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 개미지옥 >
석민은 숨죽이고 결과를 지켜보았다.
성공한다면 칠죄종 신발을 얻을 것이요.
실패한다면 마나용광로에 쏟아지는 저 모든 마정석들을 허공으로 날릴 것이다.
그럼에도 석민은 성공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실패할 것 같았으면 까리뽕이 말렸겠지. 까리뽕은 나만큼이나 칠죄종 세트를 보고 싶어 하니까.’
까리뽕은 어린 석민과 다르게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과거엔 아크리치로 명성을 날렸을 뿐만 아니라 그가 하는 말만 들어보면 우와 소리가 절로 나오는 신기방기한 기적 같은 일들도 참 많았다.
석민은 그런 까리뽕을 믿은 것이다.
“부어라 부어!”
이 순간에도 까리뽕은 골렘들과 몬스터들을 다그치며 마나용광로의 열기가 절대 식지 않도록 했다.
마나용광로의 핵심은 순간 화력을 지속시켜 설령 녹일 수 없는 물질이라도 녹여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점은 까리뽕이 가장 신경 쓰고 있는 부분 중 하나였다.
시간은 짹각짹각 흘러가고.
드디어 용융점에 도달하는 30분이 됐다.
석민은 10분 정도 남겨둔 상황에서 침을 꼴깍 삼켰다.
어떤 결과가 나올까?
실패?
성공?
‘제발 성공했으면 좋겠어.’
초조하지 않았던 석민도 30분 동안 잠자코 지켜보자 저도 모르게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10분이 더 지나자 까리뽕의 날 선 목소리가 정점을 찍었다.
“이제 부어라! 아니 마정석 말고 용광로를 기울이라고 이것들아! 다 녹였으면 다시 굳혀야 할 거 아니냐!”
두 골렘이 똑바로 서 있던 마나용광로를 잡고 옆쪽으로 기울였다.
그러자 그 안에 푸르게 용융되어 있던 아다만틴이 그 앞에 있던 주형틀로 흘러들어갔다.
이쯤에서 석민은 안도할 수 있었다.
‘녹았구나. 다행이야.’
실패와 성공은 아다만틴이 녹느냐 안 녹느냐로 결정됐는데, 다행히도 아다만틴은 녹아 있었다.
이쯤 되면 반은 성공한 것이다.
만약 운이 없어 칠죄종 신발을 완성시키지 못한다 하더라도 아다만틴으로 만들어진 대전 골렘용 장화는 얻을 수 있을 테니까.
용융된 아다만틴의 경우 아주 무섭게 식었다.
애당초 마나 불꽃이 아니면 변형 자체가 힘든 최강의 물질.
그 명성답게 마나 불꽃에서 해방되자 빠르게 식었고, 이는 워터 골렘이 물까지 끼얹자 그 속도가 더욱 빨라지기 시작했다.
여러 골렘들과 분주하게 움직이는 몬스터들로 나름 아수라장이던 대장간은 워터 골렘이 물을 뿜어냄과 동시에 사방이 뿌연 증기로 가득 찼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증기 속에서 까리뽕이 드디어 만족감을 드러냈다.
지금까지의 모든 긴장이 풀어지는 순간이었다.
“드디어 완성이군요. 눈깔이라도 있었으면 감격의 눈물이라도 흘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석민은 시야를 가리던 뿌연 증기를 뚫고 주형틀 근처에 섰다.
기울어진 마나용광로엔 아무 것도 없었고, 그 아래 거대한 틀은 빠르게 냉각되는 상태.
어느샌가 제 위치를 찾은 까리뽕이 석민에게 말했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됩니다.”
“수고했어.”
“수고했긴요. 이게 다 제 일입니다.”
잠시 후 식은 틀이 깨지고 그 안에 있던 아다만틴 장화가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자기 발에 꼭 맞는 새 신발이 등장하자 주변에 있던 골렘들이 침을 꼴까닥 삼켰다.
몇몇 탐욕스런 골렘들은 내심 저 신발의 주인이 되길 희망했으나, 아쉽게도 신발 주인은 따로 있었다.
“이게 칠죄종 신발이야? 형태는 어떻게 잡은 거야?”
“형태는 대장장이가 아는 것으로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기사들이 신는 강철 장화와 형태가 같습니다. 다만 아다만틴으로 만들어졌다는 것과 그 크기가 다를 뿐이죠.”
아다만틴은 다른 금속과 다르게 검은 색을 띠는 금속이었다.
이로 인해 주형을 깨고 나온 장화도 칠흑 같은 빛을 띠고 있었다.
스카우터를 쓴 석민은 지금 막 세상 밖으로 나온 신발을 스캔해보았다.
