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파이트-72화 (72/173)

< #26 질럿! >

창이 날아오자 질럿이 급히 몸을 틀었다.

하지만 적중!

단단해진 창은 목표하던 코어는 꿰뚫지 못했지만 빙하로 된 몸을 대신 꿰뚫어버렸다.

일반적인 금속 장갑이었다면 흙으로 된 창이 골렘의 몸을 꿰뚫지 못했을 것이다.

몸체에 닿기 전에 금속 장갑의 표면에서 가로 막혔을 테니까.

하지만 본 드레이크 뼈로 이뤄진 갑옷은 군데군데 틈이 있었고, 냉기를 머금고 단단해진 창은 그 틈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창에 꽂힌 질럿이 뒤로 크게 밀렸다.

주춤하는 것도 잠시.

본 드레이크 세트가 갖는 특수 능력이 발현되었다.

-불굴의 의지가 발동됩니다.

불굴의 의지.

여러 상태 이상 효과에서 빠르게 회복하는 능력이다.

이 능력만 있다면 전투 불능의 상태가 최소한으로 맞춰져 흡사 광전사로 변모될 수 있었다.

불굴의 의지가 발동됨과 동시에 빠르게 상태를 회복한 질럿이 제 몸체에 꽂혀 있던 창을 냅다 잡았다.

동시에 질럿의 파이터인 강정석이 미간을 사정없이 일그러트렸다.

“개 같은!”

저도 모르게 욕지기를 내뱉을 정도.

질럿은 제 몸체에 박혀 있던 창을 거칠게 뽑으며 그 건재함을 과시했다.

뽑아낸 창은 꽁꽁 얼어붙어 아주 단단했다.

‘돌려주마!’

질럿은 팔을 크게 젖혀 잡혀 있던 창을 다시 악튜러스에게 돌려주었다.

무서운 속도로 날아가는 창.

그 창이 공기층을 가르며 굉음과 같은 파공음을 냈다.

파공음은 무시무시했고, 그 위력 역시 만만찮았다.

하지만 그 창이 꽂힌 곳은 다름 아닌 방패.

노련한 악튜러스가 그 창을 대놓고 맞을 리가 없었다.

날아간 창은 방패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다.

그 충격으로 인해 악튜러스가 밀렸으나, 다시 자세를 잡고 선 악튜러스는 빈손에 다시금 흙으로 빚어지는 창을 만들어냈다.

창은 순식간에 만들어졌고, 이를 노려보던 질럿이 피할 궁리를 했다.

또 던질 테니까.

역시나 질럿이 예상했던 대로 창은 상대방의 동의도 없이 허공을 갈랐다.

마찬가지로 파공음을 내며 날아가는 창이 공기층을 가른다.

그 창이 허공을 가르기 전 질럿이 급히 옆쪽으로 몸을 날렸다.

피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석민이 미리 한 수 앞을 내다봤다.

상대방이 피할 것을 알고 그 피할 자리에 창을 던진 것이다.

질럿은 몸을 날렸다가 피한 그 자리에서 또 다시 창에 꿰뚫리는 수모를 겪게 됐다.

‘이런 썅!’

강정석이 속으로 오만가지 욕설을 퍼부었다.

질럿은 그 창을 뽑고 다시 악튜러스에게 던졌다.

악튜러스는 전과 마찬가지로 방패를 들어 이를 막았다.

그놈의 방패!

강정석은 속으로 저 방패를 찢어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으나 지금으로선 그저 요원한 일.

그 사이 악튜러스가 또 다시 창을 준비했다.

강정석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이렇게 당하고만 있는 건 자신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상대방과 초근접전에서 치고 박는 것이야 말로 자신의 스타일.

그 스타일을 위해서라도 질럿은 뛰었다.

‘이렇게 되면 불굴의 의지만 믿는다!’

불굴의 의지만 믿는 질럿은 정면에서 무섭게 덤벼들었다.

저돌적인 정면 돌진.

이어 방패를 든 악튜러스와 부딪히고, 냉기를 뿜어내는 질럿이 악튜러스를 두 칼로 강하게 압박했다.

두어 번 방패를 들어 상대가 내리치는 검날을 막아낸 악튜러스가 다시 땅을 굴러 질럿과 그 거리를 벌렸다.

씩 웃는 강정석이 질럿으로 하여금 땅을 향해 칼을 내리치게 하였다.

칼이 바닥에 닿는 순간 무자비한 얼음송곳이 튀어나왔다.

아이스 피어스였다.

일직선으로 뻗어나가는 아이스 피어스가 악튜러스를 덮쳐왔다.

저런 것에 정통으로 맞았다간 방패를 떠나서 땅에서 솟아난 얼음송곳으로 인해 꼬챙이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악튜러스가 옆쪽으로 또 굴렀다.

구르기를 통한 회피.

그런 악튜러스를 향해 뛰어드는 질럿이 팔뚝에서 튀어 나온 칼을 힘차게 뻗어냈다.

구르기를 하는 악튜러스의 시선은 상당히 제한적이었으나, 석민은 미리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악튜러스를 구르게 한 뒤 곧바로 방패를 들어 그 공격을 막아냈다.

