 기준이 3000마력 이상이거든요.”

“A등급 코어가 3500마력부터 시작이면 딱 중간 정도네요?”

“네, 중급 A- 코어라 보시면 됩니다. 요즘은 이런 매물도 엄청 구하기 힘들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악튜러스도 듀얼코어를 통해 2700마력까지 출력이 나오지 않습니까? 그럼 500마력 정도 차이가 나는 건데, 이 정도면 악튜러스도 충분히 비벼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용호 캐스터의 물음에 강동준 해설위원이 고개부터 저었다.

“아닙니다. 코어 출력이 서로 엇비슷하면 듀얼코어보단 싱글코어가 훨씬 더 좋습니다. 무게나 효율성 문제를 따져 봐도 싱글코어가 확실히 더 좋죠. 실제로 동급 출력의 싱글코어와 듀얼코어가 맞붙게 되면 싱글코어가 더 좋은 힘을 냅니다. 출력상 서로 비슷해도 실제로 내는 힘은 싱글코어가 더 좋다는 말이죠.”

“네 맞습니다. 보통 듀얼코어는 기존 싱글코어로는 절대 낼 없는 출력을 만들기 위해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게 쌍둥이 심장만 가능할 만큼 신경써야할 문제가 은근히 많습니다. 고장도 자주 일으키고요.”

“정확한 데이터는 아니지만 악튜러스는 듀얼코어로 2700마력 수준. 레드 데빌은 싱글코어로만 3200마력을 냅니다. 수치상으론 얼마 차이가 안 나는 것 같지만, 막상 경기장에서 맞붙게 되면 그 차이를 확실히 실감하실 수 있을 겁니다.”

두 해설위원의 말을 듣게 된 이용호 캐스터가 마지못해 수긍해주었다.

“그렇군요. 잘 알아들었습니다.”

그래도 악튜러스의 우승 가능성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도 또 모르지 않겠습니까? 사실 악튜러스도 이번 경기 전에는 KA 청룡과 출력 차이가 거의 2배 이상 나면서 다들 못 이길 거라고 호언장담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렇긴 한데. 그건 악튜러스 장비가 갑자기 바뀐 경우라서요. 저희도 깜짝 놀랐습니다.”

“그럼 다음 경기도 장비가 바뀌지 않을까요?”

“아니요. 그건 힘들다고 봅니다. 골렘 장비라는 게 하루아침에 바뀔 수 없는 거라서요. 특히나 B급 이상 장비는 가격도 만만찮아서 바꾸는 게 엄청 힘이 듭니다.”

“하지만 대기업 후원을 받으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현실적으로 레드 데빌의 우승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지금 이시기에 돌발적으로 치고 나온 신인 선수를 후원할 배짱 좋은 대기업이 과연 있을까 의문입니다. 나름 모험이거든요.”

만약 돌발적으로 후원한 악튜러스가 우승한다면 중박.

우승하지 못한다면 쪽박인데 과연 누가 그런 리스크를 안고서 후원하겠는가?

더군다나 중박 밖에 못 치는 건데.

“대부분 대기업들은 지금 다 후원하고 있는 선수와 매니지먼트가 따로 있을 겁니다. 선수와 매니지먼트도 후원 문제는 꽤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만약 어느 대기업에서 악튜러스를 후원한다 치면 기존에 후원을 받고 있던 선수와 매니지먼트의 반발이 엄청 심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도 나름 밥그릇 싸움이거든요.”

“그렇군요.”

그 이야기를 개인 선수 대기실에서 듣고 있던 홍진영의 표정이 제법 심각했다.

‘이겼다고?’

홍진영은 악튜러스가 당연히 질 거라 예상해서 경기도 보지 않았다.

나름 자존심이었다.

< #28 KA 청룡 > 끝

ⓒ 대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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