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 질럿! >
#26 질럿!
고급스런 원목.
30평 남짓 크기의 호화스러운 방.
개인 선수를 위한 대기실치고 다소 화려한 방안에서 홍진영의 동생이자 매니저로활동하고 있는 홍수아가 자기 오빠인 홍진영에게 이런저런 안 좋은 소리를 했다.
그러면서 어떤 이야기를 꺼내자 대번 홍진영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게 무슨 소리야? 대표가 나 말고 딴 녀석한테 관심 있다니?”
홍수아는 홍진영 앞에서 팔짱을 끼고 입을 열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
그녀는 홍진영을 상대함에 있어 거리낌이 없었다.
“오빠는 귓구멍을 막고 사는 거야? 아니면 주변 일에 아예 관심이 없는 거야? 방금 내 말 못 들었어? 다시 말해줘?”
“그러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고. 대표년이 나 말고 대체 누구한테 관심을 보이는데? 관심을 보일 애가 있기나 해?”
“있어. 지금 유망주라고 떠드는 꼬마애.”
“뭐, 꼬마? 김철민도 아니고?”
홍진영이 코웃음을 터트려주었다.
“무슨 소리야. 이 바닥에 유망주가 대체 어딨다고. 있어봤자 한국 바닥에서만 유망주겠지. 그딴 새끼 나는 관심 없어.”
“오빠는 진짜 하나도 모르는 구나. 악튜러스랑 요만한 꼬마 몰라?”
홍수아는 초등학생 키 정도 되는 높이에 손을 얹어놓으며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몰라 시발. 내가 어떻게 알아.”
“딱 요만한 꼬마애가 있는데, 지금 사방팔방에서 칭찬하고 난리야. 장비도 안 좋은데 단순히 실력만으로 16강까지 올라왔다고. 누군 장비 탓만 하면서 월드 그랑프리도 못나가고 있는데 말이야.”
“야! 말조심해라.”
월드 그랑프리 진출은 홍진영에겐 아킬레스 같은 거였다.
홍진영의 날 선 윽박에 홍수아는 오히려 콧방귀를 뀌었다.
“흥.”
“야이씨. 지금 너까지 이러기냐? 작작 좀 해라 진짜. 안 그래도 존나 짜증나니까.”
“하긴 나 아니면 누가 오빠한테 이렇게까지 막말하겠어? 오빠나 퍼뜩 정신 차려.지금 오빠가 풀빌라에서 계집애들이랑 시시덕거리는 순간에도 누구는 악착같이 오빠 자리를 노리고 있으니까.”
“이 개 같은 년이 진짜 못 하는 소리가 없네. 노는 년 데려다가 매니저 시켜줬더니 못하는 소리가 없어! 야, 내가 노는 줄만 알아! 다 스트레스 풀라고 그러는 거야.”
“하하하하! 지나가는 개가 쳐웃겠다. 뭐 스트레스? 내가 볼 땐 그만 풀어도 될 것같은데?”
“이게 진짜 씨!”
홍진영의 손이 반쯤 올라갔다.
여차하면 칠 기세.
하지만 홍수아는 그런 홍진영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홍수아가 홍진영에게 대놓고 가운데 손가락을 펼쳐 보이며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런다고 내가 오빠를 무서워할 거 같아? 이거나 잡숴 드시고 정신 좀 차리시지? 그 자리 새파란 애송이한테 뺏기기 전에 말이야.”
“뭔 개 같은 소리야! 개 같은 년이 진짜! 야! 어디가! 아직 말 안 끝났어!”
“난 끝났거든요.”
홍수아는 뒤도 안 돌아보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화가 난 홍진영이 제 앞에 있던 화병을 들어 지금 막 대기실에서 나간 홍수아를 향해 집어던졌다.
화병 깨지는 소리가 꽤 요란스레 났다.
잠시 후 닫혔던 문이 다시 열리며 KRG 대표 한미라가 급히 안쪽을 살펴봤다.
발아래에 깨진 화병과 젖은 카펫이 보였다.
“야, 대체 무슨 일이야?”
씩씩거리며 양손을 허리에 얹어놓고 있던 홍진영이 한미라를 보더니 대뜸 오라고손짓했다.
“대표님, 잘 왔네. 여기 앉아봐.”
“뭐?”
한미라 역시 한 성깔 하는 여자.
표정이 좋을 리 없었다.
“너 말이 갈수록 짧아진다? 내가 니 친구니?”
한미라의 날 선 쏘아붙임에 홍진영은 일그러트린 얼굴로 막 나갔다.
“아 시끄럽고 여기 앉아보라고. 지금 할 얘기가 있으니까.”
KRG 간판스타가 아니었다면 아마 상종도 안 했을 것이다.
한미라는 참을 인 두 개를 새기고 홍진영과 마주보며 앉았다.