이어 방패를 들이미는 악튜러스가 주춤하는 질럿을 그대로 밀어 넘어트렸다.

꼴사납게 나자빠지는 질럿.

이어 악튜러스가 부러진 대검을 뽑아들었다.

브로큰 블레이드에 마나가 실린다.

마나로 점철 된 칼날이 생성됨과 동시에 악튜러스가 이를 나자빠진 질럿을 상대로 내리찍었다.

이를 두 눈으로 보던 강정석의 입이 절로 벌어진다.

너무 놀란 나머지 입이 쩍 벌어진 것이다.

순간이었지만 강정석은 이대로 경기가 끝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느꼈다.

그 위기감 때문이었을까?

강정석은 방어기제로 질럿의 출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그 찰나와 같은 순간.

주변 공기가 극한까지 얼어붙었다.

글레이셔 골렘.

그 냉기는 악튜러스의 오른 팔과 그 어깨까지 전부 얼리며 대검의 움직임마저 막아버렸다.

석민도 당황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으니까.

악튜러스가 내리치는 것을 멈추고선 곧장 거리를 벌리고 섰다.

석민이 생각하듯 미간을 모았다.

‘역시 근접전은 안 되겠네. 상대 골렘이 속성상 너무 유리해.’

근접전은 아무래도 무리라는 판단이 들었다.

강한 냉기를 뿜어내는 골렘이라 순간 출력을 최대로 높인다면 흙으로 된 악튜러스는 본디 습기를 머금고 있어 자연스레 그 움직임이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계속 생각했지만 역시 골치 아픈 상대였어. 하지만 해법이 없는 건 아니지.’

석민이 다른 식의 싸움을 구사하는 동안, 가까스로 한숨을 돌린 강정석은 속으로 석민을 욕하고 있었다.

‘아오 시발. 그냥 좆 될 뻔했네. 개 같은 꼬마 놈이 존나 잘 싸우네.’

악튜러스는 주먹 쥔 왼손으로 얼어 있던 오른팔을 강하게 때렸다.

그러자 얼어 있던 오른 팔이 그 충격으로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으나 완전 회복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듯싶었다.

그 사이 질럿이 정신을 차리고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섰다.

두 골렘 사이에 때 아닌 정적이 찾아들었다.

환호하는 관중들.

경기를 중계하는 아나운서들도 그 입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역시 질럿이 뿜어내는 냉기엔 악튜러스도 답이 없는 모양입니다. 방금 보셨습니까? 순간이었지만 질럿의 출력이 맥스가 되면서 주변에 모든 것들을 얼려버리는 절대 영도를 탄생시켰습니다. 그 절대 영도에선 어스 골렘도 답이 없는 모양이군요.”

그들 중 하나가 의문을 표했다.

“그런데 흙도 어는 겁니까? 물이야 어는 건 알고 있었지만 흙도 저렇게까지 어는 군요.”

“정확히는 흙 속에 잔존하고 있는 습기가 얼어붙는 거겠죠. 악튜러스 역시 자연계 골렘이라 냉기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을 겁니다.”

“아, 그렇군요.”

“그보다 악튜러스 문제입니다. 상대는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글레이셔 골렘. 초근접전에서는 답이 없어 보입니다.”

질럿과 대치하고 선 악튜러스.

석민의 눈빛이 변하며 전과 다른 진행을 꾀했다.

‘악튜러스가 소드 임펄스 타입이라고 해서 근접전만 할 수 있는 건 아니야. 코어 출력만 충분하다면 이런 것도 가능하지.’

상대 선수가 무슨 생각을 하든지 간에 잠시 숨을 돌린 강정석은 여기저기서 자신을 응원하기 위해 이곳까지 찾아온 팬들을 힐끔 쳐다보았다.

“모두 다 같이 쏴리 질럿!”

“쏴리 질럿!”

씩 웃어주는 강정석이 자신을 응원하는 사람들을 보고선 기운을 차렸다.

상대 골렘은 아까 전 질럿이 뿜어낸 절대 영도에 쫄아 거리를 벌린 채 다가올 생각조차 안 하고 있었다.

‘그래, 이거 내가 이긴 게임이라니까.’

질럿이 악튜러스를 향해 한 발짝 내딛었을 때.

지반이 크게 뒤틀렸다.

‘뭐야?’

약간 흔들리는 시야에 강정석이 당황했다.

뭔지는 잘 모르겠으나 발아래 땅이 요동치고 있었다.

어스 골렘.

가장 흔하디흔한 골렘인데다가 이렇다할 특징이 없다고 하지만, 다른 골렘들처럼 어스 골렘에게도 장점이란 게 있었다.

바로 자신을 이루는 원소를 아무데서나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경기장 바닥이 요동치며 심상치 않은 기운을 보였다.

이때 악튜러스는 두 손을 모으며 흙의 지배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출력 Max!

-풀 하트 상태입니다.

-주의! 하트 다운의 위험이 증가됩니다.

그 순간.

요동치는 지반에서 거대한 용 하나가 튀어나왔다.

어스 드래곤.

