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파이트-67화 (67/173)

< #24 전문 도둑 >

*  * *

도망친 이동건과 지영민은 경찰의 끈질긴 추격 끝에 전부 붙잡혔다.

대전 골렘을 이용한 범죄 행위의 경우 헌터법의 적용을 받는다.

헌터법은 국제표준헌터법의 영향을 받았으며, 이 헌터법에선 대전 골렘을 이용한 절도 행위의 경우 이유를 불문하고 피해자에게 모든 권리를 양도하게 된다.

소유권마저 넘긴다는 소리다.

골렘 장비가 워낙 고가이기도 하고 보상 받을 길이 막막하기에 이러한 법이 생겨났긴 했지만, 실상 법을 떠나서 불문율 같은 것으로 많이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전문 도둑들은 나름 각오가 필요했다.

일이 실패할 경우 자기 골렘과 그 장비들을 전부 포기할 각오가 말이다.

경찰 조사를 마친 강준은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석민과 마주보았다.

“많이 기다렸지? 조사 다 끝났다. 세상에 서울 도로변에서 덮쳐올 줄이야. 나는 생각도 못 했다.”

“그 아저씨들은 어떻게 됐어요? 전문 도둑들이요.”

“아직 조사 중이야. 보니까 이미 자포자기한 것 같더라.”

“범행을 부인하진 않았어요?”

“못 하지. 차량 블랙박스에 도로 위 CCTV가 있어서 빼도 박도 못 하는데.”

“다행이네요. 나쁜 짓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죠.”

“그보다 헬하운드라고 했던가? 우리 습격했던 그 골렘 말이다. 그거 경찰에서 어떻게 할 거냐고 묻던데. 석민아 그건 어떻게 할 생각이냐?”

“어떻게 하긴요. 이제 저희 건데. 장비까지 전부 가져갈 거예요.”

석민은 헬하운드의 새로운 주인이 자신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나도 이런 경험이 처음이긴 한데 진짜 주긴 하는구나.”

“헌터법을 따져 봐도 소유권은 저희한테 넘어와요. 저희가 만약 보험을 안 들어놨다고 생각해보세요. 그 피해를 어떻게 복구하겠어요? 그거라도 가져가야 그나마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거죠.”

“하긴. 알았다. 그럼 그렇게 말하고 오마.”

“네.”

이날 사건으로 석민은 무빙 아머리를 잃었지만 대신 B급 대전 골렘을 얻게 됐다.

헬하운드라는 락 골렘을 말이다.

‘우선 코어는 멀쩡했어.’

석민은 스카우터를 쓰고서 아까 보았던 정보를 재출력시켰다.

-인터넷에 접속하여 해당 정보를 출력합니다.

[에덴해, 중형 크라켄 심장]

등급 : B+

효율 : 98%

상태 : 싱글 코어 재료. 상태 양호.

특이사항

-중국 저장성에서 도난 신고 된 물건-수(水) 속성에 강한 저항력.

‘출력은 지금 악튜러스가 쓰고 있는 것보단 좋을 거야. 시세만 25억짜리니까. 하지만 여왕의 게으름 효과는 없어지겠지. 흠...’

석민은 새롭게 얻은 코어를 두고 고심했다.

‘내가 가진 두 코어를 팔아서 한 단계 더 높은 코어를 사는 게 좋긴 한데... 아마 매물이 없을 거야. 그렇다고 듀얼 코어로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코어 등급이 올라갈수록 가격도 높아지지만 그것 말고도 매물 자체가 귀해서 구하기가 어려워진다.

지금 당장 골렘 닷컴에 접속해 봐도 BB- 등급의 코어 매물을 찾기가 힘들 정도.

본디라면 이 정도까지 가뭄은 아니었지만, 최근에 무슨 일 하나가 생겼다.

바로.

‘요즘 마정석 충전붐 때문에 그래.’

최근에 마정석 충전붐이 일어났다.

다 쓴 마정석을 골렘용 코어에 연결시켜 다시 재충전시키는 일이다.

이러한 일로 재미를 보는 사람들이 늘어나다보니 코어 매물이 순식간에 사라지는진풍경을 낳게 됐다.

‘그 일만 없었어도 코어 구하는 게 좀 더 수월했을 텐데. 아쉽다.’

마정석 충전붐 이후 코어 가격은 연일 고공행진 중.

앞으로 더 비싸질 거란 전망이 우세였다.

그래서 석민은 섣부르게 코어를 파는 건 아니라고 봤다.

‘둘 중 하나는 다른 골렘에게 주던가 아니면 악튜러스한테 몰아줘야겠다.’

한 골렘에 두 코어가 있게 되면 보통 듀얼 코어로 쓰게 된다.

하지만 두 코어를 달고도 듀얼 코어로 쓰이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이 경우 듀얼 코어의 목적보단 다른 목적이 있었다.

‘예비 발전기 같은 거지. 코어 하나가 망가지면 다른 코어를 쓸 수 있게.’

대전 중 코어가 망가질 경우를 대비해 하나의 코어를 더 달아두는 일.

