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 전문 도둑(2) >
잠시 침음성을 흘리던 존 마커가 끈질긴 의지를 보였다.
다른 건 몰라도 아이가 가지고 있는 칠죄종 세트는 무조건 손에 넣어야 했으니까.
“재밌군. 그럼 이렇게 하도록 하지.”
“어떻게?”
“한국에서 B급 이상 능력을 갖춘 헌터가 분명 있을 거다. 아이를 지키는 헌터가 C급이면 B급 헌터를 고용시켜 치면 돼.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라.”
“B급 헌터라... 차라리 챙을 부르는 게 어떨까? 여기 헌터들은 믿을 수가 없잖아.”
신뢰의 문제.
존 마커는 곧바로 수긍했다.
“그렇군. 신뢰의 문제가 있었군. 네 말대로 챙을 보내는 게 낫겠어. 챙은 내가 연락해보마.”
존 마커는 통화 종료 후 챙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챙은 싱가포르 헌터로 이따금씩 얻게 된 고급 정보들을 전문 도둑들에게 팔아넘기는 자였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선 돈을 받고 수고스런 일을 해주기도 했다.
“챙, 나다 존.”
“오 존. 오랜만이야. 그런데 무슨 일로 직접 전화까지 거셨나? 귀한 몸께서.”
“긴히 부탁할 일이 있다. 그대가 작업 하나만 해줬으면 해.”
“작업? 무슨 작업?”
“한국에 있는 어떤 꼬맹이로부터 포켓을 가져오는 일이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야.”
웃긴 소리였다.
그렇게 쉬운 일이었다면 헌터인 자신에게 연락하지도 않았을 터.
“포켓이라고? 대체 무슨 포켓인데 그래. 포켓이라 해봤자 얼마 안 나가잖아.”
그들은 나름 고급 인력.
구태여 몇 억짜리 물건을 털려고 움직이진 않았다.
이것은 존 마커도 마찬가지였고, 헌터 챙도 마찬가지였다.
“200억을 주지.”
“200억? 호오 대체 무슨 포켓인데?”
“대전 골렘용 세트 아티팩트 중 하나다. 자세한 건 묻지 마라. 200억을 주마.”
“내가 묻지 않는다고 그걸 모를 것 같나? 조사하면 다 나와. 사실대로 말해.”
“칠죄종 세트다.”
“칠죄종? 그게 뭔데.”
“앞서 말했듯이 대전 골렘용 세트 아티팩트다. A급 세트 아티팩트지.”
“어쩐지 가격이 세더라. 잠시 기다려봐. 무슨 물건인지 알고 넘어가야할 거 아니야.”
챙은 탁자 위에 올려놓았던 스카우터를 쓰고서 칠죄종 세트를 검색해봤다.
매물 하나가 올라와 있었는데, 천억.
챙이 길게 휘파람을 불었다.
“이거 천신 세트랑 동급이군. 내가 예전에 당신한테 천신 세트 중 가시 면류관에 대한 정보를 팔아넘기지 않았었나? 그 천신은 어쩌고 왜 갑자기 칠죄종 세트에 관심을 두는 건데.”
챙은 칠죄종 세트에 대해선 몰랐지만 천신 세트는 알고 있었다.
“천신 세트는 포기했다. 벌레들이 너무 많이 꼬여서 모으는 게 불가능할 것 같더군.”
“그래, 천신은 포기하고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적은 칠죄종 세트로 갈아타셨군.”
“200억이다. 할 텐가?”
“하하하! 이봐, 애한테서 포켓 하나 뺏는데 200억이면 어떤 미친놈이 그 일을 마다할까? 내가 모르는 정보가 뭐야. 똑바로 말해.”
“애한테 C급 헌터가 붙어 있다. 경호원이지.”
“C급? 같잖은 게 붙어 있군.”
헌터 챙.
A급 헌터로 C급 헌터쯤이야 한 손으로 가지고 놀 수 있었다.
“C급 하나 붙었다고 200억이나 주진 않아. 나한테 숨기는 게 대체 뭐야?”
“결정해라. 아니면 다른 사람을 알아보지.”
“이봐, 이러면 더 수상하다고.”
“챙, 나는 그렇게 인내심이 좋지 않다. 거절하고 싶다면 거절해라.”
“일단 그 아이 정보부터 넘겨봐. 보고 판단하지.”
“만약 넘긴다면 무조건 해야 한다.”
“당연하지. 일단 넘겨.”
존 마커가 프로인 것처럼 챙도 프로였다.
존 마커가 넘긴 자료를 토대로 챙은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다.
챙은 모아진 자료를 보더니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이것들이 누굴 호구로 아나?
챙이 존 마커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이봐, 테이큰 찍힐 일 있나?”
“그게 무슨 말이지?”
“애아빠가 S급 헌터라는 건 알고서 나한테 이 일을 맡기려고 했나?”
“그게 무슨 상관이지? 애를 죽이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포켓만 가져오면 되는 일이다.”
