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파이트-80화 (80/173)

< #28 KA 청룡 >

경기는 시작됐지만 악튜러스와 KA 청룡은 나서지 않고 상대만 견제했다.

두 선수 모두 먼저 나서길 꺼려하는 것이다.

석민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내 패턴을 읽을 거야. 먼저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자.’

상대는 일반적인 파이터가 아닌 슈퍼컴퓨터와 함께 하는 파이터였다.

이 경우 슈퍼컴퓨터의 조언을 듣게 되는데, 지금까지 KA 청룡이 보여 왔던 패턴을 보면 먼저 나서지 않고 상대를 먼저 탐색하는 면이 짙었다.

일종의 자료 수집인 것이다.

상대방의 공격하는 방식, 태도, 버릇 등을 수집하여 어느 정도 충분한 데이터가 모였을 때, 그제야 KA 청룡이 공세로 전환하여 상대 골렘을 몰아붙이는 형식이 아주 많았다.

그렇기에 석민은 섣부르게 나서지 않고 일단 상대를 견제하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상대방이 먼저 나설 테니까.

반면 KA 청룡의 경우 박대한 대위가 조종을 맡고 있었는데, 석민이 생각한대로 베타고의 지시를 받아 섣부르게 나서고 있진 않았다.

-추천 명령 : 잠시 대기.

-상대 패턴을 분석하는 중입니다.

이 문구를 보고 박대한 대위는 가만히 대기하고 있었다.

슈퍼컴퓨터의 조언이 완벽하진 않더라도 어느 정도 참고할 정도는 됐으니까.

그렇게 몇 십초에 걸쳐 긴 침묵이 흐르자 경기장에서 때 아닌 야유가 쏟아졌다.

두 골렘이 조용하니 지켜보는 입장에선 답답할 노릇.

그것은 이번 경기를 보기 위해 군에서 찾아오신 높으신 분들도 마찬가지였다.

수도방위사령관에서부터 참모총장, 합참의장도 찾아왔다.

“아니 왜 저리 굼떠. 안 싸울 거야?”

“골렘 파이트에서 골렘끼리 안 싸우면 대체 뭐하자는 건지 쯧쯧.”

“가서 연락 좀 해봐. 먼저 치라고.”

“네, 알겠습니다.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어느 사령관의 지시를 받은 부관 하나가 자기들끼리의 라인을 통해 박대한 대위에게 연락을 취했다.

박대한 대위는 이현화 중위로부터 연락을 받게 됐다.

이현화 중사는 곱상하게 생긴 사령관 전속비서 중 하나였다.

“박대한 대위님, 위에서 공격하라고 하십니다. 보는 게 답답하시데요.”

“아 그렇습니까? 네,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부탁드릴게요.”

베타고는 계속 대기 명령을 권했지만, 높으신 분께서 움직이란다.

박대한 대위는 베타고의 추천 명령을 무시하고 KA 청룡을 먼저 움직이기로 했다.

가만히 서 있던 KA 청룡이 갑작스레 한 발자국 내딛으며 공세로 전환하자 악튜러스도 방어적인 자세를 취했다.

추천 명령을 어긴 부분에 대해서는 베타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박대한 대위에게 또 다른 추천 명령을 권했다.

-추천 명령 : 70% 출력의 정면 공격.

-공격 방식을 이미지로 출력합니다.

여기서 베타고가 가진 놀라운 점은 단순히 글귀로 된 명령만 내리는 게 아니라, 어떤 식으로 공격하면 되는지를 이미지화시켜서 골렘 파이터에게 보여준다는 점이다.

박대한 대위의 시야 상으로 푸른 선으로 된 KA 청룡의 이미지가 악튜러스를 향해날렵하게 파고든 뒤 두 주먹을 내뻗는 모습을 보였다.

베타고가 추천하는 공격 방식이었다.

박대한 대위는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베타고가 시키는 대로 KA 청룡을 움직였다.

그도 매번 느끼는 거지만 자기가 판단하여 KA 청룡을 움직이는 것보단 베타고의 추천 명령을 묵묵히 따르는 게 더 좋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해서 가장 좋은 부분은 책임 회피.

‘좋은 핑계거리지.’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시, 아 그거 베타고가 추천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라고 변명해버린다면 위에서도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대한 대위는 어지간한 상황에서는 자기 판단보다는 베타고의 추천 명령을 잘 따랐다. 그리고 그 결과는 지금까지 항상 좋았고 나쁘지 않았다.

베타고가 추천한대로 움직이는 KA 청룡이 악튜러스에게 육중한 두 주먹을 꽂았다.

