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 질럿! >
거치대에 있던 악튜러스가 해방됐다.
악튜러스는 석민의 지시에 따라 관중의 함성이 내리치는 경기장 쪽으로 걸어나갔다.
악튜러스의 등장과 함께 이용호 캐스터의 입도 바빠졌다.
“네, 말씀하신 악튜러스가 지금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번과 다르게 장비가 조금 바뀐 것 같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영문이죠? 저희가 모르는 사이 누가 후원이라도 해준 겁니까?”
고작 며칠 사이.
악튜러스의 외부 장갑이 강철에서 티타늄 합금으로 바뀌어 있었다.
김요한 해설위원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섰다.
“그 부분은 제가 설명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며칠 전 서울 대로변에서 큰 사고가 있지 않았습니까?”
“네, 골렘 장비를 전문으로 노리는 털이범들의 무모한 도전이 있었죠. 세상에 대낮 서울 도로변에서 그런 짓을 벌일지 대체 누가 알았겠습니까?”
“악튜러스 장비를 노린 그 범행은 결국 실패로 끝나게 됐는데요. 그 범행에 쓰였던 골렘의 장비들이 고스란히 악튜러스에게 넘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아, 그렇게도 되는 겁니까?”
알면서도 묻는다.
그게 이용호 캐스터의 위치.
그리고 그걸 대답해주는 게 해설위원의 위치였다.
“네, 골렘 장비에 대한 강탈 시도는 헌터법의 적용을 받아서요. 일반적인 절도 사건과는 다르게 적용됩니다.”
강동준 해설위원도 나섰다.
“네, 일종의 불문율이죠. 강탈을 시도한 쪽에서 아무 말도 못하거든요. 아실 분은거의 다 아실 거라고 봅니다.”
“그렇군요. 악튜러스, 그 일을 계기로 기존에 쓰고 있던 강철 장갑들이 전부 티타늄 합금으로 바꿨습니다. 그런데 상체 장갑만은 그대로네요. 이유가 따로 있을까요? 다른 곳보다 상체 장갑이 가장 중요할 텐데 말이죠. 안 그렇습니까?”
“네 맞습니다.”
“코어와 코어 캡슐을 외부 충격으로부터 보호하는 게 바로 상체 장갑 아니겠습니까? 저는 이상하네요. 왜 상체 장갑만 그대로 뒀을까요?”
“제가 그 부분에 대해 차석민 선수를 찾아가 물어보니 시원하게 대답을 안 해주더라고요. 아무래도 저희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듯싶습니다. 자세한 건 비밀이라고 하네요.”
“비밀이요? 저게 무슨 특별한 아티팩트라도 되는 겁니까? 나온 자료를 보면 그냥강철 갑옷인데요.”
“글쎄요. 그거야 선수 본인과 관계자들만 알고 있겠죠.”
“아무 생각 없이 상체 장갑만 따로 놔두진 않았을 겁니다.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봅니다.”
상체 장갑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까진 비밀이었다.
그 비밀이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당장은 그러했다.
이용호 캐스터가 다른 부분도 언급해주었다.
“코어도 하나 더 추가된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래도 예비로 쓸 생각이겠죠?”
“네, 서로 등급은 같은데 출력은 좀 다르네요. 이런 건 듀얼 코어로 못 돌립니다. 그래서 예비로 두는 모양입니다.”
“요즘 코어 값이 또 고공행진하고 있지 않습니까?”
“네, 최근에 마정석 충전붐이 일어났죠. 어떤 사람이 생각한 건지는 몰라도 참 기발하네요.”
그들이 말을 마치매 관중들의 환호를 받고 등장한 악튜러스가 16강전을 치르기 위해 레드 진영에 섰다.
이어 블루 진영에서 큰 환호성과 함께 상대 골렘이 등장했다.
주변 공기마저 얼어붙게 하는 차가운 몸체.
빙하로 이뤄진 글레이셔 골렘이 등장했다.
글레이셔 골렘이 아이스 골렘과 차별화되는 점은 눈이 아닌 얼음으로 되어 있다는 점과 빙하에서 발견됐다는 점이다.
질럿이라 불리는 골렘이 등장하자 블루 진영의 응원석에 앉아 있던 어떤 남자가 확성기에 입을 대고 크게 소리를 질렀다.
“모두 다, 쏘리 질럿!”
이에 맞춰 걸음을 멈추고 춤을 추기 시작하는 질럿이 관중들을 더욱 환호시켰다.
광대와 같은 모습.
하지만 질럿의 파이터 강정석은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이며 오히려 그 순간을 즐겼다.
경기장에선 경쾌한 힙합 음악이 흘러나왔다.
한국에서 드물지만 외국에선 너무나도 흔한 풍경.
질럿의 등장에 이를 중계하는 아나운서들의 입은 다시 바빠지기 시작했다.
“아, 저 응원 구호. 아직도 잊히지가 않네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계속 환청처럼 들리는 거 같아요. 집 가다 보면 누가 계속쏘리 질럿. 하는 거 같기도 하고.”
두 해설위원의 대화에 이용호 캐스터가 끼어들었다.