지금 석민이 쓰고 있는 스카우터는 예전에 받았던 그 스카우터가 아닌 나름 거금을 들여 장만한 고급 스카우터였다.
-인터넷에 접속하여 해당 물체를 스캔하는 중입니다.
-정밀 스캔 중...
-정밀 스캔 중...
-결과를 출력합니다.
[정체불명의 금속 장화]
등급 : ?
효율 : 100%
특이사항
-미확인 장비. 전문 기관의 확인 요함-다만 금속 특유의 빛깔로 추정해봤을 때 '아다만틴'으로 만들어졌을 거라 추정 됨.
‘좋아.’
최소한 아다만틴 장화는 완성됐다.
여기에 그림자 왕의 힘이 깃들어 있다면 이 신발은 아다만틴으로 만들어진 칠죄종 세트가 된다.
“이제 신겨보자. 성능을 확인해봐야지.”
석민은 한시라도 빨리 악튜러스를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렇게 듀란의 성에서 칠죄종 신발을 챙겨 고물상으로 돌아온 석민은 집에서 놀고 있던 이루리에 신림 군부대로 같이 가줄 것을 부탁했다.
그렇게 석민과 이루리가 고물상 밖으로 나오자 이를 지켜보고 있던 한 남자가 씩 웃었다.
스티븐이었다.
그는 아직까지도 한국에 남아 석민을 감시하고 있었다.
‘어딜 가는 거지?’
이때 석민은 포켓을 주머니에 숨기고 있어 스티븐은 알아보지 못했다.
둘이 어디론가 향하자 스티븐은 야오린에게 전화를 걸었다.
둘을 위성으로 추적하기 위함.
그러다 자기 등쌀이 따가워진 것을 느꼈다.
스티븐은 날카로운 눈으로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건물 옥상 출입구에서 자신을 감시하던 무언가가 빠르게 도망치는 것을 보았다.
스티븐이 쫓아가 잡아보니 이게 웬 걸?
동네 아이였다.
“너 뭐야?”
스티븐이 당황했다.
반면 스티븐에 의해 거칠게 붙잡힌 아이는 스티븐이 하는 말을 못 알아먹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스티븐이 엉엉 우는 아이를 놔주면 영어로 욕을 거하게 했다.
아이는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안 좋은 말이라는 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스티븐은 별 의심 없이 아이를 놔줬다.
그러면서 알게 모르게 기분이 찝찝했다.
고개를 갸웃하던 스티븐이 건물 밖으로 나와 다시 야오린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래서 어디로 가는 거야?”
“군부대.”
“그렇군. 감시해. 특이사항 있으면 나한테 다시 알려주고.”
스티븐은 또 다시 이상한 느낌이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번엔 두 아이가 저를 보고 있었다.
‘뭐지?’
스티븐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쪽 동네 아이들은 자기를 이상하게 보는 모양이다.
‘내가 외국인이라 그런가?’
스티븐은 당연한 생각을 했고, 그 아이들이 자신을 감시하고 있으리라고는 꿈에서도 생각지 못했다.
왜냐면 있는 그대로 동네 아이들이었으니까.
그리고 자신은 외국인이었다.
‘이상한 동네군. 빨리 뜨고 싶어.’
그 시각.
군부대로 향하는 석민은 아빠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아빠 무슨 일이야?”
“아들 잘 지내고 있지?”
“응 당연하지.”
이때 운전대를 붙잡고 있던 이루리의 귀가 솔깃해졌다.
김원빈 뺨치게 잘생기고, 나이가 서른 셋 밖에 안 된데다가 국빈 대우를 받는다는S급 헌터라 그런 모양이다.
“그런데 무슨 일인데? 아빠가 전화할 타이밍은 아닐 텐데.”
“그게 저번에 아빠가 말했던 외국인 헌터 있잖아. 아들 포켓 훔치려는 녀석들이 있다고 알려준 헌터.”
“아 그 헌터 아저씨. 아들도 알지. 그런데 왜? 또 무슨 말을 해줬어?”
“어, 아빠한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줬는데 그 도둑놈들이 우리 아들한테 관심이아주 많은 모양이더라. 한국으로 골렘까지 보냈대.”
“골렘까지? 설마 악튜러스를 노리고 보낸 거야?”
“아마도 그러겠지. 그러면서 그 골렘 자료까지 보냈거든. 지금 보내줄 테니까 한 번 살펴봐.”
“진짜? 그런데 그 아저씨는 대체 누구야? 누군데 그런 정보까지 주는 거야?”
“아빠도 잘 모르는데, 나중에 한 번 보자고 하더라. 아빠한테 관심이 많나봐.”
“아빠가 세상에서 얼마 없는 S급 헌터라 그런가보다. 아빠한테 엄청 잘 보이고 싶나봐. 그런 수고까지 해주는 걸 보면.”