이렇게 되면 자체 중량이 늘어나기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게 되지만 코어 하나가 더 있다는 점에서 경기 안정성이 크게 향상되기에 이따금씩 고려되기도 했다.

‘코어 문제는 좀 더 생각해보자.’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그 밖의 장비들.

‘코어 캡슐도 B등급이었던 것 같은데.’

석민은 코어 캡슐도 다시 살펴봤다.

-인터넷에 접속하여 해당 정보를 출력합니다.

[사쿠라 중공업, 코어 캡슐 C-01]

등급 : B-

효율 : 63%

재질 : 티타늄 합금

상태 : 싱글 코어용

특이사항

-완전 티타늄 합금 제품

-티타늄 합금 소재로 경량성 UP!

석민이 지금까지 봐왔던 코어 캡슐 중에서 유일하게 티타늄 합금으로 된 제품이었다.

등급은 B-.

성난 악튜러스가 주먹으로 찌그러트려 상태가 영 아니었지만, 고쳐 쓸 수만 있다면 나름 나쁘지 않았다.

‘이건 고쳐 써야겠다. 나쁘지 않아.’

코어 캡슐만 아니라 외골격 장비들도 대부분 티타늄 합금으로 되어 있었다.

악튜러스와의 싸움으로 망가진 장비들이 많긴 했지만 그런 장비들이야 다시 용광로에 넣고 굳히면 그만.

이번에 전문 도둑들이 습격해온 일은 분명 안 좋은 일이었지만, 다르게 보면 장비를 업그레이드할 여력이 없었던 석민에겐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 아저씨들 덕분에 살았어. 이거 은근히 고마워해야겠는 걸?’

이번 일을 계기로 악튜러스는 드디어 지금까지 써오던 강철 껍데기를 벗겨내고 티타늄이라는 고급 소재의 장갑을 두르게 됐다.

티타늄 합금.

강철에 비해 가벼우면서 그 강도는 강철과 비슷하거나 더 좋았다.

‘물론 마법 공격엔 아직도 취약하겠지만, 그래도 무거운 강철 장갑보단 나을 거야.’

헬하운드 장비를 어떻게 할지는 대부분 결정이 났다.

이제 남은 건 그 장비들을 공중분해 당한 헬하운드의 향후 거처를 정하는 일이다.

석민은 옅게 웃었다.

‘그것도 미리 생각해둔 게 있지.’

그 사이 경찰들과 만나고온 강준이 석민을 다시 찾아왔다.

“석민아, 얘기 다 끝났다. 이제 가자.”

“저흰 이대로 가면 돼요?”

“필요하면 나중에 연락주겠대. 물론 나한테 하겠지만 하하.”

“고생 많으셨어요.”

“아니지 뭘. 이런 건 원래 어른이 하는 거야.”

웃으며 떠나가는 둘과 다르게 송파구 경찰서에 잡혀 있던 이동건은 아직도 불량스런 태도를 고수하고 있었다.

반면 그의 동생 지영민은 세상을 다 잃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괜히 돈 천억에 눈깔이 뒤집혔다가 지금까지 쌓아올린 모든 걸 날릴 처지가 되었으니 당연했다.

경찰이 태도 불량한 이동건에게 날 선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 그 정보 다 어디서 얻었어? 누구한테 그 정보를 얻었으니까 대낮에 그 지랄을 한 거 아냐? 안 그래?”

그 물음에 이동건은 씩 웃어주었다.

그러다 물귀신이 되기로 했다.

나 혼자 죽을 순 없지.

“그 정보, 헌터협회 조상민이라고 있습니다. 그 새끼가 저한테 넘겼거든요. 그 사람 찾아다가 잘 물어보십시오.”

“조상민? 그 사람 헌터협회 직원이야?”

“예 맞습니다. 골렘 개체 등급 매기는 놈입니다. 제가 얻은 정보도 다 그 사람한테 얻은 겁니다. 아주 불량한 공무원이에요.”

“이것들이 끼리끼리 잘도 논다.”

석민과 함께 가게로 돌아온 강준이 닫았던 입을 열었다.

“석민아, 오늘 고생 많이 했다. 세상에 나는 전문 도둑들이 그렇게 대범할 줄 몰랐어.”

“그 아저씨들도 답이 없었겠죠. 저희가 경기 끝나면 곧장 신림 군부대로 갔었잖아요.”

“어휴 세상 진짜 무섭다. 세상에 벌건 대낮에...”

그러다 강준은 외국에서 온 중국 소녀가 생각났다.

“야 석민아. 그 여자애 있잖아. 중학생으로 보이는 그 여자애. 걔도 막 그런 애 아니냐?”

“맞아요. 좀 수상하죠.”

“오늘 이 일이 있고 나니까 다 수상해 보인다. 그 여자애는 대체 언제부터 접근한거냐?”

“제가 사진 보여준 날부터 접근했어요.”

“그럼 얼마 안 됐네?”