“저는 그런 것보다 저 질럿이라는 이름이 더 인상 깊었어요. 질럿이라... 모 게임에서 총 쏘는 유닛이 계속 상기되더라고요.”
“아 저도 그 게임 압니다. 배틀로 시작하는 그 게임. 알죠.”
“아쉽게도 경기장에 나온 질럿의 경우 게임과 같이 웨펀 마스터 타입은 아니고요. 소드 임펄스 타입입니다.”
“두 골렘이 드디어 위치했습니다. 곧 시작하겠군요. 질럿과 악튜러스의 경기,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홍길동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경기장에서 석민은 스카우터를 통해 상대 골렘을 살펴보고 있었다.
-인터넷에 접속하여 해당 개체를 스캔하는 중입니다.
[글레이셔 골렘]
개체명칭 : 질럿
등록번호 : KR-1691122
개체등급 : BB-(대한헌터협회 July 20th, 2029)
최대출력 : 1520hp
보유용도 : 대전 골렘용
-인터넷에 접속하여 골렘의 세부 정보를 갱신합니다.
[무장 목록]
우(右)무장 : [BB+] 서리칼날
좌(左)무장 : [B-] 괴물 사냥꾼
[장갑 목록]
코어 : [BB-] 본 드레이크 심장<세트>
코어 캡슐 : [B+] 재팬 일렉트로닉스, 코어 캡슐 CC-C2머리 가리개 : [BB-] 본 드레이크 스컬캡어깨 가리개 : [B] 본 드레이크 덧대<세트>
몸통 가리개 : [BB+] 본 드레이크 뼈 갑옷<세트>
손목 가리개 : [BB] 본 드레이크 뼈 보호구<세트>
다리 가리개 : [B-] 본 드레이크 뼈 각반<세트>
손 보호구 : [B-] 본 드레이크 뼈 장갑<세트>
발 보호구 : [B] 본 드레이크 뼈 장화<세트>
[골격 목록]
전체 골격 : [BB-]
장비 종합효율 : 99%
장비 종합판정 : BB-
‘출력이랑 장비 모두 악튜러스보다 위야.’
B급 세트 아티팩트 중에서 제법 유명한 본 드레이크 세트를 착용한 글레이셔 골렘.
단순히 장비만 비교해본다면 악튜러스는 질럿의 상대가 되질 않았다.
티타늄 합금으로 외부 장갑 수준을 높였다 치더라도 아티팩트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승을 노린다면 최소 B급 세트 아티팩트는 맞춰야만 했다.
석민이 질럿을 살펴보는 것처럼 강정석도 악튜러스를 스캔하고 있었다.
‘뭐야. 장비가 그새 바꼈네?’
레게머리.
힙합스타일의 옷을 입은 강정석은 스카우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몸을 바운스하고 있었다.
-인터넷에 접속하여 골렘의 세부 정보를 갱신합니다.
[무장 목록]
우(右)무장 : [?] 미등록 부러진 특대검좌(左)무장 : [A-] 스턴건 피스트 브레이커보조 무장 : [BB-] 제리코, 안티 매직 라운드 쉴드 MLS
[장갑 목록]
코어 : [B+] 에덴해, 중형 크라켄 심장예비 코어 : [B+] 황혼의 산맥, 황금 고블린 여왕의 심장코어 캡슐 : [B-] [사쿠라 중공업, 코어 캡슐 C-01]
머리 가리개 : [B-] 미등록 티타늄 해드어깨 가리개 : [B-] 미등록 티타늄 덧대몸통 가리개 : [CCC] 강철 갑옷우(右) 손목 가리개 : [CCC] 강철 가리개좌(左) 손목 가리개 : [A-] 스턴건 피스트 브레이커다리 가리개 : [B-] 미등록 티타늄 각반우(右) 손 보호구 : [B-] 티타늄 장갑좌(左) 손 보호구 : [A-] 스턴건 피스트 브레이커발 보호구 : [DD] 한국중공업, 대전 골렘용 강철 장화 2025-A1
[골격 목록]
전체 골격 : [CC+] 남원 대장간, 강철 뼈대
장비 종합효율 : 94%
장비 종합판정 : B-
전체적인 장비 수준은 질럿과 비교될 수가 없었다.
티타늄 합금으로 된 외부 장갑을 사용하여 종합판정을 B-등급까지 끌어올렸다지만 결국 아티팩트가 아닌 이상 한계는 명확했다.
악튜러스의 장비 수준이 질럿보다 낮았음에도 강정석은 불만이 많았다.
‘아니 강철 깡통이 왜 티타늄 깡통으로 된 거야. 짜증나게.’
며칠 전 악튜러스의 습격 소식을 듣자마자 강정석은 은근히 좋아했었다.
안 그래도 장비 안 좋은 골렘이 전문 도둑들로부터 습격까지 받았으니 16강전에서 제 힘을 내지 못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히려 장비가 더 좋아졌다.
강탈에 쓰인 적 골렘의 장비를 죄다 뜯어다가 재활용한 것이다.
더군다나 예비 심장까지 달고 왔으니 환장할 노릇.
