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 전문 도둑(2) >
#25 전문 도둑(2)
“이 외국인 아저씨는 누구야?”
석민은 가게에 우르르 몰려온 아이들을 보며 물었다.
몰려온 아이들 중 대장으로 보이는 아이가 석민에게 핸드폰 사진을 보여주며 답했다.
“이 외국인 아저씨가 여길 내려다봤어. 쌍안경 같은 거 쓰고 말이야. 엄청 수상하지?”
“그래?”
외국에서 찾아온 전문 도둑이면 뭐하나.
결국 동네 아이들에게 도촬 당하고 말았다.
그렇다고 그의 부주의라 보기엔 애매했다.
동네 아이들에게 도촬을 당할 것을 그가 어떻게 예상했겠는가?
고작 어린애들인데.
“이거 확실한 거 맞지?”
석민이 재차 물어보자 모여 있던 아이들이 거짓 없이 순수하게 고개를 끄덕여줬다.
“응!”
석민은 귀한 정보를 물어온 아이들에게 호의를 베풀어주기로 했다.
“고맙단 의미로 내가 아이스크림 사줄게.”
“와 석민이 최고!”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돌아온 석민은 넘겨받은 사진 속 외국인 남자를계속 들여다봤다.
이 남자가 자기 가게를 계속 지켜봤단다.
걱정이 일었다.
‘분명 아무 이유 없이 감시하진 않았을 거야.’
그래도 확인은 필요한 법.
석민은 아무도 모르게 맞은 편 건물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소형 카메라를 설치했다.
설치하고 나서 석민은 하루 동안 그 결과를 기다렸다.
결과는 놀라웠다.
정말 아이들 말대로 고물상과 마주보는 맞은편 건물 옥상 위.
금발벽안의 청년이 캡모자를 눌러쓰고 쌍안경을 통해 고물상을 내려다보고 있었으니까.
그것도 주기적으로 말이다.
석민은 눈가를 좁혔다.
‘그러고 보니 그 중국인 누나가 내 포켓에 관심이 많았었지. 분명 칠죄종 세트인 걸 알아봤을 거야.’
수상한 외국인들이 슬슬 등장하기 시작했다.
석민은 그들이 외국에서 온 전문 도둑일 거라 넘겨짚었다.
그것 외에는 그들이 자신한테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었으니까.
‘악튜러스도 그렇고 내가 가진 포켓도 가지고 싶겠지.’
이동건이 범행을 시도한 다음 날부터 석민의 집에는 항시 강준과 한성철이 머물렀다.
한성철도 강준으로부터 여러 이야기를 듣고 난 뒤부터 적극적으로 석민을 보호하기로 했다.
세상에나 아이가 데리고 있는 골렘의 상체 장갑이 운철로 만들어졌단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한성철은 눈에 불을 켜고 주변을 감시했다.
그리고 강준보다 더 열성적으로 고물상에 눌러 앉았다.
나름 뒷북이었지만 전에 무관심했던 만큼 더 열성적으로 변하긴 했다.
아무튼 고물상은 더 이상 아이 혼자 있는 곳이 아니게 됐다.
하지만 석민은 그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확실한 보디가드가 필요해.’
석민은 사고가 있었던 날 연락을 취했던 이루리를 자기 가게에 불러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기랑 레이드를 뛰었던 아이가 갑자기 자기를 경호원으로 쓰겠단다.
이루리는 아이가 장난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장난과는 거리가 먼 아이였으므로 속는 셈치고 반신반의하며 가게에 찾아온 것이다.
가게에 도착한 후 석민과 여러 대화를 하던 이루리가 되물었다.
“그래서 나보고 널 좀 지켜달라고? 누가 널 감시하는 거 같으니까?”
“네 맞아요. 만약 그렇게 해주신다면 누나가 버는 만큼 제가 대신 드릴게요. 위험하게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보다 이게 훨씬 나을 걸요?”
“당연히 레이드 뛰는 것보다 개인경호가 훨씬 낫겠지. 그런데 내가 버는 만큼 주겠다고? 너, 내가 얼마나 버는지 모르는 거니? 감당할 수 있겠어?”
“몰라요. 달에 얼마씩 버세요?”
그녀는 C급 헌터.
등급이 있는 헌터인 만큼 적지 않게 벌고 있을 것이다.
가지고 있는 외제차도 두 대씩이나 됐으니까.