흙으로 이뤄진 드래곤이 지반에서 승천하였다.

그 형상은 석민이 악튜러스 회상에서 봤던 것과 완벽히 일치했다.

다만 딱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 크기.

리겔을 집어삼키던 그 어스 드래곤에 비하면 석민이 소환한 드래곤은 그 중간도 못 미치는 크기였다.

놀란 관중들이 그 시선을 모으고, 지반에서 솟아오른 어스 드래곤을 본 질럿이 주춤하여 뒤로 물러나 섰다.

‘뭐야 시발. 저건 또 뭔데?’

석민은 마법사는 아니었지만 악튜러스와 까리뽕이 칭찬했던 것처럼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딱 한 번 봤던 것을 그대로 따라는 것도 석민이 가진 재능 중 하나.

하늘로 솟아오른 어스 드래곤이 질럿이 보던 하늘을 가렸다.

질럿은 무방비 상태로 그저 서 있기만 하였고, 그의 하늘을 가렸던 어스 드래곤은아무 말 없이 제 아래에 있던 질럿을 삼키듯 덮쳤다.

놀란 관중들이 잠시 말을 잊고, 경기를 중계하던 아나운서들도 말이 없긴 마찬가지.

그러다가 김요한 해설위원이 그 정적을 깨트렸다.

“어스 마법이네요. 그것도 난생 처음 보는 마법입니다.”

“방금 드래곤 같은 게 흙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데, 맞나요?”

“네, 저도 그렇게 봤습니다.”

“저런 것도 가능했습니까?”

“글쎄요.”

김요한 해설위원은 악튜러스와 관련 된 자료들을 거들떠 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없네요. 이번에 처음 보여준 것 같습니다.”

“차석민 선수, 남모르게 준비한 필살기인가요?”

“필살기라... 뭐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없는 자료라서요.”

“강정석 선수, 저 표정을 보아하니 충격이 꽤 큰 듯싶습니다.”

“그나저나 질럿은... 행방불명 됐네요. 안 보입니다.”

“질럿은 저기 어딘가에 깔려 있겠죠. 곧 나올 겁니다.”

“네.”

“우선 지켜보겠습니다. 아, 말하는 순간 강정석 선수가 경기를 포기했네요. 골렘은 아직 괜찮은 것 같은데 아무래도 골렘 장비 쪽에 문제가 생긴 듯싶습니다.”

어스 드래곤과 정면으로 부딪힌 질럿과의 링크가 끊기자 잠시 넋을 잃었던 강정석은 뒤늦게 경기 포기를 선언했다.

링크도 안 되는 마당에 괜한 오기까지 부릴 필요는 없었으니까.

“아오 시발...”

강정석이 이마를 부여잡으며 알 수 없는 신음소리를 냈다.

뭔가 잘 되다가 고꾸라진 느낌이었다.

‘아니 그렇게 큰 충격을 줘버리면...’

지금까지 티아라가 망가진 적이 없었는데, 그 티아라가 말썽을 일으킬 줄이야.

강정석이 고개를 젓는 그 순간에도 아나운서들의 대화는 쭉 이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악튜러스와 차석민 선수가 8강까지 진출하게 되네요. 축하드립니다. 차석민 선수, 본선 첫 출전에 8강까지 가는 기염을 토해냈습니다.”

“어린 선수가 정말 대단하네요. 그리고 악튜러스란 골렘도 참 대단합니다.”

“제가 듣기론 저 골렘을 고물상에서 조립했다고 하더군요.”

“네, 그 이야기는 저도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처음엔 안 믿기더라고요. 그런데 사실이라고 합니다.”

“고물상에서 조립한 골렘치고, 여기까지 올라온 게 참 대단합니다.”

이용호 캐스터가 다음 8강전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았다.

“그럼 두 분께선 악튜러스의 4강전 진출은 어떻게 보시는지. 한 마디씩 해주시죠.”

그 물음에 가장 먼저 대답한 건 강동준 해설위원이었다.

“네, 저는 일전에도 한 번 말씀 드렸다시피 8강 정도를 마지노선으로 봤습니다. 그 의견은 지금도 동일하고요 개인적으론 차석민 선수가 4강까지 진출했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론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해드리고 싶습니다. 많이 안타깝죠. 하지만 현실은 현실입니다.”

김요한 해설위원도 나섰다.

그 역시 비슷한 의견.

“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결정은 안 됐지만, 아마 다음 상대가 KA 청룡이 될 가능성이 거의 99.9%라고 보시면 되고요. 그렇게 되면 결과야 뭐 뻔한 거니까. 더 이상 설명은 안 드리겠습니다.”

씁쓸한 현실.

아나운서들도 안타까워하긴 마찬가지였다.

자기 아들 같아 나름 응원해주고 싶은 선수였지만 현실이란 벽은 마치 태산처럼 견고했으니까.

“이기는 건 거의 불가능하겠죠?”

“많이 힘들죠.”

“아무리 요즘 승승장구하고 있다지만 국방부에서 3천억이나 쏟아 부은 대전 골렘을 이길 순 없겠죠.”

< #26 질럿! > 끝

ⓒ 대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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