“아빠도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거야. 나중에 보답을 바라겠지.”
“그건 그렇겠지.”
“그래도 우리 아들한테 잘해줬으니 아빠도 어느 정도 보답은 해주려고. 받은 게 있으면 적당히 돌려주는 것도 세상사는 법이거든.”
“아빠 말이 맞아. 그보다 아빠는 아직도 가는 중이야?”
“응. 가는 게 세월이다. 힘들어 죽겠어.”
“거긴 어때? 아직까진 위험한 일 없지?”
“아직까진 뭐... 그나저나 아들한테 줄 선물 구하려고 온 건데. 계속 허탕이다. 몬스터들이 세지니까 이거 심장을 노리지 않고서는 죽이질 못하겠어.”
“아빠,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몬스터 심장이든 머리든 가차 없이 날려버려. 나는 아빠가 무사히 돌아오는 게 가장 중요하니까.”
“짜식, 알았다. 혹시라도 아빠가 빈손으로 돌아가도 원망하진 마? 알았지?”
“아들은 그런 거 신경 안 써. 아들한테 최고 선물은 바로 아빠인 걸.”
“하하하! 좋았어. 우리 아들 말 한 번 잘한다.”
“아빠 무사히 돌아와.”
“알았다. 또 전화할 테니까 아빠가 보낸 자료나 봐봐. 그 골렘들이 지금 한국에 와 있대.”
“알았어.”
통화를 마치자 이루리가 바로 말을 걸어왔다.
“아빠야?”
“네 아빠요.”
“아빠 지금 어디래?”
“아직도 가는 중인가 봐요.”
“와 세상에 그렇게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고 계셨어? 진짜 대단하다. 나는 끽해야일주일 깊이 밖에 안 들어가 봤는데.”
“S급 헌터시잖아요.”
“그렇긴 하지.”
“저 잠시만요. 아빠가 보내준 자료 좀 보고요.”
석민은 스카우터를 쓴 채 차태식이 보내준 자료들을 살펴봤다.
그 자료엔 한국으로 원정나간 두 골렘에 대한 정보가 있었다.
‘마블 골렘에 크리스탈 골렘이네.’
한 골렘은 대리석으로 이뤄진 골렘이었고, 또 다른 골렘은 수정으로 이뤄진 골렘이었다.
둘 다 대지 골렘으로 분류되니 딱히 특이점은 없었다.
‘등급은 상위 B등급이야. 질럿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랄까?’
장비 수준이나 개체 등급을 보니 국내 정상급 골렘들보단 살짝 수준이 낮았다.
레드 데빌, K나이트, KA 청룡이 세계 대회 출전 기준인 A-등급보다 살짝 낮다면 지금 석민이 살펴보고 있는 골렘들의 경우 그 등급보다 한 단계 낮았으니까.
‘하지만 둘이야.’
문제는 둘이라는 점.
같은 목적으로 찾아온 골렘 두 대가 단독으로 움직이진 않을 것이다.
도둑들이 그렇게 멍청하진 않았으니까.
‘일을 쉽게 하려면 둘이 동시에 움직이겠지.’
석민은 눈썹을 모아 생각에 잠겼다.
‘지금 악튜러스 장비론 2대1은 무리야. 칠죄종 신발이 없다면 더욱 그렇지.’
하지만 칠죄종 신발을 신는다면 상황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석민은 생각보다 자신이 있었다.
칠죄종 신발을 신는다는 가정 하에서 말이다.
‘그림자 왕이 보여줬던 그 힘을 악튜러스가 가질 수 있다면 2대1도 해볼만 해.’
이면세계를 통한 귀신같은 움직임.
짧은 거리를 마치 귀신처럼 도약할 수 있으니 회피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하게 된다.
어디 그것뿐이랴?
이면세계에 들어가는 순간 모든 공격에 대해 면역이 될 것이다.
그게 그림자 왕이 보여줬던 이능의 힘이었으니까.
‘진짜 해볼만 해.’
석민은 신림 군부대에 도착한 직후 곧바로 악튜러스를 찾아갔다.
그리곤 방금 막 마나용광로에서 만들어낸 아다만틴 장화를 악튜러스에게 건네주었다.
“신어봐. 새 신발이야.”
악튜러스는 흙으로 된 몸을 변형시켜 기존에 신고 있던 장화를 버리고 지금 석민이 건넨 아다만틴 장화를 착용했다.
이때 석민은 악튜러스만 빤히 쳐다봤다.
단순히 아다만틴 장화가 아니라 칠죄종 장화라면 악튜러스는 곧 이면세계의 힘을보란 듯이 사용할 테니까.
< #27 개미지옥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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