‘안 그래도 8강까지가 한계라고 생각해서 나름 느긋하게 가려고 했었는데 이거 안 되겠네.’
악튜러스를 꺾게 되면 8강전에서 그 유명한 KA 청룡과 맞붙게 된다.
현재 파죽지세로 치고 올라오고 있는 KA 청룡의 경우 강력한 우승 후보 중 하나로 단연코 질럿이 넘볼 상대는 아니었다.
그래서 박정석은 자신의 한계를 8강까지로 보고 있었다.
두 골렘에 대한 소개를 마친 홍길동의 목소리가 다시금 높아졌다.
“자 그럼 준비됐습니까! 소리 한 번 질러볼까요!”
“쏘리 질럿!”
관중들은 축제 분위기 속에서 다 같이 쏘리 질럿을 외쳤다.
“자 그럼 달려봅시다. Ready, Fight!”
경기가 시작됐다.
악튜러스가 한 발 내딛자, 질럿이 꽉 쥔 주먹으로 땅을 내리쳤다.
아이스 피어스가 시전 됐다.
아이스 피어스.
일직선상에 놓인 모든 적을 날카로운 얼음송곳으로 꿰뚫어버리는 마법.
그 마법이 몸체에 닿기 전 악튜러스가 몸을 날려 이를 가볍게 피했다.
하지만 아이스 피어스는 단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질럿이 제 앞의 땅을 연달아 치니, 그 수에 맞춰 아이스 피어스가 지면을 타고 악튜러스를 덮쳐왔다.
네 번을 연달아 피하던 악튜러스가 안 되겠다고 판단했는지 두 주먹을 맞부딪히며 흙의 지배력을 끌어냈다.
악튜러스 앞으로 솟아나는 거대한 흙벽.
그 바람에 악튜러스를 향해 덮쳐오던 아이스 피어스가 애꿎은 흙벽을 꿰뚫고 말았다.
씩 웃는 강정석이 세운 엄지로 코밑을 쓱 밀었다.
‘역시 좀 한다니까.’
강정석은 상대 꼬마가 골렘을 잘 다룬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나도 꽤 하거든!’
강정석의 눈빛이 변하자 질럿의 양 팔뚝에서 변형 된 두 칼이 튀어나왔다.
BB+ 등급의 서리칼날과 B- 등급의 괴물 사냥꾼.
본래 자루가 있는 장검이었는데, 질럿의 기술팀에서 팔뚝에서 튀어나오는 형식으로 변형시켰다.
두 칼이 준비되자 질럿은 악튜러스를 향해 저돌적으로 덤벼들었다.
신속기를 이용한 빠른 접근.
이어 두 칼을 휘두르며 악튜러스를 강하게 압박했다.
이에 맞서 악튜러스는 방패를 앞세웠으나 냉기를 뿜어내는 골렘 앞에서는 그 움직임이 상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글레이셔 골렘의 냉기.
코어의 출력이 높을수록 주변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공기, 흙, 그 모든 게 얼어붙는다.
겨울철 흙이 단단하게 얼어붙는 것처럼 악튜러스 역시 그 냉기를 피할 재간이 없었다.
움직임은 둔화되고 상대 골렘은 그런 악튜러스를 강하게 몰아붙였다.
-주의! 움직임이 제한되고 있습니다.
악튜러스가 내세운 방패를 여러 번 내리치던 글레이셔 골렘이 뒤돌려 차기를 통해 악튜러스를 뻥 차버렸다.
얼어붙은 몸으로 인해 재빠른 대처가 불가능하던 악튜러스가 그대로 밀리며 뒤로넘어지고 말았다.
머리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꼴사납게 넘어졌으나, 악튜러스는 그 상태에서 그대로 한 바퀴를 돈 뒤 다시 방패를 앞으로 세웠다.
‘역시 잘한다니까.’
강정석은 한 바퀴 구르고 빠르게 방패를 세우는 적의 노련함에 다시 한 번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지금까지 허무하게 당해왔던 적들과는 달랐다.
파이어 골렘이 아니고서야 전부 악튜러스처럼 그 몸이 얼어붙은 뒤 두 팔뚝에 달려 있던 칼에 난자되어 끝났으니까.
‘그래봤자지! 넌 끝났어.’
질럿이 내뿜는 냉기는 그대로.
질럿은 방패를 세운 악튜러스를 향해 거의 뛰다시피 덤벼들었다.
그 순간.
악튜러스는 적의 냉기가 닿기 전 바닥에서 스피어 하나를 빠르게 만들어냈다.
어스 스피어.
흙으로 뭉쳐지는 창 하나.
석민은 고개를 들어 막무가내로 덤벼오는 질럿을 제 시야에 담았다.
이어 시선은 적의 코어에 집중시켰다.
질럿이 덮쳐오기 전.
창을 바꿔 잡은 악튜러스가 그 창을 힘껏 내던졌다.
파공음과 함께 날아가는 창 하나.
그 창이 적이 내뿜는 냉기를 머금었다.
그 냉기로 인해 흙으로 빚어진 창은 그 어느 때보다도 단단해져 있었다.
< #26 질럿! > 끝
ⓒ 대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