상상을 초월하는 파워.

피스트 브레이커의 주먹과 거의 맞먹는 파괴력이 악튜러스에게 고스란히 전달됐다.

악튜러스는 방패를 세우고 있었지만, 260% 가까이 증폭된 데미지 앞에서는 속수무책.

악튜러스가 사정없이 밀렸다.

‘역시 버티는 건 힘드네.’

사실 이면세계에 숨어버리면 간단했지만 아직 경기 초반이다 보니 석민은 KA 청룡이 가진 주먹의 무게를 몸소 느끼고 싶어 했다.

그래야 상대가 가진 파괴력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을 테니까.

굳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이면세계에 출입하는 힘이 가진 한계가 명확했기 때문이다.

‘공격과 방어가 동시에 안 되니까.’

악튜러스가 뒤로 밀리자 거칠게 밀어붙이는 KA 청룡이 이번엔 한쪽 주먹에 마법의 힘을 실어냈다.

피스트였다.

한쪽 주먹에 실린 마나 주먹이 곧이어 악튜러스를 노리고 날아왔다.

악튜러스는 이면세계에 숨는 대신 맞받아치기로 했다.

‘출력은 서로 비슷해.’

악튜러스 역시 피스트 브레이커를 카운터 형식으로 날렸다.

KA 청룡이 뻗은 주먹과 악튜러스가 뻗어낸 피스트 브레이커가 서로 격돌하며 주변을 꽤나 소란스럽게 장식했다.

-주의! 방금 전 충격으로 피스트 브레이커의 효율이 하강합니다.

-재측정 된 효율은 89%입니다.

그 여파로 사방팔방으로 뻗히는 힘이 주변에 먼지폭풍을 일으켰고, 그것은 경기장 전체로 뻗어나갔다.

서로 출력은 엇비슷했으나 KA 청룡이 가진 주먹이 더 묵직했다.

피스트 브레이커의 상위 호환이라 불리는 더블 피스트를 장비한데다가 마법 공격까지 실었으니 주먹이 더 묵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석민은 아직까지 이면세계에 대한 카드를 꺼내지 않고 있었다.

이유는 단 하나.

박대한 대위나 베타고 모두 악튜러스가 가진 힘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고, 석민은 그 점을 이용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초반부터 보여주기엔 그 카드가 너무 아깝거든. 당장 못 버티는 것도 아니고.’

만약 초장부터 그 힘을 보인다면 베타고에 의해 금세 분석될 것이다.

상대는 멍청한 골렘 파이터가 아니라 슈퍼컴퓨터였다.

바로 분석할 테고, 이에 따른 대비책도 금세 마련할 것이다.

하지만 그 틈은 분명 존재할 것이고 석민은 그 점을 파고들려고 했다.

‘아무리 슈퍼컴퓨터라고 해도 신은 아니니까.’

그렇게 생각은 했으나 너무 질질 끌 생각은 없었다.

KA 청룡의 주먹은 꽤나 묵직했고, 당장은 간을 보고 있어 100% 힘을 보이지 않고 있지만 전면적인 공세로 전환한다면 이면세계에 숨지 않고선 못 버틸 테니까.

‘이제 슬슬 보여줄까?’

석민이 기회를 잡으려 할 때 KA 청룡은 슬슬 발동이 걸리고 있었다.

방금 전 공격으로 적당히 간을 봤다고 생각한 베타고가 슬슬 전면적인 공세로 전환할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추천 명령 : 대대적인 공세.

이어 박대한의 시야 상으로 빠르게 움직이며 주먹을 냅다 꽂는 KA 청룡의 실루엣이 떠올랐다.

박대한은 베타고가 지시한대로 KA 청룡을 움직였고, KA 청룡은 다시 한 번 악튜러스에게 파고들며 더블 피스트를 무자비하게 내지르기 시작했다.

내뻗는 주먹들이 악튜러스에게 향하고, 악튜러스는 이를 동물적인 감각으로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그 모습은 꽤 놀라웠으며 지켜보는 이로 하여금 프로 권투선수를 연상시켰다.

이때 지켜보는 관중들이나 KA 청룡의 파이터인 박대한 대위는 꽤나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걸 다 피해?

괴물 아냐?

박대한은 분명 동요했으나, 문제는 베타고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베타고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였다.

정확히 열여섯 번에 걸친 주먹질 뒤 KA 청룡이 내뻗는 주먹이 멈췄다.

패턴을 어느 정도 읽었으니 다른 식으로 주먹을 날리려는 것이다.

역시나 슈퍼컴퓨터.

감정을 가져 동요하는 인간과는 전혀 달랐다.