“달에 최소 억은 찍지. 이거 전부 보상해줄 수 있겠어?”
“달에 억이요? 생각보다 나쁘지 않네요.”
잠시 후 석민은 강준이 가져온 개인경호에 대한 계약서를 이루리와 함께 작성했다.
여기서 갑은 차석민, 을은 이루리였다.
계약 체결 후.
이루리는 석민이 이체한 금액을 보더니 제 눈을 의심했다.
진짜로 1억이란 돈을 개인경호를 위해 지불한 것이다.
“야, 너 이 돈 어디서 난 거야?”
“누나 모르세요? 제 아빠가 헌터시잖아요. S급 헌터요. 아빠가 그러는데 누나 고용해도 된대요.”
석민의 말은 사실이었다.
석민은 이루리를 부르기 전 차태식과 전화통화를 했었다.
그 통화에서 석민은 여러 이야기를 했었다.
서울 도로변에서 습격해온 전문 도둑 이야기.
그리고 수상하게 접근해오는 외국인들도 전부 차태식한테 이야기했다.
차태식은 그날 바로 헌터부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했다.
이야기를 듣고 난 헌터부장관은 헌터부 소속 직원들을 주기적으로 고물상으로 보내겠다고 했다.
그럼에도 마음이 편치 않았던 차태식은 아들과 대화하던 중 어느 C급 헌터에 대해 듣게 됐고, 아들이 고용하고 싶다고 하자 그러라고 했다.
이야기를 듣고 난 이루리의 눈이 크게 떠졌다.
“진짜 네 아빠가 차태식 씨야? 최근에 각성하셨다던 그 S급 헌터 말이야.”
“네 맞아요.”
“와, 진짜로?”
“네 진짜에요.”
이루리가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는 모든 헌터들을 아는 건 아니었지만, 최근에 각성한 S급 헌터인 차태식을 모르진 않았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존나게 잘생겼으니까.
“와, 그 사람이 네 아빠였어?”
“네, 누난 모르셨구나.”
“아 그 사람이 네 아빠였구나. 애아빠라는 소문은 얼핏 들었는데...”
잠시 후 스카우터를 통해 차태식과 영상 통화를 하게 된 이루리는 머리털 나고 난생 처음으로 S급 헌터와 조우하게 됐다.
그는 생긴 것만큼이나 목소리도 좋았다.
“아들한테 이야기는 어느 정도 들었습니다. 제 아들 팬이라면서요.”
여기서 게이트 이야기는 쏙 빠졌다.
차태식은 아들과 그녀가 팬 관계인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네, 아버님.”
“제 아들 좀 잘 부탁드릴게요. 제가 지금 사정이 좀 그래서요. 아마 이 일 끝나고 아들만 따라다닐 것 같긴 한데, 그때까지 잘 좀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보수 이야긴데, 달에 1억씩이면 크게 부담되지도 않네요. C급 헌터시니까 그 정도 버시는 건 제가 잘 압니다. 너무 돈 걱정하지 마시고 잘만 경호해주시면 제가 나중에 더 얹혀 드리겠습니다.”
“정말요? 저야 그렇게 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고요. 그런데 외람된 말이지만 정말 잘생기셨어요.”
“아... 네 감사합니다. 심심하면 듣죠. 별 감흥도 없지만.”
상대가 S급 헌터라기에 이루리의 입은 찢어지다 못해 하하호호했다.
헌터 세계에서 인맥은 정말 중요했다.
다른 헌터도 아닌 S급 헌터와의 인맥은 말이 필요 없을 정도.
이 인맥만 살릴 수 있다면 이루리는 한 달 정도 무료 봉사를 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미남.
아이의 상판대기가 심상치 않더니만 전부 아빠에게서 물려받은 것일 줄이야!
영상 통화를 마친 이루리에게 석민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빠랑 잘 얘기하셨어요?”
“그래, 앞으로 누나가 잘 지켜줄게.”
윙크하는 그녀.
석민은 무덤덤하게 반응해줬다.
“좋네요. 앞으로 잘 부탁드릴게요.”
이렇게 조용하던 아이 주변이 시끄러워지자 작업을 치려던 스티븐과 야오린은 곤란해졌다.
전과 다르게 작업치기가 아주 어려워졌다.
고물상에 자주 들락거리는 어른만 여럿.
그중 고정적인 인물만 셋.
하나는 그들도 껄끄러운 C급 헌터였다.