“큭큭큭. 존, 사람이 너무 무르군. 안 돼. 그래선 안 되지. 당신 애는 안 키워봤나?”
“키워본 적은 없다.”
“그럼 말을 마. 이건 없던 걸로 하지.”
“내가 미리 말했을 텐데? 정보를 받은 즉시 이번 일은 물릴 수 없다고. 이건 서로 간의 신뢰 문제다.”
“좆까. 나 말고 다른 녀석이나 알아보도록. 내가 장담하는데, 아빠가 S급 헌터인 아이를 작정하고 작업칠 새끼는 아마 아무도 없을 거다. 미리 말해두지만 이쪽 세계가 생각보다 꽤 좁거든. 몇 다리 걸치면 전 세계 헌터가 다 연결되지. 이게 농담 같아? 농담 아니야. 이곳에선 다 흩어져 있지만 게이트 안쪽에서는 심심하면 만나는 게 우리다. 아무튼 난 없던 일로 하겠어. 끊겠다.”
“이봐. 챙.”
챙은 그 즉시 전화를 끊었다.
존 마커는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을 집어던졌고, 챙 역시 미간을 구겼다.
챙은 존이 무모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을 엿 먹이려고 한 것은 절대 잊지 않았다.
‘감히 날 엿 먹이려고 해? 내 정보력을 너무 우습게 봤군 존.’
챙은 프로였고, 자기가 어디에 붙어야 더 이득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블랙맘바는 그가 거래하는 여러 거래처 중 하나일 뿐.
그런 거래처 중 하나를 잃는다고 해서 크게 타격받는 건 없었다.
대신 이 거래처를 잃으면서 얻게 될 관계는 챙에겐 더할 나위 없이 소중했다.
이 세상에서 S급 헌터는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
챙은 통화를 마친 직후 누군가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여기선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왜냐면 이 바닥이 원래 그런 바닥이었으니까.
그로부터 이십분 뒤.
게이트에 있던 차태식이 아들한테 전화를 걸었다.
“아들, 잘 있지?”
“아빠, 무슨 일이야? 이 시간에 전화도 다 하고.”
“아까 모르는 사람이 아빠한테 전화를 걸었거든.”
“전화? 무슨 전화?”
“외국에서 온 전문 도둑들이 아들 포켓을 노리는 모양이야. 그것도 헌터까지 고용해서 말이지.”
“정말? 그거 누구한테 들은 건데?”
“정체는 안 밝히더라. 아무튼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아.”
석민은 왜 그런 전화가 갔는지 생각해봤다.
아무래도 외국에서 온 전문 도둑들이 작업 가능한 헌터를 물색하다가 관계가 틀어진 모양이다.
“아빠가 진짜 대단하긴 한가보다. 관계 틀어진 헌터 하나가 아빠한테 잘 보이려고 전화한 거 아니야?”
“하하, 아빠가 원래 엄청 대단했지. 아무튼 아들 조심해야 돼. 이루리였나? 그 사람으로 아마 안 될 거야. B급이나 A급 헌터를 고용하면 C급 헌터로는 경호가 무리니까.”
“음... 아빠 그건 걱정 안 해도 될 거 같아.”
“응? 왜?”
“그 도둑들이 노리는 게 정확히 내가 아니라 내가 가진 포켓이잖아. 그럼 그 포켓을 대놓고 다른 곳에 맡기면 되지. 그럼 나보단 포켓 쪽으로 관심을 돌릴 거 아냐.”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긴 한데. 하지만 아들을 인질로 잡을 수도 있는 거잖아?”
“아빠, 나 악튜러스랑 같이 있으면 최소 A급 헌터는 와야 돼. B급 대전 골렘이 A급 헌터랑 거의 동급이니까. 그런데 A급 헌터정도 되는 고급 인력이 고작 포켓 하나훔치려고 움직이진 않겠지. 그것도 S급 헌터를 아빠로 둔 아이를 상대로 말이야.”
“그런가?”
“일단 도둑들의 관심을 포켓에 집중시켜야겠어. 아들도 위험해지는 건 싫으니까.”
“그건 어떻게 할 건데?”
“대놓고 보여주면 돼.”
“대놓고?”
“도둑들한테 포켓 위치를 새롭게 각인시켜주는 거지.”
석민은 까리뽕을 챙겨와 신림 군부대로 움직였다.
이를 고성능 장비로 감시하고 있던 스티븐이 곧장 존 마커에게 전화를 걸었다.
“가만히 있던 아이가 포켓을 챙겨서 움직이기 시작했어. 새로운 장소에 숨기려는모양이야. 어떻게 하지? 쫓아갈까?”
“쫓아가라. 분명 다른 곳에 숨길 거다.”
석민이 향한 곳은 신림 군부대.
급히 뒤따라간 스티븐이 욕지기를 내뱉었다.
퍽퍽!
퍽만 연달아 내뱉던 스티븐이 다시 존 마커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기 게이트 군부대인데?”