그리고 그 슈퍼컴퓨터가 지시한 대로만 움직이는 박대한은 훌륭한 꼭두각시였다.

잠시 후.

악튜러스를 노리는 주먹들이 쏟아졌을 때 악튜러스는 그 즉시 방패를 올려 대응했다.

‘패턴이 읽혀서 이젠 못 피할 거야.’

석민의 생각은 정확했다.

슈퍼컴퓨터는 앞선 잘못을 절대 반복하지 않았고, 상대가 보인 허점 등을 무섭게 분석하여 새로운 공격 패턴을 짜냈다.

다만 석민의 대처가 좋아 유효타는 계속 내지 못할 뿐.

경기가 지지부진해지자 베타고가 칼을 빼들었다.

-추천 명령 : 속박안 사용 뒤 헬피스트로 코어 가격.

가지고 있는 마안만 두개.

지금까지 KA 청룡이 치러왔던 경기 중에서 속박안까지 사용했던 적은 단 한 번도없었다.

그만큼 거쳐 왔던 상대들이 아주 형편없었으니까.

하지만 악튜러스에게만큼은 달랐다.

베타고는 처음으로 속박안 사용을 권했고, 박대한은 그대로 따랐다.

-동력 준비 중.

-속박안이 개안됩니다.

속박안이 개안되자 KA 청룡의 눈빛이 변했다.

섬뜩한 연노란 안광이 악튜러스에게 쏘아졌다.

악튜러스는 그 즉시 몸이 굳었다.

-주의! 상대 동력에 구속되었습니다.

주의 문구가 떠올랐음에도 석민은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상대가 가진 속박안에 대해선 이미 파악하고 있었으니까.

다만 그 타이밍을 몰랐을 뿐이다.

‘마안 사용은 이번이 처음이었나?’

석민은 침착하게 대응했다.

대처 방법은 있었으니까.

오히려 석민은 이때를 공세 전환의 기회로 삼기로 했다.

‘좋아, 이걸 역이용해볼까?’

속박안을 사용한 KA 청룡은 코어에서 생성되는 마나를 한쪽 주먹에 무섭게 실어냈다.

헬 피스트.

피스트 마법의 상위 호환으로 약간의 준비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 파괴력은 피스트 마법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헬 피스트를 풀 파워로 장전한 KA 청룡이 몸체가 구속되어 움직이질 못하고 있던악튜러스에게 주먹을 꽂아 넣었다.

그러나 그 주먹은 허공만 가를 뿐, 악튜러스에게 닿지는 못했다.

이쯤에서 악튜러스가 이면세계로 숨어버린 것이다.

당황한 KA 청룡이 악튜러스를 스쳐지나가고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대검을 빼든 악튜러스가 이를 휘둘러 상대 목을 쳐냈다.

그 바람에 박대한의 시야는 일순간 검게 변했다.

박대한은 어리둥절했다.

‘뭐야? 뭔 일이야?’

박대한만이 아니라 관중석도 크게 놀랐다.

악튜러스가 마법 공격을 준비하던 KA 청룡을 그대로 흘려보내더니 역으로 대검을 휘둘러 그 목을 쳐버린 것이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던 반전에 경기장 여기저기서 소란이 일었다.

“뭐야?”

“방금 KA 청룡이 그대로 스쳐지나간 거 맞지?”

“맞는 거 같은데? 무슨 기술이지? 새로운 기술인가?”

경기를 생중계하던 아나운서들도 당황하긴 마찬가지.

“대체 무슨 일입니까? 제가 잘못 본 건 아니죠?”

“네, 새로운 기술 같네요. 다시 한 번 악튜러스 자료를 살펴보니까 코어 말고도 바뀐 장비가 하나 더 있네요. 아직 전문 기관을 거치지 않은 장비라 무시하긴 했었는데...”

“그런데 무슨 능력일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경기를 지켜보던 모두가 혼란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그런 모두와 다르게 침착하게 대응하려는 존재가 딱 하나 있었다.

바로 KA 청룡의 실질적인 파이터인 베타고였다.

베타고는 검게 변한 박대한의 시야를 자기가 재구성한 가상 시야로 빠르게 대체시켰다.

순간 어리둥절했던 박대한 대위는 베타고가 구현시킨 가상 시야에 적응했다.

그가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훈련받았으니까.’

KA 청룡은 목이 잘린 상태에서 악튜러스의 대검을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게 피해냈다.

박대한 대위는 베타고가 지시한대로 KA 청룡을 움직이며 또 다시 관중들을 당황스럽게 했다.

< #28 KA 청룡 > 끝

ⓒ 대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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