더군다나 아이랑 고물상에서 같이 사는 모양.
며칠 동안 지켜보니 아이랑 항시 붙어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녀가 자리를 비울 때면 어김없이 외부에서 사람들이 찾아와 그 자리를 대신 지켰다.
알아보니 헌터부 소속 직원들.
도둑들 입장에선 엄청 짜증나는 일이었다.
고물상과 마주보는 건물 옥상 위.
스티븐이 표정을 구겼다.
‘짜증나네.’
고물상을 감시하던 스티븐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보스, 나야 스티븐.”
“일은 어떻게 되가나?”
“생각보다 곤란하게 됐어. 전보다 걸리적거리는 게 많아졌거든.”
스티븐은 이번 일과 관련된 여러 이야기를 보스에게 설명해줬다.
전부 며칠 전에 있었던 사고가 말썽이었다.
그것만 없었더라도 아이 주변 경계가 저리 삼엄하게 변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일이 있었군.”
“일정이 많이 늦춰지겠어. 그리고 아이 골렘이 군부대에 들어가는 것도 문제야.”
“다른 방법은 없나?”
“없어. 전에 털었던 놈들도 골렘이 군부대로 들어가 버리면 답이 없으니까 대낮 대로변에서 덮친 거였거든.”
“흐음...”
침음성을 내던 존 마커가 잠시 후 지시를 내렸다.
“우선 포켓부터 확보하는 게 좋겠군. 운철 장갑... 아쉽긴 하지만 답이 없다면 굳이 무리할 필요는 없다.”
“그건 야오린이 맡을 건데, 야오린도 어려운 게 아이 주변에 헌터가 고용됐어. 알아보니까 C급 헌터야.”
“C급 헌터?”
야오린은 골렘 파이터였지만, 그전에 헌터 적합자였다.
물론 높은 등급은 아니었다.
D급 헌터.
그래도 일반인보단 웃도는 수준의 무력은 갖추고 있었다.
“곤란하게 됐군. 야오린이 D급 수준이었던가?”
“나도 그렇게 알고 있어. 그래서 여러모로 골치야. 이걸 어떻게 하지?”
“하지만 야오린은 아직 어리지. 그들도 딱히 경계하진 않을 거다.”
“그렇겠지?”
“우선 야오린을 믿어보지. 야오린은 아직도 대기 중인가?”
“꼬마가 전화하기로 했는데, 아직 전화를 안 하고 있어.”
“그럼 기다려라.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 기회는 항상 있다.”
둘에겐 미안한 소리였지만, 석민은 야오린을 작업치기 위해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이루리, 강준, 한성철이 있던 곳에서 석민이 핸드폰을 들었다.
“슬슬 그 중국인 누나를 불러봐야겠네요. 무슨 꿍꿍이로 저한테 접근했는지 물어봐야겠어요.”
그렇게 석민은 야오린을 불러냈다.
야오린은 아무 생각 없이 가게에 찾아왔다가 기다리고 있던 경찰들에게 붙잡히게됐다.
그제야 본색을 드러내는 석민이 야오린에게 물었다.
“누나, 외국에서 온 도둑이죠?”
그 물음에 야오린은 아무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자, 가자고.”
경찰에 의해 끌려가던 야오린이 고개를 돌려 뒤에서 말없이 지켜보고 있던 석민을 쳐다봤다.
석민은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지만 그제야 야오린은 자신이 어리석었음을 깨닫게 됐다.
상대가 어린애라고 너무 얕봤던 것이다.
경찰차에 실려 호송되던 야오린은 계속 석민만 생각했다.
그 당시 석민은 바보 같은 아이였으니까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은 것이다.
‘얼굴 보고 속았어. 어리다고 너무 얕봤던 거야.’
경찰서에 오게 된 야오린은 곧장 스티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스티븐은 바로 그들의 보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오린이 당했다?”
“나도 믿기진 않은데 아무튼 그렇게 됐어. 지금 경찰서에 있대.”
“골치 아프게 됐군.”
“보스, 어떻게 할 거야?”
“여기 변호사들을 보내야겠군. 심증만 있으니 보석금만 내면 될 거다.”
“하긴 뭘 저지른 건 아니니까.”
“그보다 골치군. 야오린이 포켓을 쉽게 가지고 나올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 말을 들어보니까 아이가 처음부터 야오린을 의심한 모양이야.”
“흐음... 생각보다 골치 아픈 꼬마였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