“군부대? 이런. 영악한 꼬마놈이 머리를 쓰는군. 포켓을 군부대에 놔둘 생각인가?”
“어쩌지? 군부대야. 골렘하고 보관 장소가 똑같다고.”
“챙이 아무래도 배신을 한 것 같군. 챙과 통화를 마친 직후 꼬마가 움직였다. 아무래도 우리쪽 정보를 애아빠한테 넘긴 모양이야. 박쥐같은 놈. 역시 중국새끼들은 믿을만한 게 못 돼. 애당초 거래를 하면 안 되는 족속들이다.”
“이런 씨...”
“괜찮아. 오히려 잘 됐어. 이왕 이렇게 된 거 군부대를 직접 털어야겠군.”
“군부대를? 나와 야오린 만으론 무리야. 차라리 대로변이 낫지 군부대는 불가능하다고.”
“내가 직접 움직인다.”
“보스가 직접?”
존 마커.
그가 데리고 있는 대전 골렘은 군부대를 급습할 정도의 무력을 갖추고 있었다.
“거만한 눈이 가진 시공간 균열 능력을 적절히 사용한다면 군부대에 침투하는 게전혀 불가능하진 않지.”
거만한 눈.
칠죄종 세트 중 하나.
“마안을 사용할 생각이군.”
“좋은 아티팩트를 아껴두면 뭐하나. 이럴 때 쓰려고 모으는 거지.”
“그럼 나와 야오린은 어떻게 해? 미국으로 돌아갈까?”
“아이와 골렘을 계속 감시해라. 내가 바로 작업되는 게 아니야. 한국으로 찾아가려면 시간이 좀 걸린다. 못해도 3주는 걸려.”
“하긴, 보스도 바쁜 몸이지.”
“오히려 잘 됐군. 운철로 된 상체 장갑도 털려고 했으니 이왕 이렇게 된 거 골렘만 깔끔하게 털면 되겠군.”
스티븐은 군부대 앞을 서성이다가 빈손으로 나오는 석민과 이루리를 보았다.
고성능 장비로 훑어봤기에 들고 간 포켓이 사라졌다는 것쯤은 그리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래도 확인은 필요한 법.
어느새 보석금을 내고 나온 야오린에게 스티븐이 전화를 걸었다.
“야오린, 확인했어?”
이때 야오린은 컴퓨터 앞에 앉아 위성 영상을 판독 중에 있었다.
“확인했어. 움직인 동선이 골렘이 보관 된 지하 벙커랑 동일해. 같은 곳이야.”
“중간에 어디 들린 곳은 없지?”
“지하 벙커 안에서 움직였다면 모를까, 위성으론 모르겠어.”
“오케이. 아 그리고 이번 일. 보스가 직접 움직인단다.”
“보스가 직접?”
“군부대를 직접 털 생각인가 봐.”
“군부대를 직접? 상남자네.”
“디아블로가 그 정도 능력은 되니까.”
디아블로.
존 마커가 데리고 있는 골렘의 이름.
“더군다나 마안까지 있잖아?
“아, 거만한 눈?”
“그래, 그 마안이면 군부대쯤이야 제 집처럼 드나들 수 있으니까.”
“그럼 우린 그때까지 뭐하는데?”
“지금처럼 감시만 잘하면 돼. 그 골렘이 고물상에 다시 옮겨진다면 모를까? 군부대에 있는 걸 우리가 어쩌진 못하잖아, 안 그래?”
그들의 생각과 다르게 석민은 악튜러스를 조만간 고물상으로 옮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가게로 돌아가는 도중 이루리가 궁금하던 것을 석민에게 물었다.
“아까 벙커 안에서 뭐한 거야?”
“비밀이요.”
“비밀? 뭔데, 좀 알려주면 안 돼? 혼자 셔터 내리고 대체 뭐한 거야.”
“그런 게 있어요.”
석민은 셔터가 닫힌 곳에서 마법진을 그리고 매스 텔레포트를 통해 듀란의 성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까리뽕을 다시 본래 자리에 가져다 놓은 것이다.
지금도 듀란의 성에선 칠죄종 세트 중 아다만틴 장화가 만들어지고 있었고, 그것은 까리뽕이 없으면 진행 자체가 안 되기 때문이다.
이후 악튜러스가 있는 곳까지 다시 되돌아온 석민은 마법진을 지우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루리와 만났다.
이루리의 차를 타고 가게로 돌아가는 길.
석민은 차창 너머 어딘가에서 자신과 악튜러스를 노리고 있을 전문 도둑들을 생각했다.
적어도 석민에게 그들의 존재는 마냥 성가신 적만은 아니었다.
‘칠죄종 신발만 완성되면 악튜러스는 다시 고물상으로 옮길 거야. 군부대란 높은 벽 앞에서 좌절한 도둑 아저씨들에게 새 희망을 줘야 하니까.’
오히려 좋은 먹잇감이었다.
< #25 전문 도둑(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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