다리를 꼬고 앉은 한미라가 담배 하나를 물었다.
“아니 뭔데? 뭔데 그 지랄인데?”
그녀가 뿜어낸 담배 연기가 허공에 붙잡힌다.
그 아래 잔뜩 표정에 힘을 실은 홍진영이 진지한 투로 입을 열었다.
“아까 내 동생이 말하는 거 들었거든. 아니 대표님, 나 말고 다른 녀석한테 집적거린다면서요? 뭐 들어보니까 나름 유망주라고 하던데.”
홍진영도 어린애들이 어른보다 골렘 조종을 유연하게 잘한다는 소문을 듣긴 했었다.
어쩌면 그런 것 때문에 괜히 설레발을 치는 것일지도.
“뭐?”
너무 기가 찬 나머지 한미라는 대꾸도 못했다.
이 새끼가 지금 제 정신인가?
“야, 나 매니지먼트 대표야. 내가 너 말고 다른 선수한테 관심 갖는 거 아주 당연한 거 아냐? 내가 이런 것까지 간섭을 받아야겠니?”
“아니, 지금 대회 기간에 나 말고 대체 누구한테 한눈파는 겁니까? 이거 지금 나한테 소홀히 대하는 거 아니죠?”
“야, 말도 안 되는 꼬장 좀 그만 부려라. 대체 왜 그러니? 너 갈수록 이상해지는 것 같다?”
“아니 씨... 아니 대표님. 내 동생이 어지간하면 저런 말 안 해. 대체 무슨 생각입니까? 설마 나 버리고 다른 놈으로 갈아타시려는 거 아니겠죠? 나 홍진영입니다 홍진영. 대한민국 넘버원 파이터라고요.”
“누가 뭐래? 너 넘버원 맞아. 그리고 KRG 간판스타잖아.”
“그러면 그 꼬마얘기는 뭔데요? 뭔데 시발 내가 그딴 소리까지 내 동생한테 들어야 합니까?”
“아니 다른 선수를 영입하는 건 매니지먼트 일이라니까? 막말로 내가 누굴 영입해서 키우든 그건 네 알바가 아니잖아? 야 홍진영, 이제 정신 차려.”
“됐고. 난 그딴 건 모르겠으니까 대회 기간에 누구 영입하는 건 안 됩니다. 특히 그 뭐냐. 뭐 돼도 않는 유망주라고 떠드는 그 꼬마는 절대 안 되고요.”
“야! 그걸 네가 왜 신경 써? 신경 꺼. 니 일 아니라니까?”
“됐고. 아무튼 요즘 제 신경 존나 예민하니까 서로 거슬리는 거 없도록 합시다. 대표님, 잘 아셨죠? 그럼 전 당분간 KRG에서 아무도 영입 안 하는 걸로 알겠습니다.”
“야!”
홍진영이 나간 개인 대기실에서 한미라가 앓는 소리를 냈다.
‘무슨 저딴 새끼가 다 있어.’
소란을 듣고 찾아온 수행비서 김미연이 한미라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대표님. 이야기는 대충 듣고 왔는데.”
“저거 완전 미친 새끼 아니야? 진짜 정신병 있는지 병원에 가서 진지하게 상담 받아봐야 하는 거 아니야?”
“대체 무슨 일인데요?”
“글쎄 저 미친놈이.”
한미라는 아까 있었던 일을 김미연에게 설명해줬다.
이야기를 듣고 난 김미연도 표정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홍진영 선수가 주제넘은 짓을 했네요.”
“주제만 넘어? 저거 제정신이야? 저 새끼가 뭔데 우리 영업까지 방해하는 건데? 아오 진짜. 진짜 내 성격 같았으면 예전에 치워버리는 건데.”
“대표님이 참으셔야죠. 그래도 홍진영 선수인데.”
“저 새끼 한 번 고꾸라지면 진짜 국물도 없을 줄 알아.”
그 시각.
대표와 씨름하고 나온 홍진영은 동생이 말한 차석민이란 꼬마를 살펴보기 위해 공용 선수 대기실을 찾아왔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여러 스텝들과 코치의 지도를 받고 있는 선수들.
출전 대기 중인 골렘들은 기계적 소음을 내며 주변을 더욱 시끄럽게 만들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홍진영도 이곳에 머무르며 다음 경기를 준비했었다.
그 당시 개인 선수 대기실을 쓰고 있던 사람은 스턴건의 파이터, 이민호였었다.
‘하, 여기 존나 오랜만이네. 한 3년만인가?’
평소라면 거들떠도 안 봤을 이곳.
홍진영은 구석진 곳에서 어른 셋과 함께 있던 남자아이를 보았다.
동생이 말했던 차석민이란 남자아이였다.