“그 누나도 요주의 인물이에요. 제가 나중에 집으로 부를 건데, 그때 경찰 아저씨한테 넘기려고요. 그때도 강준 아저씨가 수고 좀 해주세요.”

“아니 그런 건 걱정하지 말고. 아저씨가 다 알아서 해줄 테니까.”

오늘 강준은 경찰로부터 악튜러스의 상체 장갑 이야기를 듣게 됐다.

두 전문 도둑들이 악튜러스를 노린 이유가 그 상체 장갑이었으니까.

“그런데 석민아. 악튜러스가 쓰고 있는 상체 장갑 있잖아. 그거 엄청 특별하다면서? 그게 운철로 만들어졌다는 얘기가 있던데 진짜냐?”

석민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지금까지 숨겨온 정보가 이젠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정보가 됐기 때문이다.

“그거 경찰 아저씨가 말했어요?”

“어. 경찰 아저씨가 그렇게 말하더라. 그거 운철로 만들었다고 하던데, 진짜야?

“네 맞아요. 그래서 제가 그 외국에서 온 중국인 누나를 경계했던 거예요.”

“이거 보통 일이 아니었구나. 알았다. 이건 내가 대표형하고 진지하게 얘기해볼게.”

“아 그리고 아저씨.”

“응?”

“무빙 아머리도 새로 구해야할 거 같아요. 수리할 때까지 못 기다릴 것 같거든요.”

“아 그것도 내가 알아볼게.”

“아저씨가 수고 좀 해주세요.”

“그래 석민아. 아 그런데 혼자 있어도 괜찮겠니? 괜찮으면 아저씨랑 같이 갈래?”

악튜러스 문제만 아니라 칠죄종 포켓을 가지고 있는 석민도 나름 안전에 문제가 있었다.

“네, 그러는 게 좋을 거 같네요.”

“그래 오늘은 나랑 같이 자고, 내일부터는 사설경호업체 좀 알아보자.”

다음 날 석민은 경찰서에 있던 헬하운드가 고물상에 실려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헬하운드를 맞이하러 고물상으로 돌아갔다.

주인을 잃은 헬하운드는 말없이 석민을 내려다봤다.

골렘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죄는 그 골렘에게 나쁜 짓을 시킨 주인에게 있었다.

“안녕?”

석민이 인사를 건네자 거대한 락 골렘은 말이 없었다.

“너도 친구들 만나러 가야지.”

흙벽과 흙 천장으로 둘러싸인, 마치 요새 같은 고물상.

고물상 안에 출입하지 않고선 외부에선 고물상 내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길이 전혀 없었다.

이는 예전에 고물상을 감시하던 이동건도 마찬가지였고, 그 빈자리를 대신하고 있던 스티븐도 마찬가지였다.

‘골렘 하나 출입. 하지만 우리가 목표하던 골렘은 아니고 어제 그 골렘이네.’

스티븐은 전날 있었던 일을 모르지 않았다.

어제 속보로도 나왔었고, 여러모로 시끄러운 이야기 중 하나였으니까.

다만 운철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손을 쓴 거겠지. 그거야 내 알바 아니고.’

스티븐은 고물상에 있던 관심을 거뒀다.

그가 확인하고자 했던 것은 아이의 동태 뿐.

포켓은 야오린이 작업치기로 했으니 아이 동태만 살피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스티븐을 남모르게 감시하는 눈들이 있었다.

바로 동네 아이들이었다.

모인 아이들이 건물 옥상 위를 보며 수군거렸다.

“저기 봐. 이번엔 외국인 아저씨야.”

“저번에 그 못된 아저씨랑 한패일까?”

“알아봐야겠다. 가서 애들 모아.”

저들끼리 숙덕거리는 아이들이 바빠질 때쯤, 석민은 헬하운드와 함께 게이트 너머에 위치한 채굴장에 도착해 있었다.

채굴장에 도착한 헬하운드는 어리둥절했다.

뭔지 모르겠지만 수많은 골렘들과 몬스터 수천 마리가 땅을 거하게 헤집고 있었으니까.

“아그니.”

석민이 어떤 골렘을 부르자 이글이글 타오르는 골렘 하나가 찾아와 섰다.

석민이 아그니에게 새 친구를 소개시켰다.

“여기 새친구야. 서로 인사해. 얘는 헬하운드야.”

아그니가 헬하운드를 무섭게 노려봤다.

‘대장. 나다. 넌 따른다.’

헬하운드는 아그니처럼 말은 하지 못했지만 나름 성깔이 있는 골렘이었다.

아그니의 명령에 반하는 헬하운드가 주먹을 꽝꽝 부딪치더니 적의를 보였다.

아그니의 입꼬리가 스르르 올라갔다.

잠시 후.

지하 수백 미터까지 파인 채굴장 아래로 거대한 락 골렘 하나가 굴러 떨어졌다.

방금 전까지 헬하운드와 주먹을 맞대던 아그니의 작품이었다.

아그니가 채굴장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가파른 절벽 위에 섰다.

이어 올라가는 입꼬리는 만족의 의미라.

< #24 전문 도둑 > 끝

ⓒ 대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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