그리고 그 뒤엔 거치대에 걸린 꽤 녹슬어 보이는 골렘 하나가 보였다.
산화된 철처럼 붉은 빛깔이 도는 골렘.
홍진영은 대뜸 표정부터 구겼다.
무언가 대단히 마음에 안 들었다.
‘시발 존나 낡았네. 저딴 걸로 16강까지 왔다고? 완전 미친 거 아냐?’
홍진영은 다시 한 번 악튜러스란 골렘을 살펴봤다.
아무리 봐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겉모습만 보면 도저히 본선에 나올 골렘은 아니었으니까.
‘이거 국내 수준이 내가 모르는 사이에 존나 낮아진 거 아냐? 그게 아니면 설명이 안 되는데?’
홍진영의 생각과는 다르게 국내 대회는 꾸준히 성장세에 있었다.
경기 수준도 해가 넘어갈수록 높아지는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진영은 반대로 생각하고 싶었다.
악튜러스와 저 어린 꼬마를 인정하고 싶지가 않은 것이다.
‘시발 같잖은 게 기어 올라오고 있었네. 대진표를 보니까 막판에나 붙을 거 같은데, 그전에는 무조건 떨어지겠지? 에이 떨어지겠지. 저딴 게 어떻게 결승까지 기어 올라와. 말이 안 돼.’
홍진영은 씩 웃었다.
자기 식대로 생각하고 만 것이다.
그런 홍진영의 등장이 신기했는지 주변에선 작은 소란이 일었다.
“야 홍진영이다.”
“홍진영이 여기까진 왜 왔지? 홍진영이면 개인 선수실을 쓸 텐데?”
“야, 시선 봐라. 소문의 꼬마를 쳐다보네. 역시 홍진영도 경계하고 있나봐.”
“와 저 꼬마가 그렇게 실력이 좋았어?”
“골렘 봐라. 녹슨 골렘으로 16강까지 기어왔는데 당연히 경계할 만도 하지. 장비만 좋았어봐. 바로 우승 후보야.”
홍진영의 등장에 소란이 일자 강준이 16강 경기를 준비하고 있던 석민을 불렀다.
“야 석민아.”
“네?”
“저기 홍진영이다.”
“홍진영이요?”
석민이 홍진영 선수를 쳐다보자 홍진영은 시선을 치우고 제 갈 길을 가버렸다.
강준은 소리 없이 떠나가는 홍진영을 보며 턱을 쓸었다.
“키야, 천하의 홍진영이 우리 석민이를 쳐다보고 가네. 이거 실력 인증 아니냐?”
“에이 설마요. 홍진영 선수라면 저 같은 거 신경 안 쓸 텐데요.”
“아니야. 분명 너 쳐다보고 갔어. 네가 화제이긴 한가보다. 주변에서도 다 네 얘기밖에 안 하고 있거든. 네가 다크호스래.”
“그래요?”
석민이 주변을 둘러보자 경기를 준비하던 스텝들이 전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정말 날 쳐다보고 갔나보네.’
홍진영이 어떻게 생각하든 석민에게 홍진영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간판스타 중 하나였다.
그 인성까지야 매스컴에 별로 나오지도 않았고, 오히려 좋게 포장되어 있었기에 딱히 적개심 같은 것도 없는 상태.
오히려 예전에 만났던 이민호처럼 홍진영에게도 사인 같은 걸 받고 싶어 했다.
일단 그의 팬이었으니까.
“기분 좋네요. 홍진영 선수한테도 사인 받고 싶은데, 가면 사인 해줄까요?”
이때 근처에 있던 이루리가 말렸다.
“아까 보니까 많이 경계하더라. 찾아간다고 해서 좋아하진 않을 걸? 오히려 싫어하는 티 팍팍 내면서 너만 상처 받을 거야.”
“그래요? 아쉽네요. 전 이민호 아저씨처럼 홍진영 아저씨도 좋은데.”
“그거야 네 이야기고. 저 홍진영이란 사람은 그렇게 생각 안 할걸? 원래 사람 질투심이란 게 생각보다 추잡스럽거든.”
그 말을 듣고 한성철이 불쑥 끼어들었다.
“에이 어린앤데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어요? 그냥 사인해주고 말겠지.”
“원래 사람이란 게 거리낌 없이 막 살다보면 본성이란 게 드러나는 법이에요. 그리고 그 본성은 대체적으로 추악하고요.”
그런 어른들의 이야기야 흘려듣는 석민은 전광판을 쳐다보았다.
벌써 자기 차례였다.
“저 불 들어 왔어요. 출전 대기 신호에요.”
강준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석민아 이번에도 화이팅이다!”
한성철도 마찬가지.
“저번처럼 가서 발라버려야지.”
싱긋 웃는 석민이 스카우터를 착용했다.
< #26 질럿!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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